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사랑꾼!
캐롯의 혀놀림에 호미르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냈다.
때마침 뒤쪽에서 누군가가 싸우는지 소란이 일어났다. 갈색 피부에 은발을 가진 남자가 화가 난 얼굴로 병사들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호미르가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딘기르-!”
“호미르!”
“헤, 뭐야? 남친 있었어?”
마력 엔진을 들고 뒤를 돌아본 크랭크는 캐롯에게 그녀를 풀어 줄 것을 지시했다.
캐롯이 폴짝 뛰어내리더니 옆으로 슬쩍 비켜섰다.
“가.”
울상을 지으며 달려간 호미르는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 와락 안겨들었다가 곧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버럭 외쳤다.
“나, 나에게 이런 치욕을 주다니! 잊지 않겠다! 이 요망한 것!”
그 소리를 들은 캐롯은 으히히 웃더니 혀를 빼물고 엉덩이를 쭉 내밀며 윙크를 했다.
“딘기르! 네 여친 귀가 말랑말랑해서 참 맛있더라!”
“으아아앙! 너! 너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귀를 가린 호미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봐서 그다지 좋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 딘기르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잉잉거리는 여자와 그걸 달래는 남자를 히히 웃으며 쳐다보던 캐롯은 그만 크랭크의 뒤를 따라 총총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인자하게 생긴 노파가 호호호 웃으며 사이퍼즈 말로 입을 열었다. 캐롯은 하하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고, 크랭크는 다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통역.”
모두가 호미르를 쳐다보았다.
눈물을 질끈 짜낸 그녀는 연인 딘기르의 팔은 끌어안고 슬글슬금 들어와 아드미르 부족장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시게, 초원의 모험가들. 내가 아드미르 부족장이야.”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털실 뭉치가 올려진 탁자에 폭탄으로 개조된 4연장 마력 엔진을 올리고 허리를 숙여 투구를 노파에게 들이댔다.
그 투구의 눈구멍 안으로 찡그린 눈매가 슬쩍 드러났다.
“보십시오. 어르신, 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까?”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가 호미르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아드미르 부족장이 입을 열었다. 그걸 호미르가 바로 통역했다.
“산 너머에 주인 없는 양들이 있다고 해서 양치기 개들을 보냈을 뿐이었어. 보아하니 양들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나 보군.”
가만히 아드미르 부족장을 내려다보던 크랭크가 다시 물었다.
“수를 맞춰 봅시다. 몇 명, 오토마톤 몇 기를 보내셨습니까?”
“사나운 것 하나와 순한 것 둘, 양치기 10명을 골라 보냈지. 자네가 순한 것 하나와 양치기 둘을 데려왔다더구먼, 나머지는 어떻게 됐나?”
크랭크는 4연장 마력 엔진과 더불어 주머니에서 마력 엔진 1개를 더 꺼냈다.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치기는?”
크랭크는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개척민 마을의 습격에서부터 던전 탈출까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드미르 부족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양치기를 사지로 몰아넣었구먼.”
“저희는 산 아래에 터전을 잡았습니다. 유용한 교류라면 모를까, 다시 사냥꾼을 보내시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던 크랭크는 탁자 위에서 위험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4연장 마력엔진을 슬쩍 쳐다보며 같은 말을 한 번 더 강한 어조로 반복했다.
“절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할머니가 지금껏 보아온 어떤 사람들보다 훠얼씬~! 무섭다구요?”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도 마주 으름장을 놓았다.
약자를 대신하여 찾아온 자들의 항의를 들으며 젊은 나날의 일이 떠오른 아드미르 부족장은 그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돌린 그는 캐롯을 유심히 보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미르를 돌아보았다.
호미르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데란 오토마타.”
“호오오……!”
흔들의자에 앉은 아드미르 부족장이 놀라운 얼굴로 눈을 뜨고 캐롯을 눈여겨보다가 손짓했다. 크랭크를 슬쩍 올려다본 캐롯이 가까이 다가가자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탱탱한 볼을 매만지며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 사람 같구나. 참 귀엽구나. 늙지 않는 몸이라니, 너무도 부럽구나.”
통역하던 호미르가 서글픈 표정이 되었다.
방긋 웃음 지은 캐롯은 팔을 들어 부족장의 얼굴을 마주 쓰다듬었다.
“부족장님, 우린 서로를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언젠가 바스러져 먼지가 될 거니까.”
캐롯은 상큼하게 웃었다.
“어때요? 당신의 인생은, 그 모험은 만족스러우셨나요?”
내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아드미르 부족장이 작은 인형의 말을 듣고 그만 울컥해버렸다. 입술을 파르르 떤 부족장은 두 팔을 내밀어 캐롯을 꼭 껴안아 보았다. 붉은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기가 전해졌다.
통역을 하던 호미르도 눈물을 머금었다.
양산품을 커스텀한 캐롯은 고성능 오토마톤이다. 얼마나 고성능이냐고 하면,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 그를 울려버릴 정도로 성능이 좋다.
갑자기 아드미르 부족장이 눈물을 흘리자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병사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오토마톤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작은 인형을 끌어안고 끅끅거리던 노인은 손을 흔들어 주변인들을 진정시켰다.
한참 후, 눈물을 그친 아드미르 부족장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울어서 참 시원하구나. 고맙구나.”
“사람은 눈물을 흘려서 멍든 마음을 씻어내지 않으면 괴물이 된대요.”
호미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통역했다. 흥미가 생긴 부족장이 허리를 숙여 캐롯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눈빛이 마치 증손녀 대하는 듯하다.
“호오, 누가 그러더냐?”
“우리 주인님이요.”
캐롯이 크랭크의 바짓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동시에 두 사람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우리 주인님은 이래 보여도 로맨티스트, 사랑꾼이거든요.”
“푸흡-!”
방금까지 눈물을 머금었던 호미르가 두 손으로 입을 가로막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통역은 시간이 좀 걸렸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부족장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폭탄으로 위협하는 무뢰배 같은 자들과 협상 중인 존경하는 위대한 어머니 부족장의 감정이 변화무쌍해지자 지켜보던 병사들과 하인들이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변의 하얀색 오토마톤들을 둘러보던 끔찍한 차림의 2미터짜리 낭만주의자가 질문했다.
“저 오토마톤들은 다 어디서 난 것입니까? 사이퍼즈에선 불법이 아닙니까?”
“그걸 누가 정했나? 나는 내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양치기 개가 꼭 필요했다네.”
잠시 입을 다문 아드미르 부족장이 캐롯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다.
“사막에도 비가 오면 꽃은 피고 바람이 분단다.”
부족장의 은유적인 말솜씨에 캐롯은 정신적으로 감탄했지만, 직설적인 정보를 원했던 크랭크는 투구 속에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산 너머에 길 잃은 양 떼가 있다고 누가 가르쳐 줬습니까?”
막 대답하려는 찰나, 당황한 병사 하나가 뛰어들었다. 그의 보고를 들은 딘기르가 호미르를 놔두고 달려갔고,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호미르야, 무슨 일이니?”
캐롯이 대놓고 반말로 물었지만 지금 호미르는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습격이래요!”
“습격? 와! 박진감 넘치는 하루네? 뭐야? 누군데?”
하인들을 불러 아드미르 부족장을 모시도록 한 호미르가 빠르게 대답했다.
“신무기로 무장한 하만 왕자의 군대가 왔어요! 우리가 오토마톤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그걸 빼앗으려고!”
“호오호오~!”
넓은 방의 벽을 가득 채우고 서 있는 오토마톤의 댓 수는 어림잡아 40~50대, 그중의 반이 하드 스킨이었다.
“저거 한 대만 내보내도 다 쓸어버릴걸?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신무기로 무장했다구요! 화약 병기로!”
호들갑을 떠는 호미르를 보고 눈썹 사이를 찡그린 캐롯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 우리가 싸워봤는데, 저기 큰 애들은 마력수정폭탄을 터트려도 움직였어.”
눈을 크게 뜬 호미르가 그 이야기를 부족장에게 들려주었다. 크랭크가 낮게 중얼거렸다.
“가지고 있는 무기의 성능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
팔짱을 낀 캐롯이 슬쩍 그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허둥대는 그들을 지켜보던 크랭크는 생각을 정리한 듯 손을 들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제안이 있습니다만.”
* * *
타타타탕-!
사막에서 일렬로 선 병사들이 총을 쏴대고 있다. 1열이 발사를 마치면, 대기하던 2열이 나와서 교대로 발사한다. 연속 사격이 불가능한 무기였기 때문에 짜낸 전술로, 이렇게 하면 재장전의 틈을 메꿀 수 있었다.
국경선 부근에 오토마톤을 가진 부족이 있다는 보고를 듣고 부대를 이끌고 달려오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설마 상대가 저런 괴물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와하하하! 달려가요! 바람돌이! 모래에 요정!”
쿵-! 쿵-! 쿵-! 쿵-!
2미터가 넘는 키, 300kg이 넘는 전투 중량을 자랑하는 하드 스킨 오토마톤 10대가 전용 방패를 들고 검을 비스름히 찬 채 나란히 줄을 맞춰서 달리고 있다.
흩날리는 망토 뒤로는 모래 폭풍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질주의 선두에는 드래곤 스케일 방패를 앞세운 캐롯이 달리고 있었다.
타타타탕!
티티태태탱!
소총으로 사격을 가해보았지만 총탄으로는 아무리 쏴도 방패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거리는 좁혀지고 있다.
지위관이 외쳤다.
“어깨 대포를 가져와!”
어깨에 올리고 쏴서 어깨 대포라고 부르는 물건을 짊어진 병사들이 달려와 포격을 시작했다.
콰콰쾅!
휘이잉! 휭-!
뻥! 쾅! 캉!?
탄두가 폭발하기 때문에 이건 먹히리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방패만 망가뜨릴 뿐 안쪽에는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캐롯은 기겁했다.
“으억?! 이건 뭐야?! 대포알이 터지네?!”
다행히 수는 소총만큼 많지 않았고, 단발식이라 재장전을 서두르는 것을 보고 캐롯은 방패를 집어던지고 최대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멀리서 보면 모래로 된 뱀이 기어가는 것 같아서 바위산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입을 벌렸다.
이이이잉! 츠바바바밧!
“이야압!”
퍽퍽!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병사들 사이로 뛰어든 캐롯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난동을 피우자 전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탕-!
“으악!”
재빠르게 움직이는 조그만 꼬마를 잡겠다고 소총을 쏴대다가 아군을 맞춰버리기도 했다. 암담한 상황에 지휘관이 전열을 바로 잡기 위해 목이 쉬어라 고함을 지르는데 거대한 기사단이 도착했다.
쿵-! 쾅! 촤악!
“으악! 악!”
커다란 대검을 휘두를 것도 없이 후려치고 걷어차고 짓밟는 것만으로도 인간 병사들은 추풍낙엽 쓰러져 나갔다.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병사들과 뒤엉켜 싸우거나 도망치는 자들을 뒤쫓는 하드 스킨 오토마톤들을 쳐다보던 캐롯은, 쓰러진 병사들을 살펴보며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 그냥 막 죽이네? 적이지만 일단 같은 나라 사람이잖아? 너희들 대체 3원칙은 어떻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