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회식! 147 >
배를 잡고 웃고 있던 아리에테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음, 미안하군. 어쩐지 작년 겨울의 일이 기억나서 말이야.”
작년 겨울, 남부에서 대형 도마뱀에게 삼켜졌다가 내뱉어지는 바람에 미끌미끌한 꼴이 된 걸 놀림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캐롯이 로테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같이 갔었구나. 뭐 잡으러 갔었어?”
“호수의 물도마뱀 조사 임무였습니다. 개체수가 불어나서 조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허쉬가 캐롯을 지나치며 말했다.
“땅콩, 준비해라. 조만간 물도마뱀 사냥 공고 뜬다.”
“도마뱀 점액 뒤집어쓰고 의미심장하게 말해도 하나도 안 멋지거든?!”
“마! 이거 화장품 원료야! 가공하면 부인들 수분 팩으로 쓴다고! 너희들도 했잖아!”
캐롯은 코를 세우면서 대꾸했다.
“그건 돈 없을 때고! 냄새나고 찐득거려서 하기 싫거든?”
“이 자식이 배가 불러서는······!”
보고하러 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린 허쉬가 점액질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뒤로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코를 붙잡은 운영위원에게 붙들려 밖으로 쫓겨나 버렸다.
보고는 밖에서 이루어졌다.
“으헤헤!”
캐롯이 그걸 놀리고 있는데 아리에테가 다가왔다. 그 눈의 반짝임이 눈부실 지경이었는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엘프들도 비슷하게 눈을 반짝이며 자기 파티 멤버들을 조르고 있었다.
“좀 자세히 듣고 싶다. 물도마뱀의 체액이 피부에 좋다고? 화장품이라고?”
“아으아······!”
별로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의뢰에 아리에테가 관심을 가져버렸다. 캐롯은 크랭크가 자주 하는 것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실망에 빠졌다.
캐롯은 그 상태로 말했다.
“여기 특산품 중에 하난데, 여름이 오면 낮에 햇볕이 엄청 뜨겁잖아? 그걸 진정시킬 목적으로 쓰지. 슬라임으로도 만드는데 슬라임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한여름 전에는 그 물도마뱀 피부에서 나오는 체액을 모아서 써.”
캐롯의 설명은 길드 내 모든 엘프들의 귀에 들어갔다.
얼굴에서 손을 뗀 캐롯이 외쳤다.
“미리 말해두지만! 돈은 그다지 안 돼! 하고 나면 냄새도 나고 온몸이 매끈거리기만 한다고!”
“거친 피부가 매끈거리기까지 한다고?!”
이 말은 캐롯이 아닌 주변에서 끼어든 엘프들의 발언이었다. 그래서 캐롯은 두 손으로 다시 얼굴을 가려버렸다.
“언니, 아저씨들 후회할 거예요. 진짜로, 비린내가 얼마나 심한데.”
결국 아리에테의 성화에 해당 공고가 뜨면 자동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미리 이름을 올려두고 둘은 돌아갔다.
엘프들은 자료 수집 차 바깥에서 동료들과 병맥주와 주전부리로 회식을 하고 있던 엘프 유에스에게 몰려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고,
그렇게 부산한 길드로 다시 내려온 르클레르는 아리에테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운 얼굴을 했다가 공고 게시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막 공고 게시판에 단체 퀘스트가 붙여졌다. 자연스레 시선을 옮긴 르클레르는 곧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물도마뱀 체액 수집? 윽, 끔찍하군. 개구리 같은 양서류의 그 진득하고 미끌거리는 걸 따로 모은다는 말인가? 역시 변방의 촌구석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군.”
르클레르가 중얼거리는데 따라온 모험가가 말했다.
“르클레르. 명단에 아리에테의 이름이 있어요.”
얼굴을 찡그린 그녀였지만 공고 게시판의 글귀를 보고 다시 펴졌다. 아니, 펴지다 못해 음흉함이 절로 드러나 침까지 조금 흘릴 정도였다.
“도시의 주요 수출품, 물도마뱀 수분 젤리? 음? 이거 혹시······?”
그때 대기하고 있던 여성 모험가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그녀도 자주 사용 중인 화장품 병을 꺼냈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손바닥에 문질러 보던 르클레르의 눈은 몹시 위험하게 불타올랐다.
진득진득, 미끌미끌.
“으후후흐흐후후! 츄릅! 나, 방금 멋진 생각이 났어.”
그녀의 동료 중에는 엘프를 포함해서 여성 모험가 비율이 높았다. 모종의 이유로 남성 모험가들은 반수 이하였는데, 그들은 다들 캐롯처럼 두 손으로 얼굴 가리거나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 * *
“이런 일이 있었지.”
바로 공방으로 돌아가서 보고 하자 크랭크는 캐롯의 전투복을 수선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호수 물도마뱀 체액 수집이라고? 언제?”
“아직 공고는 안 떴지만 늦어도 모레쯤이 될 거야. 좀 있다가 저녁 먹고 한 번 더 갔다가 올게. 장비 수선은 다 됐어?”
넓은 등에 찰싹 달라붙은 캐롯이 그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바느질이 한창인 전투복을 내려다보았다.
“시온의 팔은 다시 붙여놓았다. 네 전투복도 금방 끝나, 그런데 오자마자 하필 그거라니 괜찮겠나? 위험하지 않지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중노동이다. 그 녀석들 힘이 세.”
“응, 나는 괜찮아! 멤!”
“나도다. 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혀를 빼문 두 사람을 쳐다보던 크랭크는 투구를 흔들었다.
“캐롯은 그렇다 치고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귀엽길래 따라 해보았다. 일손이 더 필요한데, 샤를을 데려가도 되나?”
“샤를은 투나를 보살펴야 해.”
마침 샤를과 함께 수레를 끌고 시장에서 돌아온 투나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 물도마뱀 수분 젤리! 그거 호수나 늪지에 사는 대형 도롱뇽 피부 점액이지?”
“맞아. 자세히 아네.”
“그거 아주 좋아! 스, 슬라임 대용품에, 쓸 곳도 많아. 화장품도 만들고 또······!”
아리에테의 시선이 진지해졌다.
“화장품?”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은 어느새 손을 맞잡고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운 피부를 위해!
“고운 피부를 위, 위해! 으히히-!”
꼬리가 있다면 흔들어댈 지경으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투나가 다시 크랭크를 보았다.
“그, 그거 갖고 싶어! 나, 나도 가도 돼?”
투나가 의외로 참전 의욕을 불사르자 크랭크가 시무룩해졌다.
“네가 가면 이건 누가 도와주지?”
“저, 전부 내 손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걸로 뭘 할 건데?”
종이 몇 장에 그려진 크랭크의 개념안을 살펴본 투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 간단하네. 갔다 와서 마무리할 테니 나, 나도 가게 해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허가한다. 샤를도 따라가라, 무장을 정비해 놓으마. 그리고 아리에테.”
“음?”
크랭크가 걱정스레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서 놀라지 마라. 네 생각과는 다를 거다.”
“응! 응?”
아리에테가 약간 불안해져서 되물었지만, 크랭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얏호! 회식! 회식! 고기! 고기!”
신이 난 코비가 마차에서 뛰어 내려 달려왔다. 캐롯이 소리를 질렀다.
“아직 시작 전이야!”
“준비 도울게요! 바비큐! 바비큐! 크랭크 아저씨! 전에 트롤 고기는 더 없어요? 끝내 줬는데!”
공구를 쥐고 있던 크랭크가 그것을 탓하고 내려놓더니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와이번 본 메로우를 선보일 기회가 왔군요.”
퀘스트를 마친 모험가들의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었다.
“음냠냠!”
“오오! 잘 먹네. 굽는 맛이 나!”
착착!
구이 집게를 든 캐롯이 와하하 웃으며 식신이 들린 듯 주워 먹는 한창나이의 젊은이들을 칭찬했다.
앞치마를 두른 양철 거인은 어디서 뼛조각을 가져와 버터를 비롯한 갖은양념을 하고 불판에 굽더니 내용물을 긁어 빵에 올려 내밀었다.
“와이번 본 메로우, 골수구이 입니다. 자, 야생의 맛을 느껴보십시오.”
보리스와 지오, 비타는 기겁했지만 코비는 그걸 받아먹고 눈물을 흘렸다.
“마, 마시쪙!”
“골수가? 그거 뼛속 지방 덩어리잖아?”
“아냐, 진짜 고소하고 맛있어. 먹어봐, 먹어봐.”
“으악, 싫어요! 몬스터 고기잖아욧!”
비타가 호들갑을 떨자 크랭크가 슬쩍 끼어들어 지적했다.
보리스가 반박했지만,
“편식하면 키가 자라지 않을 겁니다.”
“엥? 이미 다 컸거든요?”
우아하게 포도주를 음미하던 아리에테가 그 말을 듣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모르는 소리, 키는 20대 중반까지도 자란다. 잘 먹고 쑥쑥 자라거라.”
하지만 크랭크를 힐끔 올려다본 아리에테는 이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커지라는 건 아니다.”
잘 구워진 노릇한 쇠고기를 집어 먹던 비타가 히히 웃었다. 그러다 내내 궁금해 하던 것을 질문했다.
“크랭크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크세요? 역시 부모님이 크신 거예요?”
주섬주섬 완성된 골수구이를 빵에 곁들여 투나의 접시에 올려준 크랭크는 아리에테에게도 그걸 내밀며 말했다.
“어머니가 크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보통이셨지만요.”
처음 등장하는 크랭크의 가정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와! 너도 부모님이 계셔? 완전 천둥벌거숭이인 줄 알았는데.”
캐롯의 말에 모두가 킥킥 웃었다. 크랭크는 샤를과 함께 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지금의 휴전선 마을보다 더 위쪽의 개척민 마을에 살았지. 그러다 철이 들 무렵 전염병으로 모두 돌아가셨다.”
치이이이······.
잠깐 동안 고기 굽는 소리만 요란하다.
크랭크도 그걸 느꼈는지 허리를 펴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말했다.
“부모가 없어도 애들은 큽니다. 고생은 좀 했지만, 지금의 나는 오히려 홀가분해서 좋은데.”
캐롯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입을 열었다.
“가족이 없으니 신경 쓸 일도 없다는 거지? 그래서 이런 괴작이 탄생한 거야?”
“그렇지, 바로 맞췄다.”
“불효자군! 하지만 조금 부럽다.”
집안 사정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차마 그걸 쳐내지 못하는 심성 착한 아리에테의 솔직한 마음을 엿들은 불효자 크랭크가 맥주잔을 들었다.
“살아계셨다면 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의 내 인생이 더 소중하다. 나는 살아있으니까.”
“오오! 맞아요! 그래요! 나는 살아있으니까! 내 인생이 더 소중하지!”
비슷한 가정사를 가진 보리스가 감동의 박수를 쳤다.
이후로도 사람들은 담소를 주고받으며 술과 음료와 고기를 먹어댔다.
“제임스 씨, 자동마차 말입니다만 불하품은 경비대에 문의하면 되겠습니까? 신품은 어떻습니까?”
준비해온 포도주를 마셔서 얼큰해진 제임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건 잘 모르겠군. 경비대 말고도 상단 같은 곳에서도 기한이 지난 물건을 민간에 팔곤 하지.”
상단의 대형수송차량을 떠올린 크랭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큽니다.”
“아니! 나는 좋아! 크고 아름다운 것을 원한다! 거기에 투나의 연구실과 크랭크의 작업장을 올리고 모험을 떠나는 거지! 이동 공방! 멋진 생각이지 않아?! 히끅!”
술병 째로 병나발을 불던 아리에테가 술기운이 올라 벌게진 얼굴로 외치고 있다.
“너는 팔다리가 없어서 혈액 순환이 일반인보다 못하니 술은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음냠냠.”
안주로 와이번 골수 구이를 후르릅 긁어먹던 아리에테가 히죽 웃더니 포도주 술병을 들었다.
“제임스 아저씨가 가져온 이것은 좋은 술이야! 건배!”
“건배!”
제임스가 흐허허 웃으며 그녀와 잔을 부딪쳤다.
술을 못해서 내내 과일 주스만 마시던 투나가 히히 웃는다.
“아, 아리에테 술 마시는 거 처음 보네?”
“마실 일이 없을 뿐이지 좋아하는 편이다! 당최! 우리 식구들은 음주를 안 해서! 히끅!”
커다란 식칼로 고기를 썰던 크랭크가 말했다.
“과다한 음주는 근육의 적이다. 특히 너는 내일 후회할 거야.”
“으응? 너도 마시잖느냐?”
“이렇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시진 않아. 지금 우리가 없다면 누가 너를······.”
크랭크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리에테는 히죽 웃더니 말했다.
“맞다. 나는 내 곁에 너희들이 있으니까 만취를 즐겨 보는 거다. 캐롯! 캐롯은 어디에 있어?!”
고개를 휙 돌린 아리에테는 고기를 굽고 있는 캐롯에게 매달려 술주정을 시작했다.
“오왁! 누가 이 주정뱅이를 치워줘!”
“킁킁! 캐롯, 아아,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킁킁! 오늘 밤 내 침소로 들 거라.”
“매일 안고 자잖아! 이 주정뱅이야!”
고개를 번쩍 든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보더니 외쳤다.
“아버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싫은데.”
“으앙! 왜에! 왜에?”
울상을 지으며 몸을 돌린 아리에테는 이제 크랭크의 허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그 주사를 보고 있던 제임스는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고 보리스는 얼굴을 찡그린다.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