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숙원! 159 >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보았던 동화가 현실에서 등장하자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몇은 창가로 몰려가 하늘을 살피기 시작했다.
쿠르프가 씩 웃었다.
“대륙까지는 아니고, 굳이 따지면 부유섬이지. 나는 저기에 오르고 싶어. 그리고 조그만 인형아. 말을 고쳐야겠다. 와이번은 저 높이까지 올라가지 못해.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은 곳이라서.”
“세상에!”
입이 사각형이 된 캐롯이 두 손으로 뺨을 잡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유 대륙이라니! 용사 이야기에 나오는 마왕성의 그거?! 실존했었어?”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다시 자리에 앉은 캐롯과 크랭크는 맞은편의 쿠르프를 보았다.
쿠르프는 먼 산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온갖 것을 보고 만지고 만들었지. 그런 건 이제 됐어. 그러다가 젊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저것에 올라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 그게 다야.”
“정말로 꿈이군요.”
아리에테가 말에 고개를 돌린 쿠르프가 씩 웃었다.
“맞아. 꿈이야. 아는가? 꿈을 잃었을 때 사람은 진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이 되지.”
아리에테와 캐롯이 입을 살짝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크랭크가 허리를 숙이고 투구를 앞으로 내밀었다.
“저희에 대한 것은 누구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에게, 구스타프 알지? 그게 내 아들이야. 늦둥이 막내지. 자네들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어.”
구스타프의 주름진 얼굴을 기억한 아리에테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늦둥이? 막내?”
구스타프가 그의 아들이라니 놀라운 이야기였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크랭크는 본론을 꺼냈다.
“직접 만드신 비행선에 캐롯을 태워 올려 보낼 생각이군요.”
쿠르프는 갑자기 늙어버린 얼굴로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맞아, 현실적으로 이 늙은 몸으로 저길 오른다는 건 너무 힘들거든? 그래서 나대신 누가 저 위에 가서 뭐가 있는 지나 좀 봐줬으면 좋겠어. 아쉬운 대로 기념품이라도 가져다주면 좋고.”
그의 심정을 이해한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까 그것은?”
“음, 요즘 실험하고 있는 건데. 확실히 가능성이 보여, 이름은 흑색화약연소추진제사용비행체인데 원리가 뭐냐면······.”
종이와 펜을 가져온 그가 열렬히 설명했으나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고, 그래서 한 번 더 설명을 들어야 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크랭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말해서 의뢰 내용은 당신의 연구를 도와 비행체를 완성해서 저 하늘의 부유섬에 도달하는 것이군요.”
“맞아. 마을 놈들은 날 미친 사람 취급해서 일손 구하기가 힘들었거든.”
크랭크가 이번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료들이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있는 아리에테를 쳐다보았다.
“아리에테, 파티 리더는 너지만 이 협상은 내게 맡겨다오.”
“알고 있다. 애초에 너희들의 지명이었으니까.”
투구를 끄덕인 그는 이제 쿠르프를 바라보았다.
“계산부터 하시죠. 쿠르프 씨, 의뢰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건 걱정 마. 이래 보여도 한평생 일해서 재산은 꽤 모아두었으니까. 만약 내가 못 내면 내 자식들이 대출해 줄 거야. 크하하!”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그를 보면서 크랭크는 다시 말했다.
“막연한 희망만 보고 계획을 짤 수는 없습니다. 기한을 잡으시죠.”
“좋아, 자네들 하루 일당은 얼마면 되겠는가?”
쿠르프는 드워프답게 호쾌한 면이 있어서 협상은 시원시원하게 처리되었다.
“모험가 파티 임대 기한 2주. 실패하더라도 의뢰비는 지급.”
간단하게 계약서도 작성한 다음 두 사람은 지장을 찍었다. 입을 세모로 만들고 얌전히 앉아있던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다.
“봤어?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뭐라 말은 못 해주겠네.”
“우리도 그래.”
계약서를 챙겨 넣은 크랭크가 말했다.
“나도 처음이다. 이런 계약서는 형식이지만 그래도 만들어둬야 해. 서로 간의 신뢰에도 증거가 필요한 세상이다.”
“오.”
캐롯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오므렸다.
가만히 캐롯을 보던 쿠르프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전신 소프트 스킨은 처음 보는구나. 아주 자연스러운데.”
“계약 완료. 2주간 잘 부탁드려요.”
씩 웃으며 캐롯의 작은 손을 잡고 좀 흔들어준 쿠르프가 소파에서 뛰어내렸다. 내내 혼자 지내다가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는 기쁜 듯이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많구만! 친구들, 방은 많으니 알아서들 쉬시게. 2주간 늙은이 뒤치다꺼리 좀 부탁하겠어. 흐하하! 그렇지, 이럴 때가 아니라 내 별장 소개를 해줘야겠군. 따라오게!”
신나게 떠들어대는 드워프 어르신을 따라 직접 만들었다는 바위 별장 투어가 시작되었다.
크랭크와 걷고 있던 캐롯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보이드 자작님 생각나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힘든가 봐?”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그런 건 좋다 나쁘다를 따질 문제가 아니야.”
“너는 어때?”
투구를 돌린 크랭크가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내 성향을 가리기 전에 나는 아무래도 혼자 지낼 일이 적을 것 같아. 최근 주변에서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동시에 주변에 몰려 있던 동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우리는 파티로 이어진 깐부잖아요?”
윙크를 찡긋하는 코비를 보고 캐롯과 비타가 웃음을 터트렸다.
“구슬치기라도 하는 거야? 하하하!”
앞장서 있던 쿠르프가 고개를 돌린다.
“오, 다들 사이가 좋구만?”
“아니! 나는 손발이 오그라들고 있다고요! 잘도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해댄다!”
보리스가 두 주먹을 안으로 굽히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 모습 때문인지 비타는 이제 바닥에 주저앉아서 웃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리슐리에는 새로 산 반지만 쓰다듬을 뿐 별 반응이 없었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 생각했다.
긴 여행 후 도착했기 때문에 첫날은 그냥 푹 쉬었다.
하지만 이튿날부터 크랭크는 바빠졌다. 그는 쿠르프의 연구자료를 모조리 탐독하고는 그의 작업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새로운 비행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개념 안이 잡힐 때까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아리에테는 자신의 파티, 겨울 기사단을 이끌고 훈련 겸 주변 몬스터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왕 전갈을 발견한 캐롯이 억지를 부려 전원이 매달려서 생포 작전을 감행했는데 이 마저도 손쉽지 않았다.
“치리치리치리리! 샤아아아!”
“3시 방향! 왕사마귀 접근 중!”
파티와 협공으로 왕 전갈을 상대하고 있던 아리에테가 검으로 지시했다.
“이쪽은 발을 뺄 수 없다! 캐롯, 가라!”
“쉭쉭!”
“흐헤헤! 아무리 강한 독도 맞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거든?”
난동을 부리는 왕 전갈의 등에 올라가 날아드는 독침 꼬리에 올가미를 던져 힘껏 잡아당기던 캐롯은 이제 덤벼드는 왕사마귀를 보더니 들고 있던 밧줄 더미를 아래로 던졌다.
“됐어! 이제 독침은 못써! 다리를 묶어서 움직임을 봉쇄해봐!”
“죽이면 되지 않냐! 귀찮게 꼭 이래야 해!?”
“몬스터 생포 의뢰도 가끔 있으니 훈련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전갈 타보고 싶지 않아?”
와하하 웃으며 뛰어오른 캐롯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달려오는 왕사마귀를 앞에 두고 우아한 발레 자세를 잡았다.
단체 실전은 처음이라서 긴장한 채 상황을 살피고 있던 리슐리에가 우연히 그걸 보았다.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
취이이잉! 촤아아악!
캐롯이 회전을 시작한다. 원심력으로 들치고 올라간 치마 사이로 칼날이 튀어나와서 공기를 가르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작은 소용돌이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치리리릭?!”
퍽-! 촤챠챠착!
캐롯이 일으킨 칼바람은 왕사마귀의 정면으로 덤벼들어 부딪혔는데 가공할 회전력 덕분에 순식간에 사마귀의 몸체가 바스러져 버리고 초록색 체액이 사방으로 튄다.
덕분에 보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나빠졌다.
“우읍?!”
“사마귀의 피는 초록색이네요? 어우, 속이야.”
“어어! 이 자식 날뛴다! 물러서!”
밧줄을 쥔 지오가 그 상태로 뛰어다니며 줄을 다리에 감아버렸다. 줄에 엉킨 전갈은 결국 쓰러졌다.
쿵······!
“헉헉! 조, 조그만 녀석이라서 망정이지 좀 더 컸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이게 작은 거라고요?”
“몸통 길이만 최대 4, 5미터까지 자란다. 이건 아직 새끼야.”
아리에테의 말에 꼬리 제외하고 2미터 정도의 동체를 가진 왕 전갈이 쉭쉭 거친 소리를 내고 있다. 살아있는 대형 전갈을 처음 본 사람들이 구경하려고 다가왔다.
“눈이 거미처럼 되어 있네?”
“신기하다.”
왕사마귀를 갈아버리고 초록색 체액을 뒤집어쓴 캐롯이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목에 수건을 걸면서 외쳤다.
“오오! 포획 성공! 이제 이걸 길들여보자!”
“길들여지지 않으면?”
“잡아먹으면 되지. 이거 튀겨 먹으면 맛있데.”
“진짜요? 츄릅!”
먹보 코비가 급 관심을 드러냈다.
쿠르프의 바위 요새 부근이라서 멀리 갈 것도 없이 꼬리에 밧줄을 묶어 근처 바위에 메어 두었다.
사육사는 당연하게 캐롯이 맡았다.
“휴우-! 다됐다! 먹이는 저걸로 주자!”
“어떡하냐, 이 오토마톤 미쳤어. 왕 전갈을 개처럼 키울 생각인가 봐.”
바쁘게 달려간 캐롯은 갈려 나간 사마귀의 다리와 몸통을 가져다 기진맥진한 왕 전갈의 앞에 던져주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리에테가 말했다.
“크랭크에게 미안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일은 없는 듯하니 실전을 대비해 이참에 훈련을 잔뜩 해보자. 파티에 원거리 공격 능력이 부족한데 보리스는 활을 한번 들어봐라.”
“알았어요.”
의외로 선선히 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보티를 간신히 벗긴 했으나 아직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드드드득! 퉁-!
롱보우를 받아든 보리스가 과녁을 맞혔다. 아리에테가 눈을 크게 떴다.
“잘 쏘지 않나? 왜 활을 잡지 않았지?”
“지금은 좀 나은 편이지만 보리스 녀석, 처음에는 팔 힘이 약해서 시위를 제대로 당기지도 못했거든요. 그나마 제가 제일 잘 쏴서 활을 잡은 거죠.”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가 말했다.
“너는 오늘부터 체력 단련을 하자. 팔 근육을 좀 더 키워라.”
“자동 석궁을 들면 그런 거 안 해도 되지 않아요?”
“자동 석궁은 무겁다. 어쨌든 근력은 필수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아리에테가 피식 웃었다.
“크랭크처럼 말해 버렸군.”
다들 킥킥 웃었다.
푸쉬후와아아아아악!
별안간 바위 요새 쪽에서 하얀 연기가 솟구쳤다. 처음의 그것보다는 훨씬 작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아까부터 자꾸 시끄럽네.”
“실험이라도 하는가 보지. 주변을 좀 더 돌아보자. 연계 능력을 맞춰보는 거다.”
“맘보!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
캐롯이 묶어 놓은 전갈을 보면서 소리쳤다. 비타가 신기한 듯이 말했다.
“와, 가져다준 걸 먹는데요? 잘 먹네.”
보리스가 한심한 얼굴로 물었다.
“이름이 맘보야?”
“응! 늴리리 맘보!”
그들이 몬스터 사냥을 빙자한 훈련에 매진하는 동안 작업실에 틀어박힌 크랭크는 비행체 모형품을 몇 번 쏴보고 당장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 쿠르프와 이야기 나눴다.
“이게 한번 점화되면 멈추지 않는군요. 조종성도 나쁘고, 차라리 저걸 다시 이용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손가락을 위로 든 크랭크는 넓은 작업장 천장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새 모양의 비행체를 가리켰다. 쿠르프는 고개를 저었다.
“날 짐승이 나는 걸 보고 흉내 내서 만들어 본 건데. 자체 동력이 시원찮아서 그리 높게 날지 못해. 시간을 들이면 괜찮은 물건이 만들어질지 몰라도, 지금의 내겐 그런 여유가 없어.”
크랭크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군요.”
“뭐, 쉬엄쉬엄하세!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또 부를 테니까! 흐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