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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37화 (137/329)

137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약사 선생님!

크랭크의 변명을 듣지도 않고 그를 곧바로 마을 바깥 절벽의 동굴로 달려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얼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무너진 바윗덩이를 만나버렸다.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 나온 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서 깊은 드워프의 폐광이! 남겨져 있을지도 모를 선조의 자취들이……!”

곧 도끼눈이 된 드워프가 양철 거인을 뒤쫓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는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다는 드워프 광산이었다는군. 역사적으로는 유서 깊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애물단지에 불과하지. 좀 아깝긴 하다만…….”

크랭크를 뒤쫓아 마을로 돌아온 구스타프는 고개를 돌려 대륙을 길게 가로지르는 모양새가 마치 고래 뼈와 같다고 해서 웨일즈 본 산맥이라고 이름 붙은 톱날 산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울컥 화가 치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버럭 화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 산을 무너뜨리다니! 네놈들은 하나 같이 다 제정신이 아니야! 특히 너, 양철 거인과 그 땅콩 인형 말이다!”

크랭크는 묵묵히 엄지손가락을 세웠고, 한쪽 눈을 찡긋 윙크한 캐롯은 혀를 빼물며 머리에 알밤을 먹이는 시늉을 했다.

“데헷, 칭찬해 고마워요. 아저씽. 모험가에게 미쳤다는 말보다 더 큰 찬사는 없데요.”

뚜둑-!

“네 이놈들!”

이성의 끈이 끊어진 구스타프가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고 다시 그들과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몹시 밝아져 있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보였다. 산을 무너뜨려 동굴을 다 막아버린 덕분에 이제 더 이상 외세의 침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며, 사실도 그러했다.

“이제 얼추 일단락됐네. 이제 투나랑 공주님만 오면 할 일이 끝나겠어.”

“캐롯, 그 이야기 들려줘.”

한가롭게 우물가의 평상에 앉아있는 캐롯에게 일과를 마무리한 모험가들을 다가왔다. 고양이처럼 웃음 지은 캐롯은 사람들의 중심에 서서 건너편 모래의 나라에 다녀온 해외여행 썰을 풀기 시작했다.

물론, 크랭크에게 언질을 받았기 때문에 민감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몇 시간 있다가 오지 않았으면서도 캐롯은 그 나라 사람의 옷차림과 풍습을 많이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험가들이 급 호기심이 돋은 나머지 우연히 지나가던 드워프 구스타프 보면서 외쳤다.

“다시 굴 파주시면 안 돼요?! 우리도 가보고 싶은데.”

“맞아요. 원래 아저씨들이 파신 거라면서요?”

“이 자식들이……!”

화난 드워프와의 술래잡기가 또 시작되었다.

이후,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모험가들이 마을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탐색을 나가보았지만 이전 규모의 동굴은 없었고, 있다고 해도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버려 사실상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소식을 접한 몇몇 사이퍼즈 난민들은 어쩐지 시원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왜? 등 돌린 거 아니었어?”

캐롯의 물음에 고디브가 대답했다.

“힘든 일만 겪어왔지만 그래도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거든요.”

“오호. 신기하네, 좋으면서도 싫은 척, 싫으면서도 좋은 척을 하고 살아가네. 피곤하겠다.”

“하하, 정말로요.”

캐롯의 말에 고디브는 어쩐지 실없는 웃음이 나와 버렸다.

* * *

그 일로부터 수일 후, 드디어 투나가 도착했다.

“으어어!”

자동 마차에서 내린 투나는 뜨거운 햇살과 장시간의 여행에 지친 나머지 뭍에 올라온 문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누, 눈이 부셔어. 우, 우우!”

“오우! 투나!”

오늘도 바쁘게 동네를 돌아다니던 캐롯은 광장에 들어선 낯익은 자동 마차와 근처에서 눈을 가리고 온몸을 비틀고 있은 검은 로브의 여자를 보자마자 반갑게 뛰어들었다.

“어서 와!”

“캐, 캐롯.”

눈을 찡그린 투나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캐롯을 껴안고 반가워했다. 아리에테도 달려와 그녀를 껴안았다. 비타도 달려왔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반가워진 투나였지만 크랭크가 다가왔을 때는 분노의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툭탁툭탁!

아리에테의 그것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녀 나름의 원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 나를 이런 곳까지! 끌어올 줄이야! 도, 돌려줘! 바, 방구석의 안락함을!”

“돌아가면 네 연구실을 리모델링 해줄게.”

“으이잉!”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러고도 한참 동안 크랭크의 가슴을 두드리던 투나가 안경을 밀어 올리더니 샐쭉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 오면서 이야기는 들었어. 여기 사, 사람들에게 약초 다루는 법을 아, 알려주면 된다고?”

“상비약 제조법하고.”

“으, 음. 바로 시작하자. 빠, 빨리 해치우고 도, 돌아가야지.”

그러더니 투나는 휘적휘적 걸어서 우물가에 모인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따라온 샤를이 그녀를 호위했다. 한가한 캐롯도 뒤따랐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드 쉬메 이란 카이드 메타로 미리에.”

“으악! 투나가 외국어로 말해!”

“뭐라고?!”

이제 마을의 형태가 거의 잡혀있어서 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리에테도 뛰어왔다.

우물가에서 나물과 열매를 손질하는 처녀들 앞에 쭈그려 앉아 말을 걸고 있던 투나가 그 호들갑에 당황해서 물었다.

“어, 왜, 왜 그래?”

“너, 지금 사이퍼즈 말하고 있는 거 아냐? 할 줄 알아?”

“응, 하, 할 줄 알아. 너희들은 할 줄 몰라?”

도리도리…….

“배운 적 없으니까. 몰라.”

“나도 모른다. 투나, 너는 어디서 배웠지?”

투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 모, 모르겠는 걸? 나, 난 왜 할 줄 아, 아는 거지?”

“아니잇! 자기가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해!”

캐롯이 꺄하하 웃으며 소리쳤지만 피로에 지쳐 눈이 좀 풀린 투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그런 건 문제가 아냐. 하, 할 일을 해치우고 빠, 빨리 집에 가야 해.”

그러면서 다시 처녀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걸었다. 대인공포증을 가진 이전의 투나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기에 캐롯과 아리에테가 몹시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을 처녀들 역시 내내 고디브의 통역을 받아 의사소통을 하다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그것도 같은 여자가 나타나자 대단히 반가워했다.

내친김에 바로 사람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간 투나는 유명한 약초 몇 가지와 그 사용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를 질끈 묶고 고가의 안경을 쓴 투나는 뭔가 대단한 학자 같은 모습이어서 단숨에 인기인이 되어버렸다.

“왜, 왜 다들 날 따, 따라다니지?”

“같은 말을 하니까 그런 거 아님?”

“그런가? 이, 이참에 리즈넷 말도 좀 가, 가르쳐줄까.”

“오오!”

크랭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격이 조금 외향 적이 된 투나였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녀는 곧 오랜 여행의 피로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으어어……. 담요가 푹신해서 참 좋네.”

“여기 특산품이래.”

숙소로 배정받은 집의 나무 침대에 드러누운 투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다음날 잠에서 깬 투나는 안타깝게도 원래대로 돌아와 버렸다. 아침부터 숙소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고 투나는 기겁했다.

엉덩이를 쑥 내밀고 열쇠 구멍으로 바깥을 살피던 투나가 호들갑을 떨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흐, 으흐어억?! 사, 사람들이, 마, 많아! 나, 날 잡으러 온 거야?!”

“와, 투나는 피곤하면 사람이 바뀌는구나, 신기방기, 저 사람들은 어제 네가 말 가르쳐 준다고 해서 찾아온 사람들이야, 어떡할까? 다 돌려보낼까?”

숙소 안에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샤를이 야영 장비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놀러 온 캐롯이 그 근처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대답했다.

투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흔들며 몸을 베베 꼬았다.

“아으아아. 그,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마, 말한 것 같은데. 크, 크랭크 이 나쁜, 추, 충격 요법은 바, 방구석 애, 애호가에게 여, 역효과를 나, 나타낼 수 있다고.”

하지만 차마 찾아온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못하고 결국 눈을 질끈 감은 투나는 샤를의 등 뒤에 웅크린 몸을 숨기고 캐롯의 호위를 받아 문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식은땀을 좀 흘리며 일과를 시작했다.

어제와는 좀 다른 느낌의 선생님이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같은 말을 쓰고 약학에 아는 것이 많은 그녀를 살갑게 반겼다.

일단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약초와 독초, 그걸로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도구가 없어! 도구가! 막사발이라든가! 분쇄기라든가! 여긴 아무것도 없어! 이래선 약도 못 만들어!”

투나가 몸을 비꼬면서 절규했다.

아리에테와 대무를 하던 보리스가 놀라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 방금 말을 안 더듬는 거 아니……? 컥?!”

딱!

머리를 얻어맞은 보리스가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나무 막대를 휘두르던 아리에테가 지적했다.

“한눈팔지 마라. 소년.”

“소년이라니! 내 나이가 몇 인데!”

분노한 보리스가 덤벼들었다.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아리에테였지만 보리스 정도는 한 손으로도 상대할 수 있었다. 자존심 강한 보리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고.

“오오.”

“와아.”

투나 선생님을 따라 약초를 배우러 나왔다가 근처에서 대무 중인 두 사람을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마치 누나와 남동생 같은 미형 남녀의 쌈박질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크랭크는 어디 있어?!”

“응, 저기 작업장에.”

캐롯이 가리킨 커다란 건물에서는 비밀 회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동 베틀을 만들면서 크랭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구스타프가 바닥에 누운 채 손을 내밀었다.

“거기 4번 뼈대랑 볼트 좀 줘, 아드미르 부족이라고 했나, 괜찮은 정보를 물어다 줬군. 양철 거인.”

“이 정보는 물론 저희 공주님께도 공유해 드릴 겁니다만.”

“마음대로 해, 우린 산 너머의 것에는 관심 없다. 하지만 저 끔찍한 모래의 나라에서 말이 좀 통하는 자들의 소재 유무는 중요하지.”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내민 크랭크가 물었다.

“그 부족의 오토마톤도 여러분의 작품입니까?”

부품을 받아 자동 베틀을 조립하던 구스타프가 고정 볼트를 잠그면서 말했다.

“나도 몰라. 엘프들은 전체 계획을 남에게 떠들어대지 않거든. 거기, 7번 뼈대 좀 잡아라. 당길 거다.”

“예, 어르신.”

동료들과 함께 자동 베틀을 조립하는 그를 돌아본 크랭크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계절은 이제 늦봄, 곧 여름이 온다. 방호벽 안쪽의 여유 공간은 닥치는 대로 갈아엎어서 감자를 심어두었다. 그 외 나머지 생필품은 여기 자동 베틀로 만든 면직 생산품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제작과 조립을 돕고 있던 드워프 하나가 물었다.

“이거 베틀이지? 그럼 실은? 실까지 뽑을 참인가?”

“그건 주변 도시의 상단에 의뢰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공주님이 오신다고 하니 그분께 떠넘길 생각입니다.”

“허 참, 생각보다 무책임 하구만.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건가?”

갑자기 포징을 잡은 크랭크의 가슴 근육이 움찔움찔하면서 움직인다.

“우리는 방탕한 모험가,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의 엉뚱한 행동과 발언에 구스타프를 포함한 몇몇 드워프가 실없이 낄낄 웃어버렸다.

하지만 다들 그 방탕한 모험가들의 이름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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