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도덕과 윤리! 149 >
캐롯은 손가락으로 그네들이 먹고 있는 과자봉지를 가리키며 여상스럽게 말했다.
“야, 그거 혹시 책 팔아서 바꿔 먹은 거야?”
“이게-! 까불지 마!”
빡! 퍽퍽!
조그만 여자애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애들이 공중에 붕 뜬다. 겁에 질린 제간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때 붉은 눈동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넌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팔푼이.”
“아으······!”
다리가 굳어버린 소년은 오들오들 떨면서 자기보다 키가 큰 소년의 뺨을 후려갈기는 빨간 머리 소녀를 쳐다보았다.
대략 애들을 손봐준 캐롯은 쓰러진 녀석 하나를 붙잡고 책을 어디에다 팔았는지 물어보더니 곧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제간의 목덜미를 붙잡고 또 질질 끌기 시작했다.
“따라와.”
“어으아아-!”
캐롯이 향한 곳은 가까운 헌책방이었다.
“이거야?”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한 다음 책 더미를 가져온 캐롯이 그것을 내밀자 제간이 울기 시작했다.
“어, 맞아! 고마워!”
얼굴을 쑥 들이민 캐롯이 물었다.
“제간이라고 그랬지? 너 몇 살이야?”
“14살.”
“애들은 금방 크더라고? 너도 4년만 지나면 18살 어른이야. 일수로 계산하면 1460밤만 자면 돼.”
책을 품에 안은 제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허리를 편 캐롯은 책방 주인에게 값을 치르고 나오다가 시선을 끄는 책들을 발견하고 그것들도 함께 샀다.
“자, 또 따라와.”
“아으아-!”
목덜미를 끌고 다시 아까 그 골목길로 돌아가자 애들은 여전히 기절한 채였다.
제간은 겁에 질린 채 캐롯을 쳐다보았다.
“어, 꼭 해야 해?”
“응, 아니면 너도 맞는다? 주먹은 만능의 율법이야. 정말 못 하는 게 없지.”
동그란 붉은 눈동자와 솟아오른 앙증맞은 주먹에 찔끔한 제간은 숨을 들이키더니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시, 싫어, 싫어! 싫어!”
몇 번 소리를 지르다가 자신감이 붙은 제간은 숨을 크게 들이키고는 힘껏 소리쳤다.
“싫어어어엇! 안 돼에에에! 안 돼!!”
빵 주머니를 손에 쥔 캐롯은 한 손을 허리에 올리고 고함을 지르는 소년 제간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는 얻어맞은 아이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라는 개성의 시작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서부터 시작된대. 자신감을 가져. 정말 싫으면 싫다고 외치면서 살아.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놈들에게 휘둘릴 수는 없잖아?”
그간 당해온 울분에 소리를 지르다가 말고 울컥했는지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제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캐롯은 제간이 가지고 있는 책 사이에 작은 책을 하나 더 끼워주었다.
“이건 지금의 나를 만든 책이야. 집에 가서 읽어봐. 그리고 앞으로 잠들기 전에 싫어요. 10번 외치고 자는 거야. 알겠지?”
“으응!”
몸을 돌린 제간은 후다닥 골목길을 벗어났다.
소년을 돌려보낸 캐롯은 이제 뒤를 돌아보았다.
“좀 어때?”
다들 찔끔하며 캐롯의 시선을 피했지만 몇몇은 욕설을 씨부렁거리며 캐롯을 노려보았다.
“아직 눈빛이 살아있구나. 만능의 율법이 필요한 걸? 좀 더 때려야지.”
“아, 아니야!”
“으악!”
퍽퍽!
캐롯은 이제 걷어차기 시작했다. 무심한 얼굴로 휘두르는 다리에 걷어차인 아이들이 건물 벽으로 던져졌다가 떨어져서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캐롯은 그들이 한 번쯤 했었을 말을, 혹은 이대로라면 언젠가 입에 담을지도 모를 말을 먼저 말해 보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너희를 구하러 올 사람들은 없어.”
“으아악?!”
적당히, 하지만 애들 수준으로는 죽을 만큼 두들겨 패놓은 캐롯은 주저앉거나 엎드려 훌쩍이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좀 어때?”
무언가를 확인하는지 매번 같은 질문에 애들이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다들 시선을 피하는 것을 확인한 캐롯은 책방에서 사온 작은 책을 그들의 앞에 던져주었다.
“너희들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사 왔어.”
바닥에 떨어진 책으로 시선이 모였다.
도덕과 윤리.
여전히 빵 주머니를 안아 든 캐롯이 말했다.
“거기 적혀 있어, 사람의 행동에서 무엇이 옮고 그른 것인지. 선의 기준은 무엇인지. 너희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사 왔으니까. 어서 읽어봐.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얼굴에 피멍이 든 소년이 비굴하게 물었다.
“이, 읽으면 보, 보내 줘?”
“그거 다 외우면 보내줄 거야.”
“나, 나는 글 모르는데······.”
바닥에 쭈그려 앉은 캐롯이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괜찮아. 귓구멍은 열려 있잖아? 옆에서 말하면 듣고 외워서 대답해. 자, 오늘 밤새도록 여기서 공부하자?”
얻어맞은 아이들은 눈앞의 여자아이가 단순히 겁만 주려는 건 줄 알고 적당히 따르다가 도망칠 궁리를 짜냈다.
하지만 캐롯은 정말로 늦은 밤까지 그들을 붙잡아놓고 도덕과 윤리를 암기시켰다.
“그만 집에 보내줘-!”
짝!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다 또 뺨을 얻어맞은 소년이 바닥을 나뒹군다. 그 등에 슬리퍼를 신은 작은 발을 척 걸쳐 올린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낮에는 몰랐는데, 밤이 되니까 이 작은 소녀의 눈에서 붉은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소름이 돋은 소년 하나가 묻는다.
“너, 사람이 아니야? 넌 누구야?”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붉은 눈의 인형 소녀가 대답했다.
“사람이 낳았다고 해서 꼭 그게 사람이 되는 건 아니더라. 하지만 난 너희들이 사람이 되길 원해, 기회는 공평해야 하니까. 그러니 계속 읽어. 다음은 너야.”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하려면 주변에 올바른 인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손가락으로 지목당한 소년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책을 주워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책의 내용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지만 캐롯도 알고 있었다.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이던 캐롯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렇게 알차게 선의 기준을 잡아줘도 나쁜 놈은 결국 나쁜 짓을 하게 되더라고. 됐어, 그만 읽어.”
지친 듯이 한숨을 쉬며 책을 내린 소년들의 앞으로 큼직한 종이봉투가 툭 하고 던져졌다.
“내 친구 주려고 산 건데 너희들 줄게. 배고프지? 먹어.”
꼬박 1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잡혀있던 소년들이 비틀거리며 내용물을 꺼내 나눠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흐으윽!”
“으흑!”
훌쩍이는 애들을 보고 어둠 속에서 붉은 눈만 뜬 인형 소녀가 말했다.
“경고하는데, 너희들 아까 그 애랑 친하게 지내지 마. 말도 걸지 말고, 알아들어? 안 그러면 우린 또 만날 거야. 그때는 짤 없어. 다시는 집에 못 갈 줄 알아.”
끄덕끄덕!
“그리고 2~3년만 지나면 너희들도 어른이 될 거야. 어떻게 될지 참 기대되네. 기다릴게.”
말을 마친 캐롯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당장 죽는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골목길을 벗어난 캐롯이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인맥 관리에 시간을 너무 들이는 걸?”
슬쩍 뒤를 돌아본 캐롯의 무심한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폴짝 뛰어서 그 커다란 몸에 매달렸다.
“우왕! 주인님 나 찾으러 온 거야? 감격!”
“오다가 골목길에서 애들을 봤는데. 네가 그런 거야?”
캐롯이 히히 웃었다.
“씨앗을 뿌렸어. 어디, 콩이 자랄지 팥이 자랄지 두고 보자고.”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
“그래도 기회는 평등해야지. 내기할까? 저 애들은 어디서 나타날까? 우리 앞? 아니면 뒤?”
크랭크의 곁을 걷고 있던 캐롯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크랭크가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밤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아리에테가 달려왔다.
“캐롯-! 어딜 갔었어!”
“아휴, 우리 딸, 엄마 보고 싶었어?”
발돋움한 캐롯이 호들갑을 떠는 아리에테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크랭크가 그녀들의 곁을 지나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콩을 심은 곳에는 콩이 난다. 뒤에 10만 리즈.”
“오호! 내기 성립! 저 애들 이름 다 기억해 놨어. 나는 아리에테를 건다.”
“응? 무슨 말이지?”
앞서서 걷던 크랭크가 갑자기 돌아왔다. 그는 아리에테를 내려다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이건 싫은걸, 뭣에 쓰나.”
“그건 모르는 소리야. 우리 아리에테가 얼마나 쓸모가 많은데? 요즘 요리도 꽤 한다고?”
“‘잘’을 빼먹고 말하는 군, ‘잘’을.”
아리에테는 영문을 몰랐지만 둘이서 또 자길 놀리는 것이 분명했기에 소리를 꽥 질렀다.
“뭔지 모르지만 너희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다!”
색색의 등불이 떠오른 호화로운 밤거리,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 * *
새벽 3시, 크랭크가 눈을 떴다. 침대 주변으로는 커튼이 쳐져 있지만 소리는 다 들린다. 잠결에 아리에테의 잠꼬대와 투나의 이가는 소리가 몹시 흥겨울 지경이다.
잠잘 때 투구 대신 쓰고 자는 천 주머니를 뒤집어쓴 채로 침대에서 내려온 크랭크는 커튼을 걷어낸 다음 작업장으로 향했다.
“오? 일어난 거야? 좀 더 자지 않고.”
대기시간 동안 앉아서 뭔가를 쓰거나 책을 보고 있던 오토마톤들이 고개를 돌린다. 그들의 앞에서 거창하게 하품을 좀 한 크랭크는 작업장에 반쯤 조립된 물건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공구를 집어 들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음, 충분히 잤다. 이걸 빨리 완성하고 싶어서.”
캐롯이 차를 끓여서 가지고 왔다.
“다들 자니까 그거 벗고 마셔.”
“음.”
머리에 쓴 두건을 벗고 잠시 후릅 거리는 그를 샤를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캐롯이 히히 웃었다.
“신기해?”
“주인님의 얼굴은 자주 볼일이 적어서 그렇습니다.”
슬쩍 고개를 돌린 크랭크는 샤를과 시선을 마주하더니 컵을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끼릭끼릭.
“안 돼! 안 돼에!”
“뽀드득. 뽀드득. 음냠냠······.”
한밤의 공방은 요즘 고요하지 못하고 부산한 편이다.
작업하다 말고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최근 이런 분위기인가?”
“그렇지, 다들 잠버릇이 나빠서 큰일이야. 슬슬 아침이네, 다들 깨워서 준비해야겠다. 오늘은 투나랑 샤를도 같이 나가니까 준비해.”
“알겠습니다.”
덜컹-!
공방의 문을 열자 푸르스름한 주변 광경과 함께 시원한 아침 공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캐롯이 아리에테와 투나를 흔들어 깨우는 동안 샤를은 간단하게 아침을 차렸다.
비몽사몽 아침을 주워 먹고 좀 씻고 준비를 마친 사람들은 공방 앞으로 배웅 나온 크랭크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
마주 손을 흔들어 그들을 떠나보낸 크랭크는 고개를 돌려 창고지대의 공터를 바라보았다. 르클레르 파티의 수송차량은 어제쯤 자리를 비우고 떠나버렸다.
찌뿌드드한 몸을 쭉 펴서 기지개를 켠 그는 이제 바지와 셔츠를 훌훌 벗더니 검정색 속옷 차림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팔굽혀 펴기, 버피, 아령, 스쿼트, 마지막은 달리기······.
“훅훅!”
2시간 알차게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크랭크는 찬물로 몸을 씻은 다음 옷을 갈아입고 다시 공구를 잡았다.
이제 정말로 조용한 공방, 공구 소리만 요란하다.
아무도 없는 공방.
이 얼마만의 고요인가.
공방의 문을 닫고 잠가버린 크랭크는 투구를 벗은 다음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에 매진했다. 식사도 대충 주워 먹어가며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 덕분인지 작업 속도도 배 이상 빨라져서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는 거의 몸체 조립이 완료된 상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때쯤 일하러 나갔던 가족들도 돌아왔다.
쾅쾅!
“문 열어!”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투구를 뒤집어쓰고 걸어가 문을 열자 후줄근하게 젖은 사람들이 서 있다.
이 와중에 아리에테는 또 울상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