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겨울 기사단! 150 >
“아이, 말도 마, 그 르클레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우리 일하는데 계속 난입해서는 훼방을 놓지 뭐야. 일단 씻자! 비린내 나니까, 오늘은 오토마톤도 다 같이 씻어야 해. 내가 이래서 도마뱀 사냥을 싫어하는 거야.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해.”
보일러를 가동하고 물통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단체로 목욕을 시작했다.
그동안 크랭크는 저녁밥을 준비했고,
공방 안에 빨랫줄을 걸고 세탁한 장비며 전투복을 걸어둔 사람들은 이제 작업장 근처 소파와 의자가 마련된 자리에 모여 앉았다.
전투복을 세탁한 오토마톤들은 아리에테나 투나의 옷을 빌려 입었고, 캐롯은 아동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밥을 먹으며 아리에테가 울분을 표출했다.
“그 녀석은 왜 매번 내 일을 방해하는 거지!”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라며? 같은 여자를 홀리다니 정말 마성의 매력이야.”
“나는 싫어! 오늘 만해도 내 가슴을······! 하여튼 용서할 수 없다!”
빵에 햄을 얻어 옴뇸뇸 씹던 투나가 흐뭇하게 웃으며 가져온 나무 물통들을 쳐다보았다.
“그, 그래도 양질의 점액을 얻었어. 조, 좀 피곤하지만.”
“좋은 자세다. 공방 안에만 있지 말고 자주 바깥나들이를 나가도록 해라.”
캐롯이 끼어들었다.
“우리 그거, 자동 마차는 언제쯤 마련해? 같이 간 모험가 중에 자동 마차로 거점을 잡고 아예 거기서 캠핑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음, 이거 완성하고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일 끝나면 경비대랑 한 바퀴 돌아보자.”
“오우! 우리도 장비 잔뜩 싣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캠핑하고 그러자!”
무엇인가 생각난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맞다. 크랭크, 부탁이 있다.”
“뭐지?”
무슨 짓을 당하고 왔는지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린 아리에테는 남은 손으로 시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온의 가슴 장갑판의 보강을 요청한다. 빈틈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장갑판이 열리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의수의 출력도 올려줘.”
생각지도 못한 결함에 시온을 쳐다보던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일은 저걸 입고 나가라. 거의 다 됐다. 투나 그 신경계 연결을 저것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응. 바, 밥 먹고 해놓을게.”
“내일 해도 된다. 피곤할 테니까. 그런데 물도마뱀 의뢰는 어떻더냐? 계속할 건가?”
아리에테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네 말대로였다. 도마뱀은 크고 사납고, 거칠고, 점액은 미끌거리고 냄새도 심했다. 솔직히 가고 싶진 않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르클레르, 이 망할 녀석! 그 녀석 가슴도 엉망으로 문질러 버릴 테다!”
저녁 내내 온몸으로 분노를 표현하던 아리에테는 캐롯에게 안겨 겨우 잠이 들었다.
이 와중에 크랭크와 투나는 밤을 새워 작업을 마무리했다.
* * *
그렇게 이튿날.
물도마뱀 포획 의뢰가 진행 중인 아르곤 북동부 호수 부근에서 캠핑 중이던 르클레르가 정오쯤 마차를 타고 다시 돌아온 아리에테를 맞이했다.
“오오! 나의 귀염둥이! 내 손길을 잊지 못해 또 왔구나. 으흐흣!”
“닥쳐엇!”
뭔가를 주무르는 듯 양손의 손가락을 몹시 망측하게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아리에테가 적개심을 불태웠다.
짐칸에 실린 천 무더기를 들추다 말고 주먹을 휘두르는 그녀를 보고 히죽히죽 웃던 르클레르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마차에 실린 천 무더기가 움직이더니 짐칸에서 일어선 것이다.
쿵-!
커다란 다리를 바닥에 내리고 선 물건은 일전에 파괴한 하드스킨 오토마톤의 몸체를 활용한 것으로 크랭크는 근력 보조 자동 갑옷이라고 아무렇게나 이름 붙였다.
내부에 들어간 아리에테가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 움직인다. 움직여. 역시 크랭크!”
기본적인 사용법이나 내부 구조에 있어서는 완전히 시온의 상위 호환으로, 신경계 링크로 조작하고 프레임도 외골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가벼워졌지만 덩치는 그대로였다.
다만 범용 장비이기 때문에 아리에테 전용은 아닌지라 그녀가 사용하려면 의수와 의족을 착용해야 했다.
“어머나, 저게 뭐죠?”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아니네? 투구 안에 여자 얼굴이 들었는데요?”
구경하던 엘프들과 모험가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철크럭, 텅-! 철크럭, 텅-!
영락없는 하드스킨 오토마톤이 되어 나타난 아리에테를 보고 르클레르는 오히려 좋아했다.
“으하하하! 굉장하구나, 용사여! 나를 쓰러트리려는 그 노력이 참으로 가상하······!”
촤아악!
별안간 쏟아진 커다란 파도에 휩쓸린 르클레르는 호숫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르클레르!”
주변에서 물도마뱀 사냥을 하고 있던 그녀의 동료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어푸푸-!”
물에 쫄딱 젖어버린 르클레르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얕은 호숫가에 선 아리에테가 자신만만한 얼굴을 드러내고 음흉하게 웃음 지었다.
입고 있는 자동 갑옷이 워낙 커서 얼굴도 반 정도밖에 올라오지 못했지만, 쌤통이라는 그 눈빛만은 확실히 드러났다.
“날도 더운데 우리 물장구 좀 칠까?”
“음후후! 어제의 복수인가? 잊고 있나 본데,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들! 공격하라!”
촤아악! 촥!
“우오오오!”
“으이야아아압!”
뙤약볕이 쏟아지는 6월의 한낱, 난데없는 애어른들의 물장구 대회가 시작되었다.
“저런, 참 신났네?”
“저런 굉장한 갑옷 병기를 물놀이에 쓰다니 좀 바보스럽긴 하다.”
“그것보다 저 바보들 좀 말려봐라. 도마뱀이 다 도망가잖아.”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호수 물가 주변을 탐색하던 모험가들은 일하다 말고 아리에테가 입고 나타난 자동 갑옷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와, 크랭크가 만든 거라고? 대박인데?”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데. 방어력이나 전투력은 어떻게 되지? 관심 있다.”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래냐?”
캐롯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나도 몰라요. 만든 본인한테 물어봐야 할 듯? 자자! 저 어른이들은 놔두고 일이나 합시다!”
남은 파티 멤버를 재촉한 캐롯은 서둘러 작업을 개시했다.
“저거 완성하고 조정하느라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어! 반나절 안에 오늘 일당 채워야 해! 서두르셈!”
때마침 속옷만 입은 코비가 커다란 도마뱀을 온몸으로 붙잡아 생포해 오더니 말했다.
“그런데 이건 못 먹어요? 맛있게 보이는데.”
“아, 그렇지. 크랭크가 도마뱀 잡아 오지 않았냐고 시무룩했었어. 몇 마리 가져가자. 구워 먹으면 맛있데.”
“끼약호우!”
“도마뱀 구이요?”
우람한 근육을 드러낸 지오와 함께 호수의 물가에서 도마뱀을 잡느라 역시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던 보리스가 기겁했다.
“이 야만인들!”
하지만 그 생각은 일 끝나고 저녁 시간 크랭크의 공방에서 벌어진 바비큐 파티에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양념한 도마뱀 꼬치구이를 손에 쥔 보리스는 한 손에 병맥주를 들고 놀라워했다.
“맛있어! 왜 맛있지?! 도마뱀인데!”
“캐롯 특제 양념 덕분이지, 많이 먹어.”
“내일 또 가시죠!”
양손에 꼬치구이를 든 코비가 신이 나서 외쳤지만 지오가 고개를 저었다.
“내일은 우리 이사해야 해.”
“아! 그렇지.”
캐롯이 물었다.
“오오? 이제 결정됐나 봐?”
“예, 이래저래 그렇게 됐어요. 파티 홈도 처분할 거고요.”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렴. 그래도 바로 근처니 앞으로 자주 보겠네! 저기, 저 건물이야.”
캐롯이 굽고 있던 꼬치구이를 들어서 창고지대 건너 고층 건물 중의 하나를 가리켰다.
“그래서 여러분께 제안이 있습니다만.”
철야하고 기절했다가 저녁쯤 일어나 회식에 참석한 크랭크가 끼어들었다.
“고정 파티요?”
“그렇습니다. 모양상 여러분의 파티에 아리에테가 들어가는 것입니다만, 리더는 저 것에게 양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이쪽에선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어어······.”
갑작스러운 제안에 보리스와 코비, 비타가 당황했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이게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공방의 주축인 그들이 가진 모든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으로는 부족할지 몰라도 지금의 그들에겐 더없이 고마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시선은 파티 리더 지오에게 향했다.
넷 모두가 어릴 적부터 모험가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다. 지오의 경우엔 얼떨결에 신관이 된 소꿉친구 비타가 야지에서 비명횡사할까 봐 걱정되어 따라나선 축이었다. 코비와 보리스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 농장일 보다 났겠다 싶어 따라나선 것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크게 다치지 않고 버텨낸 것은 리더를 떠맡게 된 지오의 조율이 컸다는 것을 다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오는 환하게 웃었다.
“예, 좋아요. 그렇지 않아도 좀 힘든 참이었거든요.”
“지오······.”
비타가 침울하게 바라보았지만 지오는 푸근하게 웃었다.
“아리에테가 리더를 맡아주시면 전 이제 어깨에 힘 좀 뺄 수 있겠어요.”
“응? 오히려 똥꼬에도 힘 빡줘야 할 판에 무슨 소리야? 네가 제일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못 알아듣겠어? 완전 보리스 상위 호환인 이게······ 리더가 된다고? 이거.”
음냠냠 거리며 도마뱀 꼬치구이를 맛있게 씹고 있던 아리에테가 버럭 했다.
“이거라니! 캐롯, 너는 부디 네 주인님을 닮지 말아 줬으면 한다.”
“아······.”
예쁘장한 얼굴로 입가에 양념을 잔뜩 바른 채 도마뱀 꼬치구이를 음냠냠 먹고 있는 아리에테를 멍한 얼굴로 쳐다보던 지오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상황이 우스워서 비타마저 고개를 돌리고 킥킥 웃어버렸다.
잠시 후, 지오는 아리에테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쨌든 잘 부탁드립니다. 아리에테, 최대한 보조할게요.”
“음, 부족하지 않은 리더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부족해도 되는데 부끄럽지 않도록 해줘요.”
보리스의 말에 아리에테가 코를 벌렁거렸다.
“코비라면 몰라도 네겐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구나.”
“뭐요!?”
화를 내는 보리스를 보고 다들 웃어버렸다. 크랭크가 맥주잔을 들었다.
“그럼 새로 출발하는 파티를 위해.”
“잠깐만! 그 전에 우리 파티 이름은 뭐예요?”
눈에 핏대가 솟은 보리스의 말에 캐롯이 당차게 외쳤다.
“당근 타이거즈! 2회차!”
“그건 안 돼! 새 이름으로! 우린 내내 파티 명 없이 활동했다고!”
“그럼 좀 신선하게 양배추 파이터즈!”
“야채 가게라도 차릴 셈이야?! 진지하게 해라!”
캐롯의 외침과 보리스의 절규를 들으며 히히 웃던 비타가 말했다.
“아르곤의 해바라기나 민들레는 어때요? 꽃 이름으로.”
아리에테도 끼어들었다.
“아르곤의 초원 기사단! 뭐든 기사단이 들어가야 한다.”
“그럼 햄스터 기사단!”
“아르곤 새벽 운동회.”
“괴식 탐구회!”
도마뱀 꼬치구이에 홀딱 빠져버린 코비의 말을 들은 크랭크가 손을 든다.
“괴식 탐구회 1표.”
“어이! 요리회가 아니라고!”
“으히히! 재, 재미있다.”
여기저기서 기상천외한 파티 이름이 쏟아지는 걸 듣고 있던 투나가 신나했다.
“넌 뭐 없어?”
캐롯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투나가 입을 열었다.
“어음, 겨울왕국 기사단은 어때? 여, 여기 겨울은 정말 춥더라고.”
“······그거 괜찮은데?”
앞서 나온 것에 비해 비교적 정상 범주라 보리스가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캐롯이 정리했다.
“공식적인 단체명에 왕국이라는 말은 금기어니까 절충해서 아르곤 겨울 기사단 어때? 스팀 레이디라는 위명도 겨울에 얻은 거잖아.”
“평범하지만 절도 있고 강한 느낌이다. 마음에 들어.”
아리에테도 긍정했다. 그녀를 바라본 캐롯이 하하 웃었다.
“와, 기사단장님이시네? 아리에테.”
새삼 감동이라도 느끼는지 맥주잔을 들고 눈을 감은 아리에테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염원이다. 사실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었거든.”
그녀는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아르곤 겨울 기사단, 우리의 미래를 위해 건배하자.”
다들 기쁘게 웃으며 잔과 컵을 들었다. 하지만 크랭크가 훼방을 놓았다.
“너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말했지 않냐.”
“아, 아아······! 너무하는군. 한 모금도 안 되는 건 아니잖아?”
“한 모금도 안 된다.”
울상을 지은 아리에테는 맥주잔을 빼앗은 크랭크의 팔에 매달려 징징거렸다. 방금 전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져 혼란스러웠지만 최근 허당끼 충만한 모습을 어필하고 있는 아리에테니 다들 그러려니 했다.
“으아앙! 한 모금만!”
“얌전히 포기하고 비타랑 같이 우유를 마시세요. 아리에테 어린이.”
맥주잔을 빼앗기고 대신 우유컵을 받아든 아리에테는 몹시 실망한 듯 울상을 지었다.
“으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