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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80화 (180/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인구증가! 180 >

이윽고 작업이 끝났다. 공방 창고에 환기구가 추가되었고, 가장 안쪽 보일러실에는 커다란 원통이 설치되어서 차가운 바람을 쏟아 냈다.

후와아아아-!

“으어어어!”

“시원하다!”

“이게 뭐야?”

오토마톤을 포함한 공방 식구들이 전부 원통 앞으로 몰려와 뿜어져 나오는 바람을 쐬었다.

샤를과 로테, 캐롯이 말했다.

“주변 기온의 급격한 하강을 감지. 냉각 상태 양호.”

“우와! 시원시원!”

크랭크가 말했다.

“원래 상회의 저온 창고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다. 최저 출력으로 돌리면 습기도 사라지고 시원해지지.”

“오오! 가, 가정용으로 사용해도 되겠다.”

“마력 소모가 심해서 가정용은 아직 힘들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대형 건물에서나 사용하는 중이라고 들었어.”

캐롯이 말했다.

“아! 그래서 길드 건물에 들어가면 좀 덜 더웠구나!”

“맞다. 나도 거기서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아리에테는 물론, 투나도 감격했다.

“최고야. 나, 나는 이런 게 있는 줄은 몰랐어.”

“다들 모여봐라. 사용 방법을 알려주마.”

크랭크는 공방 식구 모두에게 냉각 장치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원리가 궁금했는지 투나가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 내부 구조는 어떻지? 안에서 어, 얼음이라도 얼리는 거야?”

“투나, 지금은 건드리지 마. 뜯어보고 싶으면 겨울까지 기다려.”

“어, 응. 다, 당연하지! 으흐흣, 시원하다.”

후덥지근하던 공방이 한결 쾌적해졌고, 다들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장비를 손질하거나 쉬거나,

캐롯이 손을 들었다.

“이참에 나 마력석 충전하러 좀 다녀올게. 부유섬 내리느라 거의 바닥이야. 비상용 충전기도 다 써버렸고.”

“부부부유섬! 드, 듣고 싶어! 무슨 모험을 하고 온 건지!”

투나가 강한 호기심을 드러내자 칼과 장비를 손질하던 아리에테가 눈을 번쩍였다.

“그렇다면 내가 들려주지! 엄청났다! 굉장했어! 투나, 부유섬 본 적 있나? 아아! 그 영상기록장치가 있었다면!”

아쉬운 얼굴을 한 아리에테가 투나를 앞에 앉혀 놓고 신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크랭크는 공방에 굴러다니는 마력석을 수거해왔다.

“가는 김에 이것들도 좀 충전시켜와라.”

“와, 우리 마력석이 이렇게 많았어? 완전 부자가 되었네. 돈 없어서 충전 비용 아낄 때도 있었는데 말야.”

자루 속에 한가득 색색의 구슬이 들었다. 대부분 그동안 모험 중에 하나둘 주워 모은 것이나 캐롯이 뚫어놓은 오토마톤 해체 업장에서 뒷거래로 사 온 것이다.

크랭크는 충전 비용으로 쓸 돈주머니도 함께 쥐여 주며 말했다.

“확실히 많은 것이 바뀌었지. 하지만 아직이다. 아직 해볼 것이 많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희망찬 미래를 여는 크랭크의 말에 캐롯은 즐겁게 웃었다.

“그럼 다녀올게!”

시장 볼 때 쓰는 수레에 자루를 담은 캐롯과 로테가 마력 충전소로 향했다.

냉기가 새어 나갈까 봐 공방의 문을 닫은 크랭크는 에이브의 오토마톤 수리를 계속했다.

“바쁘군. 이거 말고도 해야 할 것이 많아.”

“이동 차량에 실려 있는 대량의 오토마톤 몸체는 어떻게 할까요?”

샤를의 물음에 크랭크는 장갑판을 떼어내며 말했다.

“보관 장소가 부족하니 당분간 그대로 두자. 물건이 늘고 있어서 창고를 하나 더 섭외해 봐야겠어.”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얼빠진 표정의 캐롯이 들어섰다.

“어, 나 돌아왔어.”

익숙한 얼굴과 함께,

“음, 여기가 너희들 사는 데냐? 허헛,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구먼.”

투구를 돌린 크랭크가 당황했다. 그리고 한참 이야기를 묘사하던 아리에테가 공방 안을 두리번거리는 드워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길 봐라! 투나! 저 드워프 어르신이 이번 의뢰를 맡긴, 아니 잠깐만! 쿠르프 씨! 여긴 어떻게?”

아리에테도 캐롯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투나는 그녀의 뒤에 슬쩍 몸을 숨기며 고개만 내밀었다.

외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쿠르프가 두꺼운 허리에 커다란 주먹을 올리고 찡그린 얼굴로 웃는다.

몹시 화가 나지만 반가운 표정이다.

“제길! 엘프 장로회에서 난데없이 다리를 걸지 뭐냐. 집중관리 대상이라고 하더군.”

“집중관리 대상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아리에테의 물음에 캐롯이 손을 들었다.

“잠시만, 아직 손님들이 더 있거든?”

캐롯이 문밖에 대고 손짓하자 밖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수려하면서도 화려한 외모, 인간에게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다양한 머리 색, 길쭉한 팔다리.

엘프들이었다.

거기엔 아는 얼굴도 있었다. 한 엘프 남자가 즐겁게 웃으며 앞으로 나선다.

“안녕하시오! 여기가 당신들의 아지트로군요? 진작에 한 번 찾아왔어야 했는데, 좀 늦고 말았습니다.”

잠깐 생각하던 크랭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작년 드래곤레어 탐사 당시 오토마톤 그린의 마력석을 충전시켜줬던 엘프 남자였다.

“공방 겸 자택입니다. 유에스.”

“고맙게도 나를 기억해주는군요.”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들 어쩐 일이신지요.”

투구 안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남녀 엘프들이 꽤 많이 들어섰다.

그때 도끼눈을 뜬 캐롯이 소리를 빽 질렀다.

“으아! 쭉쭉빵빵이들이 잔뜩 들어오니 안이 좁아지잖아! 적당히 앉아! 샤를! 남은 얼음 전부 꺼내줘! 커피랑 설탕은 어디에 있지? 로테도 도와줘!”

“아, 괜찮습니다. 저희는 금방 떠날 참이라.”

수행원으로 따라온 한 엘프의 말에 바삐 움직이던 캐롯이 대답했다.

“손님을 빈속으로 보낼 수는 없어. 그리고 나는 저 엘프 남자에게 차를 대접하겠다고 약속했었거든. 친구의 친구도 내 친구니까, 시원한 냉커피 한 잔씩 마시고 가도록 해.”

인상 깊은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엘프 남자 유에스에게로 향했다. 흐뭇한 표정의 그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보았는가? 이것이 인복이라는 거야. 나는 좋은 수박을 골랐어.”

“썩은 것은 금방 알 수 있는데, 잘 익은 것은 찾기 힘들죠. 운이 좋군요, 유에스.”

“뭐래? 수박 주스 아니거든? 커피거든?”

영문을 모르는 캐롯의 말에 엘프들이 와하하 웃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아서 마치 모임회장 같아졌다.

“밍밍한 차는 싫은데, 맥주는 없냐?”

“까탈스런 아저씨네! 설탕 팍팍 쳐줄게요!”

캐롯과 쿠르프가 툭탁이는 동안 호위로 따라온 엘프들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거나 기대어 섰다.

크랭크는 내내 엘프들의 틈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관찰하던 사람을 발견했다.

“로나?”

“후후후, 언제 찾아내나 싶었어요.”

엘프는 자기가 인정한 사람들에겐 몹시 살갑게 구는 성향이 있다. 장난도 잘 치고, 크랭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설명 좀 해주십시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로나는 선을 그었다. 그녀는 근엄한 얼굴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일개 수송선의 책임자일 뿐이에요. 우연히 아르곤에 간다기에 우리 루루의 차를 다시 마시고 싶어서 찾아온 거죠.”

우오오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얼음을 벅벅 갈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골목길에서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엄청 놀랐지 뭐야. 저기 금발 엘프가 책임자야.”

크랭크의 투구가 돌아갔다.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이면서 중책을 맡은 엘프가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앉아 다리를 꼬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

금발과 함께 몹시도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엘프 여성이었다.

정체를 드러낸 이상 존칭을 붙일 이유가 없어진 그녀는 대뜸 말부터 놓아 버렸다.

“본좌는 엘프 장로회 의원 라트핀이라고 하지.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 미안하게 생각해. 함께 온 것들은 이 마을에 눌어붙은 껌딱지들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껌딱지라니요! 말이 심하세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맞습니다. 장로회 의원께서 직접 나서는 일이라 호위로 따라온 건데!”

“애초에 그렇게 높은 직위에 계시면서 왜 밖을 나다니시는 거죠?”

여기서 저기서 엘프들이 예쁜 목소리로 불만을 드러냈다. 시끄러워 귀를 막고 있던 라트핀이 슬쩍 손을 떼며 배시시 웃는다.

“너희들이랑 같아, 심심했거든?”

유에스를 필두로 공방에 모인 장년의 엘프들이 히죽 웃는다.

곁에서 보고 있던 쿠르프가 말했다.

“봤냐? 엘프도 이런 나이가 되면 제정신이 아냐.”

“으윽, 그렇군요. 유념하겠습니다.”

정비 길드 무슈 마스터를 떠올린 아리에테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캐롯이 컵이 잔뜩 올라간 소반을 들고 나타났다.

“다됐으니 이거 하나씩 드셈.”

샤를과 로테도 얼음 커피를 소반에 들고 다니며 공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나눠주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걸 맛본 엘프들이 저마다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 돌린 캐롯이 허리에 손을 올렸다.

“내 참, 우리 집에 있는 컵을 다 꺼낼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얼음 커피를 받아든 엘프들이 밝게 웃는다.

팔짱을 하고 선 크랭크가 공방을 바글바글 채운 엘프와 드워프를 쳐다보고는 물었다.

“이제 정말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만.”

“크흐아-! 끝내 주네! 맛 좋타!”

얼음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켠 라트핀이 맥주라도 마신 양 호쾌한 탄성을 내질렀다. 커다랗게 벌린 입 안에서 송곳니가 유난히 빛난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좌절한 크랭크의 곁에서 팔짱을 낀 캐롯이 얼굴을 찡그리며 웃는다.

“저 여자는 분명히 안에 아저씨가 들었을 거야. 그것도 구수한 드워프 아저씨가.”

“아무리 그래도 저런 거랑 비교하지 말아라?”

“아아, 라트핀 의원님은 정말 입만 다물면 완벽한데.”

참을성 있게 기다린 크랭크는 곧 라트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전에 소개해야지. 트리스타.”

라트핀이 손짓하자 젊은 엘프 여자가 걸어 나왔다. 캐롯이 설명을 덧붙였다.

“드래곤레어 조사 의뢰 때 필림 장로님이랑 같이 왔던 엘프 호위병의 하나야. 부유섬 때도 있었어.”

상남자 크랭크는 어여쁜 엘프들의 얼굴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캐롯이 안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라트핀이 해맑게 웃었다.

“너희들 눈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트리스타는 아직 한참 어린 애야. 나로서는 말렸지만 필림 장로가 하도 요청해서 어쩔 수 없었어. 본인 의사도 있었고.”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인 트리스타는 안주머니에서 소개장을 꺼내 내밀었다.

“필림 장로께서 보내시는 겁니다.”

크랭크가 그것을 받아서 봉인을 뜯자 주변으로 캐롯과 아리에테, 투나의 얼굴이 솟아오르거나 기울어졌다.

한참 그것을 살펴보던 크랭크는 별안간 두 손바닥을 펼치고 그곳에 투구를 들이댔다.

마치 속상한 소녀가 울먹일 때 하는 행동이라 다들 킥킥 웃어버렸다.

굵은 손가락에 끼어있는 편지지를 빼앗아 펼친 캐롯이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엥?! 오토마톤 정비 운영 견습생? 진짜? 네가?”

트리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서 마치 자기 집 소파에 앉아있는 것인 양 팔을 소파에 척 걸치고 다리까지 멋지게 꼰 라트핀이 웃었다.

“그래서 우리 애 좀 잘 부탁해. 친절한 거인 씨.”

모두가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손바닥을 내린 크랭크가 무시무시한 투구를 들어 올린다.

“왜 내가 엘프들의 감시자를 달고 다녀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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