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25화 (125/329)

125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정의의 변태가면단!

퍽!

방망이에 얻어맞은 남자는 그대로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쓰러졌다. 몸을 빙글 돌려 마부석에 착지한 캐롯이 놀라서 발광하는 말고삐를 붙잡아 당기며 외쳤다.

“아이샤! 있어? 아이샤!”

아이들을 품에 안고 겁에 질린 여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걸 보고 캐롯이 방긋 웃었다.

“오! 좋아! 잘됐네! 퀘스트 완수!”

뻥-! 뻥-!

백색 포연의 구수한 향기를 맡으며 크랭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눌렀다. 새벽에 이동 경로를 전달받자마자 매복하고 있었던 그들에게 드워프들이 만들어서 가져온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대, 대포입니까? 이거?”

중앙의 구멍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간이식 떡갈나무 대포를 내려다보며 에이플과 다른 모험가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정확한 것인지 요행인지 어쨌든 마차를 정차시키는데 성공하자 검을 뽑아 든 흑기사가 뛰어나갔다.

“앞뒤 마차를 세웠다! 돌격!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

갑옷으로 무장한 흑기사와 오토마톤 로테가 선두, 그 뒤로 칼을 뽑아든 모험가, 그리고 뒤로는 돌도끼와 돌창으로 무장한 사이퍼즈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돌입 직전, 크랭크는 통역으로 그들에게 일러두었다.

“겁만 주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들은 절대로 살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죠?”

한 젊은이의 말에 고디브가 통역했다.

“아직 당신들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난민이 자국의 사람을 죽이면 유입을 막을 좋은 구실이 됩니다. 압니까?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조차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최대한 뒤에서 함성을 지르며 기만을 유도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설 것까지 없었다. 이들의 전투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먼저 오토마톤들이 격돌했다. 1대 2의 싸움은 싱거울 정도였다. 머리와 다리를 동시에 가격당한 노예상의 오토마톤은 몸이 휙 돌아버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고도 일어서려는 것을 흑기사가 그 가슴을 밟고 목을 때려 부러뜨렸다.

“으흐어억?!”

저 흑기사의 투구를 알아본 사내들이 기겁했다.

흑기사도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검을 뽑아 든 그가 말했다.

“다시 만났군요. 스스로 착해질 수는 없었나 봅니다.”

오토마톤이 쓰러지자 사내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분전하는 자들도 있긴 했지만 커다란 덩치로 덤벼드는 모험가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모험가가 되려다가 실력이 부족하거나 심성이 고약한 자들이 이런 쪽으로 흘러들기 때문이었다.

“으읏하하하하! 이 정도냐?! 가소롭구나!”

쾅-!

사자 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황소 같이 달려온 모험가가 우왕좌왕하는 남자들에게 격돌했다. 그 어깨에 부딪혀 날아가는 자들 중에는 중간 보스의 모습도 있었다.

“레이슨!”

“나는 악당을 때리는 것이 좋다!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이 좋다! 으하하! 맛이 어떠냐?!”

퍽퍽퍽!

날아드는 칼과 주먹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주먹을 휘두르며 난동을 피우는 그를 보고 남자들이 질겁했다.

그때 가까운 마차 옆에서 자동 석궁을 든 사내가 나타나 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화살이 박혀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자! 이 미친놈아!”

투투투투퉁!

에이플에게 쏘아진 화살이 급격히 휘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마구 날아간다.

화살을 연사로 발사하는 자동 석궁은 확실히 위력적인 무기다. 하지만 이것도 마법사가 있다면 미리 방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는 마법사가 그의 자동 석궁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솟아오른다. 호위로 붙어있던 동료가 외쳤다.

“빨리 막아! 오래 못 버텨!”

화살이 직진을 하지 않자 사수가 당황했다.

“이게 뭐야?! 왜 안 맞아!?”

“뭐긴, 뭐야! 마법이지!”

퍽!

캐롯의 발길질에 턱이 돌아간 사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자동 석궁의 방아쇠를 잡은 손은 놓지 않아서 사방으로 눈먼 화살을 흩뿌리고 있었다.

투투투퉁!

“엇차차!”

몸을 옆으로 돌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한 캐롯이 그것을 빼앗았다. 연사로 위력적인 화살을 쏘아대는 자동 석궁은 비싼 것도 있지만 몬스터를 상대로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득템! 이건 이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될 거야.”

전투는 1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모험가들이 쓰러진 남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포박하는 동안 마차에서는 하마터면 팔려 갈 뻔했던 가족들을 되찾은 사람들이 서로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고집을 부려 따라 나왔다가 결국 며느리와 손주들을 되찾은 늙은이도 기뻐했다.

모험가들은 사로잡은 무뢰배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이것들은 어떻게 하지?”

“죽여야지. 이것들은 사람이 아냐. 사람 모양을 한 몬스터야.”

머리에 속옷을 뒤집어쓴 캐롯의 말에 사람들이 기겁했다.

“조그만 꼬마가 못 하는 말이 없네. 그런데 넌 얼굴에 그건 뭐냐?”

두 팔을 올린 캐롯이 꽥하고 외쳤다.

“우리는 정의의 변태가면단!”

“으음. 거기서 나는 빠지련다.”

팔짱을 낀 에이플이 얼굴을 찌푸리며 좀 떨어졌다. 주변을 정리하던 크랭크가 다가왔다.

“경비대에 넘기죠.”

“아, 그거 말인데.”

크랭크의 바지자락을 흔든 캐롯이 그를 데리고 좀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하더니 돌아왔다. 크랭크는 다시 말했다.

“일단 마을로 돌아갑시다.”

마을을 지키고 있던 베누스가 돌아온 사람들을 반겼다. 놀랍게도 그곳엔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여, 친구들.”

배낭을 깔고 앉아있는 드워프를 알아본 크랭크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구스타프?”

“그렇지. 기억해주는군.”

다시 돌아온 구스타프는 정신없는 개척민 마을의 상황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다친 사람들을 비타에게 데려다준 고디브가 찾아와 인사를 했다.

“다시 돌아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찡그린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던 구스타프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꼴도 보기 싫을 텐데, 굳이 반갑게 굴 필요는 없어.”

짧은 한숨을 쉰 구스타프가 사정을 설명했다.

“이 친구들을 여기 데려다준 게 우리지. 생활 기반 정도는 닦아주고 싶었지만 함께 있던 엘프 놈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서 어쩔 수 없었어. 구출된 엘프들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았거든? 그놈들은 화가 나면 무서워. 그래서 버리듯이 내던져 놓고 가버렸지.”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와보셨군요.”

크랭크의 말에 헛기침을 조금 한 구스타프가 말을 이었다.

“늙은이들이 좀 가보라고 성화여서 찾아와봤지. 일 뒷마무리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인가?”

북적이는 개척민 마을을 둘러본 그의 말에 크랭크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들은 구스타프는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초췌한 얼굴의 드워프들이 그를 바로 본 채 서 있다.

“흠. 리즈넷에는 하던 대로 서면으로만 항의할 생각이었는데. 눈으로 본 이상 그건 안 되겠군. 그보다, 납치된 사람들은 다 찾아온 건가?”

캐롯이 불쑥 나섰다.

“웰메인! 웰메인에 중개업자가 있다고 그랬어요. 우리 마니마니가!”

“마니마니?”

바삐 움직인 캐롯은 납치된 사람들 속에 따로 숨겨놓은 그란을 데리고 왔다. 지오가 말했다.

“아까 말한 내부 협력자입니다.”

“똘마니의 마니마니!”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자 그란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푹 숙였다. 구스타프가 물었다.

“자네, 어디까지 알고 있나?”

“저는 말단이라서, 거래처 업자들 이름 정도밖에 모릅니다.”

“그거면 됐어. 차례로 족치고 올라가면 된다. 꼬마 인형, 이 친구를 내가 좀 데려가야겠다.”

캐롯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란이 당황했지만, 구스타프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겁먹지 말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나는 사람에게 한 가지 면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마니마니! 이거 챙겨가!”

캐롯이 큼직한 트렁크를 가져왔다.

“약속했던 거야! 그리고 구스타프 아저씨, 일이 마무리되면 적당한 도시에 떨궈주세요. 저는 이 사람에게 새 출발을 약속했어요.”

“그래 알겠다. 친구들, 급한 볼일이 생겨서 나는 다시 돌아가 봐야겠어.”

그란의 등을 떠밀어 타고 온 자동 마차로 걸어가던 구스타프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동족들이 서 있었다.

“너희들은 어쩔 거냐?”

“빚도 있으니 좀 도와주고 가겠습니다. 어르신.”

구스타프는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못된 놈들과 같이 놀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지. 하여간 젊은것들이 문제야.”

젊은것이라는 말에 아리에테가 구스타프와 곁의 드워프를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드워프 하나가 씩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어르신, 그래도 다 나쁜 놈들은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가 가리킨 곳에는 가여운 사람들을 돕고자 발 벗고 나선 용사들이 서 있었다.

대답 대신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구스타프는 차량에 올라 운전대를 잡고 문을 쾅 닫았다. 방호 창문이 슬슬 내려오더니 그의 얼굴이 슬쩍 드러났다.

“데리러 올 테니 잠깐 기다리고 있어라. 그리고 양철 거인, 이제 따로 구출 작전은 나가지 마. 알아서 데려다줄 거야.”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그의 자동 마차는 숲속에 난 길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알아서 데려다준다고?”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의 말을 정말로 실현되었다.

이틀 뒤, 방주 도시 웰메인과 극동 국경수비대 마을 상공에 엘프들의 공중 전함이 동시에 나타나 납치된 사람들의 반환을 요구했다.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웰메인 경비 총책임자가 성벽의 첨탑에 올라 확성기에 대고 외치자 난데없이 마력포가 발사되어 인적이 드문 곳의 성벽을 증발시켜버렸다.

찌이잉-! 쿠오오오오! 화르르륵!

엄청난 열기에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삽시간에 불타올랐고, 그 일부가 녹아 용암이 되어 흐르자 놀란 사람들이 대피했다.

윙-! 척!

마력포는 이제 영주의 성으로 겨눠졌다.

-웰메인 상단 중책 론비라는 작자를 잡아 와. 10분 주지.

그들이 진심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로잡은 상단 중책을 심문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첨탑 위에서 확성기를 통해 줄줄이 소시지처럼 관련자들의 이름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이런 걸 공개처형이라고 부르지.”

팔짱을 낀 구스타프의 말에 현대화된 함선 내부에 서 있던 그란은 말을 잇지 못했다.

풀려난 사람들은 공중수송선에 실려 개척민 마을로 임시 수용되었고, 갑작스럽게 늘어난 인구에 크랭크들은 곤란해 했다. 하지만 꼼꼼한 구스타프는 식량과 더불어 생활 기반을 닦을 여러 기자재까지 전부 싣고 와주었다.

“방호벽은 사람 손으로 세워야 해. 저 수송선이 크레인 역할을 해줄 거야.”

“엘프들은 여기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참 고맙군요.”

“맞아. 갈색 악마들이라고 부르면서 혐오하지. 그놈들은 한번 등 돌리면 정말 겁나거든?”

주변을 좀 두리번거린 그가 크랭크에게 손짓하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내전도 그 친구들 작품이야.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들 셈이라더군. 서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말이야.”

이야기를 듣고 허리를 편 크랭크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가 팔짱을 끼었다가 하늘을 좀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역시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구스타프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네에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지. 인사나 좀 해줘.”

목걸이 통신구를 꺼낸 구스타프가 인근에 착륙해 있는 수송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지금 만났는데. 당신이 아는 친구인지 확인해봐.”

크랭크가 보석이 박힌 장신구처럼 생긴 통신장치를 받아들자 거기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랭크?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다. 놀라움에 한 손으로 투구를 붙잡은 크랭크가 되물었다.

“로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