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보물찾기!
멀리 바위산의 정상 부근에는 부족의 구성원들이 각자 맨눈이나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크랭크는 그들의 사이에 끼여 오토마톤의 전투력과 그 기초 운영방안에 대해서 떠들어 댔고, 그걸 호미르가 메모와 동시에 통역했다.
그러다가 크랭크가 별안간 물었다.
“엘프들이 당신들에게만 저걸 줬습니까?”
메모장에 글을 휘갈기던 호미르의 펜이 돼지 꼬리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으며, 전투를 관전 중이던 방위담당자들이 모두 찡그린 얼굴로 넘겨짚기의 고수, 음흉한 양철 거인을 돌아보았다.
얼굴이 빨갛게 된 호미르가 외쳤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엘프들이 왜 저걸 우리에게 팔아! 저건 우리가 마을의 방위를 위해 제값을 치르고 가져온 물건이다!”
팔짱을 낀 크랭크가 허리를 숙여 호미르에게 투구를 쑥 내밀었다.
“누구에게?”
“어, 으 그……!”
“어흐흠!”
호미르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기 시작하자 당황한 그녀를 뒤로 가리고 선 남자가 있었으니 딘기르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다. 그는 말 대신 눈빛으로 크랭크를 쏘아보았다.
대치가 이뤄지는 그때 일행 중의 한 여자가 망원경을 그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맑은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호미르가 재빨리 통역했다.
“이걸로 사람의 마음속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 걸까? 그러면 우리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데.”
이윽고 망원경을 내린 사이퍼즈 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다. 갈색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건강미 넘치는 여성이었다.
크랭크는 투구를 만지다가 말했다.
“이해할 수 없군요. 망원경으로 사람의 마음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거인의 어리둥절함은 사람들의 쓴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말로서 당신들의 의도는 전해졌습니다. 나는 크랭크, 저 아래의 소녀는 나의 오토마톤 캐롯.”
그러자 그 사이퍼즈 미인이 환하게 웃으며 무어라 떠들어댔다.
“나는 리모코, 완전한 인간처럼 보인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거지? 겉에 무언가를 씌워놓은 건가?”
“소프트 스킨이라는 껍질입니다. 재료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캐롯의 경우엔 인간의 피부를 배양한 생체 스킨입니다.”
때문에 그 완성도는 기적.
하지만 통역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은 마구 일그러졌다.
“끔찍하군. 너는 어린 소녀의 껍질을 벗겨서 저기에 씌운 것인가?”
당황한 크랭크가 저것이 자신이 피부를 떼어내 배양한 것임을 설명하자 모두가 놀라워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이지?”
“마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녀, 이 말 한마디에 모두가 인정해버렸다. 마녀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 뿐, 그들은 수많은 전설을 쌓아 올렸고, 수많은 이야기에 등장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경배와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사이퍼즈에서는 대체로 마녀에 대한 대우가 좋은 편으로 여러 지식을 알려주는 현자 취급이었다.
갑자기 리모코가 눈을 크게 뜨고 바싹 다가왔다.
“마녀! 아는 마녀가 있나? 리즈넷은 좋겠다! 마녀가 많이 살아서!”
고개를 돌린 리모코는 이제 호미르를 바라보며 흥미진진한 얼굴을 했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쳐다보던 크랭크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을의 활기는 여자들의 웃음소리에서 나온다고 하던데. 요직에 이런 여자를 앉혀 놓은 것도 그렇고 당신들 사실은 꽤 괜찮은 사람들이 아닌가?”
듣고 있던 호미르가 버럭 외쳤다.
“이런 여자라니! 리모코 님은 아드미르 가문의 구성원이시다! 방금 만난 아드미르 누네바 님의 손녀가 되신다. 주의해라! 이 양철 거인!”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노파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리모코가 마녀의 이름을 물어오는 일이 있었지만 크랭크는 거절했다.
“리즈넷의 마녀는 그다지 착하지 않습니다. 호미르, 당신도 들어서 알 테지? 설득하십시오.”
찡그린 얼굴을 돌린 호미르가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사이, 전투가 끝나고 하드 스킨 오토마톤들과 캐롯이 복귀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바위산 정상에서 광장으로 내려가자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캐롯이 쪼르르 달려왔다.
“이 자식들 이상해, 사람을 막 죽이고 아무렇지도 않아. 통역사 호미르는 어디 있어?”
“저기 있다.”
바위산에서 다시 밑으로 내려오느라 기진맥진이 된 호미르가 이마의 땀을 닦고 있다가 캐롯의 손짓에 우거지상이 되어 다가왔다.
“뭐냐? 이 요망한 것.”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캐롯이 물었다.
“너 말고 리즈넷 말 통역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없다.”
“아깝네, 딘기르에게 호미르의 귀를 공략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홍당무 같은 얼굴이 된 호미르가 괴성을 지르며 캐롯과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보고 있던 아이들과 강아지들도 끼어들어 광장을 따라 돌았다.
팔짱을 낀 크랭크를 비롯해 호위로 따라온 사람들의 시선이 흥미롭게 빛났다.
“허억! 헉! 이, 이 요망한 것이…! 재빠르구나……!”
쿵…! 쿵…!
하드 스킨 오토마톤을 하나 데려온 캐롯이 호미르에게 손짓했다.
“오토마톤 3원칙이 무엇이냐고 물어봐.”
갸웃한 호미르였지만 시키는 대로 물었다. 오랜만에 햇살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로 나온 중장갑 인형이 사이퍼즈 말로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호미르가 말했다.
“그런 건 모른다고 한다.”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3원칙이 없어? 우와하! 이 자식들을 납품한 사람은 무슨 생각이지?”
“뭐냐?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그를 올려다보던 크랭크가 끼어들었다.
“행동 원칙, 혹은 준수 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시오.”
“어어…….”
호미르가 좀 허둥댔지만 주변의 호위들이 그녀와 이야기를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호미르는 다시 한번 하드 스킨에게 질문했다.
묵직한 마스크가 올라간 갑옷 기사의 투구가 움직인다. 그는 정확히 호미를 바라보며 굵은 남자 목소리로 대답을 내놓았다.
호미르는 그대로 통역했다. 그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전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선한 아드미르의 백성을 지켜라.”
“에-! 그것뿐이야?!”
“어, 응, 그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석양이 드리워진 붉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기사의 망토가 들썩인다.
멋진 외형의 하드 스킨을 올려다보던 크랭크는 고개를 돌리고 바위산 아래의 광장에 모여 있는 그의 형제 오토마톤들을 돌아보았다.
몰려온 사람들이 그들의 갑옷에 뿌려진 피며 먼지를 열심히 닦고 손상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몇 가지 가설이 떠올랐지만, 크랭크는 신경 끄기로 했다.
내 알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니.
“우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누네바 님께 안부 전해주십시오.”
“뭐?! 돌아가겠다고?”
호미르가 당황했다. 주변의 호위들에게 그 말을 전하자 다들 표정이 굳어진다. 크랭크는 투구를 숙이고 시선을 들어내며 한마디 덧붙였다.
“엘프들이 왜 당신들 같이 어설픈 사람들에게 저런 강력한 무력을 맡겼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야! 자꾸 넘겨짚지 마!”
버럭 하는 호미르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마력수정폭탄의 기폭 스크롤이었다.
“내부에서 폭발하면 저 바위산을 반으로 쪼갤 수 있을 것입니다.”
줄곧 통역을 해주던 호미르의 얼굴이 푸르게 변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본 적도 없는 병기에게 공포심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리즈넷 남부 바닷가 출신인 그녀는 저 마력수정폭탄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도 긴장했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 호미르가 질린 얼굴로 양철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아, 아니, 잠깐만요. 그러지 마세요. 제발, 여기 사람들은 다 좋은 분들이세요. 팔려온 나를 구해주셨단 말이에요.”
투구를 숙이고 그녀를 쳐다보던 2미터짜리 폭탄마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스크롤이 들려 있었다.
눈치 빠른 호미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아들자 양철 거인이 말했다.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투구를 숙인 크랭크가 천천히 두 팔을 벌리고 주변에 활과 창을 든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쏠 테면 쏴보라는 건방진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모습이었다.
“잠깐 하하호호 웃은 것으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부터 보물찾기를 해야 합니다. 우릴 쫓을 틈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다시 만날 거야! 그때까지 건강하라고! 하하하!”
손을 흔들어준 캐롯은 앞서간 크랭크를 따라 해가 떨어진 모래사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이 떠난 직후 아드미르 부족의 본거지인 아드미르의 검은 바위산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밤늦게까지 병사들이 바위산 내부를 뛰어다니며 오만의 양철 거인이 숨겨놓은 마력수정폭탄을 찾았다.
다행인 것은 기폭 스크롤이 5장이라는 것.
“5발 전부 찾았습니다만, 이 중 4발은 가짜였습니다.”
탁자 위에 털실 뭉치와 함께 올려진 큼직한 유리구슬을 바라보던 아드미르 누네바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푸흐후후!”
“누네바 님…….”
호미르가 안절부절못했다. 경비대장 딘기르가 그녀의 불안한 어깨를 두드렸다.
한 손으로 이마를 덮은 채 흔들의자에 앉아서 웃고 있던 누네바가 고개를 들었다.
“감동과 웃음과 교훈을 남겨주고 가는 멋진 친구들이로구나, 내가 젊었다면 홀딱 빠졌을지도 모를 사랑꾼들이야.”
유쾌한 수장의 말에 다들 어색한 쓴웃음을 지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자가 끼어들었다.
“원조를 받았다는 것을 눈치 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입막음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니다. 병사들의 감시 속에 이런 것을 숨기는 요령 좋은 자다. 자극은 좋지 않아. 오히려 가능하면 친하게 지내고 싶구나. 반란군의 격퇴를 도와주었다면서?”
찡그린 얼굴의 경비대장 딘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의 운영 방법을 소극적이라고 혹평했습니다. 오토마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척 많은 자더군요.”
“여기! 중요한 건 다 메모해 뒀어요!”
호미르가 두 손으로 메모장을 들어 보였다. 연인 딘기르가 갸륵하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보좌관들에게 둘러싸여 향후 방침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누네바가 고개를 돌리고 손짓했다. 그러자 좀 떨어진 벽에 서 있던 오토마톤이 나긋나긋하게 걸어서 다가왔다.
전용 전투복과 롱소드, 표정 없는 마스크에 둔부까지 흘러내린 하얀 방열 가발은 사이퍼즈에서는 보기 드문 인형 병기의 모습이었다.
“오토마톤 3원칙이 무엇이냐?”
메모를 참고하여 호미르가 질문하자 오토마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네바를 잠깐 돌아본 호미르가 메모장을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행동 원칙, 준수 사항을 말해봐라.”
오토마톤이 말을 했다.
“선한 아드미르의 백성을 지켜라.”
“오오-!”
보고와는 별개로 직접 들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호미르가 뒤를 돌아보자 팔로 턱을 받치고 있던 누네바가 가만히 오토마톤을 쳐다보다가 다시 물었다.
“선하지 않은, 혹은 악한 아드미르의 백성도 지켜주느냐?”
오토마톤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보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치 빠른 자들은 더 심한 경악으로 물들었다.
누네바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