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오로라!
어둠이 깔리고 달이 떠오른 밤의 사막을 걸으며 크랭크가 불평했다.
“그 전갈을 훔쳐 올 걸 그랬나 보다.”
“와-! 크랭크! 저거 좀 봐.”
앞서서 걷고 있던 캐롯이 푸르스름한 달빛이 쏟아지는 고요한 사막을 가리켰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위의 하늘에 초록과 파랑으로 물든 빛의 커튼이 너울거리는 것이 보인다.
“저건 뭐지? 오로라?”
지평선의 사막과 하늘의 오로라가 어우러져 대단히 몽환적인 모습이었지만 크랭크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지금은 저걸 즐길 상황이 아니구나.”
“와! 멋져! 나 오로라 처음 봐! 이런 걸 보려고 모험을 하는 거지!”
산막의 모래 언덕에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캐롯은, 모래밭에 발이 빠져서 곤욕을 치르는 주인님을 무시하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에 감격하고 있었다.
“크랭크! 고마워, 이런 곳에 데려와 줘서. 그리고 또 고마워, 지식을 탐독하라 명령해줘서. 알지 못했다면 나는 저게 뭔지도 몰랐을 거야.”
몸을 돌린 캐롯이 오로라를 배경으로 히히 웃으며 말하고 있다. 푹푹 꺼지는 모래밭에서 다리를 뽑아내던 크랭크가 캐롯을 바라보고는 투구를 가로 저었다.
“나는 제안을 했을 뿐, 나머지는 너의 노력이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니 나 좀 여기서 꺼내줘.”
“히히히! 기분이지, 기분!”
크랭크의 손을 붙잡은 캐롯이 그를 잡아당겼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막을 걸어가자 아스라이 보이던 산맥이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뭐지?”
붉은 눈을 크게 뜬 캐롯이 어둠 속 저편 산 아래를 오고 가는 빛무리를 발견했다. 곁에서 크랭크도 망원경을 꺼내 살피더니 투구 속의 이맛살을 찡그렸다.
“병사들이다. 아까 그놈들 말고도 더 있나 보군. 명백한 내 실수다. 다음부터는 실종자로 처리시켜버리자.”
“쟤들은 어떻게 할까?”
크랭크는 배낭에서 4연장 마력 엔진을 뽑아 들었다.
“이게 진짜로 터지는지 실험해 보자.”
챡챡챡!
“으랴으랴으랴!”
모래사막을 쏜살같이 달려간 캐롯이 병사들을 농락했다.
퍽퍽!
“캬! 이 손맛!”
어둠 속을 거의 날아다니며 방망이를 휘두르는 정체불명 꼬마의 등장에 병사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하는 피해자가 속출하자 병사들이 이를 드러내며 무어라 외치더니 소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데난 카엘! 마카!”
“제란!”
탕-! 탕!
팍! 퍽!
좌우의 모래가 튀어 오르자 캐롯이 멈칫했다. 소총을 견착하고 몰려온 병사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마구 외쳤지만, 어깨에 방망이를 척 걸친 캐롯은 거만한 표정으로 그걸 마주 쳐다볼 뿐이었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린 캐롯이 다시 방망이를 내리고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케케케 웃기 시작했다.
“이별이 무서워서 사랑은 어떻게 하냐?”
우다다다!
탕-!
캐롯이 뛴다. 총구의 사선을 피하며 병사들 사이로 뛰어든 캐롯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토마톤의 장갑판도 뚫을 수 있는 총기로 무장했지만 근접전에서는 아군을 쏠 수도 있다는 점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스르릉!
눈치 빠른 자들은 총을 버리고 검을 뽑아들었지만 착지성이 나쁜 사막에서 어설픈 칼솜씨로 재빠른 오토마톤을 상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으아아!?”
퍽퍽!
더구나 작아서 칼을 휘둘러 맞추기도 벅찬 상대였다.
“아! 으아아! 베인! 쉬 베인!”
“무라카! 베인!”
급기야 괴물이라고 외치며 도망가는 병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와하하하! 덤벼! 칼을 들고 덤비라고!”
퍽퍽퍽!
쓰러진 병사의 가슴에 발을 올리고 무섭게 웃으며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총소리가 오로라가 드리워진 하늘로 울려 퍼졌다.
타아앙-!
“어억!?”
가슴을 붙잡은 캐롯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좀 떨어진 곳에서 무심한 얼굴의 고위 사관이 소총을 바꿔 들고 다가왔다.
“멍청한 놈들, 애먹이긴, 이건 뭐냐?”
“위험합니다! 그 녀석, 오토마타입니다.”
“오토마타? 리즈넷의 기술은 오토마타를 인간처럼 보이도록 할 정도로 발달했나? 놀랍군. 그런데 왜 이렇게 작아?”
“기술자들과 함께 인형 병기도 가져다 왕자께 진상하면 기뻐하실 겁니다.”
소총을 든 남자가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두란, 말조심하게, 이제 그분은 사이퍼즈의 국왕이 되셨어.”
“헛! 그랬지요. 주의하겠습니다.”
표정을 바꾸는 남자는 일전 개척민 마을에 들어왔다가 털린 지휘관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의 상관은 동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간 지 몇 시간 되었나?”
“2시간 지났습니다. 이변이 없다면 절반쯤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몸을 숙인 남자는 쓰러진 캐롯의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기계인형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가볍……?”
깜빡-!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캐롯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안녕? 오로라가 멋진 밤이지?”
“으흐억?!”
남자가 캐롯을 내던지고는 재빨리 소총을 견착했다. 병사들도 사격을 가했다.
쾅-! 탕탕!
퍽퍽퍽-! 사방에서 모래가 터져 올랐지만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이제 4발로 뛰기 시작하는 캐롯을 맞추지는 못했다. 모래 때문에 착지성이 나빠서 사막 햄스터로 변신한 캐롯은 병사들의 사이를 마구 휘저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크응케헥헤헤헤!”
기겁한 병사들이 총을 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캬하하하! 바보들아! 안녕!”
기어코 동굴 앞에 도착한 캐롯이 일어섰다. 그 앞에는 쓰러진 병사들과 흩어진 집기들로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캐롯은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나게 외쳤다.
“안녕-! 오로라! 보고 싶을 거야!”
밤하늘에서 너울거리는 오로라에게 인사를 마친 캐롯은 동굴의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걸 보고 분노한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닦달해 추적을 개시했다.
“으하하! 됐어! 걸렸어!”
캐롯은 다시 두 다리로 다다다 달리면서 웃어댔다. 얼마 가지 않아 병사들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동안 몰래 동굴로 뛰어든 크랭크를 발견한 캐롯이 두 팔을 들고 환호를 질렀다.
“크랭크읏-!”
폴짝 뛰어오른 캐롯이 달리는 크랭크의 배낭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훅훅 소리를 내면서 아침 조깅하는 기분으로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를 2시간, 그들은 산의 거의 중앙 부분에 도착했다. 도중에 쉬고 있는 병사 무리와 조우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오히려 투구를 쓰고 어둠 속에서 휙 하고 지나가는 그를 보고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 바빴다.
“이쯤인가?”
“뭘 찾아? 서두르지 않으면 따라 잡힐 거야.”
달리다 말고 숨도 고를 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한 크랭크는 낮에 이곳을 지날 때 미리 파두었던 구덩이와 흙더미를 발견했다.
그는 그곳에 개조된 4연장 마력 엔진을 집어넣고 흙더미를 밀어서 덮어버렸다.
캐롯이 환호했다.
“오우-! 스마트! 용의주도! 준비만전!”
“우린 서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걸 벌도록 하자.”
엄지손가락을 든 크랭크를 보면서 캐롯이 물었다.
“구스타프 아저씨가 화낼 텐데?”
“상관없다. 이런 불안 요소를 그냥 방치할 수는 없어. 굴이야 또 파면 그만이야.”
체력 포션을 들이킨 크랭크는 빈 병을 던져버린 다음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타이머가 작동됐다.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훅훅!”
“엉? 스크롤로 원격 기폭 시키는 거 아냐? 얼마나 걸리는데?”
“훅훅! 시간과 재료가 부족했다. 훅훅! 솔직히 1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어. 훅훅!”
옆에서 도도도 달리던 캐롯이 도끼눈을 떴다.
“아으! 이 바보야!”
“오늘의 마지막 루틴은 격렬한 유산소운동으로 마무리하자.”
근육단련 애호가와 기술 만세 공돌이가 만나면 폭탄의 부족한 기폭시간을 체력으로 보완해보겠다는 발상이 나오게 된다. 크랭크 한정으로…….
제정신임을 의심케 하는 그의 발언에 기겁한 캐롯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달려! 내가 너의 길 앞잡이가 될게! 수첩, 이리 내놔!”
크랭크에게서 수첩을 받아든 캐롯은 위치를 확인한 다음 갈림길까지 달려가서 그를 기다렸다가 길을 안내했다.
그렇게 정확히 한 시간 후,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흙으로 막아놓은 입구를 찾는데 조금 애먹었지만 겨우 동굴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에잇! 에잇! 튼튼하게도 쌓아놨네!”
퍽퍽!
도끼를 휘둘러 막아놓은 부분을 부수고 몸을 빼낸 캐롯이 입구를 좀 더 크게 부수자 그 틈으로 크랭크가 비집고 나왔다. 거의 좀비처럼 느릿느릿 걸어 나온 크랭크는 동굴에서 좀 떨어진 나무 앞에 쓰러져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허억! 헉! 훅!”
그의 곁에 서서 산을 올려다보던 캐롯이 바닥에 엎드려 숨을 몰아쉬는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안 터지……?”
콰르르르르릉-! 우르르르릉-!
지진이 일어났다.
중심을 잡지 못한 캐롯이 엉덩방아를 찍을 정도의 지진이었다. 땅이 떨리고 산이 울리고 둥지에서 밤을 지새우던 새들마저 날아오르게 할 정도였다.
“우와아?!”
지진에 놀라서 고개를 쳐든 캐롯은 저 너머 밤하늘 아래에 마치 톱날처럼 솟아올라 있던 산맥의 봉우리 하나가 아래로 쑥 내려가 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쿠르르르릉…!
후화아악-! 푸쉬이이이-!
뒤를 이어 동굴을 비롯해서 주변의 바위틈에서 땅울림과 함께 거센 먼지바람이 한참 동안 불어 나오다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오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은 채 놀라움에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캐롯은 여전히 숨을 고르고 있는 크랭크의 등을 짚으며 머리를 기울였다. 얼떨떨한 목소리였다.
“야, 크랭크, 산이 무너졌어. 우리 이제 기어코 산까지 무너뜨렸다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크랭크가 킥킥 웃었다.
“크흐흣! 구, 구스타프 씨가 화내겠군.”
“웃음이 나오냐! 뒈질뻔 했는데!”
주인님의 목숨과 관련된 일에는 약간 신경질 적이 되는 캐롯이 도끼눈을 하고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철썩!
* * *
오밤중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상황을 살피러 왔던 베누스가 그들을 발견했다. 마을에서는 저번의 습격 때문에 놀란 사람들이 서둘러 방어 진지를 구축하다가 돌아온 그들을 반겼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모험가들과 사람들은 기겁했다.
“산을 무너뜨려요?!”
“응!”
캐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밤하늘 아래의 산을 가리켰다. 정말로 톱날의 이가 하나 빠진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저마다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기진맥진한 크랭크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씩씩 숨을 쉬면서도 자신만만하게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었다.
간단하게 캐롯에게 산 반대편 세력에 대해서 듣게 된 모험가들과 마을 사람들은 산을 무너뜨려 동굴을 막아버린 두 사람을 칭찬했다.
여전히 붕대를 감은 에이플이 말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이제 뒤통수 맞을 일은 없겠군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 잘했어! 좀 더 두툼한 성벽을 쌓아 올릴 시간을 벌었어!”
하지만 이틀 뒤 도착한 구스타프는 칭찬하지 않았다.
산맥 관통굴의 내력에 대해서 알아 온 그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이빨 빠진 톱날 산맥은 낮에 더 확실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