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60화 (160/329)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하늘 사다리! 160 >

쿠르프는 웃고 있지만 크랭크는 그래도 뭔가 기술적인 성과를 남겨 놓고 싶었다. 그래서 종일 작업장에 틀어박혀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화약 추진체를 실험했다.

치이이-! 피슝-!

연기를 뿜으며 하늘로 솟아오른 원통은 곧 바닥에 떨어졌다.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화약이 타면서 나오는 고압의 연기로 추진력을 얻어서 비행하는 것입니까? 참 신기한 현상이군요.”

“광산 발파 작업 때 폭발하지 못한 불붙은 화약통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경우가 가끔 있지. 그걸 응용해본 거야.”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이후로도 작은 모형 추진체를 수십 개 만들어 쏴대며 그때마다 단점을 보완하고 재도전을 반복했다.

쿠르프는 그를 근면 성실한 친구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강력한 규제 품목에 포함되어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화약이라는 희대의 발명품을, 크랭크는 자료 수집이라는 명목 아래 질리도록 만끽하고 있을 뿐이었다.

피슝-! 피슝-!

“모르겠군요. 이건 이렇게 날아가는데, 대포나 총화기는 어떻게 그런 폭발음을 내면서 포탄을 밀어내는 겁니까?”

“아, 그건 말이지······.”

말을 하다가 말고 쿠르프가 입을 다물었다. 찡그린 얼굴로 수염을 좀 잡아당기던 그는 크랭크의 양철 투구를 보면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지. 현상만 확실하다면, 원리 같은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말이야.”

민감한 사항이라 일부러 말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한 크랭크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드워프는 화약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서 뭣에 쓰십니까?”

“광산 발파용으로 쓰고, 총으로 만들어서 몬스터도 쫓고 그러지. 오토마톤 같은 마력 병기가 활약하는 세상이지만 이것도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물건이거든?”

무려 자네 선조들이 스스로 멸망으로 치닫도록 만들었지.

쿠르프의 그윽한 시선을 받으며 크랭크도 비슷한 시선을 했다. 당연하겠지만 만드는 방법이 궁금해서였다.

서로를 뜨뜻미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인간과 드워프는 말없이 다시 연구에 몰두했다.

푸쉬이이익-! 피시이이익-!

그렇게 쿠르프의 바위 요새에서는 쉬지 않고 비행체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점점 비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바위 요새 꼭대기에 올라선 쿠르프가 이마에 손을 올리고 날아가는 것을 쳐다보다가 기쁘게 말했다.

“허헛! 전보다 훨씬 빠르고 더 멀리 날고 있어. 제법이잖느냐 양철 거인! 어떻게 한 거냐?"

“연기가 나오는 구멍의 크기를 계산해서 연료의 낭비를 줄여보았습니다. 다만 지금 직진밖에 할 수 없는데, 저기까지 올라가려면 방향 전환은 필수입니다.”

“그건 내게 생각이 있어.”

의기투합한 둘은 그날 저녁 철야로 실물 비행체 제작을 시작했고, 이튿날 정오쯤 캐롯을 불러다 완성품을 장착했다.

“이거 등에 메는 거야?”

“그래.”

화약을 채운 두 개의 나무통을 등에 멘 캐롯은 이제 줄이 달린 손잡이도 하나씩 받았다.

“이건 뭐야?”

끼릭-!

한쪽 손을 잡아당기자 나무통의 아랫부분에 매달린 금속 방향타가 움직인다. 크랭크가 말했다.

“추력편향판이라고 이름 붙였다. 네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팔을 올리면 줄이 당겨져서 뒤쪽에 방향타가 움직여.”

“오오!”

뭔가 일이 착착 진행되는 것에 신이 난 쿠르프가 큼직한 구슬이 매달린 목걸이를 가져왔다.

“통신장치다. 그리고 이건 영상기록 장치.”

“우와! 영상 기록장치! 처음 봐요!”

“아는 엘프를 통해서 구해놓았다. 나는 못 올라가니까 말이야.”

약간 서운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기쁘고 즐거웠다.

더불어 내내 혼자서 꿈을 좇던 그의 주변에 지금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다.

오토마톤 소녀의 기특한 위로도 한몫 거들었다.

“내가 대신 올라가서 아저씨의 꿈을 이뤄드릴게요.”

나이가 들어 감정에 민감해진 쿠르프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모두가 구경하려고 몰려나왔다. 발사 전에 캐롯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 묶어 놓은 왕 전갈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맘보! 다녀올게!”

“으헉?! 저게 뭐냐?!”

“으히히! 내 애완동물이요. 보리스! 내가 늦으면 맘보 밥 좀 줘!”

오만상을 찌푸린 보리스가 외쳤다.

“무사히 돌아와서 네가 줘!”

깔깔 웃으며 캐롯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자! 출발!”

등에 화약통을 짊어지고 적당한 위치에 서자 크랭크가 불을 붙였다.

치이이······! 쿠와아아아!

방금까지 서 있던 캐롯의 작은 몸이 엄청난 속도로 솟아오르더니 하늘로 날아오른다.

모두의 고개가 위로 꺾였다.

“오오오! 성공? 성공이에요?!”

하늘로 날아올라 비틀거리던 캐롯의 비행체는 곧 방향을 잡고 쭉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모두는 기대에 부푼 눈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캐롯을 우러러보았다.

아리에테가 감격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마당발 캐롯은 이제 하늘마저 친구로······!?”

쾅-!

갑작스레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아리에테를 포함한 모두의 눈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쿠르프가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

“음, 왜 자꾸 터지지?”

놀란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송차량을 끌고 캐롯이 떨어진 방향으로 수색을 나간 그들은 숲속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인형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투복은 다 찢어져 있고, 머리카락도 좀 타버렸지만 캐롯은 의외로 쌩쌩했다.

“하하! 와! 이거 진짜 재미있다!”

차량에 실려 돌아온 캐롯은 그 빨간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사람들의 틈에서 신나게 떠들어댔다.

“엄청났어! 내가 하늘을 날다니! 아,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니 그 부유섬이 확실히 보이더라.”

캐롯의 몸을 꼼꼼히 점검한 크랭크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열 가발과 전투복이 망가진 걸 제외하면 큰 이상은 없구나, 다행이야.”

그리고 그는 여전히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는 캐롯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돌아가면 전투복과 가발을 새로 만들어 주마.”

“응!”

1차 시도 실패 후 쿠르프와 크랭크는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2차 시도를 준비했다. 먼저 실물 추진제를 만들어 연소 실험을 거쳐 폭발의 원인을 찾아서 수정했다.

“연소 시 발생하는 고열 때문에 화약이 너무 빨리 타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거지요.”

“내부 압력의 상승이라······. 어렵군.”

“이물질을 넣어서 화약이 느리게 타도록 하면 됩니다. 통도 튼튼하게 다시 만들고요.”

가만히 있던 리슐리에가 손을 들었다.

“저도 돕게 해주세요. 수도 마법 학교에서 기초마도과학을 이수했습니다.”

“오오! 마법사! 엘리트인가! 왜 잠자코 있었지?”

리슐리에의 정체를 듣고 쿠르프가 좋아했다. 사실 이대로 돌아갈 때까지 가만히 있을 예정이었지만 1차 시도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광경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달리 말하면 감이 좋은 리슐리에의 눈에 지금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은 여러 가지 의미로 보람찰 것 같았다.

그녀는 먼저 엉망이 된 캐롯을 가리켰다.

“떨어질 때 충격을 완화 시킬 장치도 필요합니다. 제가 스크롤을 준비해볼게요.”

“너는 스크롤도 만들 수 있나?”

아리에테의 말에 리슐리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학교 수업 과목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그걸 특히 잘했지요.”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다듬고 있던 캐롯도 말했다.

“추진제를 좀 더 넣어줘. 대충 계산해도 한참 모자라겠더라.”

“그렇다면 2단으로 만들어 볼까?”

수첩을 꺼낸 크랭크는 파일럿 경험자인 캐롯에게 이것저것 더 질문해서 최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렇게 해서 아리에테 파티의 훈련은 잠시 중단, 다시 목공일을 시작했다.

스사사사사사삭!

롱소드를 내려놓고 톱을 든 로테가 가공할 솜씨를 선보였다. 바위 요새 주변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모조리 수거해 와서 자제를 충당한 그들은 크랭크의 설계대로 발사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발사대는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길게 깔린 레일은 완만하게 위로 휘어지기 시작하더니 최종적으로 그 끝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크랭크는 그걸 레일 매스 드라이버라고 불렀다.

발사대와 함께 비행체도 완성되었다. 밖으로 옮겨진 비행체를 보면서 캐롯이 감상평을 내놓았다.

“이번 건 엄청 크네?”

“추진체가 2단이라서 그렇다. 분리는 자동이야. 대신 분리 직후 추력편향판 제어 레버를 바꿔 잡아야 해. 중요하니 잊으면 안 돼.”

“이거지? 알았어.”

전투복이 소실되는 바람에 드워프 마을에서 주문 제작한 비행사 복장을 차려입은 캐롯은 전용 모자를 눌러쓰고 보안경도 내려썼다.

“준비 끝!”

“아직 아니야.”

캐롯이 두 손을 들고 있는데 눈 밑에 그림자가 잔뜩 낀 리슐리에가 다가왔다.

“낙하할 때 당황하지 말고 이걸 당겨. 시동어는 단델리온.”

“단델리온? 아! 민들레.”

잠을 못 자서 표정 관리가 어려워진 리슐리에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도 보고 싶거든, 부유섬.”

“응, 고마워. 리슈.”

캐롯이 외쳤다.

“이제 정말로 준비 끝!”

크랭크와 쿠르프가 캐롯을 데려다가 비행체에 연결했다.

이리저리 점검을 마친 후 사람들이 물러서자 쿠르프가 줄을 잡아당겼다.

“점화!”

퍽! 화아아악! 쿠오오오오! 콰아아아아!

캐롯의 등에 매달린 2개의 은색 원통에서 엄청난 열기와 함께 연기가 뿜어지더니 비행체가 실린 운반 캐리어가 간이 레일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으어어어!”

덜덜덜 떨리는 시야도 잠시 캐롯은 순식간에 하늘을 바라보며 솟아올랐다.

“날고 있어! 날고 있다고! 으하하!”

쿠오오오오오!

비행체와 함께 수직으로 날아오른 캐롯은 양팔에 매달린 줄을 요령껏 잡아당겨 자세를 제어했다. 신기하게 길이가 길어져서 그런 것인지 비행체는 안정적으로 수직상승을 시작했다.

구름을 지나 한참 솟아오르는데 저 멀리 부유섬이 보인다.

“대체 어떻게 떠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

퍼퍼퍽! 퍽-!

불안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1단 비행체가 떨어져 나가고 2단 비행체의 추진제가 자동 점화되었다.

푸화아아아악!

청명한 하늘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은빛 비행체의 하얀 연기는 그대로 구름이 되었다.

웅장하게 세워진 두 개의 기둥은 불어오는 바람에 점점 흩어지며 마치 하늘로 이어진 사다리처럼 보였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우러러보았다.

“사다리가!”

“하늘 사다리······!”

갑작스레 주저앉은 비타가 두 손을 모아 쥐고 울먹거렸다.

“저걸 타고 오르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비타.”

울컥한 지오만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놀라움에 취해 저 하늘 사다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람은 이제 구름마저도 그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걸 올려다보는 이들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인형 소녀가 모두의 염원과 구름 만드는 기계를 등에 업고 지칠 줄도 모른 채 파란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느님! 지금 만나러 가요! 아하하하!”

그 모습을 지상의 쿠르프를 비롯해서 동료들이 저마다 망원경을 들고 우러러보았다.

쿠르프의 손에 쥐여 있는 통신장치에서 캐롯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느님! 지금 만나러 가요!

발칙한 발언이었지만 아무도 뭐라 토를 달지 않았다. 신관 비타 조차도, 만약 정말로 신이 하늘에 계신다면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아아!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구름은 멀리서도 확실히 보였다.

산 아래 드워프 마을의 성벽 위를 순찰하던 경비병은 물론 바쁜 도시 시내를 오고 가던 시민들, 여행차 들린 엘프들과 입성을 허가받은 인간 모험가들도 그 하늘 사다리를 보았다.

“저게······ 뭐지?”

“기둥? 사다리?”

사람들이 궁금증에 휩싸여 있을 무렵, 캐롯은 엄청난 진동과 함께 유사 이래 누구도 와본 적 없는 하늘의 끝에 도달했다.

“세상에! 엄청나게 높아! 이젠 밑에 산도 잘 안 보여! 부유섬까지는 얼마나 남았······?”

부유섬에만 연산 능력을 집중하느라 주위를 살피지 못했던 캐롯이 발아래를 잠깐 살펴보고 고개를 들었다가 놀라운 것을 보고 말았다.

“아······.”

그들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푸른 혹성이 눈부신 후광을 등지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11년, 갖은 경험을 쌓아 어렴풋이 인간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인형 소녀는 저 아름다운 별의 광경을 보고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정말 사람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나는 그때 울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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