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모험의 시작! 156 >
말을 잊지 못하고 입을 뻥긋거리고 있다가 캐롯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자 도로 건너편에 상단의 수송차량을 개조한 파티 전용 차량이 서 있다.
“어때? 검고 크고 아름답지? 이번에 새로 장만했어.”
“어, 음······.”
차량 앞에는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금발 여기사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제 파티 동행을 요청하던 아리에테라는 여자였다.
“다시 만났군.”
“와하하! 매몰차게 튕기고 보니 연수 담당 모험가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을 거야.”
차량에 오르자 캐롯이 하하 웃으며 그녀를 놀려댔다. 그리고는 승객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소개했다.
소개받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하던 리슐리에는 이제 안면이 조금 있는 아리에테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캐롯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아이는 대체 몇 살이죠? 당신 딸인가요?”
얼굴이 확 달아오른 아리에테가 버럭 외쳤다.
“무, 무례하군! 내가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나? 캐롯은 오토마톤이다!”
“맞아, 그리고 오토마톤의 나이는 기체 연령이야. 이제 세상살이 11년 차!”
마법 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외부 문물을 끊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며 마법 실력 향상에만 신경 써왔던 리슐리에는 이날 전신 소프트스킨 오토마톤을 처음 보았다.
“우리 소개는 했으니 이제 네 소개 좀 해봐.”
연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정 관리를 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리슐리에, 저번 달에 수도마법학교를 졸업하고 모험가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잘 부탁해요.”
캐롯이 덧붙였다.
“무려 몰리랑 같은 자연계 마법사야. 번개 써, 번개. 그리고 나이는 19살.”
“오오-!”
모두가 놀라움의 목소리를 냈다. 어쩐지 조금 부끄러움을 느낀 리슐리에가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캐롯이 다가가 웃어주었다.
“그리고 네 연수 담당 모험가가 바로 나야. 이제 도망 못 감.”
연수 담당이 오토마톤?
안경 너머의 눈빛이 마구 흔들리고 있는 마법사를 내버려 둔 캐롯은 넓은 승객실을 가로질러 운전석에 앉아있는 크랭크의 등짝을 찰싹 두들겼다.
“갑시다! 기사 양반! 드워프 마을로!”
“음, 출발.”
끼릭, 철컥!
우위이이잉······!
아르곤 겨울 기사단의 전용 차량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으아! 덥다!”
“창문 열어.”
“아직 여름 한 달 넘게 남았는데 왜 이러는 거야.”
승객실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더위를 호소했다. 비타가 말했다.
“와, 그래도 빨라서 좋네요. 제임스 아저씨의 자동마차 같아요.”
운전석에 앉아있던 크랭크가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캐롯이 히히 웃었다.
“아무래도 원래 속도는 너무 느려서 손을 좀 봤대. 이제 상단 수준으로 화물을 싣고 다닐 일도 없으니까.”
마법학교에서 배운 기초마도공학을 떠올린 리슐리에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러면 마력 소모가 클 텐데.”
“괜찮아. 마력석은 충분히 가져왔으니까. 모자라면 리슐리에로 마력석 충전시키면 되고.”
“으윽······!”
온몸으로 싫은 표정을 내비친 리슐리에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움츠렸다. 캐롯이 그걸 보고 놀리듯 깔깔 웃었다.
그때 정말로 차량이 멈추자 리슐리에는 기겁했다. 캐롯이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오? 무슨 일이야? 고장 났어?”
“아니, 잠깐 쉬자. 아무래도 시험 운행이니 자주 확인해야 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차량에서 내려 색다른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한숨 돌렸다. 여기서 생활력 만랩 신관 비타가 가죽 자루를 들고 뛰어다니며 주변에 널린 야생 약초 식물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몸도 움직이고요! 이건 용돈을 벌 기회거든요!”
구경하던 남자들도 가만있기 심심했던지 거들었다.
“저 열매는 먹을 수 있어요! 저기에 약초 군락지가! 버섯은 오늘 저녁으로!”
와와 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틈에 끼어 팔자에도 없는 약초를 캐고 있던 리슐리에가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선배, 이것도 연수에 포함되는 거야?”
“어, 맞아. 먹고 살려면 손에 흙과 똥과 피가 묻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돼.”
리슐리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영혼 없는 눈으로 뭔가 둘러대듯이 말하지 마.”
“오옥, 어떻게 알았어? 오토마톤은 영혼이 없어.”
근처 꽃밭을 거닐고 있던 캐롯이 뒷짐을 진 채 파하하 웃으며 말했다.
처우의 개선을 요구하면서도 할당된 약초 채취를 마친 리슐리에가 바구니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라. 좀 더 본격적인······.”
그때 가까운 숲의 잡목을 헤치고 비타를 어깨에 걸쳐 올린 코비가 질린 얼굴로 뛰어왔다.
“엄청 큰 닭이 쫓아와!”
“코카트리스! 눈을 보면 안 돼! 마비당해! 아리에테-!”
차량 점검 중인 크랭크를 돕고 있던 아리에테가 지오의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시온이 투구와 마스크를 전개했다.
철컥! 착!
“로테! 엄호해라!”
로테와 아리에테가 검을 들고 뛰쳐나가려는데 이미 누군가가 짧은 날개를 퍼덕이며 달려오는 3미터짜리 수탉을 마주하고 섰다.
도시적인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약초 바구니를 허리에 끼고 있던 리슐리에였다.
“코케코케! 코케케-!”
지지직! 지직!
리슐리에의 안경 너머로 빛이 번쩍이더니 그녀의 손가락에서 번개가 발사되었다.
“체인 라이트닝.”
빠쟈쟈자자작! 지직! 지지직!
코카트리스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전기 통구이가 되어 쓰러졌다. 지켜보고 있던 캐롯이 곁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목표물이 완전히 절명한 것을 확인한 그녀가 손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이를테면 이런 것.”
흐하하 웃은 캐롯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에이, 모험가라고 해서 내내 쌈박질만 해대진 않아. 쉬엄쉬엄하는 거지. 다 돈 벌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려고 하는 짓이잖아? 넌 어깨 힘 좀 빼도록 해.”
리슐리에는 정말로 어깨 힘이 빠져버렸다. 그런가? 나만 너무 조바심 내는 거야?
캐롯이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거 몇 번 더 쓸 수 있어?”
“같은 출력으로 2번 더 쓸 수 있어.”
“위력을 좀 줄이면 더 많이 쓸 수 있고?”
리슐리에가 고개를 끄덕이자 캐롯이 씩 웃어주었다.
“좋네. 아껴둬. 위기에 처했을 때 다들 마법사의 한방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거든? 너는 최후의 보루 같은 거야. 함부로 힘을 낭비하지 말도록 해.”
가만히 캐롯을 내려다보던 리슐리에는 대답 대신 다시 쭈그려 앉아서 근처의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수업 때 써본 적은 많지만 그걸 캐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건 내가 가져도 되나?”
“물론, 여기서는 대체로 개인 전리품은 허가하는 편이야.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지.”
새로운 정보에 리슐리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커멓게 타버린 코카트리스를 내려다보던 코비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닭이잖아?”
비타가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코비, 요즘 왜 그래요?”
“아니······ 맛있더라고?”
쓰러뜨린 코카트리스에게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 언제 왔는지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크랭크가 투구를 휙 돌리자 리슐리에가 움찔하면서 놀란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외관이었기 때문이다.
심장을 잃어버린 2미터짜리 양철 거인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80점.”
뭐가?
어이없어하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크랭크는 그 자리에서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신난 코비도 거들었다.
두 남자가 닭을 잡는 동안 주변을 살피던 캐롯이 물었다.
“사람이 하나 없는데. 보리스. 보리스, 이 바보는 어디 있어?”
“아차!”
지오가 깜짝 놀라더니 후다닥 숲속으로 다시 뛰어든다. 그걸 본 아리에테가 로테의 어깨를 두드려 그를 돕도록 보냈다.
잠시 후, 둘은 뻣뻣하게 굳어 있는 보리스를 들고 돌아왔다.
“푸흐하하하!”
캐롯이 배를 잡고 꽃밭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좀 킥킥거렸고, 실제로 몬스터의 특수능력에 마비당한 사람을 처음 본 리슐리에는 신기한 눈으로 그를 살폈다.
이상한 자세로 선 보리스는 눈만 부릅뜬 채 욕을 해대고 있었다.
곧 비타가 상태이상 해제를 시전 했다. 푸른빛에 휩싸인 보리스가 프하-! 하는 소리를 내면서 허물어지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 죽는 줄 알았네.”
“깝죽대니까 그렇지.”
“하!? 나는 애들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려고 그런 거야!”
캐롯과 보리스가 왁왁 거리는 것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크랭크는 다시 커다란 나이프를 들고 코카트리스 해체 작업을 이어나갔다.
닭 잡는데 시간을 꽤 잡아먹어서 몇 시간 이동하지 못하고 바로 야영을 시작했다.
여기서 캐롯과 로테, 아리에테가 주변 정찰을 나갔다. 리슐리에가 가만히 달려가는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땔감을 모아오던 지오가 근처에서 웃으며 말했다.
“주변에 위협적인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나이도 우리가 한 살 많은데 말은 왜 높여?”
옆에서 거들던 보리스가 아랫입술을 내밀며 쳐다보자 리슐리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뒷짐을 진 채로 야영 준비에 한창인 사람들을 구경했다.
캐롯이 그걸 시켰기 때문이다.
‘넌 당분간 견습이야. 눈 커다랗게 뜨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도록 하라고!’
야영 준비는 대체로 학교에서 배운 것과 비슷했다.
먼저 야영지의 선택, 물을 구할 수 있고 몸을 숨길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도망치기도 좋은 장소를 고르는 것이 정석이지만 현실은 시험지의 문답과는 다르다. 그래서 보통은 상황에 따라 조율한다.
게다가 이 파티는 대형 수송차량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무시해버리는 선택지의 등장이다.
나는 저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저건 상단의 화물수송차량이잖아. 좀 더 연비가 좋은 중소형 차량을 선택하는 것이 맞지 않아?
상황을 보니 잠도 안에서 잘 것 같다. 게다가 오토마톤도 있고, 불침번 걱정은 없겠어.
애초에 마법사는 불침번에서 제외하지만······.
“그러면 땔감은 필요 없는 게 아닐까?”
기어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파티의 젊은 남자들은 여전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땔감을 모으고 있었다.
무심한 눈으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본 리슐리에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눈을 감고 공상에 빠져버렸다.
향긋한 풀냄새와 저물어 가는 해,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는데 요리 준비를 마친 비타가 슬쩍 다가왔다.
“무슨 생각해요?”
한쪽 눈만 떠서 강아지처럼 웃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관 복장을 차려입고 있기는 한데 치마 안쪽에는 긴바지를 비롯해 가죽 장갑, 철판을 댄 부츠와 더불어 배에는 주머니가 달린 전술 복대를 차고 있다.
“당신은 전투에도 참여해?”
“아? 하하, 아니요. 복장이 영 신관답지 않죠? 근데 이거 엄청 편리해요. 따로 가방 안 메도 되고요.”
반면에 리슐리에는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여성 여행복으로 잘 차려입었다.
으레 마법사라고 하면 펑퍼짐한 로브가 트레이드마크지만 최근 들어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로브를 입고 다니는 마법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는 마법사 언니들도 이제 로브는 안 입더라고요.”
“그래도 겨울에 입으면 따뜻하기는 해. 뛰어다닐 때 불편해서 그렇지.”
리슐리에가 조용히 대답하자 비타가 하하 웃었다. 좀 친해졌다고 생각한 비타는 마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덕에 이들의 내력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지 절단된 아리에테를 다시 걷게 만든 것이 저 크랭크라던가, 캐롯의 위명이라든가.
“둘이서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 여기 와서 밥 먹으면서 해!”
돌아온 캐롯이 두 팔을 휘두르며 그녀들을 불렀다. 정차해 있는 차량으로 걸어가며 비타가 말했다.
“아, 그렇지. 저는 18살이에요. 편하게 대하시면 돼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