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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62화 (16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소원성취! 162 >

-지금 거기 상태는 어떠냐?

지상을 내려다보는 캐롯의 목에서 쿠르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다시는 못 볼 초월적인 광경을 꼼꼼히 기록장치에 담고 있던 캐롯은 이제 뒤로 몸을 돌렸다.

가까운 곳에 타고 올라온 비행체가 거꾸로 처박혀 있고, 그 너머로는 작은 숲이 있었다.

“헤에,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여기 숲이 있어요.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기록장치에 담아볼게요.”

캐롯의 보고를 들으며 지상의 사람들은 환호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까운 곳의 나무를 만져보고 위를 올려다보던 캐롯은 주변을 조금 두리번거리더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지? 여기 식물군은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데.”

-귀한 약초 같은 것이 있을지 모르니 좀 뽑아와 봐라. 그런 거 볼 줄 아느냐?

“걱정마셈. 이래 보여도 주인님이랑 약초 채집도 지겹게 했거든요?”

바로 풀숲에 쭈그려 앉은 캐롯은 처음 보는 꽃이며 풀줄기를 잔뜩 캐서 자루에 넣었다.

-연구용으로 쓰게 거기 흙과 돌도 잊지 말고 챙기도록 해.

“지금 흙 파고 있어요. 오, 돌은 저게 잘생겼네.”

쭈그려 앉은 캐롯은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근처 바닥의 돌덩이도 몇 개 주워 담았다. 쿠르프는 연구용이라고 했지만 사실 기념품에 더 가까웠다.

이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일은 없을 테니까.

자루를 비행선에 던져 넣은 다음 챙겨온 무장을 꺼내 들었다.

착-!

수납성은 발군이지만 내구성이 엉망인 접이식 도끼와 크랭크의 드래곤 스케일 방패였다.

“내 목숨은 한 개! 그래서 비싸지. 유니크하거든?”

-그건 누구에게 들은 말이냐?

“주인님에게요. 어디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하던데. 자, 이대로 부유섬 투어를 시작하겠습니다. 별거 없으면 기념품 좀 더 챙긴 다음 내려갈게요.”

-그래. 조심해라.

도끼를 펼쳐 든 캐롯이 히히 웃는다.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어른이에게 빨간 머리 요정이 선물을 한 아름 가지고 찾아갈 예정이니, 오늘 밤은 창문을 잠그지 마세요.”

말을 마친 캐롯은 동네 산책하러 나가는 양 깡충깡충 뛰어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지상에서는 쿠르프의 통신기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캐롯과 대화를 마치고 눈을 크게 끔뻑거린 쿠르프가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기억을 지우지 않고 오래 두면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간혹 나온다고는 하던데. 역시 그런 건가?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

유능한 오토마톤 덕분에 주변의 칭찬과 놀라움의 시선을 많이 받았던 크랭크는 항상 그럴 때마다 해왔던 말을 꺼냈다.

“단순한 우연의 산물입니다.”

쿠르프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양철 거인을 올려다보는데 통신장치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우왁! 적이다! 공격받고 있어!

모두가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냐?!”

와사삭!

공격을 피해서 뒤로 물러선 캐롯의 얼굴로 투명한 액체가 주르륵 흐른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니 그냥 물이다.

“야! 나는 꽃이 아니거든? 물 준다고 내 키가 더 커지진 않아!”

한 손에 물 뿌리게, 다른 손에는 롱소드를 든 오토마톤이 다가왔다.

두 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 얼굴, 길게 늘어뜨린 하얀 방열 가방, 전투복 대신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있지만 별 특이한 것 없는 자동인형이었다.

“다만 장소가 문제지! 네가 왜 여기서 나오냐고!”

앞을 가리는 나뭇가지를 피해 허리를 숙인 오토마톤은 물뿌리개를 바닥에 놓은 채 롱소드만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봐! 꼬마 인형! 괜찮은 건가?!

“오토마톤이 있어! 정원사인가 봐! 바쁘니 조용히 좀 해봐!”

챙-!

재빠르게 달려와 휘두르는 검을 도끼로 쳐낸 캐롯은 방패를 들고 그대로 부딪혔다. 체구는 작지만 출력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그 몸통 박치기는 꽤 위력을 발휘했다.

쾅-! 지이익······!

뒤로 밀려 나간 오토마톤 정원사의 다리가 바닥에 두 줄의 홈을 파버렸다. 그가 고개를 들자 캐롯이 도끼를 쥐고 뛰어올랐다.

캉-!

검으로 도끼를 막아내자 이번엔 반대쪽에서 방패가 날아든다.

채채채채채채챙! 챵챵!

퍽!

롱소드를 양손으로 잡은 오토마톤 정원사와 도끼와 방패로 무장한 꼬마 인형이 엄청난 속도로 날붙이를 휘두르며 맞붙었다.

그들의 거친 움직임은 바람을 만들어내고, 그 바람에 숲의 나무며 꽃잎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지상의 투쟁이 끝나기를 바라며 부유섬이 떠오른 지 수백 년,

사방으로 날아오는 불꽃은 아직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격투 중에 캐롯이 히히 웃기 시작했다.

좀 엉성한데?

확실히 검술 자체는 매서운데 공격에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뒤로 폴짝 뛰어 거리를 벌린 캐롯이 도끼로 상대 오토마톤을 가리키며 사납게 웃었다.

“하하! 너 고장 났구나? 너무 오래되어서 구동계가 맛이 간 거야! 그렇지?”

검을 한 손으로 바꿔 잡은 정원사 오토마톤이 갑자기 찌르기를 선보였다.

촤아악! 캉-!?

정면에서 방패로 그것을 막아낸 캐롯은 몸을 옆으로 빙글 돌리며 도끼를 아래로 휘둘렀다.

퍽!

다리를 맞은 오토마톤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는다. 때를 놓치지 않은 캐롯이 도끼를 위로 들어 올렸다.

퍽!

기긱? 긱?!

목에 도끼날이 박힌 채 휘청거리던 오토마톤은 곧 작동을 멈추고 뒤로 넘어갔다.

쿵······!

그 쓰러진 오토마톤을 잠시 내려다보던 캐롯이 중얼거렸다.

“뭔가 되게 대충 만든 것처럼 생겼네. 얼굴에 눈밖에 없어.”

-어떻게 됐냐? 잡았어?

“어, 잡았어.”

몸을 돌린 캐롯은 정원사 오토마톤의 롱소드를 주워들었다. 미끈하게 생긴 롱소드였다. 칼날에는 어울리지 않게 꽃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

“오, 칼 예쁘다. 아쉬운 대로 이거 좀 써야겠어.”

주위를 두리번거린 캐롯은 작동을 멈춘 오토마톤의 다리를 잡아끌고 처음 만난 곳으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를 돌아나가자 색색의 꽃밭이 조성된 꽤 넓은 공터가 나오고 그 중앙에 작은 창고 정도의 사각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서 있다.

정원사 오토마톤은 이곳에서 꽃밭에 물을 주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캐롯과 마주친 것이었다.

“역시 정원사, 잘 꾸몄네. 그런데 신기하다. 너 오토마톤이잖아? 싹은 어떻게 틔운 거니?”

캐롯의 궁금한 질문에도 동력이 끊어져 있는 오토마톤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캐롯의 혼잣말을 듣고 있던 통신구에서 크랭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엔진의 마력석이 특별한가 본데. 가능하면 뽑아와 줘.

“알았어. 근데 좀 있다가, 지금 저기 무슨 구조물이 보이거든? 집이나 창고 같은데 한번 가볼게.”

-조심해.

중앙의 구조물로 향하자 그곳에는 평범한 문이 있었다. 입구에 정원사 오토마톤을 내버려 둔 캐롯은 대뜸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역시 사람 손이 탄 곳이었어. 아저씨가 처음은 아니었네.”

-그런 건 상관없다. 내 꿈은 단지 그곳에 오르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안 된다면 내 의지를 이은 다른 누군가라도,

담담한 드워프의 목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간 캐롯은 주변을 살폈다.

지하층은 천연 동굴처럼 되어 있었는데, 벽에 원예 도구가 좀 걸려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간과 함께 제단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이게 뭐지?”

-뭐냐? 뭐가 있는데?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긴 서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어디냐고 생각하며 캐롯은 최대한 눈에 보이는 것을 설명했다.

“커다란 돌기둥 같은 것에, 복잡한 금속선이 이리저리 지나고 있고, 그 끝에는 크고 작은 마력석 같은 것이 여러 개 박혀 있어. 큰 건 사람 머리만 해. 와, 그런데 이거 번쩍번쩍하는데 혹시 금이야?”

캐롯이 기둥 가까이 다가갔다.

끼릭끼릭!

그때 입구로 비틀거리는 정원사 오토마톤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 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정원수 손질용 대형 전지가위였다.

뒤를 돌아본 캐롯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

“음! 훌륭해. 오토마톤의 귀감이야. 아무튼 끈질겨!”

챵!

방패와 롱소드를 양손에 쥔 캐롯과 정원사가 다시 맞붙었다. 정원사 오토마톤은 정말로 몸의 어딘가가 망가졌는지 움직임이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침입자를 처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챵! 챵! 파각?!

얼굴 앞으로 날아오는 위협적인 가위질을 둥그런 방패로 막아버리자 가위가 입을 크게 벌린 채 멈췄다. 캐롯은 그 상태로 롱소드로 상대의 배를 찔렀다. 그리고 벌려진 가위 날을 붙잡고 뛰어올라 정원사의 목을 걷어차 버렸다.

쾅-!

도끼날에 반쯤 잘려있던 머리는 결국 떨어져 나가 기둥에 부딪혔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부유섬이 진동했다.

쿠구구구구······!

“헉!? 지진? 아니! 부유섬에서 지진이 일어날 리 없잖아?!”

다급한 쿠르프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흘러나왔다.

-뭔가 했냐? 부유섬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데?!

떨어져?

고개를 휙 돌린 캐롯은 제단의 기둥을 살펴보았다. 정원사 머리에 맞은 충격 때문인지 마력석이 후두둑 떨어져 있었다.

캐롯이 기겁했다.

“에에엑?! 겨우 이런 걸로 망가져? 완전 부실시공이잖아!”

-뭐냐? 무슨 일이야?

“전투 중 사고로 기둥에 머리를 박았어요! 붙어있던 마력석 다 떨어짐! 아마 이게 부유섬의 제어반일 듯!”

-인석아! 알아듣게 말해!

대답 대신 호다닥 바닥에 엎드린 캐롯은 떨어진 마력석을 주워 보았지만 애초에 어디에 어떻게 박히는지 알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대충 빈자리 아무 곳에 꽂아 보았으나 그래도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지직-! 파팍! 퍽?!

“으억?!”

오히려 맞지 않는 자리에 마력석을 박아 넣어서 그런지 스파크가 튀더니 마력석이 깨져버렸다.

깜짝 놀란 캐롯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엇! 다시 상승한다!

“오홍?”

캐롯은 반으로 쪼개진 마력석을 주워 들면서 말했다.

“이거 지금 깨졌는데 상승한다고?”

-어어? 뭐냐? 원래 위치보다 더 높게 올라가고 있잖아? 계속 올라간다!

“에엥? 뭐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우다다 달려간 캐롯은 바깥에 나가서 주변을 살폈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주변 숲에 하얀 성에가 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쩐지 하늘이 더 반짝이는 것 같기도 하고,

“오우! 제길슨! 이게 무슨 일이래! 그냥 떨어지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소식이잖아! 완전히 고장 났나 봐!”

몸을 돌린 캐롯은 다시 계단을 타고 뛰어 내려갔다.

“나는 이대로 별이 되는 건 싫거든?!”

제어 기둥 앞에 도착한 캐롯은 목이 떨어져 나간 채 쓰러져 있는 오토마톤을 바라보았다.

“이봐요. 쿠르프 아저씨, 아저씨는 이 부유섬을 언제 발견했다고 했어요?”

부유섬이 갑자기 급상승하는 바람에 다들 안절부절못하게 됐는데 캐롯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망원경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던 쿠르프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젊었을 때니까. 한 300년 좀 넘었다.”

“헉?! 300년 전이요?!”

경악한 사람들의 시선이 쿠르프에게 모인다.

반면에 부유섬의 캐롯은 여전히 정원사 오토마톤을 보고 있었다.

“그럼 얘는 300년 넘게 혼자 있었다는 말이네?”

조그만 주먹을 움켜쥔 캐롯이 제어 기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슥 드러냈다.

“나는 그런 건 싫어, 살짝 꿍 좀 고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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