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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76화 (176/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재방문! 176 >

“임시 거처로 사용하려고 만든 곳입니다만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부재중인 현재는 생산품을 관리하는 사무실로 사용 중입니다. 가보시겠습니까?”

호기심이 동한 사람들이 다시 베누스를 따라나섰다.

“저녁에 봐요!”

“저녁에! 파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마을 중앙에 있는 나무 성으로 향했다. 나무 성이라고는 하지만 그저 3층 통나무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마침 1층 건물 앞에 사람들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캐롯이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와다다다 달려갔다.

“울파!”

오렌지색 방열 가발을 길게 늘어뜨린 울파가 고개를 돌린다.

“울파? 그럼 저 사람은 로마니?”

얼굴이 확 밝아진 비타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리슐리에가 슬쩍 비타에게 물었다.

“누구지?”

“아르곤에서 유명한 모험가예요. 준용사 로마니라고, 대단한 분이세요.”

그란과 악수하고 있던 카우보이모자의 중년 남자가 시원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외지에서 같은 도시 사람을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없군요.”

“로마니 씨! 팬이에요!”

비타가 대뜸 나서자 로마니가 하하 웃더니 모자를 벗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새치가 조금 섞인 밤색 머리카락을 멋지게 빗어 넘긴 미중년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고 리슐리에가 코를 좀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

다시 모자를 쓴 로마니가 크랭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야 영주님 심부름하러 왔지. 이제 저쪽에도 가볼 참이야.”

저쪽? 저번의 그 소개장인가.

크랭크가 낮게 말했다.

“저는 솔직히 영주님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도시민들의 안전과 번영에 관심이 많은 분이지. 좀 더 있었으면 좋겠지만 바빠서 먼저 가보겠네. 가능하면 오늘 중으로 돌아가야 하거든.”

울파의 손을 잡고 흔들던 캐롯이 고개를 돌리고 소리를 뺙 질렀다.

“엥?! 오늘 중으로 돌아간다고요? 아르곤에요?”

초여름이지만 여전히 롱코트에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쓴 로마니의 곁으로 울파가 다가가 나란히 섰다.

“늦으면 아내가 걱정할 테니까.”

“아내? 오오! 울파!”

울파는 캐롯을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캐롯은 그 행동을 보고 연산장치에 과열이 오를 정도의 희열을 느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와중에 둘은 그만 몸을 돌리고 걸어가 가버렸다.

“아니! 그전에 잠깐만! 어떻게 하루 만에 가는 데요! 거리가 얼만데!”

“어어? 독신이라고 들었는데! 결혼했었어요? 상대는 누구죠?!”

크랭크도 투구 안의 눈빛을 가늘게 만들고 골목길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란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어흠! 여러분 오셨군요. 오랜만입니다.”

앞서 로마니를 배웅한 뒤라 반가움은 조금 희석되었지만 그래도 다들 환한 얼굴이다.

몸을 빙글 돌린 캐롯은 대답 없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마치 만세를 부르는 것 같은 자세를 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좌우로 까딱이는 작은 손바닥은 토끼 귀 같다.

“요즘 어때?”

“하아······! 솔직히 죽을 것 같아.”

긴 한숨을 토해내는 그란을 보고 다들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비타가 물었다.

“그 통역해주시던 분이 안 보이네요.”

“고디브는 지금 웰메인 상회에 납품 협상하러 갔습니다. 저녁쯤에는 돌아올 겁니다.”

“오오! 상회랑 협상까지 할 지경에 이른 거야?”

“공주님의 휘광을 등에 업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판을 벌여봐야지. 지금 잘해놔야 나중에 편해.”

먼 미래를 보고 있는 그란을 올려다보며 캐롯이 확신을 가졌다.

캐롯이 찡긋 윙크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그란, 기뻐해. 이제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이건 내가 보증함!”

한 달 전쯤,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가 자기를 소개하며 손을 내민 것이 떠오른다.

‘다시 소개할게. 내 이름, 기회라고 해.’

내가 저 녀석을 만난 지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나?

갑자기 나른한 피로감을 느낀 그란이 손가락으로 눈썹 사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요즘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군요. 어서 들어오시죠. 여러분께 근황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통나무 사무실에 개국공신(?)을 모아놓고 시작된 근황 보고는 베누스에게 들은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나무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고 있던 캐롯이 물었다.

“그래서 공주님은 갔어?”

“음, 그저께 갑자기 여름휴가를 떠나야 한다고 가버렸어. 조만간 수도에서 운영인력을 파견해 주시겠다더군. 그러면 이 지옥도 좀 편해지겠지.”

책상에 어지럽게 쌓여있는 문서를 힐끗 쳐다본 그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너 참 고생이 많구나. 그래서 여친은 생겼어?”

“아니.”

그란이 딱 잘라서 말했다. 하지만 캐롯은 눈짓으로 다과를 준비하고 있는 사이퍼즈 처녀를 바라보았다. 갈색 피부에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다소곳한 소녀였다.

그란은 무표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린애한테는 관심 없어.”

“정마알?”

몸을 앞으로 내민 캐롯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눈을 위로 뜨자 그란은 대신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이 녀석, 오토마톤 아니죠?”

“후르릅, 음, 차 맛이 좋군요.”

민트티를 마시던 크랭크는 딴소리를 늘어놓았고, 다들 피식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풍성한 수염을 기른 드워프 하나가 들이닥쳤다.

“그래! 여기들 있었군!”

처음 보는 드워프의 등장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발터.”

“이놈아! 실물이 왔으면 이쪽으로 먼저 보내줘야지!”

그란이 아차 하는 얼굴을 했다. 고개를 돌린 그가 물었다.

“저, 여러분 시간 있으십니까?”

“응? 무슨 일인데?”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다.

드워프 발터에게 붙들려 간 곳은 마을 구석에 만들어진 창고였다. 대리석을 가져다 놓고 망치질 중이던 드워프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원본! 원본이 왔다!”

내부를 가득 채운 동상을 보고 상황이 이해한 모험가들은 그만 당황했고, 캐롯은 웃기 바빴다.

“으하하하! 동상? 진짜로?”

“나는 말렸어.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공주님을 찾아가서 억지를 부리더라.”

아리에테도 한마디 했다.

“그런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만들 줄이야. 어지간히 고마웠나 보군.”

그림만 보고 동상을 조각하던 드워프들이 실물이 나타나자 몹시 기뻐했다.

“자자! 이쪽으로 와! 빨리빨리!”

이야기 속 모험가들을 데려다 적당히 자세를 잡아준 드워프 들은 정과 망치를 들고 신나게 돌을 쪼기 시작한다.

깡깡깡-!

“얼굴부터! 다른 건 대충 때려 넣어도 되지만 얼굴은 그게 안 돼!”

“알아! 이 영감탱이야!”

당시 자리에 없었던 리슐리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양손을 허리에 얹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던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윙크를 찡긋했다.

“모험을 했지.”

그대로 저녁까지 박제 당한 채 서 있어야 했던 모험가들은 뒤를 이어 하루 일을 마치고 찾아온 마을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사람들은 그대로 저녁 늦게까지 어울려 흥겨운 잔치를 벌였다.

잠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슬그머니 빠져나온 리슐리에는 다시 그 창고를 찾았다. 반나절 있었을 뿐인데 석상은 이제 얼굴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모험가들은 각각 자연스러운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친 얼굴, 화난 얼굴, 혹은 밝게 웃는 얼굴, 대체로 마을 사람들의 인상에 깊게 남은 모습이 그대로 석상에 옮겨졌다.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았다.

대단하면서도 조금 부러웠는지 자연스럽게 혼잣말이 나왔다.

“그런데 뭘 하면 동상까지 만들어주지?”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삶을 선물해줬어.”

대답을 듣고 고개를 돌리니 캐롯이 창고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엄연히 신입 모험가 연수 중이라서 캐롯은 항상 리슐리에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소녀의 동상을 마주 보고 있던 캐롯이 똑같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와, 나 조금 감격이야. 정말로 동상을 만들어주다니, 이제 내가 없어져도 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리슐리에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캐롯은 자기 동상 옆에서 같은 자세로 서서 말했다.

“어때? 똑같아?”

“응, 똑같아. 그리고 인간이든 오토마톤이든 오고 가는 데는 순서가 없으니까. 우리 서로를 기억하도록 하자. 너를 기억할게, 나를 기억해줘.”

입을 헤 벌리고 멍한 얼굴을 한 캐롯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웃고 있는 것이었다.

리슐리에를 마주한 캐롯이 두 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물론! 우리 서로를 기억하자!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하하하!”

이른 아침, 사람들이 깨기 전에 출발 준비를 마친 일행들은 그란과 마을 청년 몇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개척민 마을 베누스를 떠났다.

“볼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 정말 근처에 왔다가 들린 거거든? 조만간 또 올게.”

“기다리겠습니다.”

새벽에 잠깐 베누스의 몸을 점검한 크랭크가 덧붙였다.

“왼쪽 어깨 관절에 열화 흔적이 보이는데 아마 왼손 찌르기를 자주 해서 그렇겠지.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크랭크.”

위이잉-!

떠나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데 그란이 다가왔다.

“멋진 사람들이야.”

“그렇습니다. 믿음직한 우리의 친구와 동료들입니다. 오늘 아침 회의를 시작하시지요.”

“그래, 오늘도 바쁘겠어.”

개척민 마을 베누스의 임시 촌장 그란과 임시 경비대장 베누스가 몸을 돌리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 * *

투툭, 툭! 쏴아아아!

한참 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쏟아진다. 운전대를 잡은 지오의 곁으로 비타가 고개를 쑥 내민다.

“와! 와아! 비와요! 비!”

“그렇군. 갑자기 쏟아지다니.”

내내 지붕에 올라가 있던 아리에테와 리슐리에가 쫄딱 젖어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캐롯이 가져다준 수건으로 머리와 안경을 닦았다.

차량은 잠시 정차했고,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크랭크! 비 많이 오는데 어떻게 해?”

“비가 온다고? 급수탱크 밸브를 먼저 돌려. 물은 소중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보리스가 차내 벽을 가로지르는 파이프의 밸브를 돌렸다. 크랭크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우천 시의 주행 상태를 실험해 볼 절호의 기회다. 멈추지 말고 전진, 단 저속으로.”

여전히 작업대에 오토마톤을 올려다 놓고 작업 중인 크랭크의 말이었다.

지오는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진지하게 살펴보다가 심호흡을 짧게 한 다음 발판을 지그시 밟아 차량을 출발시켰다.

역시 빗줄기를 바라보던 캐롯이 중얼거렸다.

“이거 장마는 아니겠지?”

“아직 멀었다. 지나가는 소나기야.”

수건을 목에 걸고 있던 아리에테가 말했다.

“서부도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픈 편이었지. 으, 으, 으엣취이!”

거창한 재채기에 캐롯이 걱정스러운 듯이 우쭈쭈거렸다.

“아유, 우리 딸, 감기 걸리겠네. 어서 뜨거운 물로 씻고 옷도 갈아입어.”

“훌쩍-! 야외에서 비 좀 맞은 걸로 죽지는 않아.”

하지만 리슐리에는 놀라워했다.

“뜨거운 물이라고?”

캐롯은 좁은 샤워실의 밸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빨간 밸브를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와, 지금은 비가 오고 있으니까. 얼마든지 쓸 수 있겠네.”

리슐리에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차량이 정차한다.

차장 지오가 앞을 바라보며 외쳤다.

“길가에 뭔가 희끄무레 한 것이 나와 있습니다! 움직여요!”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가에 얼굴을 들이민 비타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어어? 사람이에요. 신관 복장인데요?”

목에 수건을 건 아리에테가 다가왔다. 뒤를 돌아보니 크랭크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는 건 내게 일임한다는 거지.

“매복에 주의. 지오, 가까이 가봐. 천천히.”

쏴아아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소녀 신관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곁에는 말안장을 짊어진 소년 하나가 풀이 잔뜩 죽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에이브! 차량이 우릴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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