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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78화 (178/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작은 용사! 178 >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차량을 얻어 타고 이동하게 된 두 사람은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금세 파티에 녹아들었다.

저녁 야영을 위해 멈춘 차량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근방에 정찰을 나갔다가 야생 토마토 군락을 발견한 캐롯과 함께 빨간 토마토를 잔뜩 따온 릴리가 바구니를 들고 다가왔다.

“이거 좀 보세요. 비타 신관님! 알이 엄청 굵어요.”

“우와! 야생 토마토 같지 않네요. 잘했어요. 릴리 신관님, 오늘은 이걸로 비프스튜를 만들어달라고 합시다.”

마늘을 까던 코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손가락으로 자길 가리켰다.

“어, 나? 나보고 만들라고?”

의자 대신 가져다 놓은 통나무에 바싹 붙어 앉은 비타와 릴리가 앙증맞은 주먹을 가슴 앞에 모아 쥐고 눈을 초롱초롱 반짝였다.

헉!

그 눈빛에 매료당한 코비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으며 살짝 고개를 돌린다.

“어, 흠, 하는 수 없나. 그럼 비프스튜로 할까?”

“봤죠? 뇌살 눈빛 공격! 이건 우리 나이대에서만 쓸 수 있는 필살기라구요.”

“와아! 좋은 걸 배웠어요! 고마워요. 언니, 헙!”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놀란 릴리가 입을 가렸지만 비타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함께 토마토를 따온 캐롯이 바구니를 내리면서 말했다.

“사이좋은 신성 자매가 남자 후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음, 소질이 있어.”

릴리가 기겁했다.

“에에?! 나나나남자를 후, 후, 후리다니요! 그런 경망스러운 짓을 하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돼요!”

“어어? 그럼 나 릴리 신관님한테 후려진 거야?”

뒤를 이어 들려오는 코비의 얼빠진 목소리에 릴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동시에 비타의 눈썹이 솟아오른다.

“코비!”

퍽퍽퍽!

“아야! 아퍼! 누구 장단에 어울려야 해!”

“하하하! 너희들 재미있다! 이거 돈 받고 보여줘도 되겠다!”

캐롯이 끼어들면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마침 고개를 돌린 아리에테가 손짓했다.

“캐롯! 잠깐 와줘!”

“얏호! 인기인은 항상 바쁘지! 무슨 일이야?”

도도도 달려가는 캐롯에게 길을 비켜준 보리스가 자리로 와서 앉았다. 그는 이제 야영 준비를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바구니에서 큼직한 야생 토마토를 하나 주워 먹던 보리스가 말했다.

“맛있네. 그래서, 저녁은 비프스튜라고?”

누구에게 배운 것인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은 코비가 엄지손가락을 들고 윙크를 찡긋했다. 마침 보고 있던 비타도 그걸 따라 했고, 두 사람의 엉뚱한 행동에 돌이 굴러도 웃을 나이의 신관 릴리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 얼굴들을 마주한 당사자인 보리스는 기가 차서 표정을 구겼지만.

“음! 맡겨줘 봐! 끝내주는 작품을 만들어 볼 테니까.”

“파티에 요리사가 많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사람은 단순해서 정말 먹는 거만 잘 챙겨도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니깐요?”

비타의 말에 동의 한다는 듯, 두 손을 모아 쥔 릴리가 응응하는 얼굴로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요. 바깥에서 이렇게 잘 먹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저희 야영할 때는 내내 건육이랑 딱딱한 빵만 먹었거든요.”

커다란 냄비를 걸고 본격적으로 재료를 다듬고 있던 코비가 슬쩍 시선을 들더니 다시 한번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다.

그걸 본 비타와 릴리가 밝게 웃는다.

반면 아까부터 옆에서 들리는 기합 소리에 시선을 돌린 보리스가 중얼거렸다.

“솔직히 신관 릴리는 둘째 치고 저건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오히려 아리에테가 나선 게 더 놀랍지 않아요?”

눈을 동그랗게 뜬 비타의 말이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대무가 한창이었는데, 팔짱을 낀 아리에테가 호령을 내리고 있었다.

“멍청아! 반응이 느리다! 수평 베기 후엔 바로 검을 거둬들이라고 몇 번을 말하나!”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에이브의 앞에는 대무 상대로 불려온 캐롯이 큼직한 배틀 나이프를 손에 쥐고 그를 약 올리고 있었다.

“으헤헤헤! 울보야. 칼은 어디서 배웠니? 네 검술은 너무 엉망이라서 목이 잘린 오크도 솜씨 좋은 신관이 있다면 다시 살려낼 수도 있겠다.”

화가 난 에이브가 분을 참지 못해 발을 쾅쾅 굴렀다.

“아악! 악! 바꿔줘! 저 녀석 너무 짜증 나! 작아서 잘 맞지도 않는다고!”

“이 녀석, 심리전에 약하네. 으럅!”

폴짝 뛰어오른 캐롯이 방심한 에이브의 머리를 짚고 다리를 쭉 벌린 채 넘어갔다.

뜀틀 취급을 당한 에이브의 이마로 핏대가 솟는다.

빠직!

“으아악! 너! 너어! 죽일 거야!”

“으하하! 재미있다. 넌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평소에 오냐오냐해주나 본데, 여긴 네 화를 받아줄 사람이 없어!”

캉! 챙!

힘껏 달려가 작정하고 진검을 휘두르는데도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상대의 능력치가 월등히 높다는 뜻이었지만, 에이브는 인정하기 싫었다.

“나보다 작은데!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너보다 작지만! 제대로 되어 먹었기 때문이란다! 요옵!”

퍽!

되려 캐롯에게 걷어차여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를 보고 고개를 휘휘 저은 아리에테가 손짓했다.

“엉망이군. 기본부터 다시 쌓아야겠어. 로테!”

차량의 지붕에 올라서서 주변 경계 겸 석양을 감상하던 로테가 고개를 돌렸다. 아리에테가 손짓하자 캐롯을 대신해 로테가 에이브의 앞에 나섰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씩씩거리던 에이브가 버럭 외쳤다.

“왜 자꾸 레벨을 올리는 거야! 지금 나더러 오토마톤을 상대하라고? 놀리는 거야!”

“맞아, 놀리는 거다. 넌 그 성격을 죽일 필요가 있어. 로테, 상대해줘라.”

스르릉.

롱소드를 뽑은 로테는 검의 손잡이와 칼날을 동시에 잡고 자세를 숙였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체력은 좋은지 금세 자리에서 일어난 에이브는 다시 검을 들고 덤볐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내동댕이쳐졌다.

어?

그런데 어떻게 던져진 것인지 모르겠다.

쓰러진 에이브의 어리둥절한 얼굴로 로테가 다가왔다.

“지금 이것은 하프 소딩이라는 근접전 기술입니다. 검날을 이렇게 잡으십시오. 그리고 기본자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캐롯과는 다르게 로테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의외로 에이브는 시키는 대로 그걸 잘 따라 했다.

어느새 밖으로 나와 불가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대무를 구경하던 크랭크가 곁의 릴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호위 모험가들을 고용하면서 움직였다고요?”

다치면 어쩌나 하는 시선으로 대무를 보던 릴리가 대답했다.

“예, 스테인 모험가 길드에서 호위를 고용해서 부근의 유적을 돌아보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도중에 한 사람씩 없어지더니 결국 우리만 남았고, 그리고 다음에 강도단이 나타났어요.”

“호오호오, 전형적인 수법이네. 혹시 이름은 들은 거 없어? 나중에 길드에 신고라도 해둘 수 있거든?”

릴리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파, 파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요. 거기, 그중 한 사람 이름이 커스라는 거 말고는.”

“커스? 커스. 어? 보리스, 그때 그 모험가들 기억 안 나? 그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던.”

“야야!”

얼굴을 확 붉힌 보리스가 릴리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엉?! 다 알고 그러는 거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던 캐롯이 보리스와 릴리를 보더니 으히히 웃었다. 보리스는 아뿔싸 싶었다.

“웅?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뒈? 보리스야말로 어디의 무슨 맛을 생각한 거야? 응? 우리 릴리 신관이 있는 자리에서 말해보라고. 자자! 빨리빨리!”

“으아악!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만 하세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보리스에게 깔깔 웃어주던 캐롯이 갑자기 정색하고 릴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캐롯은 상체를 숙이고 의자에 앉아있는 릴리와 눈을 맞추었다.

“그런데 너희들 무슨 깡으로 이 험한 세상에 달랑 셋이서만 나온 거야? 그 와중에 호위도 현지조달이라니 미쳤다고 욕먹어도 될 정신머리야.”

얼굴이 좀 붉어진 릴리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저, 사, 사실은 저도 도중에 고용된 호위예요.”

“엉?”

대무를 마치고 돌아온 에이브를 닦달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맞아, 나랑 마틸다 둘이서만 나왔어. 릴리는 도중에 신전에서 장기로 빌려온 거고.”

“빌려? 얌마, 신관님이 물건이냐?”

식사 중이던 보리스가 그릇을 내리고 눈을 부라렸지만, 싸움닭 에이브도 지지 않고 매서운 눈을 한 채 스튜와 빵을 뜯어 먹었다.

크랭크가 나섰다.

“표현이 좀 막돼먹었지만 사실입니다. 요즘엔 길드에서 중계하지만, 옛날에는 직접 신전을 찾아가 기부금을 내고 신관을 초청했습니다.”

“와, 그럼 뭐야? 너 정말 용사처럼 동료를 찾아 파티를 꾸리고 용사의 유적지를 탐색하려고 했던 거야?”

“그러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다들 돈만 바라더라.”

다들 뭔가 목이 탁 막힌 얼굴이 되었다. 에이브는 그 와중에도 꿋꿋이 식사를 계속했다.

오랜만에 지오가 한마디 했다.

“그, 뭐랄까. 너무 급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파티의 유대는 돈으로······. 어, 살 수 있나?”

“지오가 세속에 물들었어!”

비타가 호들갑을 떠는 통에 다들 좀 웃었다. 크랭크의 곁에 자리 잡고 우걱우걱 빵을 씹던 아리에테가 반쯤 남은 빵으로 에이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목적을 위한 수단의 선택이 너무 어정쩡했다. 자금이 넉넉하다면 급조된 파티가 아니라 차라리 정식 호위병을 구했어야지.”

“먹든가 말하든가 하나만 하쇼. 젠장, 빵가루 다 튀네.”

“무! 무어라!”

그릇을 손으로 가리고 얼굴을 찡그린 에이브의 지적에, 유년 시절 저택에서 억압받으며 살아오느라 요즘 보상심리가 절찬 작동 중인 아리에테가 반격에 나섰다.

“흠! 자유롭게 사는 것이 뭐가 나쁘냐! 푸푸푸! 시건방진 꼬마에게 업계 포상이라도 내려주마!”

“아으악! 더럽게 왜 이래요! 당신 미쳤어!”

아리에테의 눈빛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흔들렸다.

“더, 더럽다고?! 네 녀석!”

그때 크랭크의 투구 속 눈동자가 갑자기 번쩍이더니 커다란 손을 들어 아리에테의 머리에 아이언클로를 시전했다.

“아악! 자, 잠깐! 아파! 그만둘 테니 멈춰라! 아프다! 크랭크!”

동료들의 툭탁거림에 신관 릴리가 배시시 웃는다. 오랜만에 지어본 환한 미소였다.

주전자를 든 캐롯이 가만히 에이브를 보다가 물었다.

“그럼,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던? 혼자서 함께 목숨 걸 친구들을 모아보라고?”

에이브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시무룩한 얼굴이다.

“정신 수양하라고 내쳐진 건 사실이야. 나 사고뭉치였거든.”

“호옹~ 그래서, 이제 정신 좀 차린 것 같아?”

에이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하얀 말총 장식을 쳐다보던 캐롯이 주전자를 내밀었다.

“여기, 물 좀 마셔.”

물컵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서 캐롯이 아리에테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여기 작은 용사의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네.”

“좋아! 내가 열심히 굴려서 널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그 고생을 했는데 뭐라도 남아야 하지 않겠나!”

질겁한 에이브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냐! 됐어! 됐어요! 신경 꺼주세요! 제발! 그냥 가만 좀 있으라고!”

“하하하!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땀이라도 흘려야 속이 편하다는 걸 각인시켜주마!”

그렇게 돌아가는 내내 아리에테는 에이브와 릴리를 임시 파티 멤버로 받아들여 훈련을 시켰다.

에이브는 그저 정신 나간 여기사의 심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야영 도중에 있었던 몬스터의 습격이나 고블린 무리에게 공격 받고 있는 도시 간 이동 마차를 구하는 등의 실전에서 아리에테의 심술은 큰 성과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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