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46화 (146/329)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내기! 146 >

따사로운 봄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고 있자니 어쩐지 좋은 일만 잔뜩 생길 것 같은 기분에 콧노래를 부르며 도시를 거닐던 두 사람은, 그 길로 길드를 찾았다가 모험가들의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몸에 딱 맞는 아동복을 입고 길드를 쪼르르 돌아다니는 꼬마 인형이 신선했는지 모험가들이 하하 웃었다.

“캐롯! 전투복은 또 어떻게 했어?”

“주인님이 바느질하고 있떠욤!”

혀 짧은 소리를 내자 사내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리고 갑옷 대신 보통 여자들처럼 가벼운 나들이 복장으로 나타난 아리에테에게도 시선이 집중되었다.

“와, 뭔가. 되게 신선하다.”

“화려한 것도 좋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그리고 그녀에게도 곧 추파가 날아들었다.

“그 허리를 끌어안고 다시 한번 너의 달콤한 입술을 탐하고 싶은걸.”

눈썹이 치켜 올라간 아리에테의 시선이 닿는 곳에 무리를 이끌고 길드로 들어선 르클레르가 있었다.

아까의 치욕을 떠올린 아리에테는 검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돌아가면 잊지 않고 의수의 출력을 올려 달라고 부탁하리라 마음먹으며 으르렁거렸다.

“르클레르, 네게 우리 길드의 운영위원들을 소개해주고 싶다. 여자라고 봐주지 않으니 허튼짓은 가릴 수 있도록 해.”

길드 내부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원 중에는 팔과 다리에 강철 부츠와 장갑을 끼고 있는 경호 인력도 있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난동을 부리는 모험가들의 제압과 질서 유지로 모험가 길드 사무실이 무뢰배 집합소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했다.

그 팔과 다리에 착용하고 있는 강철 보호대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를 슬쩍 눈여겨본 르클레르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머나, 입술 몇 번 빼앗았기로서니 나에 대한 처분이 너무 하는걸? 난 여기 등록하러 온 거야.”

입술을 빼앗아?

남정네들의 귀가 엄청나게 커졌다. 몇몇은 서로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진지한 얼굴로 의견을 교환했다. 자네도 들었나? 우리는 확실히 같은 걸 들었군, 그렇지?

아리에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등록?”

“응! 당분간 이 도시에서 활동해볼까 하고. 네 얼굴도 볼 겸, 우후후~!”

잘록한 허리에 손을 얹고 다가온 르클레르는 이제 아리에테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음 지었다.

그녀는 꽤나 장신이었지만 몸의 균형이 잘 잡혀있어 별로 크다고 느껴지지 않을 뿐 아리에테와는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났다.

“역시, 갑옷을 벗으니 키가 좀 낮아지는구나. 어제는 갑자기 커져 있어서 놀랐지 뭐야.”

몸을 약간 기울여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르클레르를 도전적인 시선으로 올려다보던 아리에테가 허리를 숙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 꼬마 인형을 들어 올렸다.

“소개하지. 명실상부 우리 길드의 마스코트 캐롯이다. 네게 천국을 보여줄 거야.”

“응?”

귀여운 인상의 꼬마 소녀의 얼굴이 갑자기 흉폭하게 일그러지더니 혀를 빼물었다.

“케케케! 안녕, 뽀뽀귀신? 우리 가볍게 프렌치 키스로 타액 교환이라도 좀 해볼까? 응? 낼름낼름!”

“으, 뭐야, 이건?”

르클레르가 조금 당황하며 물러섰다.

얼굴을 보고 그동안 당해왔던 케케묵은 적개심이 부활한 아리에테가 잔인하게 웃으며 캐롯을 던져버렸다.

“이히히! 우리 아리에테를 울린 게 너냐?! 혀를 넣어서 마구 휘저어주맛!”

도끼눈을 하고 공중에 뜬 캐롯이 혀를 빙글빙글 돌리며 르클레르에게 날아들었다.

이 와중에 영문을 몰랐지만 프렌치 키스가 어쩌고에서부터 길드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했다. 몇몇은 주먹을 움켜쥐며 곧 인생 최고의 장면을 보여줄 캐롯을 응원했다.

타탓-!

하지만 안타깝게도 르클레르의 얼굴 앞으로 가로지른 검집 두 개가 캐롯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걸 박차고 뒤로 뛰어오른 캐롯은 마룻바닥에 4발로 착지하며 성난 고개를 쳐들고 음흉하게 웃음 지었다.

“케케케-! 히히힛.”

살짝 놀란 르클레르의 좌우로 오토마톤 두 대가 롱소드를 교차시킨 채 나와 있었는데, 그중 한 대는 얼굴에만 소프트 스킨을 착용한 상태였다.

그걸 알아본 캐롯이 발딱 일어나서는 쪼르르 달려왔다.

“와, 아까 봤던 애들이랑 다르네? 부분 소프트 스킨이야! 멋져!”

“어흐흠!”

길드 운영위원들이 끼어들어 헛기침을 하자 찔끔한 캐롯이 두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싸우는 거 아니에요. 아는 사람이라서 장난 좀 친 거예요.”

“캐롯, 잠깐 좀 볼까.”

“우엥-!”

캐롯이 붙들려가서 한 소리를 듣는 사이, 르클레르를 포함한 그녀의 동료들은 캐롯의 정체를 듣고 놀라워했다.

“오토마톤이라고? 세상에, 전신 소프트 스킨인가? 대단한 완성도야.”

“흠! 거기에 생체 스킨이다.”

팔짱을 낀 아리에테가 코를 세우며 들은 것을 자랑했다.

“당신이 마스터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때 볼을 부풀린 캐롯이 돌아왔다.

“왜 나만 욕을 먹어야 하냐고, 흥칫뿡!”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이 르클레르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우리 아리에테랑 악연 가득한 친구라며? 앞으로 잘 부탁해요. 우리는 파티 당근 타이거즈.”

“당근 타이거즈?”

다들 피식피식거리는 통에 부끄러워진 아리에테가 급히 얼굴을 돌렸다. 가만히 바라보던 르클레르가 허리를 숙여 손을 내밀자 캐롯은 자연스레 그 손을 붙잡았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내 목적은 아리에테를 데려가는 것이다.”

“호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든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말하자 르클레르는 마주 히죽 웃어준 다음 물러났다.

길드 마스터에게 볼일이 있는지 2층으로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캐롯이 물었다.

“자기 절제가 좀 부족해 보이지만 자신만만하고 멋진 여자네, 친해지면 피곤하겠어. 그런데 넌 어쩌다가 저런 거랑 만난 거야?”

“말도 마라. 저 녀석은 학원에서 희대의 난봉꾼이었다. 마음에 든 건 뭐든 가지려고 했지.”

“오오, 그 리스트에 너도 올라간 거야?”

거창하게 한숨을 내쉰 아리에테는 이어서 말하려다 주변에 듣는 귀가 많아진 것을 보고는 헛기침을 좀 하면서 공고 게시판으로 걸어갔다.

“하여튼 그렇게 됐다. 일을 찾자.”

“그래.”

그리고 그녀들은 곧 크랭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있을 때는 몰랐지만, 커다란 그가 없으니 주변 모험가들의 추파와 초대가 멈추질 않았다.

운영위원들도 그런 것까지는 일일이 제지하지 않았고,

“야, 크랭크는 어디 가고 너희들끼리 일거리 찾으러 나왔어?”

“주인님은 좀 바빠서요.”

“잘됐네. 그럼 우리랑 한탕 하러 갈까? 오크 사냥이야.”

“초대는 감사합니다만 좀 쉬운 걸로 하려고요.”

“에이, 그러지 말고~!”

“에이~! 그러지 마시고오~!”

선배들에게 오토마톤이라고 들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요 꼬마인형은 말주변도 좋아서 오히려 그들과 어울려 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선이 보인다고 모험가들은 느꼈다.

“에잇! 같이 좀 가자고!”

“에궁~! 왜 그래요. 진정하시고요. 우리가 들어가면 아저씨네 파티 엘프 언니들이 서로 싸운단 말이에요.”

“뭐? 엘프가 서로 싸워?”

“사랑의 쟁탈전이 시작되는 거죠. 왜냐면 나는 귀여운 죽부인 인형이니까.”

산적 같은 외모의 남자가 버럭하며 몸을 돌리더니 저쪽 테이블에서 흥미진진하게 웃고 있는 파티의 어여쁜 엘프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보시오. 누님들! 가끔은 나를 가지고 싸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잖소? 내 팔을 하나씩 안고 자도록 하는 거요!”

“닥쳐욧!”

“캐롯을 데려오라니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이 인간아!”

퍽퍽!

빙글빙글 웃음 지은 캐롯은 성격 급한 모험가들을 이렇게 뚱딴지같은 소리로 달래서 돌려보냈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그런 막 되어 먹은 모험가들은 이제 거의 없거든?”

“어째서지?”

아리에테의 질문에 길드 운영위원들을 힐끔 돌아온 캐롯은 귀엽게 히히 웃음 지었다.

“그건 비밀.”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구경하던 모험가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테이블의 위에 동전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기를 하는 중이었다.

“어때? 넘어올 것 같지 않아?”

“와, 안되던데요? 그런데 말 정말 잘하던데, 약장사한테 휘둘리는 기분이었어요. 우리 애랑 완전 딴판이더라고요?”

초대를 거절당하고 돌아온 모험가가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고 마스터와 눈을 맞춘 갈색 방열 가발에 하얀 가면의 오토마톤은 명령을 기다리는 듯했다.

어느새 파티 리더가 된 사냥꾼 밀턴이 빙긋 웃으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저 정도로 사고가 유연한 오토마톤은 드물지만 없지는 않지. 당장 기억나는 건 듀칼리온의 도서관 사서 미네르바와 여기 아르곤의 아스칸이라는 하드 스킨이야.”

“와, 아스칸이요? 느닷없이 네임드네.”

밀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느낌이 상당히 비슷했어. 다만 그 덩치 녀석은 주인을 닮아서 그런지 말을 잘 하지 않았는데, 다만 하는 짓이 다른 녀석들이랑은 달라서 인상 깊었지.”

“푸른 망토의 아스칸이라면 저도 본 적 있어요.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벚꽃잎 날리는 가로수 벤치에 앉아서 시집을 읽는 기사님이라니 참 로맨틱하지 않아요?”

엘프 여자 제니아가 감동에 젖은 눈으로 끼어들었다. 듣고 있던 마스터 줄리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많이 읽히라고 하긴 하더라고요. 코코 점장님도 몇 권 추천하시던데.”

“오토마톤 길들이기는 잘 모르지만 거기서 시키는 건 시키는 대로 해. 혹시 알아? 저런 물건이 태어날지.”

밀턴의 엄지손가락은 길드 로비에서 모험가들과 만담을 나누고 있는 조그만 인형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제 그는 최근 파티에 들어온 엘프 제니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요즘 작년까지 만해도 보기 드물었던 엘프들이 범람하고 있다.

“여러분들 사이에 무슨 소문이라도 퍼졌습니까? 어느 순간 동네에 엘프 분들이 많아지셔서.”

“이유가 뭐가 중요 합니까! 저는 좋지요!”

혀가 꼬였는지 젊은 모험가 줄리어스가 급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며 아무렇게나 외치고 있다.

아들뻘에 가까운 젊은이를 돌아보고 짧은 한숨을 쉰 그는 어쨌든 내기에 이겨 동전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흐뭇하게 웃었다.

“물론 나도 좋다. 마법과 활 솜씨는 물론, 눈도 즐겁지.”

듣고 있던 제니아가 음후후 웃는다.

“이 할머니를 보고도 기뻐하다니 역시 인간들은 참 귀엽군요. 사실 여기서 지내시는 분께서 추천하셔서 관광 삼아 나온 거예요.”

“추천요?”

그때 캐롯의 주변으로 모험가들이 더 늘어났다.

“오! 이게 누구인가?”

“응? 유에스 아저씨 아뇨?”

오랜만에 나타난 엘프 남자 유에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캐롯은 그의 뒤에 나란히 선 남자들을 쳐다보았다. 이상한 진득한 체액을 잔뜩 뒤집어쓴 남자들은 득도한 얼굴로 바깥의 노점에서 사 들고 온 병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체리보이즈!”

아리에테도 슬쩍 고개를 돌렸다. 겨울 출장 때 알게 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하하하! 그 꼴은 뭐냐? 어디서 개구리라도 잡고 왔나?”

허쉬를 선두로 그들의 불타는 시선이 웃고 있는 아리에테에게 향했다.

“와, 저분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만큼 우리 꼴이 우습다는 거 아니겠냐?”

뒤에서 맥주병을 붙잡은 이미스가 징징거리고 있다.

“목욕! 빨리 목욕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빨리 의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혼자서만 깨끗한 오토마톤 로테가 끼어들었다. 허쉬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끝난 거 아니거든? 중간 상황 보고 하고 좀 쉬었다가 또 가야 해. 그런데 너무 웃는 거 아님까? 아리에테!”

“트하하하! 으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