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긴급!
크랭크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분노에 미쳐 눈이 돌아간 드워프가 만들기 시작한 결과물을 보고 싶어진 그는 문 앞에 바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저 개인적으로 전폭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더 원하시는 것은 없습니까?”
“크흐흐흐! 자네 말이 좀 통하는군. 이름은 뭔가?”
“모험가 크랭크입니다.”
문이 슬쩍 열리더니 얼굴에 수건을 두른 드워프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브래디, 여기 메이슨, 저건 사이가.”
자신들을 소개한 드워프 브래디가 말했다.
“똥이 필요해. 사람 똥이든 뭔 똥이든 상관없어.”
“아니, 그것보다 여기 산 아래지? 주변에 동굴은 없나? 박쥐가 살 정도로 깊으면 좋겠는데.”
“특정한 나무가 필요해. 숲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호위를 붙여주시게.”
크랭크는 드워프들의 말을 전부 들어주었다. 사람들의 원망과 불만은 새것을 준비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무마시켰다.
“마침 찾는 분이 계셔서 말입니다만. 전에 언급한 그 동굴에 대해서 알려주십시오.”
짧은 한숨을 쉰 고디브가 안내한 곳은 숲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의 절벽이었다. 그 너머로는 웨일즈 본 산맥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 주변을 장식하고는 있는 커다란 바위 뒤로 돌아가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큼직한 동굴이 나타났다.
세 드워프는 크게 기뻐하며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크랭크는 동굴 주변을 살피느라 허둥대기만 할 뿐이었다. 실제로 보니 위기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설마?”
“과거에 사이퍼즈가 리즈넷을 침공할 때 사용한 동굴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기겁한 크랭크가 그를 바라보았다. 고디브는 계속 말했다.
“저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대대로 이 동굴에 대해서 아는 어르신이 계셔서 피란민들을 이끌고 넘어오셨다더군요.”
충격을 받은 크랭크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거대한 산맥이 나눠져 있음에도 어째서 매번 사람들을 납치해갈 수 있는지 이상했는데 지금에야 비밀이 풀린 것이었다.
“이것뿐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추가 조사와 보고가 필요하다! 긴급!
적당한 사례만 있으면 뭐든 하는 모험가 크랭크였지만, 국가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일을 마주하자 마음이 급해져 버렸다.
동굴 안쪽에서 뭔가를 긁어모으고 있는 드워프들을 재촉해서 서둘러 마을로 돌아온 크랭크는 급히 마지막 남은 메시지 스크롤을 사용했다.
* * *
그의 보고를 받은 아르곤 모험가 길드의 마빈 길드 마스터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어버리고 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곤 급히 그것을 들고 영주의 성으로 달려갔다.
영주는 다시 내용을 정리해서 수도 리즈넷의 왕성으로 보고를 올렸다.
크랭크가 메시지를 보내고 24시간 뒤…….
보고는 다듬어지고 후속 조치사항까지 준비된 다음 국왕에게까지 올라갔다.
집무실에서 보고서를 받은 국왕이 심각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서류를 보면서 몸을 기울이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 그가 말했다.
“그랬군.”
“그랬습니다.”
보이드 자작을 선두로, 궁성 마법사들과 각개부처 장관들이 나열하여 국왕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저쪽을 침공할 수는 없을까?”
“크흠! 전하.”
보이드 자작이 시뻘건 눈으로 쳐다보자 국왕이 헛기침을 좀 하더니 말했다.
“어험, 그냥 해본 소리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련 사항이 쏟아졌다.
“보고서를 보낸 모험가는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언급했습니다. 확실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노예 매매상의 대대적인 단속도 필요합니다.”
“모여든 난민에 대한 우리 측 입장도 확실시해야 합니다. 내전이 정리되면 사이퍼즈에서는 곧 송환을 요청할 것입니다.”
책상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보고를 듣고 있던 국왕이 입을 열었다.
“한동안 정신없겠군.”
“심심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제1궁정 마법사의 말에 국왕이 히죽 웃었다. 눈을 크게 뜬 그가 일 처리를 시작했다.
웨일즈 본 산맥의 관통굴에 대한 대규모 왕성 조사단 직접 파견, 노예상의 대대적인 조사, 단속과 더불어 관련자의 처벌을 승인, 엘프 장로회와 드워프 연합체에 미리 사과문을 발송하고 대비책을 협의.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하지? 음?”
난민 관련 보고서를 눈여겨보던 국왕이 보좌관을 손짓했다. 그리고 한 구절을 짚으며 물었다.
“이거 정말인가?”
“예, 정말입니다.”
환하게 밝아진 국왕이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오! 이렇게 기특할 수가! 착실히 세금을 내겠다고? 개척민 마을에서?”
사이퍼즈 난민들이 형성한 개척민 마을에서 리즈넷에 정착을 요구하며 건 조건에 분명 그런 말이 있었다.
우리를 받아 달라.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세금도 착실히 내겠다.
원래 개척민 마을은 세금을 받지 않는다. 때문에 아무런 보호도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세금을 내겠다니! 이것은 앞으로의 정책에 좋은 구실이 될 수 있겠다고 국왕은 생각했다.
“보라! 세금을 내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이 나라의 국민이다!”
“사이퍼즈의 송환요청은 어떻게 합니까?”
국왕이 찌푸린 얼굴로 웃으며 외쳤다.
“철저히 무시! 그놈들도 우리말을 안 들어주는데 우리가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어.”
국왕 집무실에서 보고가 끝나고 따로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세부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국내에 함부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새로운 사이퍼즈가 형성될 겁니다.”
지팡이를 짚은 채 앉은 보이드 자작이 낄낄 웃더니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리되겠지. 하지만 좋은 쪽으로도 생각해보자고, 그 동굴을 통해서 사이퍼즈 쪽에 우리들의 영향력이 닿는 친 리즈넷 성향의 사람들이 살도록 만들면 어떤가?”
듣고 있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보이드 자작은 계속 말했다.
“마침 산맥을 관통하는 굴이 있다고 하니 민간인 모험가 친구들이 해외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 도시에 자주 들리면 치안도 안정되고 여러 소식도 전할 수 있어서 좋겠지. 손은 놓으면 안 돼, 계속 잡고 있어야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될 건 뭔가? 국제정치는 야생의 그것과 같아. 그로서 얻어질 이득을 생각해보게.”
친 리즈넷 성향의 사이퍼즈, 참 매력적인 단어다. 이쪽에서 잠식을 시도하는 것이다.
“일단 부분적으로 노예제도는 폐지할 수 있겠군요. 시도해볼 만합니다.”
“그림 한번 그려 보도록 하자고, 국왕께는 내가 나중에 말씀드리지.”
실무진들이 모여 세부적인 일 처리를 하는 중에 까다로운 안건이 하나 더 나왔다.
“웨일즈 본 산맥 조사단장은 어느 분께 위임하면 되겠습니까?”
모두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후보가 마땅찮아서가 아니라, 이런 경우 꼭 나서는 사람이 있어서다.
이틀 뒤,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규모 왕립 웨일즈 본 관통굴 조사단이 파견되었다. 단장은 리즈넷 제3왕녀 쥬세페 이리디움.
남부의 어떤 모험가처럼 자동수송차량의 지붕에 올라가 검을 지팡이처럼 세우고 두 손을 올린 왕녀가 흐뭇하게 웃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음후후! 바람이 시원하군. 이대로 여름휴가까지 보내고 와야겠다.”
“공주님! 그러다 떨어지세요!”
* * *
“그란! 너 임마! 어디 갔다가 왔어!”
먼저 와 있던 동료들이 날카롭게 외쳤지만 아지트로 돌아온 그란은 의자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다 타버렸어…! 내 방에, 모아둔 돈이 전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있던 사내들이었지만 곧 낄낄 웃으며 놀려댔다.
“아, 불난 집에 돈 찾으러 갔었어? 하하하! 잊어버려!”
“프하하! 등신 자식! 그러길래 이 몸에게 투자하라고 했잖아! 돈을 쓰지 않고 모아놓기만 하니까 그런 꼴을 당하는 거다!”
그란이 찡그린 얼굴을 들었다.
“3년 치 저금이 타버려서 나 지금 별로 기분이 안 좋아.”
“안 좋으면 어쩔 건데?”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란이 일어섰다. 그러자 남자 하나가 팔을 내밀었다.
“그만해라.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체비, 너도 닥쳐.”
“칫!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지금 우리밖엔 안 남았어. 레이슨, 당신이 졸지에 우두머리가 되었다고요.”
가장 연장자인 중간 보스 레이슨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건물에 모인 똘마니들은 열댓 명 정도와 경비용 오토마톤 1대, 대모는 정체 모를 놈들에게 끌려가 버렸고, 국경선이 봉쇄된 지금 저쪽의 판로는 아예 막혀버렸다.
한참 생각하던 레이슨이 입을 열었다.
“아직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 테니 웰메인의 중개자 놈들에게 다 넘겨버리고 돈을 챙겨서 한동안 잠수타자.”
“나도 그 생각했음.”
“그렇지 않아도 경비대 뇌물 먹일 날짜 다가오는데 잘됐네.”
주변을 쓱 둘러본 레이슨이 말했다.
“오늘은 못 잔다. 준비해서 새벽에 바로 물건 옮기고 뜨자. 돈은 공평하게 나누는 거다.”
모두의 마음에 드는 방침이 정해지자 당장 남자들이 바빠졌다. 짐을 싸고, 마차를 수배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벽장 안에서 트렁크를 끄집어내자 남자들이 모여든다.
“와! 이게 다 뭐임?!”
“경비대에게 먹일 뇌물. 여기 놈들 다 한통속이야, 대모가 이런 건 참 잘했지.”
“케케케! 너무 그러지 마, 돈맛을 알아버린 거지! 헤이! 레이슨! 이것도 나눠요?”
지하 감옥을 살펴보고 올라오던 레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얼마나 되냐?”
“4천만 리즈.”
“호오우!”
“이걸로 밥이나 좀 시켜 먹자.”
“시켜 먹긴! 지금 제일 조심해야 할 땐데! 비켜봐! 한 끼만 먹으면 되는 거잖아? 재료 아끼지 말고 내가 요리해볼게.”
체비가 노래를 부르며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자 다른 남자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야! 체비, 너 요리 못하잖아?”
별 의미 없는 농담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두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쓴 표정을 지은 레이슨이 말했다.
“다들, 진정하자. 돈에 눈이 돌아간 건 알겠지만, 우리 모두가 없으면 이 밑에 상품들을 다 옮기고 처분할 수 없어. 저쪽의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아니! 나는 아무것도!”
“안다. 하지만 말해두고 싶었다. 서로서로 조심하자. 그란? 네가 가서 음식들 좀 사 와라.”
“알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란이었지만 곧 울상을 하고 뒤로 돌았다.
“도, 돈이 없…….”
사내들이 낄낄 웃었다. 피식 웃은 레이슨이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많이 사와.”
“크흑, 예.”
잠시 후. 테이블을 가져다 붙이고 음식을 가져오자 남자들이 달려들어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포크나 수저 같은 도구는 쓰지도 않았다.
“케케! 남는 건 밑에 놈들 주면 되겠네.”
“움움! 남으면 말이지! 움냠냠!”
식사를 마친 남자들이 손가락을 빨며 남은 일을 서둘렀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난 새벽 무렵, 사람들을 가득 실은 마차들이 출발했다. 교대 시간의 성문 경비병에게 관례처럼 돈주머니를 쥐여 준 그들은 서둘러 국경선 마을을 빠져나왔다.
“근데, 이런 거 불법이잖아요? 그런데도 수효가 있는 게 참 신기해.”
“얌마, 그렇지도 않아. 돈 좀 있는 것들은 사이퍼즈에 복수한다는 꼴같잖은 소릴 하면서 같은 짓을 해대고 있다고.”
마부석에 앉은 체비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다 같은 놈들이네? 우리만 나쁜 놈들이 아니었……!?”
퍽?!
무언가 날아와 마부석에 앉은 체비를 비롯해서 남자들의 상체를 날려버렸다.
촤아악?!
사방으로 피가 뿌려지자 납치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그들을 감시하던 사내가 기겁했다.
“으악! 뭐야?!”
그때 달리는 마차의 천막 지붕의 입구로 조그만 소녀가 거꾸로 매달렸다.
얼굴에 뭔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당황하여 잘 알아보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여자 속옷 같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