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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70화 (170/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밀크티! 170 >

이튿날 아침, 샤를을 정비하느라 밤을 새운 투나는 기술적 난제에 부딪혔다. 애초에 전문 분야가 달라서 일어난 일이었다.

“왜,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자료, 자료 수집이 필요해!”

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아온 경험이 거저 생길 수는 없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 현재 투나의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유일하게 자기보다 더 박식한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오토마톤이 고장 났다고요?”

“어, 으, 예.”

늦은 아침, 가게 문을 열자마자 찾아온 투나는 보고 마녀 공방의 케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거라면 정비 길드에 의뢰하는 것이 빠를 것 같은데요.”

“어? 아, 고, 고르곤 님은 아직?”

케이스가 빙긋 웃었다.

“요즘 바쁘시거든요.”

“으, 어, 예에.”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던 투나가 곤란해 하는 눈치를 하자 케이스가 문을 열었다.

“이야기나 한번 들어볼까요?”

차를 마시며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케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상황판단이 필요한 단독 행동은 오토마톤에게 좋지 않아요. 길을 잃고 헤매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는 상황인 거죠.”

‘저 녀석들에겐 아직 최종결정권자가 필요하다.’

봄 소풍 때 있었던 일을 떠올린 투나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밤새 쌓아온 의문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고, 케이스는 아는 선에서 대답해 주었다.

케이스 시리즈는 고르곤이 연구 조수로도 써먹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축적 시켰기 때문에 지금 투나의 좋은 상담사가 되어주었다.

“논리 충돌은 연산 능력에 상관없이 발생해요. 요즘엔 제한을 둬서 문제가 생기면 수습이 쉽게 해놓았지요.”

잠시 숨을 고른 케이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기억을 지우면 되니까. 하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그런 건 좀 아깝다고 생각해. 차라리 연산 능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서 스스로 돌파구를 찾도록 해야지. 그 꼬마 인형처럼.”

실시간 링크로 고르곤의 의식이 나타났다. 투나가 환호했다.

평소 마녀 공방에 놀러 올 때마다 과자나 물건을 사 오는 투나의 선물 공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오!”

투나는 이제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현재 샤를은 재기동 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고, 밤새 이것저것 실험해 보았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크랭크가 돌아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채, 책에는 논리 충돌에 대해서 기, 기억을 지워서 부하 요소를 없애라고 하던데. 그, 그거 말고는 바, 방법이 없나요?”

“있어.”

고르곤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잠시 뜸을 들이는 그녀를 보고 투나가 얼른 지갑을 꺼내며 대답했다.

“사, 사례할게요. 부디 가르쳐 주세요.”

투나의 표정은 진지했다. 변변찮은 추억뿐이지만 내내 자기를 돌봐주는 오토마톤과 함께 한 9개월을 마치 쓰레기통 비우듯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정이 많은 아이구나. 크랭크 같아.”

“예, 예에?”

테이블에 올린 두 손을 파닥거리며 진지하게 생각하던 고르곤이 마침내 시선을 올려 뜨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3번가 빵집의 로엔그린 부인이 직접 구운 산딸기 쇼트케이크와 사과 타르트, 그리고 푸딩. 25인분.”

겨우?!

당황한 투나였지만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빙긋 웃어준 고르곤이 메모장을 가져와 펜을 휘갈기더니 내밀었다. 완전 초보가 아니었던 투나는 그 몇 글자 힌트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버렸다.

“오, 오오! 고,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고르곤 님!”

“후후, 샤를이라면 너랑 자주 오는 그 아이지? 내가 아는 샤를이 없어지는 건 나도 싫거든?”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이란 말이야.

여러 번 인사를 마친 투나는 귀가를 서둘렀다.

기특하게도 혼자서 여기까지 찾아온 투나는 불안한 시선을 숨기기 위해 챙이 넓은 밀짚모자의 깃을 양손으로 잡아당겨 얼굴을 가리고 호다닥 여름의 도시를 달리기 시작했다.

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그런 투나를 배웅하던 고르곤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점장님 뭐 하십니까?”

“어마나~! 어서 오세요. 여러분.”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하거나 아는 척했다.

근래 들어 고위력의 스크롤을 취급한다는 입소문을 타서 마녀 공방은 상당히 성황을 이뤘다.

다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단체나 대형 모험단에서 찾는 편이었지만, 매상은 착실히 상승 중이었다.

얼굴에 커다란 칼자국 흉터가 있는 남자가 그녀에게 공손히 물었다.

“말씀드린 스크롤을 찾으러 왔는데요. 준비되었습니까?”

“물론이죠. 들어오세요.”

발주한 스크롤을 찾으러 온 아르곤의 파수꾼 소속 모험가들에게 화사하게 웃음 지은 케이스가 그들을 가게 안으로 불러들였다.

“으흠! 저번에 꽃잎 얼음 차, 그거 정말 좋던데. 한번 맛볼 수 있습니까?”

또 한 가지, 마녀 공방의 인기 비결은 점장 케이스가 스크롤을 사면 대접하는 서비스 품목에 있었다.

한여름에도 갑옷을 두른 멋진 콧수염의 기사가 점잖게 말하자 케이스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손에 유리컵에 담긴 시원한 얼음 꽃잎 차를 대접했다.

“크후하-!”

“세상에, 이거 정말 맛있어요.”

“······너희들은 대체 뭐 하러 따라온 거냐?”

남녀 모험가들이 혀를 빼물고 딴청을 피웠고, 탁자에서 스크롤을 확인하던 남자는 한숨을 쉬었으며, 예쁜 꽃잎이 가득 든 유리 주전자를 손에 든 고르곤은 그들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음 지었다.

평화롭다. 인간의 어둠은 싫지만 이런 건 역시 좋구나.

* * *

고르곤이 알려준 힌트에 따라 마법 도구점에 들러 수정구를 비롯한 몇 가지 장비를 준비해온 투나는 작업대에 누워있는 샤를의 주변에 설비를 깔아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여, 연산 수정을 더 증설하고······!”

크랭크는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사용했지만 투나는 대충 손으로 끼워 넣었다.

다음으로 스크롤 제작에 쓰이는 마법 수정구를 개조해 샤를의 머릿속 기억 저장소에 연결한 투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항목을 찾아 대거 수정했다.

그리고 약간의 사심도 채웠다.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말했다.

“샤를, 일어나.”

칭-!

작업대에 누워있던 샤를이 눈을 번쩍이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눈앞의 투나를 보고 말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아······!”

거창한 한숨을 내쉰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직. 밥 좀 해줄래?”

“준비하겠습니다. 그 전에 이 주변 설비들을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또 당신이 걸려 넘어질까 걱정입니다.”

“흐흐흐, 내가 해둘게.”

“꼭 그러셔야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샤를은 부엌으로 향하다가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두 손과 몸을 살폈다.

“뭐가 이상해?”

“뭔가, 무언가 시야가 아주 넓어진 기분이 듭니다.”

투나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물었다.

“네 주인님은 누구지?”

샤를이 고개를 돌리고 투나를 보았다.

“투나. 당신입니다.”

“끼얏호우!”

자리에서 일어난 투나는 샤를을 껴안으려고 뛰어들었다가 바닥에 늘어놓은 기자재에 발이 걸려 나뒹굴어지고 말았다.

“우효옥?!”

쿵-!

바닥에 쓰러져 징징거리는 투나의 곁으로 샤를이 쭈그려 앉아서 고개를 흔든다.

“안타깝군요. 어째서 당신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까?”

다리는 좀 아프지만 투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히히, 이제 넌 내 거야.

연산 수정을 증설하고 투나의 사심이 들어간 샤를은 조금 대담해졌다.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한 정도로.

“나는 그 하수구 마을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 사람들이 좀 더 나은 미래를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

“호우미.”

식사 후, 푹 자고 일어난 투나는 리노의 머리카락을 개념 재료로 가공하다가 뜬금없는 샤를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까이 다가온 샤를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어, 음. 그게······.”

그저께 샤를의 이야기를 기억해낸 투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노인이나 애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운영이 안 돼. 경제활동은 무엇으로 할 거지? 뭐든 돈이 들어가는 세상이야.”

“거기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자는 몸이라도 팔아보겠다고 했습니다.”

투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항상 해맑은 표정이나 조금 바보스러운 얼굴을 하고 으히히 웃기나하는 그녀로서는 드문 표정이었다.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야. 그 동네 상황이 어떤지 감이 잡히는데.”

죽기 전에 처녀 딱지 떼어보고 싶어서 크랭크를 유혹했던 사람치고 투나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 그거랑은 틀리지! 하여튼! 지금 나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네가 가서 그 우두머리를 데려와 봐.”

고르곤의 도움을 받아 샤를을 업그레이드시킨 것도 모자라 자기 소유물로 만든 투나는 요즘 약간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줘야지. 세상의 이치라는 거야.”

“어려운 말을 쓴다고 해서 똑똑해 보이는 건 아닙니다. 투나.”

“히히히, 샤를, 말 잘하네. 어서 데려와 봐. 나 못 움직이니까.”

“문단속 잘하고 누가 문 열어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십시오.”

“응, 샤를 엄마.”

연산 회로의 증설로 사고 속도가 빠르고 유연해진 샤를은 요즘 꽤 말이 많아졌다. 잔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지만 투나는 그편이 더 좋았다.

* * *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불려온 포비는 공방 안을 구경하다가 입을 헤벌렸다.

“여긴 뭐지? 창고야? 약방이야? 정비소?”

일부러 안쪽 조명을 끄고 어둠 속에서 두 팔을 벌리고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투나가 잔뜩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으흐흐, 나, 나의 왕국에 온 것을 화, 환영한······. 어? 나, 남자잖아? 여자라며?”

자리에 앉아있던 포비가 눈웃음을 지었다.

“가슴이라도 보여줘야 해?”

데려온 샤를이 그녀를 소개했다.

“포비라고 합니다. 얼굴은 이렇게 생겼지만 여자입니다. 잘생겨서 고민이라고 하더군요.”

“호오오오.”

팔짱을 한 투나가 자기 입술을 매만지며 안경 너머의 미청년을 요목조목 뜯어보았다.

“남장여자? 여장남자? 우리 아리에테가 조, 좋아할 모습인데.”

“아, 저는 백합은 좀, 평범하게 남자가 좋습니다. 남친도 있고요.”

“나, 남친! 환상의 동물! 나, 나도 그런 건 없는데!”

연애 이야기에 눈이 돌아간 샤를이 의자를 가져와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우아하게 박수를 쳤다.

“샤를, 차를 주, 준비해줘.”

샤를은 밀크티를 준비했다.

머그컵을 받고 슬쩍 맛을 본 포비가 그것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이거 달다. 한 잔 더 줘.”

쪼르르······.

주전자의 찻물을 따르는데 투나가 조바심을 부렸다.

“남친 만난 이야기 해, 해줘.”

“그 이야기 들으려고 불렀어요?”

“아니, 그건 아, 아니지만. 어, 그런데 아리에테는 또 어떻게 아, 알지?”

주전자를 든 샤를 끼어들었다.

“아리에테는 이 도시에서 꽤 유명인입니다.”

“맞아요. 전신 의수 여기사님이 미인이기까지 한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그 붉은 눈의 악마 캐롯이랑 같이 다니기도 하고. 음? 어어!”

놀란 포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머그컵의 밀크티를 마시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그 사람들이 사는 공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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