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동굴 탐사!
우물이 하나 더 만들어지자 마을 처녀들이 특히 좋아했다. 수맥의 물줄기가 가라앉자 돌을 주워 경계석을 쌓아 우물을 완성한 그녀들은 엉망이 된 몸을 씻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녀들은 맨 먼저 캐롯 불러다 씻기기 시작했다.
전투복을 벗고 알몸이 된 캐롯의 주변으로 어여쁜 처녀들이 몰려들어 물동이에 물을 담아 조심스럽게 부으며 그 몸을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순찰에서 되돌아온 아리에테가 그걸 보고 입을 헤벌렸다.
“우물가에서 목욕 중인 작은 공주님 같은데?”
“아, 정말?”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방울로 장식된 캐롯이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같은 시간, 고디브와 함께 절벽의 동굴 앞에 선 크랭크는 그곳을 통해서 나왔다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길이는 얼마나 됩니까? 일직선입니까?”
고디브가 그들의 말을 해석했다.
“갈림길이 많다고 합니다. 몬스터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군요.”
“완전 던전이군. 이걸 건너온다고?”
따라온 구스타프가 한마디 했다. 크랭크는 같이 온 청년에게 캐롯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말끔하게 씻은 캐롯이 젖은 머리를 말리기 위해 붉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로 깡충깡충 뛰어왔다.
“나 불렀쩡?”
“던전 탐색이다. 대략적인 길이와 폭, 갈림길을 파악해야 해. 여기, 지도.”
“호우우!”
가슴에 라이트 볼을 붙인 캐롯이 동굴로 뛰어들었다.
팡-!
“원 세상에, 엄청 빠르군. 전투용은 다 저런가? 우리 광산에 쓰는 애들하고는 다른데?”
“드워프는 광산 일에 오토마톤을 사용하십니까?”
“광물을 캐는 일은 숭고한 일이야. 그런 건 우리가 하고, 잡무 정도를 맡기는 편이지.”
크랭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워했다.
그 사이 캐롯은 동굴 내부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간간이 몬스터가 보이긴 했지만 무시했다. 싸우고 있을 시간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선으로 달리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지도를 펴보았다. 다행히 오래된 표식이 있어서 길 찾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동굴 탐사 2시간 후, 캐롯은 마침내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을 앞에 높고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꺄으아아아아악!! 사막이드아아아! 온통 모래뿐이잖아!”
괴성을 좀 지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색적인 풍경을 눈에 담은 캐롯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모래를 한 움큼 주머니에 챙겨 넣은 다음 후다닥 뒤로 돌아 동굴로 뛰어들었다.
“캬오와아악!”
“와다다다다! 비켜비켜!”
커다란 사막 전갈이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을 본 캐롯은 달리면서 도끼를 뽑아 휘둘렀다.
퍽!
머리를 맞고 피를 뿜어내는 전갈을 무시하고 달리던 캐롯은 아까는 없었던 것을 발견했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멈춘 캐롯이 그를 살폈다.
“이봐요?”
쭈그려 앉아 흔들어보았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안에서 헤매다가 기력이 다해서 쓰러진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캐롯은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고 나가는 입구를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들어간 지 3시간이 지나서 캐롯이 돌아왔다.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다가오자 캐롯이 물었다.
“몇 시간 걸렸어?”
“3시간.”
“와,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나 뛰어서 갔다 온 건데, 이거 봐봐, 정말 반대편에 사막이 있어. 사막 처음 봤어.”
캐롯이 주머니에서 모래를 꺼내주자 사람들이 그윽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구스타프가 물었다.
“어떻더냐?”
“자연 동굴인데 갈림길마다 표식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중간 중간에 사람 손을 탄 장식물이 많던데?”
“일종의 유적인가?”
“안에 몬스터도 많더라. 가장 가까운 갈림길의 반대로도 한번 들어가 볼까?”
“그래라. 공주님이 오기 전에 대략적인 파악은 해놓자. 저 마을에서 할 일은 얼추 끝난 것 같으니까.”
“나도 가고 싶다! 안쪽은 어떻게 되어 있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리에테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크랭크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으어거걱?!”
“안 돼. 넌, 여기 있어라.”
머리를 붙잡고 찡그린 얼굴을 돌린 아리에테가 크랭크에게 덤벼들었다.
“너는 정말 무례하군! 여자 머리카락을 말이다!”
퍽퍽!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두들기는 것을 보면서 하하 웃은 캐롯은 다시 동굴로 뛰어들었다. 고디브가 말했다.
“위험한 일을 대신해주다니 오토마타라는 건 정말 굉장하군요.”
“네 녀석들이 부리던 노예 같지 않냐?”
구스타프가 히죽 웃으며 쏘아붙였다. 고디브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매서운 얼굴을 한 구스타프가 경고했다.
“너는 이번 일을 대대손손 알려야 한다. 알겠느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고디브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음, 그럼 됐다.”
팔짱을 한 구스타프는 이제 동굴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도 적당히 해라!”
방패와 숏소드를 꺼내든 크랭크와 롱소드를 뽑아 든 아리에테가 매서운 얼굴로 서로를 보면서 거리를 재다가 다시 맞붙었다.
쾅-! 챙!
“대무 중입니다! 흡!”
“너와는 처음 싸워보는구나! 꽤 하는군! 이건 어떠냐!”
난데없이 벌어진 그들의 대무는 구경하던 젊은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구스타프를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어버렸다.
“모험가들은 하나 같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때 절벽 위에서 캐롯의 목소리가 빽하고 소리쳐졌다.
“우와아아악! 이게 뭐야?! 여긴 어디야!”
고개를 쳐들고 뒤로 물러선 구스타프가 외쳤다.
“꼬마 인형! 너냐? 어디냐?!”
“여기요!”
절벽 위에 있는 바위틈에서 캐롯의 얼굴이 빼꼼 나와 있다.
“뭐냐?!”
“갈림길에 갈림길이 또 나 있어요! 와! 와! 그리고 이 안에 사람이 산 흔적도 있어!”
“뭐라고?!”
동굴에서 돌아 나온 캐롯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발견한 흔적을 보여주었다. 돌을 깎아 만든 오래된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같이 따라 들어왔던 구스타프가 말했다.
“이건 오래전 드워프 양식인데?”
“와, 그럼 여기 옛날 드워프 마을 같은 거 아니에요?”
한참 고민하던 구스타프에게 따라온 청년이 어색한 리즈넷 말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줍다. 저기.”
번쩍이는 금화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른 사람들이 주변을 수색하는 사이 구스타프가 그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처음 보는 금화인데. 나이 먹은 영감들이라면 알려나. 이봐, 그만 돌아가지.”
수색을 멈추게 한 구스타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 아무래도 유적일 가능성이 있어. 정확한 조사는 자료를 좀 찾아보고 하지.”
“그러면 던전? 여기는 유적 던전이 되는 겁니까?”
“그렇지. 공짜 유물이 가득한 유적 던전.”
구스타프가 금화를 들어 보이며 말하자 아리에테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구스타프가 선을 그었다.
“정말 드워프의 잊혀진 도시면 여긴 우리가 선점할 거야. 자네들에게 양보할 일은 없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그 공주가 오면 하자고.”
“너무 하시는군요! 조금 정도는 허락해 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자네 끈질기군! 뭐가 너무 해!”
툭탁거리며 이제는 확실히 눈에 띄게 발전한 개척민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을 발걸음을 옮겼다.
그 동굴을 통해서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사건은 저녁 시간에 일어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식사를 준비하는데 별안간 마을 정문으로 일단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내란 중 소란을 틈타 도망친 노예며 평민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파견된 사이퍼즈 병사들이 굳은 얼굴로 손에 든 무기를 겨누자 처녀들이 그들의 모습을 알아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꺄아악!”
달아나는 처녀들 사이로, 초록색 방열 가발을 산발한 인형 병기가 방문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더 이상 들어오지 마십시오. 누구십니까?”
롱소드를 뽑아든 베누스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리즈넷의 전투용 오토마톤을 마주한 병사들이 긴장했지만, 선두에 선 지휘관은 날카롭게 웃고만 있었다.
“책임자를 불러라.”
잠시 후, 마을의 책임자(?)들이 모였다. 크랭크를 비롯한 모험가 일당들과 고디브를 포함한 마을의 대표들이 불려왔다.
“저건 누굽니까?”
에이플의 물음에 고디브가 대답했다.
“사이퍼즈 병사들입니다. 우리를 찾으러 왔습니다. 아마 그 동굴로……!”
“엇!”
캐롯이 손바닥을 탁 치더니 말했다.
“안에서 헤매지 말라고 표시를 해뒀었어.”
모두가 끔찍한 얼굴로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크랭크는 앞만 보며 눈을 빛냈다.
손에 든 저건 화약 병기, 총인가?
“무슨 일이신지요?”
“우리 국민, 돌려받으러 왔다.”
10여명의 병사를 대동하고 찾아온 사이퍼즈 군 지휘관의 말에 겁에 질린 고디브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크랭크가 앞으로 나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곧 이 나라의 국민이 될 것입니다. 당신들도 어떻습니까? 싸움은 그만두고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통역.”
고디브가 통역했다. 그러자 지휘관이 프하하 웃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어 그에게 겨눴다.
“나에게, 이 마을, 준다면, 생각한다.”
투구를 쓴 크랭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싫은데.”
권총을 쥔 그의 손목에 힘줄이 돋아나자 크랭크는 반사적으로 팔의 방패를 총구 앞으로 들어 올렸다.
지휘관은 가소롭다는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틱-!
순식간에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급격하게 당황한 그가 손에 든 권총의 해머를 뒤로 당기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지만 격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방패 위로 크랭크의 분노한 눈이 드러나자 지휘관은 곁의 병사가 든 장총을 빼앗아 방아쇠를 당겼다.
틱-!
당황한 지휘관이 무어라 외치며 연거푸 총을 바꿨지만 하나도 발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방패를 내린 크랭크는 이제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의 행동은 주변에 전파되어 사람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천천히 몽둥이며 방망이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구스타프가 낄낄거렸다.
“그걸 넘긴 사람이 바로 나다. 이놈들아, 아무런 방비도 없이 줬을 것 같으냐? 이 지역에서는 안 터져. 뭣들 해! 어서 때려잡아!”
“와아아아!”
퍽퍽퍽!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부무장으로 달고 다니는 검을 뽑기도 전에 그들은 덤벼든 사람들에게 우레와 같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사로잡은 병사들은 밧줄로 꽁꽁 묶여 졌다.
캐롯도 함께,
“오와! 풀어줘! 나는 이런 애들이 넘어올지 몰랐다고!”
사람들은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내일 저놈들을 돌려보내고 입구는 잠시 막아둡시다.”
“그게 좋겠군.”
크랭크는 그들에게서 빼앗은 소총을 살펴보며 물었다.
“이건 어떤 원리로 발사되는 겁니까?”
“안 가르쳐 줄 거야. 궁금해 하지 말게. 그만 보고 이리 줘. 자네들도,”
크랭크를 포함한 모험가들이 못내 아쉬워하며 그것을 돌려주었다.
이튿날 크랭크는 캐롯과 함께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고디브와 이야기를 나눈 병사들은 전부 남기로 했다. 그래서 대뜸 방아쇠부터 당기려고 했던 지휘관만 데리고 가버렸다. 뒤를 돌아보면서 그가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노호성을 질렀지만 캐롯의 주먹질에 기절해버렸다.
뒤를 돌아보며 캐롯이 엄지손가락을 세우자 나와 있던 마을 사람들 전부가 꼬마 인형을 따라 엄지를 세웠다.
“이번엔 나도 갈 것이다!”
“그래라.”
호기롭게 던전으로 들어간 셋은 곧 동굴 몬스터와의 전투, 아리에테의 조난, 크랭크의 실종과 같은 여러 고난을 겪으며 장장 4시간이 넘는 탐험 끝에 겨우 뜨거운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도끼눈을 한 캐롯이 먼저 두 팔을 벌리고 의미불명의 괴성을 내질렀다.
“우오오오!”
아리에테도 처음 보는 사막의 경관에 감격하며 두 팔을 들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크랭크는 기절한 지휘관을 좀 떨어진 바위 그림자 속에 던져놓고 오느라 뒤늦게 사막이 펼쳐진 지평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생처음 보는 드넓은 모래사막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크랭크가 몸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군. 두 번은 오고 싶지 않다.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