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뉴페이스! 155 >
이틀 뒤 정오. 차량이 완성되었다.
전체적인 외관은 길쭉하게 생긴 직사각형 상자에 바퀴가 달린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크기에서는 압도적이었다.
“원래 상단 운송용 화물차량이니까. 자! 어서 만두소를 채우자! 이번엔 드워프 마을이야!”
“얏호!”
요즘 코비가 신나 했다. 지오와 보리스도 시장에서 사온 물건과 공방에서 추려낸 장비들을 차량에 싣고 정리했다.
“투나는 정말 안 가요? 드워프 마을이라고요? 드워프!”
“나는 마법사가 필요하다. 네가 필요해.”
비타와 아리에테가 투나의 앞에 서서 커다랗게 뜬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지만 투나는 가슴에 엑스자를 만들어 붙이며 완곡히 거절했다.
“나, 나는 안 갈 거야. 장거리 여행은 나하고 안 맞는 것 같아.”
“그래라.”
크랭크의 목소리에 비타와 아리에테가 시무룩한 얼굴을 돌렸다. 작업장에서 뭔가를 찾고 있던 크랭크의 엉덩이가 말했다.
“드워프 마을 켄투가는 여기서 꽤 멀다. 힘들 거야. 하지만 하루거리의 의뢰라면 너도 참가해라. 너무 방구석에만 있으면 몸에 해롭다.”
“어, 응.”
투나의 얼굴이 헤벌쭉해지며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보고 있던 명탐정 비타가 아리에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크랭크 아저씨는 말하는 게 되게 어른스럽지 않아요? 한 걸음 물러서서 손을 내미는 느낌이에요.”
가만히 듣고 있던 아리에테도 평상시의 크랭크와의 대화 목록을 되뇌어 보았다. 확실히 몇 번 그런 투로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친절한 거인이라는 별명이 그래서 생긴 건가?”
“하지만 저런 자세는 연애에서 손해 보는 타입이에요. 아, 그래서 크랭크 아저씨가 여자친구가 아직 없는 걸까요?”
귀가 솔깃해진 아리에테와 투나가 연애 박사 비타의 말에 집중했다.
“그, 그래서? 좀 자세히 말해봐.”
신이 난 비타가 떠들어댔다.
“밀고 당기기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우위를 가리기 위한 거예요. 하지만 크랭크 아저씨쯤 되면 그냥 밀고 밀고 또 밀어야죠. 사랑은 쟁취!”
봄 소풍 때 비슷한 말을 마을 아낙 중 누군가에게 들었던 아리에테가 손을 들었다.
“잠깐, 그건 누가 기준점이냐? 크랭크? 상대?”
“양쪽 다요. 크랭크 아저씨를 보세요. 제가 남자 셋이랑 동거를 해봐서 아는데 말이에요. 저런 무덤덤한 사람을 공략할 때는 당기기 무시,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럴듯하게 들렸기에 두 사람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투나가 호오오 하는 얼굴로 물었다.
“대, 대단해. 버, 벌써 남자친구랑 동거도 하고.”
“남자친구요? 저 남친 없는데요?”
“응? 남자 셋이랑 동거를······! 아.”
아리에테와 투나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 남자 셋이라는 게 파티 멤버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챈 투나가 물었다.
“지, 지금까지 며, 몇 명이랑 사귀어 봤어?”
허리에 손을 올린 비타가 당당하게 말했다.
“0명! 절찬 남친 모집 중이에요!”
아리에테는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고, 투나는 으히히 웃어버렸다.
그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바삐 움직이던 크랭크가 손짓했다.
“잠깐 모여라. 내일 일정을 알려주겠다.”
공방 식구들과 파티 멤버들이 모이자 크랭크는 일전에 도착한 드워프의 지명 의뢰서를 다시 보여주며 말했다.
“정확한 내용은 없지만 드워프 마을 켄투가에서 쿠르프 라는 드워프가 지명 의뢰를 보냈습니다. 솔직히 이런 건 처음 받아보는군요.”
“그만큼 우리가 유명해진 거 아니겠어?”
크랭크가 히히 웃고 있는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것 같다. 해서, 자동수송차량의 시험 운행을 겸해서 가보려고 합니다. 출발은 내일 오후 2시, 개인 무장을 정비하고 푹 쉴 수 있도록 하십시오.”
비타는 두근거렸지만 내내 차량 개조작업에 휘둘렸던 친구들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반씩 해서 하루는 쉴 수 있겠구나.”
“지오, 대장간에 칼 갈러 가자. 그리고 밥 먹고 일찍 자자.”
크랭크가 말했다.
“여러분의 무기는 두고 가십시오. 손질해 놓겠습니다.”
“엇! 정말요!?”
“당연합니다. 회전 숫돌은 여기도 있거든요.”
“오오! 역시!”
칼잡이 지오와 보리스가 기뻐했다. 하지만 아리에테가 못마땅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칼 정도는 자기가 갈아라.”
“그것도 해봤는데요. 확실히 대장간에 맡기는 게 싸게 먹히더라고요. 칼날도 깔끔해지고.”
“흥! 그건 변명이다. 내가 제대로 가르쳐주마. 따라와라.”
공방 안쪽에는 투나가 아리에테를 위해 만들어놓은 무기고가 있었다. 평상시엔 접혀 있는 나무 장롱의 문을 잡아당기자 그것이 좌우로 펼쳐지고 아래로 테이블이 내려오면서 작업 선반이 펼쳐졌다.
펼쳐진 수납장에는 각종 롱소드와 단검이 즐비했다. 모험을 다니면서 주워 온 것이나 크랭크의 잡동사니에서 찾아낸 것을 손질한 것들이었다.
슥삭슥삭!
“숫돌을 이렇게 놀리는 거다. 하루 일과는 이걸로 마무리하는 거지. 잊지 마라.”
“알아요. 아는데요. 우리는 할 일이 많았단 말이에요. 일하고 오면 정리하고 씻고, 밥 차리고······.”
투덜거리며 롱소드의 날을 세우는 보리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리에테는 크랭크와 재잘거리는 캐롯,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오토마톤들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수도에서 활동할 때의 일이 떠오른 그녀였다.
“그렇군. 지금의 나는 운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팔다리가 있을 때는 나도 너희들 같았지. 분명 무기 손질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과하지.”
“그럼 회전 숫돌 써도 되나요?”
“하지만 이 칼날에 목숨을 맡긴 이상 숫돌 사용법은 필수! 항상 숙지해야 한다!”
버럭하는 아리에테의 외침에 보리스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결국 두 사람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날을 세우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타가 도도도 달려왔다.
“아리에테!”
내친김에 자기 무기도 손질하고 있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들었다.
“응?”
공방 입구에 서서 숨을 고르던 비타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마, 마법사! 마법사가 우리 모험가 기숙사에 입소했어요!”
작업장에서 흥겨운 취미 생활 중인 크랭크를 돕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내밀고 빽 외쳤다.
“아리에테! 느긋하게 칼이나 갈고 있을 때가 아냐! 어서 가서 잡아 와!”
“음!”
칼을 내려놓고 비타를 따라 달려 나갔던 아리에테는 곧 다시 돌아와 캐롯을 안아 들더니 허리춤에 끼고 달려갔다.
“우왁! 나는 왜!”
“안타깝지만 현재 이 도시에서 네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나를 도와줘!”
* * *
제임스의 모험가 숙소는 공방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잘 꾸며진 홀의 테이블에는 고급 여행복에 후드를 뒤집어쓴 신경질적인 인상의 여자가 차를 마시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웬 꼬마를 허리춤에 끼고 들어온 금발 여자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와중에 제임스가 2층 계단에서 내려왔다.
“청소가 끝났습니다. 올라가 보시오. 2층 5호 실이오.”
“자, 잠깐!”
배낭을 들어 올리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리에테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 마법사인가?”
“인사하기 전에 나부터 내려주셈!”
“어, 음. 잊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캐롯을 내려주자 캐롯이 흥칫뿡거리면서 툴툴거렸다. 여자가 물었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 아니, 그게······.”
여자의 인상이 매서운 나머지 아리에테가 좀 버벅였다.
그때 캐롯이 여 마법사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제임스를 보았다.
“신관도 그렇고, 왜 마법사는 다 여자 뿐인거래요?”
제임스가 허허 웃는 사이 여 마법사가 허리를 숙였다. 그녀는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 마법사도 있어. 다만 마법사로서 능력이 여자 쪽이 더 빨리 발현되어서 그런 거야. 낼 수 있는 출력은 좀 약하지만, 당장 쓸 수 있으니까. 신관도 같은 이유로 여자가 많은 거고.”
“오오! 궁금했었더랬어요! 언니, 고마워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 파티에 들어오지 않을래? 딱 마법사가 필요했거든?”
허리를 편 여 마법사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해대는 조그만 소녀를 보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코를 조금 벌렁거렸다.
“참고로 이게 우리 파티 리더야.”
“반갑다. 억, 바, 반갑습니다. 아리에테입니다.”
비타가 아리에테의 옆구리를 찌르자 숨넘어가는 소릴 좀 낸 다음 아리에테가 말을 고쳤다. 피식 웃으며 그걸 보던 여 마법사가 후드를 벗었다.
하얀 얼굴에 검은 머리카락, 안경을 낀 그녀가 아리에테의 손을 잡아 흔들다가 그 하얀 의수를 흥미롭게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거 요즘 유행하는 자동 의수?”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팔을 뽑아서 보여주었다. 몹시 신기하다는 듯이 안경을 들어 보이던 그녀가 말했다.
“나는 리슐리에라고 해요. 당신들 파티 구성은? 규모는 어떻게 되죠?”
“그 전에 언니 능력치부터 알려줘. 뭐 할 줄 알아?”
눈썹을 조금 꿈틀거린 그녀는 손가락을 들었다. 검지 끝에서 푸르른 스파크가 파팍하고 튄다.
“호우-! 번개야! 번개!”
표정이 금세 얼굴에 나타나는 리슐리에는 캐롯의 호들갑이 듣기 좋았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모험가 기숙사 관리인으로 변신한 제임스는 찻잔을 가져와 돌렸다.
아리에테와 리슐리에가 상담을 나누는 사이 캐롯이 차를 마시고 있는 비타를 보았다.
“네 동거인들은 다 어디 갔어?”
“에, 보리스는 세탁실에 빨래하러 갔고요. 와! 봤어요? 여기 세탁실에 수동 세탁기가 잔뜩 있어요! 음, 그리고 지오랑 코비는 시장 보러 갔고요.”
캐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아리에테가 울상을 지었다.
“그, 그렇게 많이는 줄 수 없는데.”
“그러면 안 되겠군요.”
“왜?”
아리에테가 캐롯을 바라보았다.
“의뢰 수입의 절반을 요구하고 있다.”
“헤에? 절반이나? 그건 너무한데? 우리는 인당 공평하게 나누는 편이야.”
리슐리에가 말했다.
“애초에 오토마톤도 인원으로 포함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건 비용 계산하기 편하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거야. 다른 파티도 그렇게 해. 아깝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우리 최근에 자동수송차량 마련한 이야기도 했어?”
“했다.”
팔짱을 낀 리슐리에가 이제 다리를 꼬더니 말했다.
“그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닌가요? 수도에서 좀 규모가 있는 파티는 대부분 수송차량을 이용한다구요.”
입을 헤 벌리고 수도 여행을 떠올려보던 캐롯이 아차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지. 여기 촌구석이었지. 역시 수도는 다르네, 협상은 안 되겠어. 그렇게 많이는 못 줘. 이쪽은 오토마톤 포함 8인 파티거든?”
“알았으면 됐어요.”
리슐리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들어 올렸다.
그걸 가만히 보던 캐롯이 물었다.
“언니, 몇 살이야?”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쳐다보던 리슐리에가 턱을 살짝 든 채로 말했다.
“19살.”
“마법사는 아주 어릴 때 마법 학교에 들어가서 10년 넘게 공부하고 겨우 졸업한다면서? 아는 마법사에게 들었어. 리슐리에도 졸업하고 바로 온 거야?”
리슐리에는 대답하지 않고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매몰찬 그녀의 반응에 아리에테와 비타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캐롯은 그저 히죽 웃고 있을 뿐이었다.
방에 짐을 푼 리슐리에는 그 길로 모험가 길드로 찾아갔다. 마왕군 접경지와 인접한 방주도시 아르곤은 몬스터의 출몰이 잦아서 돈벌이가 꽤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굳이 이곳까지 내려온 참이었다.
운이 좋으면 마족령에 산다는 몬스터를 때려잡아 마법사의 능력치를 올려 준다는 핵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길드 입장 전에 그녀는 표정 관리를 잊지 않았다.
이곳은 변방의 방주도시, 초보 모험가에게는 버거운 거친 모험가들의 세계.
그 세계에 발을 들이민 리슐리에는 마법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신입 모험가 연수요?”
“그렇습니다. 마법사 리슐리에 님, 해당 연수를 받지 않으시면 길드 모험가 자격증 발급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 길드의 가입 필수 조건입니다.”
마법사나 신관의 경우엔 길드에서 깍듯이 대하기 때문에 따로 상담실에서 면담을 한다. 강력한 자연계 마법사니만큼 최소 중형 파티를 알선 받아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리슐리에는 좌절했다.
“연수 담당 베테랑 모험가를 섭외해드리겠습니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그녀를 방긋 웃으며 바라봐준 오리온은 큼직한 도장을 찍은 서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내일 정오에 다시 와주세요.”
이튿날,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드를 다시 찾은 리슐리에는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거친 모험가들의 틈새를 서성거리다가 연수 담당 모험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에 대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어찌됐든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은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한참 후, 길드 여사무원이 웃으며 손짓했다.
발딱 일어나 다가가니 붉은 머리카락을 트윈테일로 묶은 조그만 소녀가 무지막지한 오토마톤 전투복 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케헤헤 웃고 있다.
“안녕? 루키 마법사. 네가 이번에 이 몸에게 교육받을 병아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