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82화 (18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기억! 182 >

저택을 나선 크랭크는 바로 공방으로 직행했다.

“어어? 정비 길드에 들리는 거 아냐?”

“그건 이미 내 손을 떠났다. 게다가 지금은 할 일이 많아.”

공방에 도착한 크랭크는 바로 겉옷을 벗어 던지고 앞치마를 하더니 에이브의 오토마톤 수리를 연이어서 시작했다.

크랭크는 떼어 둔 머리를 캐롯에게 내밀었다.

“정비 길드에 가져가서 현상을 이야기하고 문제되는 기억의 삭제와 논리 회로의 초기화를 잡아달라고 해.”

기다리고 있던 트리스타가 다가왔다.

“나도 돕게 해주세요.”

“잘됐군요. 마침 손이 필요했습니다.”

보따리를 짊어진 캐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쿠르프 아저씨가 안 보이네?”

“외출하셨습니다.”

“그럼 나도 외출! 정비 길드 심부름 다녀오겠습니다~! 아! 마력석 충전도 시켜야 하는데!”

“그건 아리에테에게 맡길 테니 다녀와라 이쪽이 더 급하다.”

“알았엉!”

보따리를 짊어진 캐롯이 호다닥 밖으로 뛰쳐나가고 아리에테도 로테를 호위 삼아 충전탑으로 향했다.

다시 사람이 북적이기 시작한 공방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 * *

혼자서 정비 길드를 찾아간 캐롯은 고장난 오토마톤의 머리를 수리하러 온 김에 그 자동 갑옷의 시제품도 구경했다.

“오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우리 애랑 비슷하네? 역시 아르곤 최고의 두뇌 집단! 멋지게 완성했어!”

넉살 좋게 작업실 안으로 들어와 실험용 자동 갑옷을 이리저리 살피는 캐롯을 보고 정비 기사들이 낄낄거렸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데.”

“아잉, 우리 사이에 이러기에요? 그리고 나도 관계자거든요.”

모여든 정비 기사들이 뻔뻔함마저 과시하는 인형 소녀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고것 참.”

“크랭크의 캐롯이 왔다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캐롯이 두 팔을 들고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아하하! 팬미팅인거야? 슈퍼스타 캐롯은 여기야! 여기!”

정비 길드에서 캐롯이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상하리만치 자아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이 손본 커스텀이 이 정도의 완성도는 좀 드문 경우니까 말이야.”

“음, 분해해 보고 싶다. 내부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헉! 이 사람들 눈빛이 이상해!”

정비 기사들이 음흉한 얼굴로 바라보는 가운데 슬금슬금 물러서던 캐롯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고개를 돌리니 키가 크고 고지식한 얼굴의 늙은이가 팔짱을 하고 서 있다. 길드의 실질적 운영을 책임지는 부 길드 마스터 암폴이었다.

그의 성격이 좀 까칠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캐롯은 공손히 허리를 숙여서 먼저 예의를 차렸다.

“안녕하세요. 암폴 부장님. 날씨가 참 좋죠?”

발랄한 오토마톤의 인사를 받으며 눈썹을 꿈틀거린 암폴 부장이 벽에 세워진 자동 갑옷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웬일이냐, 너희 주인이 가서 잘 만들어놨는지 한번 보고 오라더냐?”

“아뇨. 폭주한 오토마톤의 기억을 지우러 들렀을 뿐이에요. 영주님한테 완성됐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크랭크는 이미 자기 손을 떠났으니 관심 없다고 하던걸요?”

그때 저쪽 작업장에서 캐롯을 불렀다.

“어이, 다됐어.”

“으와! 빨라!”

두 팔을 들고 와다다 달려가 머리를 돌려받은 캐롯이 그를 들어 올리며 크게 웃었다.

“자! 이제 너를 기다리는 주인님께로 돌아가자! 모험은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

가만히 그런 캐롯을 내려다보던 담당 정비 기사들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한 번도 기억을 건드린 적이 없었지?”

“맞네, 이상한 적 없었어?”

머리를 안아 든 캐롯이 에헤헤 웃으며 말했다.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주인님이 구해줬어요.”

“오오, 마스터의 설득과 오토마톤의 이해인가. 대단한데?”

길드 부 마스터가 끼어들었다.

“서로 유대가 깊은 녀석들이 이해하고 의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거지. 기술이 부족한 옛날에는 그런 감성에 많이 기댔다. 지금은 드물지만.”

“왜요? 기술이 발전해서요?”

캐롯의 물음에 모두가 길드 부 마스터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되려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런가? 기술이 발전해서 그런가?”

“아니! 물은 건 내 쪽인데!”

수리비를 치르고 공방으로 돌아온 캐롯은 머리를 돌려주고 이제 충전을 위해서 마력 충전소로 향했다.

막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투둑투둑! 쏴아아아아!

“어억?! 비 온다! 많이 와!”

공방 입구에서 고개를 내민 캐롯이 손바닥을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작업장에서 뛰쳐나온 크랭크가 안쪽 보일러로 달려가 급수 밸브를 열었다.

그는 오면서 우산을 챙겨왔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우러러보던 크랭크가 말했다.

“이제 장마가 시작됐구나. 한동안 조용히 지내겠군.”

“어? 개구리 잡으러 안 나가?”

작년의 일과를 떠올린 캐롯의 말에 여전히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크랭크가 팔짱을 끼었다.

“그건 아리에테가 결정할 일이지. 나는 장마가 끝나고 할 일을 준비해야 하거든.”

“와, 우리 요 1년 정도에 많은 게 변했구나. 개구리 사냥도 좋은 용돈벌이였는데.”

크랭크가 투구를 내리고 아동복 차림의 캐롯을 보았다.

“오늘을 위해서 그동안 준비했던 거야. 이젠 달릴 때지. 그러고 보니 너 전투복이랑 머리카락 바꿔야겠다.”

“이 머리카락은 참 마음에 들었는데 말야. 반년도 못 썼네.”

“물불 안 가리니까 그렇지.”

캐롯이 하하 웃었다.

크랭크가 선반에 쌓여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네 팬이 보내주는 머리카락이 많으니까 그중에서 하나 골라봐.”

“하하, 그거 좋네. 아무거나 골라잡을 수 있겠다.”

쏴아아아아-!

빗줄기가 거세진다.

입구에 그와 나란히 선 캐롯이 물었다.

“크랭크, 혹시 내 기억 지운 적 있어?”

가만히 캐롯과 눈을 마주한 크랭크는 고개를 돌리고 트리스타가 들고 있는 오토마톤의 머리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네게 캐롯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로 한 번도 없다.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오! 그러면 내 안의 너와 네 안의 나는 빈틈없이 서로 딱딱 맞은 상태네?”

“맞다. 우리의 기억과 경험은 한치의 틀림이 없지.”

기억과 추억을 온전히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형 소녀의 가슴에 평온을 안겼다.

“아차차! 아리에테랑 로테가 충전탑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거야! 이거 가져다줘야지.”

우산을 펼쳐 든 캐롯이 찰박찰박 골목길로 뛰어든다.

“보통 어린 소녀가 심부름 가는 것 같군요.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만들 수 있죠?”

여전히 오토마톤의 머리를 가슴에 안은 트리스타가 문 앞으로 다가왔다. 팔짱을 한 크랭크가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가 몸을 돌렸다.

“분명 내가 손을 봐주긴 했지만, 저 캐롯이 발현된 이유는 나조차도 모르겠습니다.”

힐끔 그를 돌아본 트리스타가 다시 빗속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캐롯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 * *

마력 충전소는 방주 도시의 에너지 발전소를 겸하고 있다. 대기 중의 마나를 모아서 마력석에 충전하거나 선로를 깔아서 도시 운용에 사용하는데, 수집기의 구조상 하늘 높이 솟아오른 탑 때문에 충전탑이라고도 부른다.

빗속을 달려 광장 근처에 있는 마력 충전소로 향하던 캐롯이 골목길에서 쏟아진 우산 더미를 정리하는 일가족을 발견했다.

나이 차가 좀 나는 어여쁜 자매와 늙은 영감이었다.

“엇! 우산! 당신들 우산 장수야? 잘 됐다! 이거 하나뿐이었는데.”

“응? 우와! 캐롯이잖아! 너, 캐롯이지? 언니! 캐롯이야!”

“맞아! 나는 행복한 세상의 오토마톤! 그런데 너희 둘이서 그 우산 다 들고 갈 수 있겠어?”

자매의 동생은 반가워했지만, 언니는 급한 마음이었다. 가느다란 몸은 우산 더미를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다.

비가 오니까 그동안 만들어둔 우산을 팔 절호의 기회였다.

“이리 줘봐. 내가 좀 거들어 줄게. 동생은 나 따라와. 영감님은 비 맞고 감기 걸릴라, 안에 들어가요.”

조그만 몸으로 우산 더미를 짊어진 캐롯은 와다다다 달리기 시작했고, 깜짝 놀란 우산 자매의 동생이 뒤따랐다.

충전소에 도착하자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에 당황한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어이! 동네 사람들! 우산 왔어! 우산 동생, 이거 하나 얼마지?”

“허억! 헉! 사, 3천 리즈에요.”

충전소 안에 좌판을 벌린 캐롯은 사람들에게 우산을 팔았다.

“마침 잘됐네.”

“애들이 우산 팔러 나온 거야? 기특하네.”

“이 사람아, 저 녀석은 오토마톤이야. 캐롯이라고 주인보다 유명한 오토마톤이라고.”

같이 온 지인들의 말에 우산을 사던 아낙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오토마톤 캐롯? 네가 그 캐롯이니? 어머나. 집에 가서 아들들한테 자랑해야겠네. 우리 애들이 네 팬이야.”

“으하하! 브이! 브이!”

한쪽 눈을 찡긋 윙크한 캐롯이 브이로 만든 손가락을 눈가에 대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순식간에 우산을 팔아치우자 우산 동생이 좋아했다.

“고마워!”

“사람 많이 다니는 곳에 가서 소리 질러.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아무도 네가 관심을 주지 않아, 쫄지 말고!”

“응!”

순식간에 완판한 여동생이 언니를 부르기 위해 서둘러 떠나갔다.

마주 손을 흔들던 캐롯이 갑자기 도끼눈을 했다.

“헉! 우산을 사야 했는데! 다 팔아버렸잖아?!”

아리에테가 웃으며 다가왔다.

“너는 대체 본업이 뭐지?”

뒤로 휙 돌아선 캐롯이 외쳤다.

“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태어난 행복한 인형! 너희들의 웃음을 보면 힘이 나지! 마력석 충전은 어떻게 됐어? 로테는?”

아리에테가 뒤를 가리켰다.

“지금 충전 중이다. 양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린다더군.”

“그럼 기다리지 말고 이 우산 들고 먼저 돌아가, 나도 충전하면 이틀은 걸릴 거야.”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가 우산을 펼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비 오는 날이 이토록 즐거운 적이 없었다. 네 덕분이야.”

“네 용기가 그걸 만들었어. 세상의 창문을 연 건 다름 아닌 너야. 까짓 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렸을 뿐이거든.”

“네게 세상살이에 대해서 들으니 어쩐지 좀 우습기도 하구나.”

“그럼 웃어야지! 와하하! 하고. 우는 것보다 화내는 것, 화내는 것 보다 웃는 것이 건설적인 감정표현이야. 잊지 마.”

빗속에서 우산을 펼치고 선 전신의수의 여기사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년에게도 네 말을 전해주마.”

공방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손을 흔든 캐롯이 이제 안쪽의 충전 시설로 향했다.

“이번엔 오랜만에 오네. 이번에도 반만 충전하는 거야?”

“무슨 말씀! 이번엔 만땅! 요즘 돈 좀 벌었거든요.”

관리원이 즐겁게 웃으며 선불금을 받았다. 의자에 앉아 목에 기구를 건 캐롯이 눈을 감았다. 주변에도 많은 오토마톤이 충전기를 목에 걸고 앉거나 서 있다.

잠시 후, 충전 중인 캐롯의 다리 사이에 새로 만든 우산 하나가 살며시 끼워졌다.

도움 받은 우산 자매들이었다.

“언니, 오토마톤도 꿈을 꿔?”

“그러게, 모르겠네. 하지만 자는 얼굴은 참 평화롭다.”

안내해준 관리원은 모르는 척했고, 한쪽 눈을 슬며시 떠본 캐롯도 애써서 잠든 척을 했다.

* * *

캐롯이 충전소에 앉아있는 동안, 크랭크는 에이브의 오토마톤을 완성 시켰다.

트리스타는 조금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철야를 할 줄은 몰랐어요.”

크랭크는 작업대에 앉은 오토마톤 마틸다의 점검을 마친 다음 아리에테에게 에이브를 불러오도록 했다.

수리가 끝났다는 소식에 에이브는 빗속을 달려서 공방에 도착했다.

“마틸다!”

깨어나자마자 긴 갈색 방열 가발을 땋아서 틀어 올리는 기묘한 짓을 하던 마틸다가 고개를 돌렸다.

“좋은 오후입니다. 에이브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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