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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81화 (181/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견습! 181 >

팔짱을 낀 쿠르프가 낄낄 웃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분노한 거인을 가리키며 라트핀을 돌아보았다.

“내가 뭐랬냐? 그런 어정쩡한 방법에 속을 정도로 어리숙한 놈이 아니라고 그랬지?”

“당신이 집중관리 대상을 언급해서 그래요.”

아리에테가 손을 든다.

“아까부터 거슬리는데, 그게 뭡니까?”

잠깐 아리에테를 쳐다보던 라트핀이 캐롯의 얼음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말했다.

“참 신기하지. 제재를 걸어서 발전을 억눌러도 가끔씩 튀어나오거든? 너희들 같은 문명의 선구자가.”

문명의 선구자.

자식의 칭찬을 받은 엄마의 그것처럼 캐롯의 눈이 반짝인다.

“우왕! 뭔지 모르지만, 그거 듣기 좋다!”

“다 늙은 드워프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

이젠 쿠르프마저 크랭크처럼 얼굴을 덮었다. 씩 웃음 지은 라트핀이 계속 말했다.

“나는 얼마 전 켄투가에 체류하고 있다가 하늘 사다리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어.”

크랭크가 찔끔했다. 캐롯은 여전히 눈을 반짝였고, 쿠르프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팔짱을 끼었다.

“그럼 당신이?”

“그래! 세계 최고의 고자질쟁이가 바로 이 녀석이다!”

쿠르프의 삿대질에 라트핀은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으응? 그게 뭐가 나쁘죠? 우리가 강제로 빼앗은 것도 아니고 당신네 연합수장들과의 협상으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는데 말이죠.”

“재주는 내가 넘었는데 왜 그놈들이 챙기냐!”

여유만만한 표정의 라트핀은 이제 손바닥을 흔들었다.

“당신과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으니 그만둬요. 나는 지금 여기 거인 친구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니까.”

쿠르프는 혈압이 쏠린다는 듯 뒤 목을 잡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멋진 다리를 바꿔 꼰 라트핀이 다시 크랭크와 캐롯을 보았다.

그녀는 솔직한 심정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대단했어. 나는 부유섬을 끌어내리기 위한 그 일련의 과정이 담긴 영상도 봤거든? 참, 그 엉덩이가 예쁜 청년은 어디에 있지?”

“푸흡! 쿨럭쿨럭-!”

얼음 커피를 마시던 아리에테가 그걸 뿜어냈다. 영상기록장치에 확실히 그런 장면이 있긴 했다. 화제도 되었고······.

당사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엘프답지 않게 좀 깔깔거린 그녀는 계속 말했다.

“다들 돌아온 유산에 흥분해 있을 때 나는 그걸 끌어내린 사람들에게 주목했지. 장로회 의원은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리고 회의 결과 결론 내렸어. 아, 이 녀석들 문명의 선구자로구나.”

“그래서 감시자를 붙이는 겁니까?”

크랭크의 물음에 라트핀이 손사래를 쳤다.

“너무 인상 쓰지 마. 다 같이 잘 먹고 잘살면 좋잖아?”

크랭크는 투구를 슬쩍 더듬었다.

······보이나?

“그리고 착각하는 게 있는데, 문명의 선구자로 지정된 관리 대상의 목적은 제재가 아니라 지원이야.”

캐롯을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쑥 내밀었다.

“지원요?”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금전이든 설비든 뭐든 지원할 거야. 대신 성과는 착실히 내야 하지. 큰 성과가 나오면 더 큰 투자와 보상이 진행되는 거로 생각하면 된단다.”

팔짱을 낀 크랭크가 한참 입을 다물고 서 있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간단히 말하면 외부 개발인력이군요.”

“쉽게 풀면 그래. 너희가 만든 기술은 무엇이든 우리가 가져다 유용할 거야.”

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아리에테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크랭크를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권이 얽히면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 마. 다 협약된 거니까.”

라트핀이 그렇게 말하며 꺼낸 것은 금색 도장이 찍힌 종이였다.

그것을 받아든 크랭크가 얼떨떨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국왕 인장인가?”

“오기 전에 들린 아르곤 영주의 확인서도 있어.”

공방 식구들이 모여들어 서류를 살펴보는데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로나가 한마디 거들었다.

“크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요. 그저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만들어낸 발견이나 발명을 소중히 여겨 미래로 전하고자 하는 이유에서 진행하는 거니까.”

국왕의 인장에 영주의 확인서, 애초에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크랭크가 정신적으로 한숨을 쉬면서 투구를 들었다. 라트핀도 몇 마디 더 했다.

“모든 권리 역시 너희들 거야. 그걸로 돈을 벌어도 우린 상관치 않으니 걱정하지 마렴.”

라트핀을 포함한 주변 엘프들이 히죽 웃는다.

그것은 인간의 망각과 수백 년의 시간을 계산에 넣은 이야기였다.

수백, 수천 년 뒤에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그 기록조차 희미해지면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 되리라.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수백 년이 지나도 크랭크의 발명과 발견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좋네! 우리가 벌이는 일 중에 쓸 만한 걸 적당한 가격에 사주겠다는 거잖아?”

캐롯의 외침이었다.

크랭크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고, 썩 내키지도 않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요.”

“그래도 선선히 받아들여줘서 다행이에요. 쿠르프 님 때는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로나의 짧은 한숨에 쿠르프가 팔짱을 끼었다.

“흥! 뭘 받아 처먹었는지 눈이 뒤집힌 연합수장 놈들의 설득만 없었으면 무시했을 거다.”

다들 쓰게 웃었다.

캐롯은 이제 트리스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여기 트리스타랑 필림 장로님의 소개장은 뭐에요? 단순히 위장?”

“그 부유섬에서 과거에 전수 폐기했던 오토마톤이 발견됐거든? 알지? 네가 망가뜨렸고 들었는데.”

“으엣헴!”

허리에 손을 척 올린 캐롯이 배를 내밀며 헛기침을 한다.

피식 웃은 라트핀이 계속 말했다.

“필림 장로를 중심으로 엘프 사회에 다시 자동인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어. 아마도 여기 오토마톤 캐롯의 영향 때문이겠지.”

“나요?”

“그렇습니다.”

트리스타가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의식을 가진 인형이라면, 설령 우리가 실수하더라도 그것이 바르지 못하다 한마디 정도 해주지 않을까 하고요.”

라트핀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하여튼, 그러려면 관련 기술자가 필요해. 그걸 위한 견습생이지.”

“그런 거라면 정비 길드에······!”

크랭크가 말을 하다가 말고 입을 다물었다. 라트핀이 웃었다.

“동시에 이 애는 문명의 선구자에 대한 감시 겸 연락병이기도 해. 당신들이 벌이는 모든 것은 이 아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될 거야.”

그걸 뒷받침하는 서류들을 바라보던 크랭크가 어지러운 듯 투구를 짚었다.

“조금 있다 영주님께 잠시 다녀와야겠군요.”

“그럼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이만 갈게. 자세한 건 트리스타에게 듣도록 해.”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엘프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자 순식간에 공방에 적막이 감돈다.

로나가 마지막으로 공방 앞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또 봐요.”

“잘 가요! 또 와요! 로나 만큼은 언제나 환영!”

배웅하러 밖으로 달려 나간 캐롯과 공방 식구들은 입을 떡 벌렸다. 공방 상공에 저번의 그 수송선이 소리 없이 떠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우와!”

공방 앞의 넓은 공터를 비집고 착륙한 수송선은 엘프들을 태우고 떠올라 가볍게 도시 위를 한 바퀴 돈 다음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남은 엘프들은 아르곤 모험가 길드 소속이라서 각자 골목길로 흩어졌다.

유에스가 손을 흔든다.

“하하하! 조만간 또 들리도록 하지!

“다들 마음은 가볍게! 두 손은 무겁게 찾아오면 언제든 환영이야!”

“음, 시끌벅적 했구만.”

어느새 담배 파이프를 손에 든 쿠르프의 말이었다. 깜짝 놀란 캐롯이 비행선이 사라진 구름 저편에 대고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 질렀다.

“어엌! 여기 이 아저씨 놓고 갔어요! 돌아와!”

“이놈아! 나는 여기 남을 거다!”

캐롯을 비롯한 모루가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응? 왜요?”

입에 문 파이프를 떼어내고 긴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그가 좀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음, 손이 맞는 조수들을 구하기는 어렵거든? 나 혼자 해낸 일도 아니고 말이야.”

“에에, 혼자서 쓸쓸했구나?”

캐롯이 히죽히죽 웃으며 정곡을 찔렀다.

그러자 눈썹이 위로 올라간 쿠르프가 고개를 휙 돌렸지만 캐롯의 그 커다란 붉은 눈을 보고 있자니 화낼 생각이 가셨다. 그래서 대답 대신 담배 파이프만 쪽쪽 빨아들였다.

이제 공방 앞에 나와 있는 모두를 향해 몸을 돌린 캐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늘었다!

그 작은 얼굴은 밝게 웃고 있었다.

“뭐, 좋게 생각하자. 부려 먹을 드워프랑 엘프가 공짜로 생겼으니까. 사람 많아져서 좋은걸?”

“이놈 말버릇 좀 보게!”

크랭크도 따라서 긍정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트리스타를 보면서 말했다.

“견습이라고 하셨으니 마구 부려 먹겠습니다.”

“예.”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크랭크는 안으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나는 잠깐 영주님께 좀 다녀와야겠다.”

“분명 우리 연합수장 녀석들처럼 뭔가 거래를 했을 거다. 귀쟁이들은 야비하거든?”

따라 들어온 야비한 귀쟁이의 후손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불러주세요.”

분위기를 살피던 아리에테가 긴장한 얼굴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저기, 트리스타라고 했나? 당신 활이나 마법은 사용할 수 있어?”

“인간 수준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들 사이에선 보통이었습니다.”

“그거면 됐어! 으하하! 엘프를 얻었······! 아으아아!”

혼자서 사심을 채우고 기뻐하는 아리에테의 작은 머리를 손아귀에 집어넣은 크랭크가 화풀이를 시작했다.

이 와중에 투나는 공방 바닥을 기어 다니며 엘프들이 흘린 머리카락을 줍고 있다.

“으히히히! 요, 요정족의 머리카락~!”

이 난장판에서 고개를 돌린 캐롯이 트리스타를 올려다보았다.

“트리스타, 여기 애들 생각보다 제정신이 아닌데 잘 할 수 있겠어?”

“노력해보겠어요.”

초연한 얼굴의 트리스타의 말이었지만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 *

“알다시피 마력석은 드워프가 생산하고 엘프가 가공해서 우리에게 공급되어 소비되지요. 그것도 중앙정부를 한번 거쳐서 오기 때문에 수량이 적고 가격대도 만만찮아요. 그것의 독자적인 공급을 약속받았습니다. 비록 소량이지만 이건 큰 성과입니다.”

쿠르프의 말이 사실이었다. 영주의 책상 앞에 선 크랭크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커다란 책상을 앞에 놓고 거인과 마주하고 있던 아르곤 데오 영주가 웃음 지었다.

“그래서 결과는?”

“지금 우리 공방에 감시 겸 조수로 엘프 언니가 하나 와 있어요! 이름은 트리스타!”

책상에 손과 턱을 올린 캐롯이 히히 웃는다. 마주 빙그레 웃음 지은 영주가 말했다.

“나는 요즘 몹시 즐겁습니다. 도시 모험가 여러분의 활약 덕분에 웃음이 멈추지 않는 나날이군요.”

조금 볼멘 목소리의 크랭크가 물었다.

“공주님은 도착하셨습니까?”

“쿠흠!”

크랭크와 캐롯이 슬쩍 고개를 돌리자 입구 옆에 서 있던 꼿꼿한 집사장이 미간을 좁히고 있다.

영주에게 고개를 돌린 캐롯이 밝게 물었다.

“오! 도착하셨나봐요?”

“3일 전에, 하지만 급한 호출로 다시 수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기가 시작되면 내내 안에만 계셔야 하니 잘됐지요.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회전의자에 몸을 기대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하는 아르곤 영주를 바라보며 캐롯이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렇지, 복귀했으니 모르겠군요. 정비 길드에서 그 자동 갑옷의 시제품을 완성했습니다. 지금 조정 작업 중이지요. 몇 가지 실험해 보고 양산을 시작할 겁니다.”

“해외에 그런 물건을 살만 곳이 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르곤 영주가 빙그레 웃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니 자세한 내용의 공유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가는 길에 잠깐 길드에 들려 물건을 확인해 보세요.”

그 말을 듣고 크랭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여러분은 내가 시간을 내서라도 맞이하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을.”

두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온 집사장이 영주의 앞으로 다가갔다.

“영주님, 공주님의 여름휴가 일정 관련으로 괜찮은 생각이 있습니다.”

“오, 집사장. 그 말을 항상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들려주세요.”

반색하는 영주의 앞에 선 집사장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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