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관광! 173 >
지하 정원을 한참 둘러보고 돌아온 투나는 다시 크랭크의 작업실을 차지하고 앉아서 위장과 보안을 위한 마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꿀물을 타온 샤를이 말했다.
“좀 쉬면서 하십시오.”
“어음, 죽으면 언제든 쉴 수 있데.”
컵을 내려놓는 샤를의 손이 멈칫했다.
“그래선 안 됩니다. 가능한 한 오래 살아주십시오.”
후르릅 꿀물을 마시는 투나와 소반을 든 샤를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적막을 깨고 공방 문 앞으로 손님들이 찾아왔다.
“계세요? 저희 왔어요.”
신관 에리스와 레나, 애덤이었다. 작업실에서 의자를 뒤로 기울인 투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오오-! 어, 어서 와.”
“기울이지 마십시오. 또 넘어집니다.”
샤를이 투나의 의자를 잡아주는 것을 보고 에리스가 웃으며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온 애덤과 레나는 처음 보는 공방 안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굉장하군.”
“와아.”
자리에서 일어난 투나가 흐흐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전부 크, 크랭크 취향이지. 나는 더, 더부살이야. 의자 가지고 적당히 앉아.”
작업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본 사람들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눴다.
“요, 요즘 어때?”
“저번에 치료 후 한동안은 괜찮았는데 토벌 몇 번 나갔다가 또 그래요.”
꿀물을 마시던 투나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이, 이런 여름에도 토벌 나가?”
“겨울보다는 할 일이 많은 편이죠. 몬스터가 활개를 치니까. 그보다 완성됐다는 이야기 듣고 왔는데요.”
“어, 그래. 자, 잠깐만 기다려봐.”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을 뒤진 투나가 초록색 보석이 박힌 펜던트를 내밀었다.
“마, 마력 파워뱅크야. 마력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에, 엔진하고는 다르지. 목에 걸어봐.”
가죽 끈을 목걸이 삼아 그걸 걸어본 레나는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로감이, 피로감이 사라졌어요?”
“와, 잘됐네요.”
에리스가 박수를 쳤고, 애덤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상 작동하는 것을 보고 신이 난 투나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순간 출력을 올리는 방법을 비롯해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해들은 레나는 몹시 기뻐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팔짱을 한 투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저 약간의 도움을 줬을 뿐인데 찾아오는 감사와 고마움이 이렇게 크고 또 가슴 따뜻한 것인지 과거에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밝은 표정도 잠시, 검은 마녀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두 손을 들어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눈빛은 항상 이상했지만, 거기에 더해 숨소리도 좀 거칠어진 것 같다.
“후우, 후우, 자, 자 이제 약속대로 머리카락 줄 거지? 응?”
“그거 말인데요.”
애덤이 손을 들고 슬쩍 끼어들었다.
“머리카락만 주면 이거 또 만들어줍니까?”
잠깐 머뭇거리던 투나는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몇 개나 원하는데?”
“대충 100개쯤?”
“으극?”
투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 음, 무, 물물교환이 통할 숫자가 아니네. 이, 이거 재료 구하기 힘들거든?”
“한 번에 다 만들어달라는 건 아니에요.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좋아요.”
잠시 고민하던 투나가 고개를 들었다.
“조, 좋아. 하지만 100개쯤 되면 개당 제작 단가는 계산해봐야 해.”
자리에서 일어난 애덤이 손을 내밀었다.
“합시다. 가격 정해지면 알려줘요. 돈은 준비 할 테니까.”
의자에 앉아있던 투나는 이제 레나를 보았다. 두 손을 모아 쥔 이 빨간 머리 아가씨는 몹시 애처로운 눈을 하고 있었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난 투나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좋아. 하자. 어디다 쓸 건지 대, 대충 짐작은 가니까.”
레나는 짧은 한숨을 쉬었고, 에리스는 곁에서 또 박수를 쳤다.
머리카락은 투나가 직접 잘랐다. 의자에 앉은 레나는 목에 하얀 천을 둘렀다.
서걱!
“끄, 끝났어요?”
커다란 가위를 손에 쥔 투나는 희열에 찬 얼굴로 한 움큼의 붉은 머리칼을 손에 쥐고 있었다.
“흐흐흐! 으으음! 내, 냄새 좋다. 킁카킁카!”
“투나!”
철썩!
“아읏!”
에리스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투나가 샤를이 가져온 유리병에 그걸 조심스레 집어넣는 동안 단발이 된 레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애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괘, 괜찮아? 이, 이상하지 않아?”
“음, 충분히 예쁘니까 걱정 마. 머리카락쯤이야 얼마든지 자라잖아.”
무심한 목소리에 볼을 부풀린 레나가 그를 덥석 끌어안더니 팔에 힘을 주었다.
트드득!
“으어그으어억?!”
애덤이 쥐어짜지는 것을 지켜보던 에리스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보기 좋죠? 요즘 두 사람 애정 표현이 부쩍 늘었거든요.”
“애, 애정 표현 두 번 했다간 죽겠는데?”
“그런데 머리카락은 진짜 어디에 써요?”
“흐흣, 비, 비밀.”
검은 마녀는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우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 *
투나가 약초 조달을 위한 지하 정원을 완성하였을 무렵······.
구스타프의 호의로 프리패스권을 받은 크랭크의 자동 차량은 마침내 드워프의 도시 켄투가에 입성했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성문의 입구가 좌우로 열리고 차량이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의 문이 닫힌 다음 다시 안쪽의 문이 한 번 더 열렸다.
“오! 2단 구조야.”
“어지간히 바깥의 침입을 염두에 둔 설계로구나.”
차량의 지붕에 올라서서 주변을 살피던 사람들은 서서히 열리고 있는 성문 사이로 드러난 도시의 모습에 감탄을 터트렸다.
드워프 도시의 건물과 구조는 인간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건축 양식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서, 이쪽이 훨씬 진보된 기술로 만들어 진 것을 문외한도 알아차릴 정도였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던 지오가 말했다.
“건물이 다 큼직큼직하고 단단해 보이네요.”
“그러게, 키도 작은 사람들이 뭘 다 엄청 크게 지었어. 저거 뭔가 깍둑썰기한 것 같지 않아?”
자리에 앉아있던 보리스도 한마디 거들자 듣고 있던 코비가 킥킥 웃는다.
도시 감상은 지붕 위에서도 이어졌다.
“와아. 지붕이 전부 검은색이네. 신기하다.”
“드래곤의 습격 때문에 내려온 전통이라고 하더군요.”
난간에 기대어 서서 한가롭게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고 있던 리슐리에의 말에 캐롯, 아리에테, 비타가 오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리슐리에, 와봤어?”
“그래, 자세히 아는군.”
다시 안경을 쓴 리슐리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나도 처음이에요. 책에서 봤을 뿐이지.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죠?”
“그건 나도 모르겠네, 잠깐만.”
몸을 밑으로 내민 캐롯은 지붕에 거꾸로 매달려 운전석 창문에 철퍼덕 달라붙었다.
한가롭게 대로로 차량을 몰아가던 크랭크가 깜짝 놀라버리자 캐롯은 그가 놀라는 흉내를 내면서 낄낄 웃어댔다.
곧 지붕에서 몸을 일으킨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그냥 관광이라는데?”
지붕 위의 여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고, 그것은 차 안의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관광요?”
“그렇습니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도 하고, 오면서 채취한 약초도 처분할 겸 들러보았습니다. 드워프는 약초를 비싸게 사준다고 하더군요.”
“전 무슨 다른 일거리를 받으러 온 줄 알았어요.”
코비의 말에 운전석에 앉은 크랭크는 차량의 핸들을 돌리며 대답했다.
“여기서 의뢰를 또 받을 여유는 없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는 돌아가야 합니다. 가는 길에 베누스에도 들리려면 빠듯하거든요.”
지붕 위의 비타와 차 안의 코비가 동시에 외쳤다.
“그럼 쇼핑!”
“쇼핑이네요!”
캐롯이 웃었다.
“하하, 다들 신났네?”
“드워프 마을은 난생처음이거든요? 이런 기회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 갑시다! 도시 관광! 길거리음식! 그리고 쇼핑!”
즐거워하는 신관을 보면서 다들 들뜬 표정을 지었다.
이국적인 드워프의 도시는 지금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여전히 하늘에는 부유섬이 떠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자기 동족 중의 한 사람이 저걸 끌어내렸다는 사실은 도시민 모두에게 가슴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선사했다.
주점에서 술에 취한 드워프 청년이 외쳤다.
“우리끼리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쿠르프 어르신을 모시러 가자고!”
“그래! 어서 무용담을 들어야지!”
술집에서 뛰쳐나온 드워프 청년들을 태운 차량이 급하게 자리를 비운 대로변 주차장으로 크랭크의 자동 수송 차량이 비집고 들어왔다.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먼저 짐칸에서 약초 더미를 다 끄집어냈다. 여행 중 틈틈이 채취한 것으로 상당한 양을 자랑했다.
물론 부유섬에서 가져온 것들은 따로 보관 중이었다.
일행 전부가 약초 자루를 가지고 잡화점에 들리자 드워프 여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선 캐롯이 물었다.
“와, 오늘 무슨 날이에요? 밖에 떠들썩하네?”
여주인이 웃으며 창밖의 하늘을 가리켰다. 거대한 부유섬이 도시 위에 떠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었다.
“전설이 나타나서 그렇단다. 요즘 애들은 저런 걸 본 적이 없지. 나도 아주 옛날에나 가끔 보던 것이거든?”
다들 입이 근질거리는 표정을 지었지만 크랭크가 가로막았다.
뒤로 돌린 투구 속의 눈동자는 가늘게 변해있었다.
“붙들리면 한 달은 술독에 빠져 살아야 합니다.”
“헉!”
움찔한 아리에테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섰고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풍채와 더불어 인상도 좋은 드워프 아낙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그래서 뭘 사러 왔지?”
크랭크는 자루를 벌려서 내용물을 보였다.
약초를 본 드워프 아낙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워프는 광산이나 공방에 틀어박히는 것을 좋아하지 밖을 나돌며 약초를 캐는 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쓸모는 많은데 캐러 갈 사람이 없으니 약초 값을 잘 쳐준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호후후, 굉장한 양인데? 당신들이 직접 캔 거야?”
“예. 매입 가능합니까?”
크랭크가 흥정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부유섬의 위상에 가려진 진귀한 인물에게 집중했다.
난생처음 보는 드워프 아줌마였다.
“와, 아줌마 드워프다.”
“인상 좋아 보이시네.”
“어쩐지 마리아 아줌마 닮지 않았어?”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슬쩍 뒤를 돌아본 크랭크가 여주인에게 사과했다. 흥정을 나선 크랭크조차 나이 든 여성 드워프는 처음 보았지만 그래도 예의는 차려야 했다.
“저희 동료들이 실례되는 행동을 보였군요.”
“호후후, 괜찮아. 나 역시 오랫동안 장사하면서 당신 같이 커다란 인간은 처음 보니까. 인간 맞지? 오우거 아니지?”
오히려 크랭크가 씁쓸한 기분을 느껴버렸다. 캐롯이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크랭크의 몸은 인간 중에서도 드물거든요. 그래서 얼마에 매입해주실래요?”
가게 안에 다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까지 쌓여있는 자루를 보면서 여주인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결국 자루를 전부 풀어서 길바닥에 쏟아내고 종류별로 골라내는 작업이 이어졌다.
“저게 뭐냐?”
“허헛, 재미있구만.”
우락부락한 청년들은 물론 오토마톤에 여기사와 신관까지 빙 둘러앉아서 약초를 골라내는 모습은, 길을 지나던 드워프 시민들이며 입성을 허가받은 모험가들에게 약간의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넉살 좋게 자리에 앉아서 약초를 골라내던 리슐리에가 옆에 앉은 캐롯을 바라보았다.
“선배, 이거 부끄러워.”
“멘탈을 단련하는 훈련이야. 익숙해져 봐봐. 주변 사람들 시선에 일일이 신경 쓰면 일 제대로 못 한다? 신경을 꺼버려.”
“음, 그럴듯해. 이번엔 속아줄게.”
재빠르게 약초를 골라내던 캐롯이 프하하 웃어버렸다.
사람이 많아서 약초 정리는 금방 끝났다. 그동안 수량과 상태 확인을 마친 잡화점 여주인은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이 정도 어때? 어차피 다른데도 별 차이 안나.”
주머니 안의 동전을 살펴본 크랭크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라 이건 드워프 화폐라서 저희가 쓰기에는 좀.”
“여기서 그거 다 쓰고 가면 되지 않겠어? 뒤에 아가씨들도 그런 표정인데.”
아르곤의 여관 주인 마리아를 작게 만든 것 같은 풍만한 드워프 아낙이 웃으면서 말했다. 크랭크가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다들 손가락을 입에 물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모두가 힘내서 캔 것이니 이건 정산 비용에서 빼겠습니다. 괜찮겠지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