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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79화 (179/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작은 용사! 179 >

챙! 퍽퍽!

“캬아악!”

가슴에 칼을 맞은 고블린이 고꾸라진다.

이로써, 세 번째 실전에서도 살아남은 17세 소년 에이브가 칼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들이켠다. 그 어깨를 짚으며 보리스가 지나갔다.

“잘했다. 마차 지키고 다가오는 것들 견제해. 배운 대로만 하면 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에이브가 마차를 등지고 서서 목청껏 큰 함성을 내질렀다.

세상의 매운맛을 본 소년의 울분마저 섞인 노호 성이었다.

“우아아아! 덤벼라! 나는 여기에 있다! 아아아아!”

강철 검을 든 전사의 커다란 외침은 동료에게 전의를, 적에게 공포감을 선사한다.

선두에서 도망치는 몬스터 무리를 쫓다가 지시를 받고 멈춘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다.

“시끄럽네, 목청은 또 엄청 커요.”

“소질은 있는 녀석이다. 성질만 좀 죽이면 괜찮은 전사가 될 거야.”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아리에테가 캐롯을 지나치며 외쳤다.

“리슐리에! 숲으로 몰아넣었다! 범위 공격!”

칭-!

길가에 세워진 파티 차량의 지붕에 활을 든 코비와 함께 올라가 있던 마법사 리슐리에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동시에 주변에 검은 그림자가 채워지더니 그녀의 얼굴에서 안경만이 빛난다.

“라이트닝 볼.”

파지직! 지직!

사람 머리만 한 빛 덩어리가 지면에서 솟아올랐다. 개수는 대랙 10여개, 밝은 빛을 발하는 그것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도망친 몬스터의 발자취를 좇기 시작했다.

사방에 따가운 전깃불을 떨구면서 말이다.

지직! 직! 파지직!

“어우, 저게 천천히 움직이는 게 되레 더 겁나는데요?”

“위력은 별로지만 계속 따라다녀요. 다시 와볼 생각은 못 할걸요.”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가 외쳤다.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있을지 모르니 긴장을 놓지 마라! 보리스! 활을 들고 이동 마차 지붕에 올라가서 주변 경계! 신관 비타와 릴리는 부상자를 치료를 서둘러!”

아리에테의 호령에 따라 사람들이 바삐 움직인다. 크랭크도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오토마톤을 이용한 주변 정찰까지 확실히 마친 뒤에야 함정에 빠진 마차의 견인을 시작했다.

줄을 연결하던 크랭크가 말했다.

“길가에 구덩이를 몇 군데 파놓았군.”

“응, 흔한 수법이네. 야! 에이브! 이리 와 봐!”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던 에이브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왔다. 캐롯이 바퀴가 빠져 있는 구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둬. 길에다가 이런 장난질을 쳐놓으면 십중팔구 노린 거야. 저놈들 눈에는 밥차가 지나가는 꼴이거든? 어떻게든 멈추고 싶겠지.”

밥차라는 말에 고개를 돌린 곳에는 놀란 사람들이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놀랐을 법도 한데 다들 밝은 표정이었다.

“고맙소! 모험가들!”

“덕분에 살았어요!”

살았다? 덕분에? 나? 우리 덕분에?

처음 누군가를 지켜보고 더불어 감사를 받아본 에이브가 적잖게 당황했다.

뽀작뽀작 다가온 캐롯이 마차의 승객들을 올려다보더니 마주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맞아요! 여러분들 살았어! 아까 그놈들은 지금 번갯불에 지져지고 있느라 바빠서 얼씬도 못 할 거야! 걱정마셈! 오늘 내로 집에 갈 수 있어! 다친 사람 신관에게 말하고요! 헤이! 무장 경호원! 아저씨들 괜찮아? 차장님은 어디 있어요?”

익숙하게 사람과 상황을 정리하고 달래며 걸어가는 캐롯을 보고 정신을 차린 에이브가 코를 좀 많이 벌렁거렸다.

뭐지? 이 녀석은, 나보다 어린 애지? 애 아냐?

그의 의문은 아르곤에 도착해서야 풀렸다.

“오토마톤?! 오토마톤이라고? 네가?”

“푸흐하하하! 너 그 표정 한 번 더 지어봐봐! 되게 웃기네!”

캐롯이 배를 잡고 깔깔거린다. 길가에 차량을 세워놓고 길드로 향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 정체를 듣게 된 에이브는 입을 딱 벌렸다.

“아니, 나는 그냥, 좀, 싸가지 없는 꼬마라고 생각했었어.”

“싸가지라니! 너는 그 성질뿐만 아니라, 말도 좀 생각하면서 해야 해. 알겠어?”

눈썹을 곧추세운 캐롯의 삿대질에 찔끔한 에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호오? 의외로 순순히 말을 듣잖아? 오토마톤이라고 대들 줄 알았는데.”

“에이브가 엇나가면 마틸다가 말렸거든요. 그래서 둘이서 자주 싸우고 그랬는데······.”

조금 달라졌는지도?

그간 에이브를 지켜본 릴리의 말이었다.

시무룩해진 에이브는 고개를 돌리고 안쪽 작업대에 누워있는 마틸다를 쳐다보았다.

“고칠 수 있는 거야?”

“네가 고치라며? 그럼 고칠 거야. 기억은 날아가겠지만.”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고쳐만 달라고.

캐롯이 말했다.

“걱정 마. 네 오토마톤은 기억을 잃을지 몰라도 넌 기억하고 있잖아? 비극은 언제든지 희극이 될 수 있어. 조만간 봐보라고.”

에이브는 캐롯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후, 의뢰 완료 보고를 마친 일행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왜 다들 싱글벙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저번의 카타잎 정산이 이뤄졌다. 돌아가서 우리도 마저 정산을 끝내자.”

지오는 차량을 공방 앞으로 이동시켰고, 내내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와오아아아! 도, 돌아왔구나! 흐으읍! 킁킁!”

“누가 이 킁킁이 좀 떼어주지 않을래?”

조그만 캐롯을 와락 껴안고 머리 냄새를 맡고 있던 투나가 으히히 웃는다. 그러다가 공방 앞을 서성이는 에이브와 릴리를 보고 물었다.

“누, 누구야? 저 애들은?”

“겨울 기사단의 임시 멤버.”

“오오! 아리에테 다, 단장님의 새 단원이야? 누, 눈부신 성과야.”

“오험!”

허리에 손을 올린 아리에테가 캐롯의 엣헴을 흉내 냈다. 비타와 코비가 폭소를 터트렸고, 보리스와 지오도 고개를 돌리고 킥킥거렸다.

자리에 앉은 그들은 공평하게 정산을 시작했다.

“리슐리에.”

“저도요?”

“부유섬을 끌어내리는데 당신의 활약이 아주 컸습니다.”

듣고 있던 투나의 눈이 커졌다.

돈주머니를 쥐여 준 크랭크는 이제 에이브를 보았다.

“오토마톤 수리는 며칠 걸릴 겁입니다. 숙소를 소개해 드릴 테니 잠시 쉬면서 앞으로의 일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예.”

에이브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산까지 모두 끝나자 다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에이브와 릴리도 그들을 따라갔다.

아리에테는 리슐리에를 잠깐 불러 세웠다.

“어, 음, 역시 우리 파티에는 들어오지 않을 건가?”

“당장 계획은 없습니다. 다른 곳도 한번 돌아보고 싶거든요.”

“음, 그래. 알았다. 이번에는 참 고마웠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해라.”

무표정한 리슐리에는 고개를 까닥이고는 몸을 돌리고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반바지 아동복으로 갈아입은 캐롯이 다가왔다.

“아깝네, 번개 마법 참 신기했는데.”

짧은 한숨을 내쉰 아리에테는 그만 몸을 돌렸다.

“아깝긴 하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

“길드에 마법사 모집공고라도 올려볼까?”

“그거 좋군. 하지만 내일 올리자. 오늘은 좀 피곤하니까.”

“으효오오오오옥!”

갑자기 들려오는 투나의 괴성에 캐롯과 아리에테는 머리를 휘휘 저으며 털래 털래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또 뭐니?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어?”

“이, 이거 봐! 이거 봐!”

투나는 공방 안을 둥둥 떠다니는 돌멩이를 보고 놀라워하고 있었다. 근처 바닥에는 배낭 가득 채워온 부유석을 바닥에 쏟아놓은 크랭크가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다.

그 모습에 아리에테와 캐롯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잘했다.”

“그건 또 언제 챙겼어?”

“밤에 몰래.”

다들 히죽 웃는다.

“아, 그렇지!”

캐롯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는 바깥에 세워둔 차량으로 달려가 화분 몇 개를 가져왔다.

“나도 투나 선물 챙겨왔어! 봐봐! 귀한 약초래.”

“허억! 이것은 엘릭서! 스틱스에 리코리스까지······!”

화분을 받아든 투나는 그만 무릎을 털썩 꿇어버렸다.

부들부들 떤 투나가 고개를 들었다.

“게, 게다가 전부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이거 정말 나 주는 거야?”

“엉! 선물!”

투나는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소리쳤다.

“멸종된 환상의 약초가 지금! 내 손 안에! 끼요오오오!”

“아이,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하라고!”

좋아서 깨방정을 떠느라 보다 못한 캐롯에게 한 소리 들은 투나는 화분을 조심스레 다뤄 자기 연구실에 옮겨다 놓았다.

그리고 다시 호다닥 달려왔다.

투나의 차림새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짐을 정리하던 아리에테였다.

“음, 여름옷인가? 시원해 보여, 잘 어울린다.”

내내 시커먼 로브만 입고 다니다가 하얀색 민소매와 얇은 스커트를 입은 투나가 쑥스럽게 웃었다.

“으히히. 너, 너무 더워서 샀어. 그래, 너무 더워서. 더워서! 더워! 크랭크! 크랭크으으!”

말하다 말고 갑자기 울컥한 투나가 크랭크의 등에 달라붙어 주먹질을 해댔다.

툭탁툭탁-!

“뭐냐. 왜? 왜 또 그러냐.”

“더워! 여기 너무 덥다고! 차, 창문을 더 만들어줘.”

후끈한 열기가 고여 있는 공방 내부를 두리번거린 크랭크가 투구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다. 하지만 겨울에는 따뜻하잖아.”

“추, 추운 거랑 더운 건 다르다고!”

그렇지 않아도 환기 장치를 만들어 볼 예정이었던 크랭크는 바로 기자재를 사 와서 망치질과 톱질을 시작했다.

옆에서 캐롯이 돕고 있는데 아동복에 밀짚모자를 쓴 것이 마치 아빠와 딸 같은 모습이었다.

“좀 쉬면서 하지 그래? 내일 해도 되잖아. 방금 도착했는데.”

“내일도 바쁘다. 날이 더우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니 말 나온 김에 해치우자. 직원의 복지는 중요해.”

그때 여전히 운동복 차림을 한 아리에테가 컵 하나를 들고 설렁설렁 다가왔다.

“그거 쓰고 일하면 덥지 않은가? 이거 마시고 해라. 얼음을 넣은 트림 주스다.”

목이 타는 참이었던 크랭크가 자리에 앉은 채 컵을 받아 들었다.

톡 쏘는 청량감이 시원하게 넘어간다.

투구를 슬쩍 들고 입만 드러낸 채 그걸 마시는걸 아리에테가 유심히 살폈다.

“시원하다. 이거 좋군. 끄으으윽! 후우.”

크랭크가 땀을 닦는 동안 아리에테가 캐롯을 쳐다보았다.

“가끔이지만 맨얼굴이 보고 싶다. 여기저기서 듣기로는 그다지 위험하다고 하지는 않던데.”

“맛을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지. 어디 한번 봐볼래?”

캐롯이 히죽 웃으며 말하자 크랭크가 투구를 돌리고 쳐다본다.

“그만둬라. 잘못하면 너는 나를 혐오하게 될 거다.”

“으음, 그건 싫군. 나는 너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거리는 좁혀보고 싶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창고 밖, 투구를 쓴 거인을 바라보는 사지절단녀의 시선이 뜨겁다.

오히려 두근거린 건 캐롯이었다.

“호오옥! 프프프로포즈!”

“음,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은 정말 아니지만 내 인생에 너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그리고 나는 여자고, 너는 남자지.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요즘 뻔뻔해지기 시작하는 그녀의 말에 캐롯이 와하하 웃으며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망치질을 이어갔다.

탕탕!

“그만둬라. 얼굴도 못 볼 남편감은 네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컵을 돌려받은 아리에테가 씩 웃는다.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이 아니라 짓궂은 얼굴이었다.

“까짓 얼굴이 대수인가. 주변 부인들 말로는 사내자식은 하반신만 있으면 된다고 들었다.”

탕-!

망치질 소리가 멈추고,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아리에테의 얼굴로 점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원함을 넘어 서늘함이 느껴질 지경이다.

아이언클로가 다가오자 아리에테가 호다닥 몸을 돌렸다.

“볼일이 생겼다!”

도망치는 아리에테를 잠시 쳐다보던 크랭크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서둘렀다.

“오오, 덥다 더워.”

밀짚모자를 벗어 부채질하던 캐롯이 힐끔 크랭크의 등을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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