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퀘스트! 166 >
공방 입구로 사람의 그림자가 슬쩍 나타났다. 아무리 홀딱 벗고 다니는 걸 선호하는 투나 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럴 정도로 맛이 가진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숨기려고 오도방정을 떠는데 샤를이 나가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이신지요.”
“아, 여기 오토마톤이구나? 집주인은 안 계시니? 크랭크 씨라고 하던데.”
“며칠 전부터 일하러 나가셨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정비 길드에서 배달왔는데. 그럼 이걸 어떻게 내리지?”
남자들이 짐마차에 실어 온 것은 일전에 영주의 성에 시연하러 가져갔다가 두고 온 자동 갑옷이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배달업자들이 천을 걷어내자 흰색 거인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크랭크는 그것의 사용 방법을 공방 모두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샤를도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철컥, 찰칵-!
트드드득! 철크럭-!
몸을 일으킨 자동 갑옷은 마차에서 내려와 섰다. 남자들이 그걸 우러러보며 감격했다.
“와! 멋지다! 돈 모아서 꼭 사고 싶어!”
“하하! 이 친구야. 어느 세월에!”
“여기 수취인 사인이 필요해.”
자동 갑옷을 착용한 채로 남자가 내미는 서류판에 펜으로 슥슥 자신의 이름을 적은 샤를은 공손히 그것을 돌려주었다.
“날씨가 더운데 고생하십니다. 꼭 쉬면서 업무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어, 그래. 너도 수고해라.”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배달업자들을 배웅한 샤를은 허리를 숙여 공방 입구로 들어갔다.
그때 숨어있던 투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 갔어?”
“갔습니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저는 이것을 수납해놓겠습니다.”
철크럭, 철크럭.
공방 구석의 빈자리에 자동 갑옷을 세우고 몸을 빼낸 샤를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로브로 갈아입은 투나가 다가왔다.
“안 되겠어. 지금 시장 보러 가자.”
고개를 끄덕인 샤를은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공방 문단속을 마치는 동안 투나는 햇빛 가리개용 모자를 찾아 쓰고 입구에서 기다렸다.
샤를의 호위를 받아 거리로 나가니 후끈한 날씨임에도 다들 땀방울을 닦아가며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덥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까, 어쨌든 먹고 살려면.
덥든 춥든 항상 부산한 거리를 지나 시장에 들르니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곳에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인들은 제대로 값을 치를 수만 있다면 누구든 환영했다.
심부름하는 아이나 오토마톤을 특히 좋아했는데, 이유는 물건 값을 깎으려 들지 않아서다.
그중에서도 샤를은 대량 구매가 많은 편이라 시장 상인 사이에서 큰손으로 불리고 있었다.
“샤를이잖아? 시장 보러 나왔니? 오늘 신선한 채소가 많이 들어왔어.”
“요즘 고기는 안 사가냐? 건어물도 많이 들어왔는데.”
샤를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옷을 사러 왔습니다.”
“네가 입게?”
“아니요. 공방 식구의 것입니다.”
좌판에서 일어난 시장 상인들이 샤를의 뒤에 숨어있는 사람을 보느라 고개를 내밀었다.
“으히히···! 아, 안녕하세요······.”
모자 아래 하얀 얼굴이 음침한 얼굴로 웃고 있다.
최근 많이 나아졌지만 사람 많은 곳은 아직 좀 경계하는 투나였다.
“저 아가씨는 아직 저러네.”
“그러니 자주 좀 나오라고, 하하!”
“어마나! 당신이 그 투나? 반가워요! 아, 여름옷을 보러왔다고? 잘 왔어! 이쪽으로 들어오도록 해요.”
입구에 샤를을 두고 투나를 끌고 들어간 여주인은 현란한 말솜씨로 그녀를 흔들어놓았다.
한참 후 투나는 수수한 원피스를 입고 종이 가방을 잔뜩 든 채 샤를의 앞에 서게 되었다.
옷 가게 여주인은 못내 아쉽게 쳐다보았다.
“좀 더 잘 어울리는 것도 많은데. 속옷이라던가.”
“아, 아, 아니요. 괘, 괜찮아요!”
땀을 비오듯 맺혀 고개를 흔든 투나. 그녀가 고른 옷들은 다 평범한 것들이었다.
옷맵시가 좋아 최신 유행을 추천했지만 노출도나 색감이 너무 화려해서 투나가 꺼려했다.
투나가 어눌하게 말했다.
“자, 잘 차려입고 다, 다닐 일은 어, 없거든요.”
“왜? 주변에서 좋아할 텐데? 투나는 스타일이 좋아서 조금만 꾸미면 어떤 남자든 자빠뜨릴 수 있을걸?”
“자, 자빠뜨리······! 호오옥-!”
확 달아오른 투나는 돈주머니를 꺼내 값을 치렀다.
“여, 여기 오, 옷값!”
후다닥 자리를 벗어나는 투나를 보면서 옷집 주인은 흐뭇하게 웃었다.
“예쁜 아가씨가 왜 저러고 다니나 모르겠네. 잘 입고 다니면 남친이 좋아할 텐데.”
옷 가게를 지나 시장을 걷고 있던 투나가 중얼거렸다.
“조, 좀 더 있었다간 탈수증상이 이, 일어났을 거야.”
“상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복귀하시겠습니까?”
“어, 음, 이, 이왕 나온 거 도, 도구점에 잠깐 들렀다가 가자. 으히히.”
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도구점에 들려 새로 들어온 장비를 구경하는 게 최근 생긴 투나의 취미였다.
필요하다 싶으면 구매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가게에서도 투나가 놀러 오는 걸 반겼다.
“으히히! 기, 기술의 발전은 아름답거든?”
신나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달려오다가 그중 하나가 투나에게 부딪혔다.
퍽-!
“아오? 오? 오오?!”
공방에서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휘청거린 투나는 춤을 추듯 몸을 뒤틀어 중심을 잡았다.
“으엇차랏차! 흐흐! 봐, 봐 안 넘어졌어.”
스스로도 대견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샤를은 부딪힌 꼬마의 손을 거칠게 잡아 올리고 있었다.
“아악! 이거 놔! 이 못생긴 인형아!”
크랭크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자신의 마스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 샤를이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은 미의식이 부족한 사람이군요.”
“왜, 왜 그러는 거야?”
당황한 투나가 어버버하고 있는데 시장을 거닐던 손님이나 상인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얼굴을 내민다.
붙잡힌 팔에 쥐어있는 투나의 돈주머니를 잡아챈 샤를이 말했다.
“소매치기입니다.”
“가, 가방은 그대로인데? 어?”
몸에 가로로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살펴보던 투나는 구멍이 뚫린 것을 보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히엑! 어, 언제?”
돈주머니를 되찾은 샤를이 투나를 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경비대에 넘길까요?”
평소 같았으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샤를은 지금 투나와 함께 있었고 그래서 그녀의 지시를 기다렸다.
“이봐, 그 녀석 뭐야? 소매치기야? 요즘 이것들 때문에 손님들이 자꾸 지갑을 잃어버려서 우리도 손해가 커. 경비대 갈 것도 없어! 내게 넘겨줘!”
앞치마를 두른 덩치 큰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다. 겁에 질린 아이가 발버둥을 쳤다.
“아냐! 놔줘! 놔주세요! 그런 거 아니라고! 놓으라고!”
울분을 토해내는 소년을 가만히 쳐다보던 투나가 손짓했다.
퍽!
발길질에 휘청거린 샤를이 손을 놓아버리자 소년은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남자가 뒤쫓았다.
“너, 임마! 거기 서지 못해!”
두 사람이 골목길로 사라지자 시장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샤를이 투나를 쳐다보았다.
“괜찮겠습니까?”
도망치는 소년의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쳐다보던 검은 마녀가 히죽 웃음 지었다.
“찾았다. 마지막 재료.”
그렇게 중얼거리던 투나는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바로 공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샤를에게 퀘스트를 발주했다.
“아까 그 꼬마를 찾아서 데려와 줘.”
잠깐 투나를 쳐다보던 샤를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갈까요?”
“응, 밥은 알아서 차려 먹을게. 저녁까지 못 찾을 것 같으면 돌아오고.”
바로 공방을 나선 샤를은 다시 시장으로 가서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 많은 곳에서 소매치기는 흔한 일인데다 시장 상인들도 그 애들의 사는 곳은 몰랐다.
“개척민 마을 사람들이 겨울을 나려고 도시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데려온 아이들이 남은 거지.”
“찾으면 내게도 알려다오!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테니까!”
상인들의 응원을 받으며 샤를은 이제 잠입 수사를 개시했다.
으슥한 골목길이나 범죄가 일어날 만한 곳을 뒤지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지 마세요!”
“흐흐흐! 너무 겁먹지 마. 통행세만 조금 내면 보내 줄 테니까.”
복잡한 골목길, 지름길로 가려고 들어섰다가 무뢰배들에게 붙들린 남매가 갑자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왔는지 오토마톤이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방열 가발과 롱소드를 차고 있는 모습은 전투용임을 밝히고 있다.
“씁, 뭐야. 저리 가라.”
“안 돼! 가지 마! 도와주세요!”
누나의 치마에 얼굴을 묻고 있던 꼬마가 앞으로 나서더니 소리를 빽 질렀다.
서로 다른 명령이 내려졌지만 샤를은 망설이지 않았다.
책에서 본 정보에 불과하더라도 그 역시 어렴풋이 옳고 그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행동으로 실천하여 증명하고 수정하면 된다.
인간처럼.
고개를 돌린 샤를은 남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러서십시오.”
“어랍쇼? 야! 사람 말이 말 같지 않······!”
자세를 낮춘 샤를이 검 손잡이를 잡고 위협을 가했다.
“제 주인님은 사람 모양을 한 몬스터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들은 말로서 사람을 농락한다고요. 내가 당신들의 정체를 파악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 자식, 말하는 게······!”
“야, 모험가가 개조한 오토마톤인가 보다. 이런 놈들은 다른 거랑 달라. 그냥 가자.”
사내들이 구시렁거리며 물러서자 샤를이 몸을 바로 세웠다.
“이제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가능한 큰길로 다녀 주십시오.”
샤를의 도움을 받은 남매는 몹시 고마워했다.
“저, 저기 이름이?”
“샤를입니다. 모험가 크랭크의 오토마톤입니다.”
꼬마 소년이 외쳤다.
“고마워! 샤를!”
샤를은 이참에 남매에게도 소매치기단에 대한 것을 물었지만 그다지 소득은 없었다.
“큰길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어, 응, 고마워.”
어린 동생과는 다르게 누나로 보이는 여자는 샤를의 행동을 대단히 신기하게 여겼다.
“와, 일하는 곳에서 보는 오토마톤은 너처럼 사람 같지 않거든? 아까 그거 위협하는 것도.”
“전투를 상정했기 때문에 연산 능력을 대폭 증설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조를 일반 가정용에 추천할 수는 없습니다. 오토마톤에게 강한 자아를 부여하면 위험합니다.”
“어, 어떻게 되는데?”
앞장서서 걷고 있던 샤를이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말을 잘 안 듣는다고 합니다.”
“아하하! 그게 뭐니.”
“어쨌든 위험한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니 유념하십시오.”
줄줄 떠들어대는 동안 골목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샤를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살펴 가십시오.”
“응! 고마워!”
“정말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우리도 호위로 오토마톤을 들여야 할까 봐.”
가슴에 손을 얹은 샤를이 허리를 조금 숙이고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의 행복한 가정과, 함께할 자동인형에게 축복을.”
샤를의 말은 남매를, 특히 누나 쪽을 감동하게 했다.
그들은 손을 흔들어주고 사람들의 틈에 섞여 사라졌다.
다시 몸을 돌린 샤를은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