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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48화 (148/329)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주정뱅이! 148 >

아리에테를 크랭크에게 떠넘긴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너희들 예정 있어? 한가하면 임시 파티로 같이 퀘스트 하러 가지 않을래?”

“오? 뭔데요?”

코비가 물어보자 캐롯은 음흉하게 웃었다.

“몸은 좀 고되지만 쉬운 일이야.”

당장 할 일이 없었던 지오의 파티는 흔쾌히 참가 의사를 밝혔다.

“어서 돈 벌어서 이사 가자!”

“와! 맞아요! 어서 말똥 냄새에서 벗어납시다!”

“아 그거 말인데 친구들.”

제임스가 끼어들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험가 운송업으로 돈을 좀 벌어들인 그는 이제 숙박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모험가 기숙사요?”

“그래, 자네들 같이 젊은 친구들로만 받아들일 생각이야. 식당도 운영할 거고, 방세는 협의지만 어떤가? 이참에 집 보러 가보지 않겠나? 바로 요 앞인데.”

초보 모험가들이 급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게 말이에요.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파티 홈을 차리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맞아. 일하고 와서 쓰러질 것 같은데 요리에 세탁에, 역시 파티 홈은 좀 더 준비를 가지고 나서 해야 할 것 같아.”

늘어진 아리에테를 번쩍 안아 든 크랭크도 다가왔다.

“술주정뱅이도 받아주십니까?”

“으어아어! 크랭크으으으······!”

“으음, 그건 좀 협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퀘스트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길드에 다녀온 로테의 보고를 듣고 뒷정리를 하던 캐롯이 기뻐했다.

“오호, 모레구나. 하루 쉬고 갈 수 있겠네. 그럼 내일은 쉬는 날이네?”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응, 제임스 아저씨네 하숙집 구경 갔어. 롤 아저씨네 빵집 근처래, 이리와 정리 좀 하자.”

“알겠습니다.”

캐롯과 샤를, 로테는 분주히 움직여 정리를 마쳤다.

믿음직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만취해 인사불성이 된 아리에테는 침대에 기절한 상태로 방치 중이었다.

“내가 그때 네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넌 지금처럼 행복한 얼굴로 잠들지 못했을 거야.”

술에 취해 침대에 곯아떨어진 아리에테를 내려다보던 캐롯의 중얼거림에 그녀가 반응했다.

뿌우웅······!

“크흣흐흐하하하!”

평화로운 방귀 소리에 좀 깔깔거린 캐롯은 담요를 덮어주고 공방을 나왔다. 문이 활짝 열린 입구 앞에 서서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가 곧 뒤를 살폈다.

샤를과 로테는 부엌을 오고 가며 정리와 설거지를 하고 있고, 집 구경 간 사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고 있는 붉은 노을 너머로 별안간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따뜻시원한 저녁 봄바람이었다.

작은 콧구멍을 벌렁거린 인형 소녀가 하하 웃어보았다.

“음, 좋네. 정말 좋아. 지금 이 기분 잊지 말자, 이대로 계속 행복한 인간을 흉내 내며 살아가자.”

이제 두 팔을 들어 올린 작은 인형 소녀는 하늘의 노을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 * *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아리에테는 끔찍한 숙취에 시달렸다.

“으어어억, 속이 쓰리다······.”

크랭크는 새벽부터 작업장에서 뚝딱이고 있다. 저 망치질 소리에 머리가 울릴 법도 하지만 아리에테는 전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방을 옮기라고?”

샤를이 가져다준 꿀물 잔을 두 손에 받쳐 든 아리에테가 크랭크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좀 떨어진 곳이지만 공방 안이라서 목소리를 높이면 대화 정도는 가능했다.

“그래, 거기 방을 얻어서 지내도록 해라. 여긴 여자가 지내기엔 너무 삭막하다. 투나도.”

투나는 아직도 한밤중이라서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을 테지만 몸이 말이 아니었던 그녀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돌렸다.

“흥, 싫다. 내 집은 여기다. 쫓아내려 해도 소용없어.”

작업장에서 뚝딱이던 소리가 멈추고 크랭크의 투구가 슬쩍 나오더니 그가 일어서서 걸어왔다.

숙취로 엉망인 그녀의 얼굴 앞으로 무뚝뚝한 투구가 내밀어진다.

“널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네 영향력을 넓히라는 거야. 새로 들어오는 모험가 지망생을 네 휘하로 끌어들이라는 거지. 아리에테 파벌을 만들라는 의미다.”

그제야 확 밝아지는 아리에테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크랭크는 다시 몸을 돌리고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아리에테의 우렁찬 외침이 폭발한다.

“이야압! 오늘도 힘차고 강한 아침!”

“아이, 시끄러워! 너만 아직 아침이야! 지금 대낮이거든?”

작업장에서 고개를 내밀고 버럭 외치는 캐롯을 보고 시계를 보니 확실히 10시가 넘었다.

“어제 과음했나? 오랜만의 음주긴 했다.”

훌훌 침대에서 뛰어내린 아리에테는 씻고 몸단장을 한 다음 시온을 불러서 착용했다.

철컥, 착! 키릭.

“음 역시! 제대로 붙여줬구나.”

멋진 갑옷 여기사가 된 아리에테가 몸차림을 살펴보며 좋아했다.

“어제는 술에 취해 못 갔으니 오늘 가보자. 장차 내 파티룸이 될 곳은 어디지?”

그녀의 거창한 발언에 커다란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몸체를 작업장에 세워놓은 크랭크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작업대 위에 널브러진 종이 한 장에 약도를 그려 주었다.

“오늘 쉬는 날이지? 잠깐 나갔다 와도 돼? 올리브도 보고 인맥 관리 좀 하러 다닐 참인데.”

“음, 그래라. 조립은 샤를만 있어도 충분하다. 곧 투나도 깰 거고, 아리에테, 로테를 호위로 데려가라.”

외출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공방을 나섰다.

캐롯은 올리브를 만나러 가기 전에 아리에테를 따라 제임스의 모험가 기숙사 구경을 따라나섰다. 위치는 상당히 가까웠다.

“여기는 투나가 자주 들리는 빵집이잖아? 음, 여기서 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서, 회색 5층 건물인데.”

“오! 이건 가봐. 아리에테.”

그들의 눈앞에 한창 인부들이 청소며 공사 중인 건물이 나타났다.

안쪽에서 정리를 거들고 있던 제임스도 마침 그들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들 오시게. 구경하러 왔는가? 아리에테, 속은 좀 괜찮나?”

“예, 염려해주신 덕분에.”

좀 부끄러워진 아리에테였지만 눈은 건물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제임스의 허가를 얻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본 그녀들은 생각보다 넓은 내부와 많은 방을 보고 기뻐했다.

“원래 여관이었는데, 외진 곳이라 장사가 안돼서 폐업했지. 그걸 싸게 인수한 거고.”

“근데 아저씨 방이 좀 좁지 않아요? 쪽방 수준인데?”

“1인 1실로 가려고 하는 거야. 다들 제각각 일하는데 오락가락하면 피곤할 테니까.”

“오오, 와! 정말 가깝네? 창문으로 우리 공방이 보여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는 캐롯과 제임스의 곁에서 아리에테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시작인가!”

고개를 돌린 캐롯이 제임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 우리 아리에테 어린이는 신경 쓰지 마세요. 뭔가 야망에 부푼 것 같으니까. 그래서 지오 패거리는 들어오겠데요?”

“음, 1인 1실이라고 했더니 바로 결정하더군.”

“혼자 방구석에서 뭘 하려고 그럴까나. 같이 있는 게 낫지 않아요? 인간은 무리 생활을 하잖아요.”

제임스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무리 생활을 해도 개인 공간은 중요해. 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

“오오.”

구경을 마치고 건물을 나선 캐롯은 골목 끝에 있는 롤의 빵집에 들러서 선물용 빵을 좀 사 들고 올리브에게로 향했다.

“넌, 어쩔 거야?”

캐롯이 사다 준 빵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던 아리에테는 로테를 돌아보았다가 말했다.

“나온 김에 길드에 잠깐 다녀오겠다. 혼자서 다니는 연습을 해야지.”

“기특하네, 아리에테 어린이.”

“음.”

아리에테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빵 주머니를 안은 채 걸어가던 캐롯은 한가로운 도시의 길을 걷다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어떤 소년을 발견했다.

저게 뭐임?

얼굴에 그 나이대의 아이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수심이 잔뜩 피어올라 있어서 캐롯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간 인형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년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걸 눈치챘는지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13~14살쯤 된 것 같다.

“왜?”

일면식도 없는 얼굴이었는지라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캐롯이었지만 그래도 이 소년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사는 게 힘들어도 다리에서 몸을 던지는 건 좀 너무 섣부른 것 같아.”

캐롯은 주섬주섬 가슴에 안은 봉투에서 빵 덩이를 꺼냈다.

“하나 먹을래?”

소년도 멍청한 얼굴로 캐롯을 보다가 슬그머니 그걸 받아들었다.

아르곤 최고의 마당발답게 넉살 좋게 자리 잡은 캐롯은 다리 밑을 흐르는 맑은 개천을 내려다보며 떠들어댔다.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너무 인상 쓰면서 살지 말고 어깨에 힘 좀 빼.”

빵을 씹으며 물가를 내려다보던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 쪽으로 몸을 슬쩍 기울인 캐롯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그 나이에 그렇게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이야?”

“그게······.”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던 소년의 이름은 제간, 얼마 전에 부모님을 따라 개척민 마을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나갔다가 돌아오는 건 흔하지, 개척민 마을 생활은 힘겹거든, 그래서?”

예쁘장한 소녀가 살갑게 달라붙어서 물어보자 용기를 얻은 제간이 어렵게 말을 꺼내 놓았다.

“애들이 괴롭혀?”

“······응.”

고개를 푹 숙인 제간은 급기야 훌쩍이기까지 했다. 좀 한심한 기분이 되긴 했지만 캐롯은 사내자식이 어쩌고 하는 둥의 호통은 치지 않았다.

대신 바싹 달라붙어 목에 팔을 척 걸쳐 올리고 되물었다.

“개척민 마을에서 왔다고 그래? 어떻게 괴롭히던데? 자세히 좀 말해봐봐.”

눈물을 질끈 짜낸 제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캐롯이 얼굴을 찡그렸다.

“학교? 책을 빼앗겨?”

아이들이 철이 들면 보통 가정에서는 다들 학교에 보낸다. 귀족이나 부유한 집의 자식이 아닌 바에야 배우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 문자를 비롯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과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도리를 배운다.

다만 전문적인 교육기관은 대형 방주 도시나 수도 정도에나 있고, 일반시민들의 비율이 높은 보통 방주 도시에서는 신전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전 과목 이수까지 3개월이면 충분하며,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수업료만 제대로 낸다면 몇 번이고 다시 들을 수 있다. 물론 원한다면 좀 더 고급 지식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그런 신전 학교에 오토마톤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캐롯이 그에 해당한다.

마리아의 여관에서 지내던 당시 종업원들이 일을 마치고 신전 학교에 캐롯을 데리고 간 것이 시작이었다.

덕분에 많은 상식과 지식을 쌓았던 캐롯은 그 학교 수업에 필요한 책을 빼앗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끔찍하게 일그러뜨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캐롯이 제간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일어나. 어디야?”

“어어, 아니 그게, 저기······!”

자기보다 큰 남자애를 질질 끌고 골목길로 사라진 캐롯은 잠시 후 6번가의 으슥한 골목길에서 누가 봐도 사나워 보이는 무리의 아이들을 찾아냈다.

뭔가 군것질하고 있던 소년들이 고개를 돌리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팔푼이 같은 자식이 빼앗긴 물건을 찾으러 여자친구 손에 끌려왔다고 생각했는지 킥킥거리기까지 했다.

“엉? 뭐라고?”

“못 들었니? 책 내놓으라고, 그게 없으면 이 녀석이 올바른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당찬 빨간 머리 계집애의 옆에 주눅 들어있는 소년을 알아본 아이들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마저 먹던 것을 입안에 던져 넣고 우물거리며 다가갔다.

“음냠냠, 어쩌지? 그건 이미 우리가 엿 바꿔 먹었는뒝?”

짝! 쿠당탕!

비아냥거리던 소년의 몸이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아 떨어졌다. 그걸 보고 다른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쳐다본다.

다짜고짜 뺨부터 후려친 캐롯이 바닥에 쓰러진 소년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동그랗게 뜬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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