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숟가락! 153 >
“아으아아······! 초보적인 건데 조,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투창 3발을 동시 조작하느라 무리를 했는지 검은 후드의 마법사가 두 손으로 아픈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알을 수거하고, 떨어뜨린 와이번은 와이번 대로 날개 피막과 가죽을 벗겨서 챙겼다.
“정말 이런 걸로 신발을 만든다는 건가?”
“당신은 대체 어디서 떨어진 거야? 매번 아리에테랑 비슷한 소리를 하네.”
“어, 음, 도시에서 살다 보니 생필품의 소재가 무엇인지 까지는 몰랐다.”
와이번의 가죽을 옮기던 아리에테가 대신 변명을 거리를 늘어놓았다.
“비행 몬스터의 가죽은 가볍고 튼튼하거든요. 일하면서 이런 부수적인 수입도 짭짤하죠.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도 되고요.”
오토마톤들의 그 가공할 악력으로 벗겨낸 가죽을 정리하던 코비가 설명했다. 듣고 있던 르클레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은?”
“둥지 5개에서 30개 정도를 모았습니다.”
“음, 좋네. 잠깐 밥 먹고 할까?”
캐롯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만들고 와이번 고기를 잘라 굽기 시작했다. 르클레르 파티 멤버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의외로 르클레르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맛있나?”
“움움······.”
코비는 먹느라 대답하지 못했고, 그래서 신관 비타가 말했다.
“예, 뭐. 생각보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에는 싫었거든요.”
“와이번 본 메로우는 끝내주지. 한번 먹어보지 않을래?”
지글지글!
쪼개놓은 뼛조각에서 끓고 있는 골수를 보고 르클레르가 그걸 받아들려는데 그녀의 손을 누군가가 덥석 붙잡았다.
파티의 여성 모험가 레비였다. 그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이런 거 드시면 안 됩니다.”
“그래? 맛있는데.”
궁수 겸 마법사 엘프 보이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골수 구이가 올라간 빵조각을 음냠냠 먹고 있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 눈을 크게 떴다.
“정말 괜찮은걸? 다들, 어서 먹어보렴.”
“정말입니까?”
구경하던 남자 모험가들이 우루루 몰려와 캐롯이 나눠주는 빵조각을 받아들었다.
“맥주가 땡기는 맛인데?”
“가게에 놓고 팔아도 되겠다.”
동료들이 그걸 먹는 동안 르클레르는 레비와 실랑이를 벌였다.
“나도 먹고 싶다.”
“안 됩니다. 저런 걸 드시게 할 수는 없어요.”
“그럼 너를 먹······.”
퍽!
검집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르클레르가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파!”
“너는 밥 먹는데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어린 애들도 있다.”
“나는 오토마톤인디.”
보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애 취급하지 마요. 우리들 20살이니까. 알 거 다 안다고.”
“에······.”
일행을 통틀어 최연소자인 비타도 에헤헤 웃었다.
“어, 에, 저, 저도 알 거 다 알아요. 상식 수준으로 다가.”
르클레르가 머리를 매만지며 잠시 갑옷에서 내려온 아리에테를 쳐다보았다.
“알 거 다 안다잖아?”
“상식! 상식 수준으로! 네 행동은 상식 밖이다!”
“그럼 오늘 점심은 너로 해야겠구나! 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르클레르가 또 아리에테를 덮쳤다. 하지만 두 팔을 마주 잡은 그녀는 이번엔 힘으로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능가할 지경이었다.
“의수의 출력을 올려달라고 했었지. 방심만 하지 않으면 너 같은 것쯤은······!”
“아으아아! 아파! 아파! 아리에테! 아파!”
케케묵은 적개심과 그간 당해온 열등감이 폭발한 아리에테가 르클레르를 찍어 누르고 있는 와중에 누구도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이봐요. 당신들 대장님이 망가지고 있는데 괜찮아요?”
음식을 만들고 있는 캐롯의 물음에 슬쩍 뒤돌아본 남자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진짜 힘들면 도와달라고 하실 거야.”
“맞아. 지금 최고로 즐기는 와중이라고.”
뒤를 돌아보고 있던 보리스는 아리에테에게 쥐어짜지면서 비명을 지르는 르클레르를 보고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최고로 즐기는 와중이라고?”
“아저씨들 대장님 취향 특이하네.”
남자들은 쓰게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와이번 본 메로우 한 그릇 더! 를 외쳤다.
식사 겸 휴식 중 사람들은 아리에테가 벗어놓은 자동 갑옷을 구경했다. 거기엔 샌드위치를 씹고 있는 르클레르도 끼어있었다.
“전에 만들고 있던 거구나. 그 거인은 잘도 이런 걸 만들었군, 그런데 이거 다른 사람도 움직일 수 있어? 아니면 네 전용이야?”
식사를 하면서 르클레르를 쳐다보던 아리에테는 경계 중이던 로테를 불렀다.
허리에 찬 검을 풀어 놓은 로테가 자동 갑옷의 안으로 들어가자 잠금장치가 내려오고 자동 갑옷을 착용한 로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끼릭, 철컥, 트드드······!
거대한 외부 추가 장갑을 착용한 오토마톤, 그 모습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방어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자동 갑옷이라던데, 대략 거점 방어용으로 생각하고 만들어 본 거라더라.”
“음, 나도 어제야 알았다. 단순히 재미로 이런 걸 만들어 내다니 하여튼 웃긴 남자야.”
파티 멤버들이 수군거리며 놀라워하는 사이, 르클레르는 이제 유리잔에 물을 따라 마시며 싱긋 웃었다.
“멋지군. 갖고 싶다. 가격대는 얼마나 하지?”
캐롯과 아리에테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르클레르를 쳐다보았다.
“그건 주인님과 상담해야 해.”
“하지만 내가 볼 때 그 양철 거인은 정말로 재미로 만들어 본 거라 팔 생각은 해두지 않았을 거다.”
확실히 그럴 것 같았기에 캐롯이 킥킥 웃었다.
* * *
저녁, 일을 마치고 복귀한 사람들을 맞이한 크랭크는 르클레르를 다시 마주했다.
그녀는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갖고 싶은 물건을 원하는 표정으로 자동 갑옷을 착용한 아리에테를 가리켰다.
“저걸 갖고 싶은데.”
투구를 돌리고 파티 멤버들을 쳐다보았지만 다들 공방 앞에 세워진 자동수송차량을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당황을 돕지 못했다.
“우왕! 엄청 크다! 드디어 우리도 전용 차량 뽑은 거야!? 너무 좋아-!”
“와! 정말요! 하하!”
비타와 캐롯이 차 안으로 올라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신나 했고, 다른 사람들도 커다란 차량 주변을 기웃거리며 감동과 감격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순식간에 파티 전용 차량이 생겼어. 그것도 상단에서 쓰는 대형 모델이야.”
“와아, 마차 생겼을 때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참 좋다.”
“그러게.”
지오와 코비, 보리스가 얼이 나간 표정으로 커다란 수송차량을 만지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하루 종일 문의하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군요. 저건 안 팝니다.”
“왜지?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겠어.”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르클레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로 팔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닌가 보군? 그래서 가격대를 잡지 못하는 것 아닌가?”
크랭크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투구 안이라서 들키지 않았지만,
르클레르가 우아하게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돈은 만능의 율법이라고 하지. 저것의 설계도와 제작권을 통째로 사겠어. 얼마를 원하나? 그리고 상세한 스펙도 듣고 싶은데. 크랭크.”
통성명도 하지 않았건만 르클레르는 크랭크의 이름을 대놓고 불렀다. 곤란하다는 듯 끙하는 소리를 내던 그가 손을 들었다.
“진정하십시오. 관련 기술을 아르곤 정비 길드에 공여한 상태라 함부로 양산할 수 없습니다.”
관련 기술을 길드에 공여, 도시 기간 사업인가.
대략 상황을 유추한 르클레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것의 상세 스펙은?”
눈을 번쩍인 크랭크는 의외로 선선히 출력이나 무게, 강도 같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오히려 신나게 떠들어댔다.
“외부 장갑은 분명 하드 스킨의 것을 그대로 사용 중이지만 내부 프레임은 간이식 외골격이라서 그다지 튼튼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경량화를 고려한다면 이 이상의 스펙 향상은 지양하는 편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때 차량 구경을 마치고 어느새 공방으로 돌아온 캐롯이 입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밖에서 그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오늘 르클레르네 덕분에 쉽게 돈 벌었으니 차 한잔 정도는 대접할 수 있어.”
“뭣! 안 된다! 들어오지 마!”
팔짱을 하고 흠흠 거리며 크랭크의 설명을 듣고 있던 르클레르가 아리에테의 목소리에 호하하 웃더니 요염한 걸음으로 공방 안으로 휘적휘적 들어섰다.
“강한 부정은 오히려 긍정이라고 하더군. 역시 내가 그리운 건가? 으응?”
“닥쳣-! 가까이 오지 마라! 내 침대에 들어가지도 마! 담요 냄새 맡지 마! 이 변태야-!”
“흐흐히히하하!”
롱소드를 빼 들고 씩씩거리는 아리에테를 보고 그녀의 침대에서 발딱 일어나 앉은 르클레르는 여전히 신기한 공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안쪽 깊숙한 곳의 연구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저건 누구지?”
“우리 공방 조수 1호야. 이름은 투나. 투나-! 차 한잔할래?”
뭔가 집중하던 중인지 책상에 엎드린 투나는 손을 들어 흔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캐롯은 르클레르를 자리에 앉히고 묵직한 청동 컵을 쥐여 주었다. 호위로 따라온 사람들과 파티 멤버들에게도 같은 컵을 내밀었다.
“금속 컵은 냉기가 오래간다기에 용돈 모아서 한 세트 사봤어. 냉커피야. 시원하지?”
이 계절에 상점에서 취급하는 식용얼음은 대부분 마법으로 만든 것이라 제법 비싸다. 그걸 냉동고에 보관해 뒀다가 갈아서 대접하자 다들 좋아했다.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르클레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은 작업장에 세워져 있는 아리에테의 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리에테에게 팔다리를 다시 달아준 것도 그렇고, 당신 재주가 참 좋은걸? 탐날 지경이야.”
“뭐가 탐난다고? 너는 정말······!”
아리에테가 도끼눈을 뜨고 나서자 크랭크가 진정하라는 듯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통통 두드렸다.
그 모습에 슬쩍 웃음 지은 르클레르는 마저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신이 만든 물건은 꽤 가능성이 있어. 저걸로 병사들을 무장시키면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완성도나 운용 측면에선 오토마톤이 더 좋습니다.”
“전투력을 말하는 게 아니야. 병사들의 생존성을 말하는 거지.”
작업대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크랭크가 투구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보고 르클레르가 히죽 웃었다.
크랭크는 투구를 흔들었다.
“확실히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설령 저걸 양산해도 제작과 다른 도시로의 판로는 아르곤에서 독점할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중요 기술이······.”
크랭크의 말을 들으며 르클레르는 딴청을 피웠다.
“커피 맛이 좋구나, 정말 가게에 내놔도 될 정도야. 훌륭하다. 캐롯.”
“데헷.”
소반을 들고 크랭크의 곁에 서 있던 캐롯이 혀를 빼물고 윙크했다. 르클레르는 크랭크의 말에 대답했다.
“혹시 해외 수출에는 관심 없나?”
해외 수출이라고?
크랭크는 머리가 좀 어지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투구의 눈구멍으로 보이는 이 백금발 여자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읽어보려고 해보려다 포기했다.
크랭크는 선을 그었다.
“제 영역 바깥입니다. 말씀하시는 건 다른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흐뭇하게 웃음 지은 르클레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아이스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띵한 머리를 붙잡고 좀 흔들더니 말했다.
“내일 사람을 보내겠어. 기다리도록.”
“또 무슨 계략을······!”
아리에테가 끼어들었다가 이마에 세로줄을 만들면서 멈췄다. 르클레르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쭙쭙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클레르가 윙크를 찡긋하더니 몸을 돌렸다.
“네 숟가락도 준비해놓을 테니 지켜보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