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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68화 (168/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괴인! 168 >

상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더불어 강도 남에게 들은 이야기와도 거의 일치했다.

“바깥의 신천지에 마을을 세우러 나갔다가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돌봐줄 사람들이 없어지면 이런 곳으로 흘러들어오지.”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기 위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 곳이 바로 이곳······.

“그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침대에 앉은 노파가 눈물을 흘리면서 웃었다.

“그것이 잘 안됐네. 으흐흣······!”

갑작스레 모두가 눈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달랬다.

얌전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던 자동인형이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뻗어간 강철 팔은 세상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멀어버린 눈에 쌓여있는 보석을 훔쳤다.

“그렇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의 노력 위에 도시가 세워졌습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습니다.”

“크흐읍.”

“흡······!”

“할아버지 울지마아-!”

“누, 눈에 먼지가 들어가 그렇다. 우는 거 아녀.”

흔한 위로의 말로 늙은이들을 울려버린 무덤덤한 자동인형은 정좌를 한 채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그런데 왜 이런 채광과 통풍이 안 되는 곳에 계신 겁니까? 몸에 나쁩니다. 신전에서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돌봐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듣기 싫은 말인지 늙은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곳에는 안 가!”

“그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지독했어. 기부금이라고 얼마나 뜯어가던지.”

확실히 도시 운영의 초창기에는 신전에서 썩은 내가 날 때도 있었다. 샤를은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신관 에리스께서 자주 들려주셔서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십니까?”

공방의 살림을 책임지다 보니 사람들의 식사 여부가 제1 관심 사항이 되어버린 샤를이었다.

아름다운 마스크의 유리구슬 눈동자에 비친 사람들의 영양상태는 최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 아이는 피부병을 앓고 있군요.”

곁에 달라붙어 있는 꼬마의 머리를 만져보던 샤를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노인들의 고집은 완강했다.

“됐어. 안가, 그러는 자네는 여기 무슨 일로 왔나? 죄를 짓고 도망치려는 겐가? 주인은 또 어디 있고?”

“도망?”

“뭐여? 수로 이용하려고 온 거 아니여?”

샤를의 시선을 살피던 노인들이 기겁했다.

“겨, 경비대에서 온 겨?!”

“우리 잡으러 온 건가?”

당황하는 늙은이들을 샤를이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그건 아닙니다만 비슷합니다. 나는 포비라는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노인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몇몇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그 아이는 우리들 모두의 손자이고 은인이여!”

“그 아이를 잡아가려거든 우리 전부 죽이고 데려가!”

다소곳이 앉은 샤를이 고개를 들었다.

정교하게 깎아 만든 여성형의 마스크와 보기 드문 은색 방열 가발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저는 포비라는 사람에게 거래를 제안하려고 온 것입니다.”

동시에 늙은이들이 표정이 가라앉았다. 사람이 그랬다면 의심했을 것이다.

“잘 보그라. 오토마톤, 저 인형들은 거짓말은 하지 않어. 쟈들이 하는 말은 믿어도 된다이.”

“왜요? 할아부지?”

노인은 손자를 보듬으며 쭈글쭈글한 얼굴로 웃었다.

“기계가 어찌 거짓말을 하누.”

“와아. 정말요?”

샤를이 고개를 돌려 꼬마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렇습니다. 서로를 속이면서 살아온 여러분 창조주께서는, 자기 피조물만큼은 솔직해지길 바라셨습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포비는 왜 찾는데?”

“머리카락을 조금 얻고 싶습니다. 물론 정당한 가격을 지불 할 것입니다.”

“머리카락? 마녀라도 있는겨?”

늙은이의 경험은 무서운 것이다. 단번에 정곡을 찔렸으나 샤를은 둘러대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늙은이들은 서로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모여 앉은 모습이 마치 마을의 사랑방 같다.

“이누마는 언제 들어오지?”

“밖에 나간 지 꽤 되었는데.”

“요즘 바쁜 것 같더이다. 언제 오려는지 모르겠소.”

“자슥이 질 좋지 않은 것들과 어울리던데. 위험한 일거리에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구먼.”

그때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선 샤를이 노인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곳의 아이들을 좀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려. 내 안내해주지.”

사람들이 틈을 만들어주자 노인 몇과 밖으로 나간 샤를은 하수구 촌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파악했다.

혹시 그 소매치기 소년이 있을까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조께 크고 똘똘한 애들은 전부 포비 따라 일하러 나갔지. 저녁에는 먹을거리 구해서 돌아올 거여. 그때까지 있어 보겠는가?”

늙은이들은 조금 즐거운 투로 샤를에게 떠들어댔다.

말끔하게 생긴 오토마톤이 무장한 채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젊었을 적 생각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알려서는 안 되는 정보도 마구 풀어놓았다.

“여기 하수구에 수로가 있는데. 그쪽으로 해서 성문 검색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아까 말씀하셨던 것이로군요.”

늙은이는 다 빠진 이빨로 웃었다.

“허허,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었지. 그렇게 번 돈으로 애들을 키웠어. 커서는 다 자기 밥벌이하러 나가버렸지만.”

“안 그런 건 포비 자슥뿐이지.”

가만히 주변을 살피던 샤를이 노인들에게 등을 보인 채로 중얼거렸다.

“맑은 햇살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까?”

“안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허지만 모여서 살 곳이 없어. 먹고 살기도 힘들 지경이구먼.”

샤를이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들의 수명이 끝나면 저 아이들은 어떻게 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샤를은 참기로 했다.

그때 저쪽에서 노파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큰일이여! 아그들이 다쳤어! 어여 와봐!”

서둘러 달려가 보니 애타게 찾던 그 소매치기 소년이었다. 하지만 꼴이 말이 아니다.

“어아아! 카, 칼이 박혔잖여!”

“아, 아파요······!”

얼굴이 파랗게 변한 소년은 기침하면서 겨우 말했다.

“도, 도망가야 해요. 전부, 지금 4번가 폭력단이랑 싸움이 났어요. 포비 형이 빨리 모두 도망치게 하라고 콜록콜록-!”

“아으아! 애기야. 죽겠다. 죽겠어! 어, 얼굴이 파래.”

“내 이놈들을!”

지팡이를 들고 나서려는 건장한 늙은이를 할멈들이 말리는 소란이 좀 있은 동안 샤를이 도착했다.

바닥에 엎어져서 기진맥진한 상황에서도 소년의 얼굴에 경계심이 떠올랐다.

“으윽-!”

“나를 기억하십니까?”

식은땀으로 젖어있던 소년은 말을 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년의 어깨를 붙잡고 등에 박힌 단검을 단숨에 뽑아버리자 피가 왈칵 쏟아진다.

길쭉한 시험관에 담긴 비상용 힐링포션을 꺼낸 샤를은 그것을 소년의 입에 대고 반 흘려 넣고 남은 반을 등의 상처에 부었다.

치이이익-!

샤를의 마스터는 외출 시에는 항상 무장과 치료 키트를 소지하도록 했다. 이 난이도 높은 세상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억지스러운 이유에서였다.

그 덕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샤를이 소년을 보면서 말했다.

“마녀의 포션입니다. 이 정도에 150만 리즈입니다. 나에게 지불해야 할 당신의 목숨 값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엄청난 약효로 목숨이 이어진 소년이 두 손을 보면서 놀라워했다. 보고 있던 노인들은 인형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절박한 소년은 이제 샤를의 다리를 붙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우리 형을 구해주세요!”

샤를은 고민했다. 지금 이 소년만 데리고 돌아가면 상기의 목적이 완수된다.

“하지만 캐롯이 나에게 읽으라고 강요했던 책은 사람의 도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택지는 그런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납니다.”

현재 마스터 없이 단독 행동 중인 샤를은 망설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하수구 촌에는 지금 신상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현되었다.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시오.”

“부탁하겠네! 애들을 살려주시게.”

한 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샤를이 고개를 들었다.

“연산장치에 과열의 조짐.”

허리를 숙인 그는 팔을 내밀어 소년의 손을 잡아당겼다.

“나는 내 의지로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길을 안내하십시오.”

* * *

“이쪽이에요!”

하수구 촌을 나서서 복잡한 수로를 달리고 있는데 멀리서 막대기며 날붙이를 든 건장한 청년들이 우루루 다가오고 있다.

“저기 있다! 3번가 하수구 촌 녀석들이야!”

“야 이 자식들아!”

탁탁탁-!

소년의 곁에서 달리고 있던 사람이 속도를 높이더니 롱소드를 검집 채 휘둘러서 사람들을 두들겨 팼다.

퍽퍽퍽!

따라온 소년이 그걸 보고 입을 벌렸다.

“굉장해!”

“도와주십시오.”

성내에서 사람을 두들겨 팰 때는 얼굴을 숨겨야 한다는 캐롯의 조언대로 크랭크처럼 머리에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있던 샤를은, 물가에 둥둥 떠다니는 청년들을 번쩍번쩍 들어서 수로 정비 통로에 눕혔다.

“나쁜 놈들인데 왜 구해요?”

“왜냐하면 나는 오토마톤이기 때문입니다.”

물에 떠내려가는 각목을 주워 든 샤를은 소년의 안내를 받아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뒤를 이어 올라오는 소년의 팔을 잡아 올리자 그가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저 건물 안이야! 빨리빨리!”

빠르게 달려간 샤를이 다리로 문을 박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쾅-!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돌렸다.

“뭐냐?!”

“아오! 이것들아! 노크를 해라! 노크를!”

“우리 형 내놔!”

그곳은 오래된 술집 같은 곳이었는데, 어지럽게 흩어진 탁자 주변에 피투성이가 된 아이들이 주저앉아있고, 테이블 위에는 상의가 벗겨진 포비가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하나 같이 무서운 인상의 남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고,

샤를을 데려온 소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포비 형! 이 개자식들이!”

“와, 저 자식 말버릇 좀 보게, 근데 아까 등에 칼빵 놓지 않았어? 다시 돌아왔네.”

“포션이라도 빨았겠지요.”

사나운 인상의 남자가 기절한 포비의 짧은 머리채를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꼬맹아. 이거 봐라. 네 형은 형이 아냐. 누나야, 누나.”

“잘생긴 계집애라서 다행이야. 나는 내가 남자한테 관심이 생겼나 싶더라니까.”

흠씬 두들겨 맞아 기절한 포비를 살피던 남자들이 저마다 중얼거렸다.

“꼴에 가슴에 붕대 감아놓은 거 좀 봐라. 꽤 크지 않냐? 자릿세 대신 가게에 넘겨버릴까?”

“이거 진짜 가슴 맞겠죠?”

나이프를 집어 든 청년이 가슴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밑에서부터 잘랐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하얀 가슴이 출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효오!”

“허, 엄청 크네. 우리 마누라보다 큰데?”

“조, 좀 만져 봐도 될까요?”

피가 거꾸로 솟을 듯 분노한 소년이 외쳤다.

“안 돼! 만지지 마! 건드리지 마! 이 쓰레기들아!”

우두머리쯤 되는 무표정한 중년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남의 구역에서 버릇없이 장사하던 놈들이, 안되긴 뭐가 안 돼? 역시 자릿세는 이 녀석 몸으로 받아야겠다.”

“흐헤헤! 우리가 야들야들하게 삶아줄게!”

청년들의 비아냥에 소년의 눈에 핏발이 돋았다.

“손만 대봐! 너희들 전부 가만두지 않을······!”

퍽!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려는 소년의 목덜미를 붙잡아 당긴 샤를이 손날로 그 목을 쳤다.

소년은 당장 기절해버렸다.

“엉?”

머리에 봉투를 쓴 괴인이 기절한 소년을 뒤로 치우고 고개를 들었다.

“반갑습니다. 4번가 폭력단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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