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친구! 151 >
쿵!
“윽! 들어갈 수가 없어.”
흰색 자동 갑옷을 입고 길드로 들어서려다 입구에서 걸린 아리에테가 한참 버둥거리다가 결국 문 옆에 갑옷을 벗어놓고 몸을 빼냈다.
그걸 지나가는 시민이며 모험가들이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베테랑 모험가쯤 되면 외관보다 성능과 효율을 중시하게 되는데 그래서 모험가들의 장비는 언제나 실험적이며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2.5미터짜리 자동 갑옷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거 새 갑옷이야? 이렇게 큰 걸 입고 움직인다고?”
안면 있는 모험가들이 길드를 나서다가 아리에테를 보고 물어왔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앉은 커다란 자동 갑옷을 만져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전에 쓰러뜨린 하드 스킨의 부품으로 만든 것이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다. 크랭크가 만들어 준 것이라.”
“그 친구는 모험가보단 정비사가 어울리겠군.”
열려 있는 등 부분의 내부를 슬쩍 살펴보던 모험가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랍군, 내부에 오토마톤의 인공 근육이 설치되어 있잖아?”
“힘은 어때? 출력은 어느 정도지?”
“강도는?”
주변의 물음에 정신이 없어진 아리에테가 두 손을 들고 대답했다.
“어, 자세히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출력과 강도는 일반 오토마톤 수준이니 하드 스킨이 하는 짓을 따라 하지 말라고 주의 받았다.”
그때 앞서서 길드로 들어갔던 캐롯과 지오가 서류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일거리 잡았어! 잉? 뭐함?”
“벌써 의뢰를 골랐나?”
“응! 이번엔 경비대 비룡대에 납품할 와이번 알 수집이야. 이거 돈 됨! 가즈아! 겨울 기사단의 첫 일이다! 출발!”
“출발!”
캐롯의 외침에 신이 난 비타와 코비가 따라 외쳤다. 길가에 세워둔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오는 웃고 있고 보리스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아리에테는 다시 갑옷을 착용했다. 착용이라기보다는 등 부분의 장갑판이 열린 곳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철컥! 찰칵!
인공 근육과 마력 모터의 조합으로 장갑판이 닫히고 2,5미터짜리 대형 자동 갑옷이 일어섰다.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리고 고개를 들어 그걸 쳐다보았다.
“세상에, 멋져!”
“크랭크, 이 친구 공방이 어디라고 했지?”
파티를 꾸며 첫 일을 떠나는 겨울 기사단과는 별개로 새로운 장비에 호기심이 생긴 몇몇 모험가는 정말로 크랭크의 공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간 크랭크는 아르곤 상회 사무실에서 자동수송차량의 불하품을 문의하러 갔다가 최신 일거리 정보를 얻게 되었다.
“무장 강도단이요?”
“요즘 골칫거리죠. 그쪽 모험가들에게 의뢰도 내봤지만 신통찮아요. 조만간 우리 쪽에서 대규모 토벌을 나갈 것 같습니다.”
서류 더미를 앞에 놓고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던 남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카키! 저기 저 친구를 따라가시면 불하 예정품을 보여드릴 겁니다.”
“어? 크랭크 씨!”
남부 출장 때 같이 했던 부차장 카키가 그를 보고 반가워했다.
둘은 커다란 상회의 창고지대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상단 차량은 이제 안 타시는 겁니까?”
“관리실에 사람이 부족해서요. 돌아가면서 대치 근무 중이에요. 크랭크 씨 아는 사람이던데 플루이드라고.”
크랭크가 되물었다.
“플루이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아, 모르시는구나. 지금 만삭이라서 출산휴가 갔어요.”
크랭크가 멈췄다. 앞서가던 카키도 멈춰서 돌아보았다.
“왜 그러세요?”
타칭 소꿉친구 플루이드가 만삭이라니, 크랭크는 참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어릴 적 같은 마을에 살았습니다. 당시 저는 유약한 편이라 그 친구에게 많이 얻어맞았지요. 그런 플루이드가 임신이라니 좀 놀랍군요.”
“하하, 상단에서 그 이야기 엄청 유명해요. 모험가를 두들겨 팬 플루이드라고, 본인은 엄청 싫어했지만. 하하.”
고개를 숙이고 킥킥거리는 카키와 반대로 크랭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염병으로 고향을 등지고 겨우 목숨만 건져서 아르곤으로 옮겨온 것이 바로 어제 일 같다.
수다쟁이 카키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고로 걸어간 그들은 죽 늘어선 차량을 보게 되었다.
“다 왔습니다. 여기서 골라보세요.”
사용 연한이 지난 차량을 슬쩍 살펴보던 크랭크가 카키를 돌아보았다.
“어엇, 이러시면 안 되는데에······!”
그의 손에 금화 몇 닢을 쥐여 준 크랭크가 투구를 숙이고 낮게 말했다
“추천받겠습니다.”
누가 볼까 주변을 살피던 카키는 히죽 웃으며 손짓했다.
텅텅!
다른 차량과 다르게 창고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자동수송차량을 두드리던 카키가 떠들어댔다.
“서류 착오로 정기 수리가 끝나고 현장 투입 직전에 사용 연한이 끝나버린 녀석이에요. 외관은 다소 손보셔야 하지만 구동계랑 마력 엔진은 새것이거든요.”
“좋군요. 이걸로 하겠습니다.”
바로 가격을 치르고 절차를 밟은 다음 차량을 끌고 공방에 도착하자 활짝 열린 입구에 의자와 탁자를 가져다 놓고 오랜만에 찾아온 신관 에리스와 잡담을 나누던 투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오오! 오! 차 뽑은 거야?”
크고 검고 커다란 차량이 그녀들의 앞을 지나가는데 운전석 창문에 어디서 많이 본 투구가 쑥 내밀어져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는 것이 꽤 웃겼다.
도도도 달려온 투나가 주차한 차량을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오으! 오와! 어, 엄청 큰데?”
“아리에테가 술김에 한 소리가 인상 깊었다. 이동 공방. 흥분되지 않나?”
“와아, 이거 상단에서 쓰는 대형 자동마차죠?”
차에서 내린 크랭크가 에리스를 보고 인사했다.
“신관 에리스, 오셨습니까.”
“예, 오랜만이에요. 크랭크, 잘 지내셨어요?”
크랭크는 우락부락한 포징으로 대답했고 에리스는 웃어버렸다.
차 안에 들어가 크고 넓은 실내를 돌아다니던 투나가 실망한 듯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고, 공방은 무리겠는데? 넓긴 한데 자, 장비나 도구를 들여놓기엔 좁아.”
“뒤쪽 짐칸을 개조해서 승객 실을 넓힐 거다. 봐라.”
크랭크의 손가락을 보고 차량 뒷부분의 광활한 짐칸을 돌아본 투나는 두 손으로 볼을 붙잡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호오오오미!”
에리스도 차량을 구경하며 부러워했다.
“와, 이런 대형은 비쌀 텐데 대단하세요.”
“속이 쓰리지만 미래를 향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저질러 보았습니다. 그보다 에리스는 요즘 어떻습니까?”
차량의 승객실을 구경하다가 의자에 다소곳이 앉은 에리스가 빙긋 웃었다. 일상적인 질문을 던진 크랭크는 차량 기자재를 살피는지 바닥에 엎드려 커다란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다.
겨울 출장에서 돌아와 신전의 은혜를 갚은 에리스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크랭크의 소개로 파티 몰리 마법사단에 들어가 활동을 이어 나갔다.
강력한 치유는 물론 화염병을 던지는 공격 스킬을 가진 신관의 합류 덕에 몰리 마법사단은 대형의뢰를 연이어 성공시켜 요즘 길드에서 주목받는 중형 모험가 파티로 급부상 중이었다.
“그 때문에 최근 파티 멤버가 과로로 쓰러져서요. 잠시 쉬는 중이에요.”
몸을 일으킨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과로요? 누구입니까?”
“레나요. 강화 인간은 체력 소모가 극단적이고 회복도 쉽지 않더라고요.”
“가, 강화 인간?”
투나가 끼어들었다.
“치, 친구 중에 가, 강화 인간도 있었어? 에리스는 친구가 많구나. 부, 부럽다.”
“소개해드릴까요? 부끄러움이 대단히 많지만 착하고 예쁜 아가씨예요.”
“오오! 친구! 부, 부탁해. 강화 인간이랑 친구! 흐흐흐, 가, 강화 인간의 체모와 손톱은 마법약 재료로 쓸 수 있거든.”
신관 에리스가 웃는 얼굴로 이마에 세로줄을 만들었다.
그걸 보고 깜짝 놀란 투나가 변명했다.
“으, 아, 아니.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어차피, 계, 계속 자라니까······!”
듣고 있던 크랭크가 일어섰다. 그는 투나를 데리고 승객실 구석으로 가서 무어라 쑥덕거린 다음 다시 돌아와 에리스를 보았다.
“우리 공방 최고의 약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레나의 병문안을 다녀오시지요.”
크랭크의 곁에선 투나는 양 손가락을 브이로 만들며 히죽거렸다.
“흐히히, 브이브이.”
크랭크가 자동수송차량의 개조 방향을 잡는 동안 투나는 에리스를 따라 레나의 병문안을 나갔다. 호위로 샤를도 따라왔다.
“룰루루~! 가, 강화 인간, 강화 인간, 으히히흐히히! 오, 오랜만의 강화 인간.”
곁에서 걷고 있던 에리스는 대단히 놀라운 기분이 들었다.
지금 투나는 팔다리를 휘적휘적 흔들며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산책을 나가는 모양새라서 그녀의 대인공포증을 알고 있는 에리스는 장족의 발전을 이룬 그녀가 신비로우면서도 대견했다.
그래서 좀 에둘러서 그녀를 칭찬했다.
“와, 투나, 날씨 참 좋죠?”
앞서서 걷던 투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본다.
“으, 응!”
이제 저 말더듬이만 고치면 되겠다 싶었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투나의 개성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애덤과 레나가 묶고 있는 마리아의 여관으로 찾아간 두 사람은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탕탕-!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애덤이 얼굴을 드러냈다.
“에리스?”
“안녕하세요. 병문안 왔어요.”
오는 길에 투나의 단골 빵집에서 사 온 빵을 내밀자 애덤이 에리스의 곁에 서 있는 투나와 샤를을 쳐다보았다.
“이건······ 샤를 같은데?”
“와, 알아보시는 거예요?”
에리스가 놀라워했다. 빵 바구니를 받아든 애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투나를 보았다.
“심부름 다니는 걸 여기저기서 몇 번 봤어요. 그럼 이 사람은 투나겠군.”
“오, 오오. 바, 반가 와요. 나, 나를 알아?”
애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람들은 방 안으로 들였다.
“캐롯 같은 수다쟁이랑 알고 지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디다.”
투나와 에리스는 서로를 바라본 다음 히히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소녀 취향으로 귀엽고 예쁘장한 장식물과 카펫, 커튼 등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투나가 황홀경에 젖은 얼굴로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중얼거렸다.
“호오오, 와, 완전 취향이야. 내, 냄새도 좋아. 킁킁.”
“투나, 투나.”
에리스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투나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요즘은 포션 같은 걸 먹여도 피로가 쉽게 가시질 않더라고요.”
애덤이 테이블의 자리를 권했지만 투나와 에리스는 앉지 않았다.
“나, 나 좀 봐도 돼요?”
“예?”
에리스가 끼어들어 설명했다. 크랭크가 보내왔다는 말에 애덤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투나는 곧바로 잠든 붉은 머리 레나의 눈알과 입을 벌려 내부를 살피더니 목의 경동맥도 짚어 보고, 몸도 마구 더듬었다.
“우, 우와. 피부결 좋아. 보들보들해.”
침대에 걸터앉은 투나가 상의가 반쯤 벗겨진 레나를 놓고 에리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에리스는 이마에 세로줄을 만들며 손짓했다.
“애덤도 있으니 그만 해요.”
“나는 괜찮아요. 같이 지내다보니 자주 보니까.”
“호곡?!”
“어머나.”
투나와 에리스가 당황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한 애덤은 조금 늦게 얼굴을 붉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옷 갈아입는 거라든지!”
“오, 옷 갈아입는 걸 본다고요?! 역시 두 사람······!”
에리스가 두 손으로 볼을 감싸고 흥분했다. 애덤은 이제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같은 방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레나는 어릴 적부터 잘 아는 동네 누나 같은 거예요.”
“호곡! 귀, 귀여운 나, 남동생!”
“연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