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미래의 새싹! 169 >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샤를을 쳐다보던 중년 남자가 옆의 청년에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청년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더니 옆문으로 바삐 달려가 버렸다.
이제 그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놀랍군. 너, 오토마톤이지?”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괴인이 대답했다.
“알아보시는군요.”
“당연하지. 이 바닥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때 모험가 활동도 했었다. 너 같은 애들도 많이 굴려보았지.”
사내는 곁눈질로 청년들을 물러서도록 하고 앞으로 나섰다.
“혹시 본진 털러 보낸 우리 똘마니들은 만났나?”
“예, 기절시켜드렸습니다.”
청년 하나가 외쳤다.
“오토마톤이 사람을 패도 되냐?!”
“상대에게 공격 의도가 보였습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항목 아래 반격할 수 있습니다.”
샤를이 각목을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죽이지만 않으면 위해를 가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하, 이 자식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네.”
“어? 그럼 우리가 먼저 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냐?”
고개를 돌린 샤를의 시선에 잔뜩 얻어맞아 곤죽이 된 소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전투복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그가 중얼거렸다.
“최우선 명령, 아이들을 위기 상황에서 구출할 것, 또는 그런 위험을 배제할 것.”
타타타타탁!
다시 나온 손아귀에는 납구슬이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걸 고속으로 튕기기 시작하자 무지막지한 탄환 세례가 시작되었다.
퍼퍼퍽! 퍽! 와장창!
주변 창문과 비품이 마구 깨져나가고 몸에 납탄을 맞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거나 엎드렸다.
“억!? 아윽! 이거 엄청 아파!”
“엎드려!”
“미친! 딱밤에 맞아 죽겠네!”
쾅-! 챙!
그때 문이 부서지며 검은 그림자가 난입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납탄을 쏘아대던 샤를이 가까스로 검을 뽑아 방어했다. 덤벼든 것은 검은 방열 가발을 늘어뜨린 오토마톤이었는데, 체구가 샤를보다는 작고 캐롯보다는 컸다.
그래서 굉장히 빠르게 움직였다.
“최신형이다! 레몬! 싸워! 저걸 쓰러뜨려!”
전투복이 아니라 노출도 높은 짧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이 전투용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채채채챙! 챠챠챠챵!
실내에서 맞붙은 두 오토마톤이 검을 휘두르자 사방으로 불꽃이 튄다.
“으음···!”
테이블 위에서 정신을 차린 포비가 드러난 맨가슴을 보고 놀라서는 팔로 그것을 가렸다.
챠챠챠챠챠챠챵! 채챙! 쾅-! 퍽!
불꽃과 함께 엄청난 소음이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오토마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포비는 당황했다.
끼긱기긱-!
칼을 맞대고 서로를 노려보던 오토마톤 중에 머리에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쪽이 외쳤다.
“포비! 구하러 왔습니다. 몸을 숨기십시오.”
놀란 포비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테이블 아래에 숨어 있던 청년이 튀어나와 그녀를 사로잡았다.
남자가 포비의 목에 칼을 대고 외쳤다.
“으하하! 잡았다! 야! 오토마톤! 당장 멈춰!”
딱! 퍽!
“읏?!”
머리에 납탄을 맞은 청년이 휘청거리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쿠당탕-!
함께 테이블에서 굴러 떨어진 포비는 찡그린 얼굴로 엉덩이를 매만지다가 남자를 밀어내고 무리의 아이들에게 기어갔다.
챠챠챠챵! 챙! 휘릭-! 퍽!
긴 다리를 휘둘러 레몬을 날려버린 샤를은 왼손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어 납구슬을 보충하더니 최대 출력으로 엄지손가락으로 튕기기 시작했다.
투타타타타타타!
퍼퍼퍼퍼퍽! 퍽! 팍!
손가락으로 튕겨낸 납구슬은 생각보다 위력적으로 상대를 견제했다. 레몬은 벽을 타고 뛰면서 날아오는 납탄을 회피했다.
이 와중에 테이블 바닥에 엎드려 싸움을 구경하던 중년 남자가 희열에 찬 눈으로 외쳤다.
“오! 이거 좋은데? 오토마톤 투기장!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될 것 같아!”
“형님! 저거 개조 오토마톤입니다. 레몬이 밀려요! 빨리 도망갑시다! 일단 살고 봅시다!”
부하들은 이대로 눈먼 칼에 맞아 죽을까 두려워 보스의 다리를 질질 끌고 피신을 서둘렀다.
“좋아! 잘한다! 하하! 레몬, 끝까지 싸워라!”
마스터의 응원을 받은 오토마톤 레몬이 더욱 출력을 높여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투 경험과 방어력은 샤를이 월등히 높았다.
남자들이 문 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본 샤를은 덤벼드는 레몬의 검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칼날이 어깨에 박혔으나 전용 전투복의 장갑판에 가로막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샤를이 주먹을 뒤로 당기면서 말했다.
“당신은 힘이 별로 없군요. 너무 가벼워서 그런가 봅니다.”
쾅-!
주먹질 한방에 마스크가 으깨진 경량 오토마톤이 뒤로 굴러가 쓰러졌다. 곧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재빨리 달려온 샤를의 칼질에 머리가 쪼개지는 바람에 그만 동작을 멈췄다.
잠시 쓰러진 오토마톤을 내려다보던 샤를은 고개를 돌리고 포비와 소년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포비.”
“으, 응, 괜찮아. 그런데 당신, 날 어떻게 알아?”
맞아서 몇 군데 긁히고 부었지만, 그마저도 잘생김의 장식이 되어버리는 얼굴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전히 롱소드를 든 샤를은 하수구 촌의 어르신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그전에 일행들의 상태부터 확인합시다. 크게 다친 아이들은?”
몸을 돌린 포비는 기절한 아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동안 샤를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그녀에게 입힐 옷과 주전자를 찾아서 가져왔다.
셔츠를 받은 포비가 급하게 그걸 껴입으며 말했다.
“크게 다친 애들은 없어. 맞아서 기절한 거지.”
“이걸 먹이십시오. 포션을 섞었습니다. 당신을 포함해 미래를 이어 나갈 새싹에게 흉터가 생겨서는 곤란합니다.”
미래를 이어 나갈 새싹? 우리가?
내내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아이들마저 소중히 여기는 오토마톤의 태도에 포비가 조금 울먹거렸다.
콧물을 들이마신 그녀가 물었다.
“크흡! 듣기 좋은 소릴 하네. 당신, 대체 누구야?”
부스럭.
종이봉투를 벗자 새하얀 마스크에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자동인형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여러분의 친구, 자동인형 오토마톤입니다.”
그 소개를 듣고 포비가 핏 웃어버렸다. 어쨌든 상황이 다행스럽게 마무리된 안도감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순순히 항목하고 나와라!”
별안간 바깥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신고가 있었던 탓인지 경비대가 출동했다. 포비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도망쳐야 해! 잡히면 전부 감옥행이야!”
포비가 호들갑을 떠는 통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다시 하수구로 도망친 샤를은 오면서 때려눕힌 폭력단원을 미끼로 뒤쫓는 경비대를 따돌렸다.
“너, 대단한데?”
하수구 모퉁이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고 기절한 폭력단을 살피는 경비대원들을 훔쳐보던 포비가 중얼거렸다.
아이들을 겹겹이 업고 서 있던 샤를이 대답했다.
“저들이 시간을 벌어 줄 것입니다. 이 틈에 철수합시다.”
몸을 돌린 그들은 무사히 하수구 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내내 마음 졸이며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어르신들이 크게 기뻐했다.
“포비! 이놈아!”
“경비대가 와요! 어서 문 닫아요!”
“그려 알았다!”
쿵······!
모두가 뛰어들고 벽으로 위장된 묵직한 문을 닫아버리자 입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저마다 한숨을 쉬면서 마을 입구에 주저앉은 사람들에게로 웃음이 번진다.
“잘 돌아왔구나.”
“움직이는 여신상께서 우리를 구해주셨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파 몇이 또 샤를을 보고 두 손을 비비며 기도를 올렸다.
우상화된 당사자는 그들을 신기하게 여기며 말했다.
“그만두십시오. 나는 당신들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늙거나 약해지면 무언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지는 게야. 그냥 두거라.”
옆에서 늙은이들이 거들자 샤를은 더 이상 그들을 말리진 않았다. 하지만 묘한 감각을 느끼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돌아온 포비가 물었다.
“그래서, 날 찾으러 왔다고 하던데.”
고개를 휙 돌린 샤를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머리카락?”
“그렇습니다. 아까 그 소년의 것이 필요합니다.”
잠깐 생각하던 포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구해줬는데 그 정도는 싸지.”
포비는 기절한 소년을 깨워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바로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소년의 이름은 리노라고 했다.
사각사각.
“내 머리카락을? 어디에 쓰는데요?”
“가만히 있어. 머리카락 정도면 공짜나 마찬가지야. 덕분에 살았잖아.”
“음, 그건 그래. 진짜 조마조마했었어.”
가위를 든 포비와 목에 천을 두르고 다 부서진 의자에 앉은 리노가 즐겁게 웃었다.
잠시 후, 리노는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빡빡이 소년이 되어버렸다.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는데 포비가 가위를 들고 웃었다.
“쌈박하니 잘 어울리는걸.”
잠깐 그녀를 보던 리노의 시선이 가슴 쪽으로 향하더니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
“근데 포비 형, 누나였어?”
중성적 외모를 가진 포비가 씩 웃었다. 다행히 웃을 때는 여자처럼 보였다.
“그래, 얕잡아 볼까 숨긴 거였어. 이제 그놈들이 소문 다 낼 테니 당분간 장사는 못하겠네.”
머리카락이 든 주머니를 받은 샤를이 끼어들었다.
“저로서도 다른 일을 추천합니다. 그것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양심에 신경을 쓰면 돈벌이가 그렇게 좋지 못하거든? 푼돈으로는 여기 사람들 다 먹여 살리긴 힘들어. 역시 몸이라도 팔아야 하나.”
리노가 입을 딱 벌리더니 포비를 올려다보았다.
“안 돼! 그러지 마! 내가 일해서 돈 벌면 돼! 그런 거 하지 마!”
무뚝뚝한 남자 행세를 그만둔 포비는 표정이 밝아졌다. 히죽 웃음 지은 그녀는 겨우 가슴 아래에 오는 리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덥석 끌어안아 버렸다.
“하하! 날 구하러 와주신 우리 왕자님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훌쩍이던 리노는 결국 포비의 가슴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경비대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린 샤를은 늦은 저녁이 되서야 하수구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도시 위로 올라갔다.
* * *
머리카락과 함께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투나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수구에 그런 게 있다고?”
“예, 그랬습니다다다. 다다다.”
보고를 마친 샤를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이 두 손으로 목과 입을 더듬었다.
놀란 투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를은 뒤로 물러섰다.
“연산, 연산, 연산장치에 과과과부부부하하 발생 중입니다. 논리오류, 나는, 당신의 명령을 뒤로 미루고, 내 의지로, 그들을 먼저, 도왔습니다.”
덜커덕!
논리 충돌을 일으킨 샤를이 멈췄다.
석상처럼 서 있는 샤를을 멍하니 쳐다보던 투나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싸고 호오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허둥대더니 곧 책장으로 달려갔다.
급하게 책 한 권을 찾은 그녀는 다시 샤를에게 달려와 내용을 보면서 몸의 몇 군데를 찌르고 꺾어서 강제로 동력을 차단했다.
치이잉······.
곧 샤를이 낮은 소리를 내면서 작동을 멈췄다.
오토마톤의 논리 충돌을 처음 겪어본 투나는 놀라움으로 물든 얼굴로 꼭두각시 인형처럼 서 있는 샤를을 쳐다보았다.
얼떨떨한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 말이나 흘러나왔다.
“어, 이, 이게 무슨, 이, 이제 저, 저녁은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