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소원성취! 163 >
이제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게 된 부유섬을 올려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잠시 후 통신이 연결되었다.
-리슐리에를 바꿔줘요.
쿠르프가 여 마법사에게 통신구를 내밀었다.
캐롯은 낙하용으로 만든 스크롤의 마법식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물었고, 리슐리에는 긍정했다.
“가능해, 기동 스펠 자체는 같으니까. 다만 출력의 문제지. 어딘가에 동력을 공급하는 마력석이 있을 거야. 거기서 마력을 인출해서······.”
방금 그 제어 기둥을 박살 낸 캐롯이 손을 휘휘 흔들었다. 그리고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아니,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마력을 감지할 수 없는데.”
-그럼 잠깐 기다려봐. 방법을 찾아볼게.
한쪽 눈을 가늘게 뜬 캐롯이 말했다.
“그럴 시간 없어. 슬슬 보이지 않아?”
지상의 리슐리에가 고개를 돌렸다. 곁에서 망원경을 두 손으로 잡고 하늘을 보던 쿠르프가 외쳤다.
“오오! 다행이야! 다시 고도가 떨어지고 있어! 기특한 녀석! 고쳤구나!”
-고쳤다기보다는, 아래로 향하도록 만들었지.
“뭐?”
-좀 바쁘니까 끊어요.
제어력을 잃고 낙하를 시작하는 부유섬, 동굴에서 나와 점점 멀어지는 검은 하늘에 손을 뻗어보던 인형 소녀는 이윽고 날카롭게 웃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긴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죽을 사람도 없지.
그리고 나는 죽지 않아.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캐롯이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스크롤이 작동할 때 충분한 마력만 공급하면 되는 거잖아? 나는 마력석을 두 개 가지고 있거든?”
-잠깐! 잠깐만! 지금 이론 출력 대비 실제 질량이 너무 크다고!
“으헤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숲을 헤치고 비행체가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한 캐롯이 아무렇게나 외쳤다.
“꿀벌도 찾아오지 않는 꽃밭 따위 키워서 뭘 해! 이렇게 된 이상 지상에 떨어뜨려 모두와 함께 버무려 버리겠어!”
이윽고 거꾸로 처박힌 비행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주변 배경은 올라왔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고요한 하늘 끝의 풍경은 사라지고 다채로운 색감의 드넓은 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센 폭풍과 함께.
휘이이잉-! 쿠오오오!
부유섬의 가장자리, 지상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다가가 고개를 내민 캐롯은 휘몰아치는 바람에 몸이 붕 떠올랐다가 가까스로 바닥에 착지하고는 와하하 웃으며 한쪽 다리를 쭉 들어 올렸다.
콰직-!?
발을 땅속에 박아 넣어 몸을 고정한 캐롯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이제 지상과의 거리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한 번 해봤으니 대충 감은 알고 있다. 아직, 아직, 좀 더, 좀 더.
휘우우우웅!
쿠구구구구······!
거대한 질량체가 구름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바람과 작은 숲을 장식하고 있던 나무와 꽃들이 세차게 흔들린다.
허리를 숙여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캐롯이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지상에 있던 사람들도 눈을 부릅떴다.
쿠르프와 구스타프가 동시에 외쳤다.
“아니, 이 미친 꼬마 인형이!?”
“저저저!”
지상까지 남은 거리에 낙하 중인 부유섬의 부피와 질량, 가속도를 계산한 캐롯이 외쳤다.
오차 감안! 대충 이쯤!
“엔진 최대 출력!”
두 개의 심장,
이이이이이잉-!
작은 가슴 속, 붉은 마력석 두 개가 폭발적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캐롯은 스크롤을 입 안에 밀어 넣고 씹으며 시동어를 외쳤다.
“단델리온!”
찌이이잉-!
사방에서 빛이 모여든다. 빛은 캐롯의 몸을 거쳐 땅속에 박힌 다리를 지나 부유섬 전체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스크롤에 포함된 마법 기동식은 주변 마력을 빨아들여 해당 마법을 실행하는데, 가까운 곳에서 엄청난 마력이 흘러들어오자 스펠 파워가 압도적으로 증가하여 규정치를 초과한 기적을 이루어냈다.
온종일 하늘을 우러러보느라 목이 아플 만도 하지만 누구 하나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지간한 도시 광장만 한 부유섬이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부유섬의 끄트머리에서 새하얀 빛을 눈과 입, 그리고 등에서 뿜어내고 있는 작은 인형 소녀를 발견하고 다들 눈을 의심치 못했다.
비타가 망원경을 내리며 말했다.
“천사, 천사 같아요. 정말로!”
“입이랑 눈에서 빛이 나오는 건 좀 무서운걸.”
“나 저거 잡지에서 봤어! 여신의 인형! 증기의 날개! 등의 구멍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거야! 맞죠?”
코비의 외침에 망원경을 투구에 댄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스가 중얼거렸다.
“저거 엄청 빛나는데, 마법이라서 그런 건가?”
“스크롤이 스펠을 실행할 때 마력을 흡수하면서 생기는 발광현상이에요. 그건 아주 잠깐 일어나는 건데!”
망원경을 내린 리슐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다가 확신을 담아 외쳤다.
“마력의 강제 공급에 따른 스펠 파워의 상승, 하지만 마력 엔진 2개의 출력으로는 저만한 기적을 일으킬 수가 없어요. 아니, 2개? 협동! 시너지 효과!”
여전히 어리둥절한 비타가 슬쩍 끼어들었다.
“언니 반지랑 같은 거네요?”
“그래 비슷해! 아니, 역시 조금 다르지만! 크랭크 씨! 당신은 이걸 노리고 선배의 엔진을 개조한 거로군요?”
흥분한 리슐리에가 크랭크를 보았다. 여전히 망원경을 투구에 대고 있던 크랭크는 잠깐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가 투구를 흔들었다.
“만들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런 효과가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나저나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몸을 돌린 크랭크는 일행들과 함께 차량을 가지러 달려갔다. 이 와중에도 쿠르프와 리슐리에는 떨어져 내리는 부유섬을 계속 올려다보았다.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던 리슐리에가 어쩐지 솟아오르는 웃음을 참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모험을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요. 죽을 때까지 오늘 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쿠르프가 그녀의 말을 이었다.
“꿈을 잃으면 노인이 되는 거야. 모험가가 모험심을 잃으면 그건 그냥 용병이지.”
마법사가 드워프를 쳐다보고 있는데 수송차량을 몰고 온 양철 거인이 손짓했다.
“낙하 위치상 좀 떨어진 곳으로 향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꿈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신의 사자를 맞이하러 갑시다.”
쿠르프와 리슐리에는 두말하지 않고 서둘러 차량에 올라탔다.
쿵! 트드드드!
부유섬이 마침내 지상에 닿았다. 그곳에 맨 처음 도착한 것은 와이번 라이더였다. 하지만 와이번이 부유섬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아 일단 지면에 착지했다.
뒤를 이어 수송차량이 도착했다.
차량에서 뛰어내린 쿠르프는 눈앞의 거대한 부유섬을 보다가 왈칵 눈물이 솟아버렸다.
“정말로, 정말로 숲이 있잖아?! 크흐흑-!”
“영감 우는 거요?”
“이놈아! 눈에 뭐가 들어갔다! 너무 기쁘구나!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수백 년 만에 지상으로 돌아온 부유섬의 밑 부분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로 되어 있었다.
수송차량을 가져다 대고 사다리를 지붕에 걸쳐서 다리를 놓은 모두는 그 첫 번째 발걸음을 쿠르프에게 양보했다.
그가 부유섬에 올라서자 지척에 거꾸로 처박힌 비행체와 쓰러진 캐롯이 보인다.
“이 녀석아! 괜찮으냐?”
“캐롯!”
새로운 발견에 감격을 느낄 새도 없이 쿠르프와 모험가들은 기적을 일으키고 잠든 꼬마 인형에게 몰려가 그 작은 몸을 추슬렀다.
스크롤의 스펠 파워를 최대치로 증폭하여 낙하하는 부유섬의 중력가속도를 대부분 상쇄시키는데 성공한 캐롯은 동력을 전부 소모한 상태였다.
“삑-! 마력부족, 마력석을 충전하여 주십시오. 삑-! 마력부족······.”
리슐리에가 다가왔다.
“비켜보세요.”
바닥에 바로 눕힌 캐롯의 가슴에 두 손을 대고 호흡을 가다듬자 잠시 후 캐롯이 눈을 번쩍 뜨더니 발딱 몸을 일으켰다.
“으어억! 어떻게 됐어? 어떻게?”
모두가 다시 깨어난 캐롯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캐롯은 으하하 웃으며 마주 두 팔을 들었고.
한숨을 내쉰 리슐리에가 말했다.
“직접 충전이라서 오래 못 갑니다. 드워프 마을에도 충전탑은 있죠? 거기서 제대로 충전해야······.”
엄숙한 마법사의 충고에도 불구, 캐롯은 쿠르프와 함께 두 팔을 들고 부유섬의 숲을 바라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효오-!”
“우효오-!”
몸을 돌린 쿠르프는 캐롯을 덥석 끌어안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훌륭하다! 잘했다! 이 세상의 모든 찬사를 네게 전부 들려주고 싶구나!”
비행기를 탄 캐롯은 으헤헤 웃기만 했다.
곧 자동인형을 가이드 삼아 부유섬 관광이 시작되었다.
부유섬의 숲을 이루고 있는 식물군은 대부분 값비싼 약초들로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것들이 많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으허억! 엘릭서! 이거 엘릭서가 아닙니까?”
슬쩍 따라온 와이번 라이더가 나무 아래에 피어 있는 파란 꽃을 보면서 눈을 부릅떴다. 캐롯이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다가왔다.
“오! 이게 엘릭서란 말임? 처음 봐. 진짜 만능약이에요?”
“그렇습니다. 거의 모든 병과 상처를 치료하고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키지요. 하지만 주재료인 엘릭서 꽃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요즘 부르는 게 값입니다.”
캐롯이 고개를 들고 크랭크를 보았다.
“좀 파서 투나에게 가져다줄까?”
“좋네.”
쿠르프가 길을 재촉했다.
“그런 건 나중에 얼마든지 파가면 된다. 그 제어 기둥은 어디라고 했냐?”
광장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부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도착했다. 그 안에서 망가진 제어 기둥과 오토마톤을 발견한 사람들은 각자 관심사에 집중했다.
드워프와 마법사는 제어 기둥에, 양철 거인은 오토마톤을 살폈다.
내부를 좀 두리번거리던 아리에테 휘하 파티는 다시 바깥 탐색을 나가버렸다. 이참에 한몫 노리고 있던 와이번 라이더도 그들을 따랐다.
쿠르프가 투덜댔다.
“왜 이렇게 다 부숴놨냐? 알아볼 수가 없잖아.”
“에에? 나 하마터면 별님이 될 뻔했거든요?”
리슐리에가 기둥을 살피면서 말했다.
“제어반이 맞아요. 기둥 아래쪽에서 동력이 올라와서 각 역할을 하는 마력석에 동력을 공급했어요. 부서져서 더 이상 뜰 수 없지만.”
“아, 밤하늘의 별이 될 뻔했다니까?”
팔짱을 하고 있던 구스타프가 물었다.
“궁금한데, 어떻게 이 정도 크기의 암석 덩어리를 떠올릴 수 있지? 단순히 마력이 공급된다고 그게 되냐?”
“그렇군, 왜 뜨지? 어떻게 떠오르지? 이 아래쪽에 뭔가가 있나?”
고개를 든 쿠르프의 물음에 리슐리에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때까지 오래된 구형 오토마톤을 살펴보고 있던 크랭크가 앉은 자세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누가 이런 걸 만들어 뒀을까요? 드워프는 아닌 것 같고.”
“뻔해, 음흉한 엘프들이겠지. 우린 이런 걸 띄울 수가 없어.”
캐롯이 정원사 오토마톤의 롱소드를 가져왔다.
“이거요. 꽃 그림 그려져 있던데, 엘프 거예요?”
롱소드를 받아든 구스타프는 그걸 눈여겨보더니 쿠르프에게 건넸다.
“확실하구만.”
“그렇군. 칼날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넣는 건 그놈들 취향이지.”
자신의 꿈이 엘프들의 작품이라는 것에 쿠르프는 좀 씁쓸한 표정을 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꿈이 이루어졌다. 그거면 충분하다.
“하지만 원리는 궁금해, 이거 대체 왜 뜨는 거냐? 그걸 알면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냥 부유섬이니까 그런 것 아니에요? 전설 속 부유 대륙의 일부라면서요.”
그 말 한마디가 사람들의 머리를 흔들어놓았다.
갑자기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리슐리에도 고개를 돌렸고, 구스타프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 지금 나랑 같은 생각 했지? 말도 안 된다.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어.”
가여운 쿠르프 만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뭐냐? 무슨 생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