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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58화 (158/329)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숙원! 158 >

리슐리에는 시크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비상금으로 챙겨온 금괴를 하나씩 테이블에 올렸는데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빙글빙글 돌고 있다.

덜그럭, 덜그럭,

“금괴도 받아요?”

“물론입니다. 다만 드워프 시장 시세에 맞출 것입니다. 그래도 좋으신지요?”

전 재산을 투자한지라 리슐리에는 기절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녀의 등 뒤에는 모두가 몰려와 통 크게 2200만짜리 마법 도구를 구입하는 리슐리에를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와, 신출내기가 저래도 되는 거야? 우리는 30만짜리 싸구려 롱소드로 시작했잖아.”

“마법 도구는 가격도 비싸지만 써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라 사기도 많습니다. 리슐리에의 심정도 이해는 합니다. 캐롯.”

“응?”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돌리자 크랭크가 말했다.

“저분께 양배추즙을, 분명 속이 쓰릴 것이야.”

“쁘하하! 응, 그래 알았어. 흐흣!”

반지를 끼고 돌아온 그녀를 보고 캐롯이 박수를 쳤다. 그러자 비타도 박수를 쳐주었다. 아리에테와 다른 사람들도, 크랭크마저도 박수를 쳤다.

리슐리에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부,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어때? 마력 상승이 느껴져?”

“잘 모르겠어. 일단 써봐야 해.”

“그럼 당장 실험해 보자.”

밖으로 달려 나간 리슐리에는 드워프의 성벽을 등지고 서서 하늘에 대고 마법을 시전 했다.

“체인 라이트닝!”

빠쟈쟈자자작-!

번개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장관이 벌어지고 잠시 후 리슐리에가 멍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놀라운 나머지 내내 유지하던 컨셉을 잊어먹었는지 친한 친구를 대하는 듯한 표정과 발언이 나와 버렸다.

“와아. 이거 굉장해, 평소보다 두세 번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

“오오! 잘됐네! 돈 값하는구나!”

도구든 노력이든 마법사에게 있어서 그 능력치의 상향이 일어난다는 것만큼 기쁜 것은 없을 것이다.

보기 드물게 환하게 웃음 지은 리슐리에는 지금 당장 무언가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대한 드워프의 성벽을 바라보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캐롯이 물었다.

“그건 네 돈으로 산 물건인데 왜 다른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은 고마워하고 싶어. 이 기쁨을, 이 영광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

“호오호오, 그거 신기하네. 감사함을 나누고 싶단 말이지? 온전히 네 실력과 재산으로 얻은 것인데도.”

때마침 크랭크가 차량을 끌고 다가왔다.

“문제가 없다면 이제 출발합시다.”

리슐리에와 캐롯을 태운 수송차량이 남쪽으로 향하는 동안, 성벽 위에서 그들의 행로를 살피던 드워프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금덩이로 마법 반지를 사간 어린 마법사가 있다고 해서 올라와 봤는데, 거참, 만드는 보람이 있구나.”

“내 칼 사가는 녀석들도 저렇게 좀 고마워했으면 좋겠군.”

“그나저나 저 친구들 그 쿠르프 어르신 만나러 간다고 했지?”

“음, 초대장을 받아왔다고 하던데.”

“괴짜 어르신 때문에 드워프에게 안 좋은 인식이나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구먼.”

“예끼! 어르신께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아니, 사실은 사실이잖아! 하늘을 날겠다는데 그게 말이 되나?”

성벽에 올라와 있던 드워프들은 하나 같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 * *

이동 수단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일러준 시간보다 더 빠르게 쿠르프의 거처를 발견했다.

큼직한 바위를 깎아 만든 천연요새로 꼭대기에 깃발과 각종 괴상한 구조물이 잔뜩 올라가 있어서 알아보기 쉬웠다.

“이게 다 뭐야?”

요새 주변으로 새 모양의 나무 구조물에서부터 커다란 날개가 달린 비행체 같은 것들의 파편이나 폐자재가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뭘 만들려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새를 참 좋아하나 봐. 모양도 가지각색이네. 구경할 맛 나는데?”

캐롯의 말대로 다들 주변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신 크랭크는 핸들을 이리저리 꺾느라 바빴다.

“걸리는 것들이 많아서 운전하기가 힘들군.”

그때였다.

쿠우우오오오! 콰아아아아!

별안간 폭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바위 요새 곁에 쌓여있는 잡동사니 구조물에서 새하얀 연기를 뿜으며 무언가가 하늘을 향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우와! 저게 뭐임?!”

가공할 모습에 놀란 사람들이 창문에 달라붙어 연기구름을 남기고 솟아오르는 물체를 우러러본다.

캐롯을 포함한 몇몇은 계단을 통해 지붕으로 뛰어 올라가 그 놀라운 모습을 구경했다.

쿠오오오오오!

“우오오! 굉장하다! 엄청 높이 올라가! 해님이라도 보러 가는 거야!?”

다들 이마에 손을 대고 허리와 고개를 꺾으며 태양을 만나러 솟아오르는 물체를 올려다보았다.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갑작스레 폭발을 일으켰다.

너무 멀어서 폭발음은 조금 후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꽈광-!

“꺅?!”

“이번엔 마른하늘에 천둥?!”

크랭크마저도 차량을 멈춘 채 창문으로 투구를 내밀고 그 광경을 우러러보았다.

심장을 잃은 양철 거인의 가슴이 뛰고 있다.

연기가 자욱한 바위 요새에 도착해서 만난 쿠르프라는 이름의 드워프는 새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진 늙은이였다.

“콜록콜록-! 제길, 이번에도 실패군. 왜 자꾸 터지지?”

바람이 불지 않아 건물 곳곳에서 안개 같은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있었다.

크랭크가 그에게 인사를 하며 편지를 내밀었다.

“이걸 보낸 사람이 당신입니까?”

크랭크를 올려다보던 백발 드워프 쿠르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그의 주변에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키가 작은 소녀를 발견했다.

“우옥!”

캐롯의 허리를 붙잡아 번쩍 들어 올린 그는 그 상태로 위아래로 흔들어보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그리 가볍지 않은데? 나는 네가 가볍다고 해서 불렀는데 말이야.”

듣고 있던 크랭크가 말했다.

“캐롯, 장갑과 부츠를 벗어.”

“아저씨는 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그의 말에 따라 장갑과 부츠를 벗어 바닥에 던지자 퍽퍽 하는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그걸 보는 쿠르프의 눈이 커다랗다.

“자요.”

빈손과 양말 차림의 캐롯이 손을 들자 쿠르프가 기다렸다는 듯이 캐롯을 잡고 흔들었다.

“어억! 좋아! 훨씬 가볍군! 가벼워!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우왁! 그만 좀 흔들어대쇼! 이제 됐죠? 내려줘요!”

“성깔도 좀 있구나! 제법 똑똑한가 보군?”

아리에테가 크랭크의 팔을 슬그머니 잡았다.

“인간이고 드워프고 저 나이대가 되면 다 이상해지는 건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크랭크는 쿠르프를 보면서 말했다.

“지명하신 모험가 크랭크입니다. 들고 있는 아이는 제 오토마톤인 캐롯.”

“내려달라고!”

도끼눈을 한 캐롯이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자리를 옮겨 요새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바깥의 그 쓰레기투성이를 보고 내부 위생 상태를 걱정했지만 의외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물론 드워프의 거처답게 곳곳에 공구나 도구, 이상한 장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책상이 있는 서재 겸 응접실로 모두를 안내한 쿠르프는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적당히 앉게. 이봐! 손님들에게 차 좀 내어줘라. 8잔! 설탕 팍팍 쳐서!”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비타가 말했다.

“어쩐지 크랭크 아저씨의 공방 같지 않아요?”

“음, 비슷하구나.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팔짱을 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리에테가 코를 벌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긴 여행으로 지친 모험가들에게 튼튼한 벽과 지붕이 있다면 어디든 마음 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들 그가 권하는 빈자리에 앉거나 여의찮으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흥미로운 얼굴을 한 쿠르프가 맞은편에 앉아있는 크랭크를 보았다.

“소문을 듣긴 했는데, 자네 머리에 그건 정말 저주 가림막인가?”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리슐리에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이걸 벗으면 굉장한 일이 생길 겁니다.”

“잘 때도 쓰고 자나?”

“잘 때는 천으로 된 주머니를 쓰고······.”

도끼눈을 뜬 캐롯이 손날로 무언가를 베듯이 휙휙 내리치며 말했다.

“즐거운 호구 조사는 다음에 하고,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요.”

“흠, 처음 보는 사람끼리는 가벼운 대화로 유대와 친밀도를 쌓는다는 걸 모르는구나.”

한쪽 눈을 가늘게 뜬 캐롯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고독과 외로움에 사무쳐서 말동무나 하자고 우릴 부른 건 아니잖아요?”

“프하하하하! 이 녀석! 대단한데 그래? 어떻게 한 거지?”

캐롯에게 한 방 먹은 쿠르프가 크게 웃었다.

넓은 홀의 맞은편 소파에 기대어 앉거나 바닥에 앉아있던 보리스와 지오가 중얼거렸다.

“드워프의 정식 표본 같은 어르신이네.”

“어, 진짜로.”

때마침 오토마톤 두 대가 소반에 잔을 가지고 나타났다.

캐롯이 이맛살을 좁혔다.

“여기도 벌거벗은 오토마톤이 있네. 그런데 알몸에 앞치마는 좀 너무하지 않아요?”

“와, 드워프도 오토마톤을 쓰는구나. 아저씨들은 뭐든 직접 하잖아요?”

코비의 말을 들은 쿠르프가 피식 웃었다.

“내내 안 쓰다가 최근 늘어나는 추세지. 인형들은 좋아. 혼자 사는 늙은이 수발도 들어주고, 말동무도 되어주니까. 그렇게 똑똑하지는 못하지만.”

소파에 기대어 앉아 차를 마시던 그가 캐롯을 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이거 진짜 오토마톤이지? 인간 아이 아니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토마톤이 확실합니다.”

크랭크의 자신만만한 발언과는 별개로 아리에테와 다른 동료들은 약간 멍청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가끔 헷갈리던데.”

“어, 나도.”

쿠르프는 턱수염을 만지면서 캐롯을 들여다보았다.

“음, 연산 능력이 높나 보군?”

“아, 됐고요. 왜 불렀는지나 빨리 말해 보세요. 몬스터 토벌이에요? 아니면 누가 돈이라도 떼어먹었어요?”

탁자에 짧은 다리를 척 걸쳐 올린 쿠르프는 눈썹 사이를 문지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대충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밖에 잡동사니 봤지? 나는 하늘을 날아보는 게 꿈이야. 숙원이지.”

“하늘을 난다고? 와이번 타고 날면 되잖아요?”

“인석아! 그건 남의 능력으로 나는 거잖아! 나는 온전히 내 능력의 힘으로만 날고 싶다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캐롯이 옆자리에 앉은 크랭크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렸다.

“모르겠는데. 그게 다른 거야?”

“어머니와 아버지만큼 다르다.”

덜커덕!

크랭크를 보느라 시선을 위로 뜬 캐롯이 입을 벌리고 멈췄다. 보리스가 차를 마시다가 말고 사레가 들려 기침을 좀 하더니 말했다.

“논리 충돌? 이런 걸로?!”

한참 후, 제정신을 차린 캐롯이 말했다.

“와, 또 멈출 것 같으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우릴 부른 이유는요?”

직접 보여주는 게 났겠다 싶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책상으로 향했다. 각종 도면과 메모와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책상 옆에는 커다란 망원경도 있었다.

“낮이라서 잘 보일 거야. 이리 와 봐라.”

발 받침대에 오른 캐롯이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억?! 이게 뭐야?!”

자리에 앉아있던 크랭크와 아리에테도 일어나고 집안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고개를 돌렸다.

캐롯이 손짓했다.

“크랭크! 한번 봐봐! 하늘에 섬이 떠 있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 크랭크가 허리를 숙여 투구를 망원경에 들이댔다.

정말로 하늘 저 위에 조그만 땅덩어리가 떠 있다. 허리를 펴고 눈을 좀 깜빡거린 크랭크는 다시 허리를 숙여 망원경을 들여다보고는 그 땅덩어리에서 초록색 무언가도 언뜻 확인했다.

투구 속 그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설마! 전설의 부유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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