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공동작업! 152 >
빠직!
애덤의 이마에 결국 핏대가 솟았다.
에리스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딴청을 피웠고 투나는 호다닥 레나의 상의를 여미며 말했다.
“어, 음, 화, 확실히 과로야. 음식이나 포션으로 회, 회복이 더디다면 원인은 하나지.”
모두가 투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제 이런 시선이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된 투나는 으히히 웃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조, 조건이 있어.”
“뭡니까?”
투나의 조건은 소박했다.
“손톱 발톱이랑 머리카락요?”
“응, 자르는 족족 내게 줘.”
“뭣에 써요?”
에리스가 물었지만 투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 나만 알고 있을 테야. 어때?”
“합시다.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자랍니다.”
으히히 웃음 지은 투나가 샤를을 불렀다. 그리고 투나가 한 일은 놀라운 것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샤를은 레나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 다음 말했다.
“엔진 최대 출력.”
이이이잉······!
미묘한 소음이 방 안에 울린다.
마력 엔진이 최대 출력을 뿜어내자 방 안 전체에 보이지 않는 마력이 충만해졌다. 추출된 마력이 엔진에서 소모되고도 남아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와, 기분이 되게 상쾌해요.”
“이, 이 세계의 신력은 마, 마력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야. 시, 신관도 반쯤은 마법사 같은 거지. 서, 설명하기 복잡한데 하, 하여튼 그래.”
그때 샤를이 말했다.
“과열 주의, 현 상태로 수십 초 후 오버 히트합니다. 추가 방열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만.”
샤를이 엔진 출력을 낮췄다. 방열 가발에서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와서 주의해서 일어나야 했다.
“으, 으음.”
레나가 눈을 뜨자 덩달아 애덤의 눈도 커다래졌다.
“레나?”
“어, 음······. 힉?!”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방 안에 있자 레나가 기겁했다. 그녀는 빠르게 애덤의 손을 붙잡았다.
어색하게 웃음 지은 에리스가 손을 흔들었다.
“와와, 레나, 진정해요. 나예요. 에리스.”
에리스를 알아본 레나는 이제 양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고 있는 이상한 여자와 오토마톤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 * *
“설명 좀 요.”
레나를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는 애덤의 말에 투나가 으히히 웃으며 말했다.
“가, 강화 인간은 약물과 마법으로 육체 개조를 시, 시도했던 사람들의 후예라고 들었을 거야. 여, 여기서 마법, 마법이 중요해. 마법의 원천은 뭐, 뭐지?”
“마력?”
레나의 곁에 앉아있던 에리스가 끼어들었다. 투나 선생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가, 강화 인간은 보통 인간이랑 달라서 시, 심장에 특이한 기관이 있어. 그러니 자연 회복이 힘들면 오, 오토마톤처럼 마력을 충전시키면 돼.”
생각지도 못한 발상에 사과를 깎던 애덤의 손이 멈췄다.
그는 살짝 찡그린 얼굴을 들어 투나를 쳐다보았다.
“마을에서도 전해지지 않은 내용인데. 당신은 어디서 이런 걸 알았습니까?”
접시의 사과를 집어 레나의 입에 넣어준 투나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방 안을 환기하려고 열어둔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투나의 안경이 반사되어 마치 동그란 눈처럼 보였다.
매드 매직사이언티스트가 음흉하게 웃는다.
“흐으히히, 책에서 봤어.”
나이프와 사과를 든 애덤의 시선이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자료라면 나도 꽤 찾아보았는데 이런 건 없었어요. 그 비슷한 것도.”
마력 충전이라니 무슨 오토마톤이야?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바깥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나이를 먹은 덕분에 그는 적당히 물러서는 법도 배워버렸다.
“됐고, 어떻게 하는지 좀 자세히 가르쳐줘 봐요. 평소에 마력석을 품고 다니면 됩니까?”
옴뇸뇸 사과를 씹고 있던 투나가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아, 아니. 마력석은 그냥 그릇이야. 거, 거기서 마력을 끄집어내야 해. 오, 오토마톤 마력 엔진을 이용한 비상 충전은 비, 비효율적이니 뭘 하나 만들어 봐야겠네. 으흐흐. 어, 얼마 낼래? 공짜는 안 돼.”
여유 넘치는 투나와 애덤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 레나와 에리스가 안절부절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애덤이 서랍을 뒤져 돈주머니를 찾았다.
“생활비 붙여준 다음이라 당장 가진 돈은 별로 없지만······.”
“이히히! 내,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냐.”
애덤이 뒤를 돌아보았다.
투나는 이제 침대에 앉아있는 레나의 머리카락을 한숨 쥐더니 탐욕스럽게 웃음 지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 마녀 같아서 에리스가 찔끔했다. 괜히 데려왔나?
“머리카락, 이 애의 빨간 머리카락을 잘라서 나에게 줘. 대, 대신 충전기를 만들어 줄게. 다시는 멈추지 않게 해줄게.”
침대에 앉아있던 레나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강화 인간은 지능이 낮다고 하지만 같은 나이에 비해 어리숙하다는 것이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결정은 레나가 했다.
화려한 붉은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붙잡은 그녀가 눈앞의 흑색 마녀를 쳐다보았다.
“어, 머, 머리카락 드릴게요. 대, 대신. 대신! 제, 제게 멈추지 않는 힘을 주세요.”
창문에서 쏟아지는 역광에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투나에게서 빛나는 것은, 동그랗게 빛나는 두 개의 안경과 히죽 찢어진 입술이었다.
“좋아.”
이 기괴한 분위기를 깬 것은 에리스의 궁금증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손발톱에 머리카락까지 그걸 모아서 대체 어디에 써요? 사랑의 묘약이라도 만들어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투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음후후 웃으며 두 팔을 엑스자로 만들었다.
“아, 안 가르쳐 줌. 나만 알고 있을 거임. 호호후후.”
에리스는 어쩐지 지금 투나가 하는 저 얄미운 행동이 캐롯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버렸다.
* * *
투나가 레나의 병문안을 하고 있는 동안, 겨울 기사단은 아르곤에서 좀 떨어진 바위산에서 와이번에게 쫓기고 있었다.
“호우미! 달려!”
“아으아악!”
캐롯과 보리스가 와이번 알을 부둥켜안고 바위산을 뛰어 내려가고 있다. 그 뒤로는 분노한 와이번이 마치 닭의 그것처럼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두 다리로 뒤뚱뒤뚱 뒤쫓고 있었다.
“캬아아악!”
쿵쿵쿵-!
캐롯이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야! 어차피 너희들 이거 다 키우지도 못하고 버릴 거잖아! 한두 개 좀 어때서 그래!”
“캬르르륵! 캬오오옥!”
“궤변으로 화 돋우지 마!”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아무렴 어때?”
산비탈을 달려가는데 저 밑에서 창과 돌이 날아들어 와이번을 견제했다.
휭휭!
“벙커로 숨어!”
“조심해! 알 깨지면 안 돼!”
언덕 아래에 미리 준비해준 벙커 안으로 뛰어들자 와이번은 달리던 가속과 지형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날개를 펼치고 비행을 시작했다.
“와! 예상대로예요! 아리에테!”
“나는 이래 보여도 기사 학교 차석 졸업이다. 저놈들의 이륙에 유리한 지형을 역이용하는 거지. 떠오를 수밖엔 없다. 항상 그러던 장소니까.”
자동 갑옷을 입은 채 투창을 들고 있던 아리에테가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벙커 속에서 숨어서 알을 껴안고 있던 보리스가 외쳤다.
“떴어! 떴다고!”
“가만있어! 지금부터 중요······!”
벙커 안에는 역시 미리 준비해둔 장작더미가 있었다. 불만 피우면 대규모 연기가 솟구쳐 시야를 막을 것이고 그러면 벙커 옆으로 빠져나가면 된다.
뻥-! 쾅!
하늘에서 빙글빙글 선회하던 와이번에게로 별안간 빛 구슬이 솟아오르더니 폭발했다.
추락하는 와이번의 거체를 보고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 동시에 외쳤다.
“격추?!”
쿵-!
벙커에서 뛰어올라 연기를 피워 올리며 가까운 숲에 떨어진 와이번을 쳐다보던 캐롯이 몸을 뒤로 돌렸다. 그 와중에 보리스는 벙커에서 기어오르려 용을 쓰고 있다.
“저거 뭥미?”
“괜찮나?!”
아리에테와 다른 멤버들이 달려왔다. 캐롯이 물었다.
“네가 그런 거야?”
도리도리.
“그러면 누구야?”
그때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르클레르가 파티를 이끌고 등장했다. 뒤따르는 멤버들의 가슴에는 큼직한 와이번 알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오오, 아리에테.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지? 몬스터 따위 죽이면 간단하잖아?”
얼굴만 드러낸 아리에테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마스크를 착용하고 몸을 돌렸다. 키가 엄청나게 커져서 르클레르가 고개를 들어야 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즐거워 보였다.
“누가 그걸 모르느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그러는 너희들은 무엇으로 저걸 맞춘 거지?”
르클레르가 롱보우를 든 여자 엘프를 소개했다.
“보이스, 우리 파티의 마법사 겸 궁수시다.”
“반가워요. 여러분.”
마법사 겸 궁수라는 말에 입술을 삐죽 내민 아리에테가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도 마법사가 필요해! 투나를 데려오자!”
“그 방구석 애호가는 절대로 밖에 안 나오려고 그럴걸, 하여튼 대규모 파티는 이래서 좋다니까. 좀 부럽다. 당신들, 남은 알 다 챙겨왔어?”
뒤따라온 르클레르의 멤버들이 저마다 알을 하나씩 들고 있다. 어미의 눈을 돌리려고 일부러 남겨둔 것들이었다.
“상도덕 적으로다가 당신들이 격추한 와이번의 소재 조금은 우리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애초에 우리가 먼저 작업하고 있던 거잖아.”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꼬마 인형.”
“캐롯이야. 저기 떨어뜨린 와이번 어떻게 할 거야? 날개 피막 우리가 가져도 돼?”
“알만 챙기러 온 거다. 우리는······.”
옆에서 남자 모험가 하나가 르클레르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였다.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신발 밑창?”
“오오, 르클레르는 이 바닥을 잘 모르는구나. 친구들 덕으로 일하는데?”
캐롯을 슬쩍 쳐다봐 준 르클레르가 역으로 제안했다.
“차라리 오늘만 같이 활동하는 건 어떨까? 와이번 소재가 구두 제작에 사용되는지는 몰랐다. 응? 아리에테.”
“나를 보고 말하지 마라. 나는 네가 싫다.”
“섭섭한 소리를 하는 걸? 이 가슴이 아파지려고 해.”
둘이서 또 티격태격하려는데 파티 고문 캐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같이 하자.”
“응?! 캐롯!”
“오, 말이 통하는 인형이로구나.”
캐롯이 웃었다.
“히히,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안 그래도 돈이 좀 필요했는 걸? 우리는 한 사람만 참으면 되거든?”
찰칵,
투구의 마스크가 열리고 아리에테의 우거지상이 나타났다. 르클레르를 내려다보며 아리에테는 커다란 손가락을 들었다.
“이번만 같이 할 거다! 이번만!”
“음, 그래.”
르클레르는 우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아리에테의 겨울 기사단과 르클레르의 파티는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눈치 볼 것 없어! 모두 챙겨!”
망을 보던 모험가가 외쳤다.
“어미가 온다! 남서쪽!”
쿵쿵쿵-!
인원이 충분해서 빠른 탐색과 추적, 그리고 선제공격이 이어진다. 투창을 들고 도움 닿기를 하던 오토마톤들과 2.5미터짜리 자동 갑옷의 아리에테가 냅다 창을 집어던졌다.
“이얍-!”
후후훙-!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르는 투창들이었지만 와이번은 비행 궤도를 약간 수정하는 것으로 그 지대공 공격을 회피했다. 분명 피했다고 생각했다.
휙-! 퍼퍼퍽!
“캬으오아아!”
하늘로 솟구치던 투창들이 크게 휘어서 와이번의 등에 고슴도치처럼 박혀버렸다.
아래에서 알을 들고 뛰고 있던 캐롯이 좋아라 소리를 질렀다.
“마법사의 원격 표적 유도! 호밍! 우왕 멋져!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