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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22화 (122/329)

122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새 출발!

“으아아! 으아아아!”

“살려주시오! 살려줘!”

분노한 드워프들의 주먹에 피곤죽이 되어버린 동료들을 보고 겁에 질린 사내들이 울면서 소변을 지리기 시작했다.

감옥 안에서는 그토록 거칠고 못된 짓을 서슴지 않던 자들인데, 눈에서는 눈물이,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통쾌함이 밀려온다.

그때 건물 위에서 반짝이는 무언가의 신호를 받은 흑기사는 급히 출발을 선포했다. 노예상 대모를 빼고 그의 부하들은 다 풀어줬다.

양손이 피로 물든 드워프들이 불만을 드러냈지만 흑기사는 단호했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아주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 갈 사람들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목숨을 구원받은 남자들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곧 마차는 출발했다.

묶인 채로 버려진 남자들은 마차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비틀거리면서 일어서더니 어딘가로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선 사내들은 함께 모여 움직였으나, 한 사람이 기회를 엿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혼자서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일그러진 얼굴은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건물 옥상을 장식하고 있는 가고일 석상의 날개 아래에 쭈그려 앉아서 그걸 쳐다보던 캐롯의 입이 히죽 찢어졌다.

“배추를 갉아 먹는 끔찍한 애벌레가 번데기를 만들 확률은 5분의 1인가봐?”

물론 그 번데기에서 나비가 태어날지는 미지수.

가고일 석상 옆의 오토마톤은 곧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림자 속에서 장난스러운 웃음소리만이 들려온다.

“히히히!”

콰콰쾅-! 쿠르르릉-!

건물 화재를 거의 진압할 무렵, 갑작스레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가벼운 지진이 일어났다. 그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놀란 소방청 직원들과 사람들이 주변을 살폈다. 남쪽 성벽 부근에서 흙먼지와 함께 파편이 날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소방청 직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오늘 왜 이래! 왜 자꾸 터지는 거야?!”

“뭔가 심상찮다! 국경수비대 불러!”

폭발사고를 조사하기 위해서 현장에 급파된 수비대원들이 발견한 것은 박살난 성벽과 그 사이로 이어진 마차 바퀴 자국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일이냐고!”

“수비대 병력을 전부 불러와! 성벽부터 임시 보수한다! 몬스터가 들어오면 귀찮아져!”

“미친! 누군지 모르지만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어! 문으로 나가라고! 문으로! 아오!”

울화통이 터진 수비대원들이 저마다 욕설과 분통을 터트리며 부서진 돌 파편을 모아서 급히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폭발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나온 리즈넷 국경수비대장은 저 멀리 화재로 전소하고도 모자라 아직 연기를 뿜어 올리는 여관 건물과 더불어 폭격에 맞아 박살난 성벽을 올려다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무언가의 양동인가?”

“허억! 헉!”

몸에 밧줄을 감은 채 대로를 달려 익숙한 골목길로 뛰어든 청년이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더니 곧 오만상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크흐으윽-! 흐윽……!”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울고 있던 청년은 일그러진 자신의 인생을 한탄했다.

“너는 네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구나. 그런 사람 많이 봤지.”

더러운 골목길로 별안간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주변을 살피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되고 싶지 않아? 주인공, 되찾고 싶지 않아? 네 인생.”

“뭐야? 누구야?! 누구!”

쿵-!

골목길에 쌓여있는 상자 위에 10세 언저리의 몸집을 가진 꼬꼬마가 떨어졌다. 그런데 복장이 심상찮다. 설마?

허리에 손을 올리고 몸을 숙인 소녀가 망측한 것을 얼굴에 뒤집어쓴 채 입을 열었다.

“뭐, 넌 뭐냐?”

“그냥 지나가는 변태야. 하지만 번데기에게 제안이 있어서 찾아왔어.”

팬티 사이로 드러난 커다란 붉은 유리 눈동자가 일그러진 청춘에게 드리워졌다.

“너 나랑 일하나 같이 하지 않을래?”

“음, 여기 있었네.”

마침 골목길로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얼굴에 재를 펴 발라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된 지오였다.

항상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다니는 지오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검의 손잡이를 잡은 그가 장갑을 낀 손가락을 들었다.

“그건 뭐야?”

“이 사람? 아니면 나?”

“둘 다.”

씩 웃은 캐롯이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우리는 정의의 괴도 변태가면단! 노예상에서 일하던 너를 포섭하고 싶어. 대신 너를 네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줄게.”

지오를 알아본 남자는 이 소녀와 그들이 한패라는 것을 짐작했다. 하지만 도망갈 길이 막혀버려 어찌할 도리가 없어진 그는 코를 힘껏 들이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밧줄에 묶인 채로,

“……크흡! 얕보였나 본데.”

“응, 골목길에서 질질 짜고 있는데 만만해 보일만도 하지.”

얼굴이 좀 달아올랐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캐롯은 좀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네가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적당한 돈과 개척민 마을을 소개해 줄게. 어때?”

새 출발.

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을 관찰한 캐롯은 신이 나서 재잘댔다.

“그래! 이런 곳에서 있었던 일 따위 모두 잊고 새 인생을 시작해. 얼굴이 나쁘지 않으니 결혼도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멘탈이 약하니 똑 부러진 여자를 만나는 게 좋겠어. 열심히 일해선 번 돈으로 살림살이도 하나씩 늘리고, 근면 성실함으로 주변에서 칭찬도 받고, 아이도 태어나고, 그렇게 아빠가 되고, 늙어가는 거지. 멋지게! 어때? 그런 걸 바라는 거 아냐?”

“으흐으윽……!”

도시로 상경해서 돈을 벌려던 것이 어쩌다 뒤틀어져 지금에 온 청년은 꿈에 바라마지 않았던 소박한 인생 계획을 눈앞의 소녀에게 듣고 다시금 눈물을 쏟아버렸다.

허리를 편 캐롯은 이제 팔짱을 끼었다.

“울보네.”

“크흡-! 다, 닥쳐. 속옷이나 뒤집어쓴 변태 녀석이……!”

남자의 상태를 보고 캐롯이 히죽 웃었다.

오오, 넘어온다. 넘어온다.

“그전에 마음의 짐을 덜자. 좋은 일 한번 크게 해서 지금까지의 나쁜 짓을 씻어내고 가자.”

남자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한다.

굳은 표정을 하고 주변을 망보던 지오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탁-!

캐롯이 던진 칼에 남자의 몸을 옭아매던 밧줄이 끊어져 후두둑 쏟아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소녀는 이제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다시 소개할게. 내 이름, 기회라고 해.”

그리고 입을 다물고 작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눈물을 질끈 짜낸 청년은 재빨리 팔을 휘둘러 그 작은 손을 덥석 붙잡았다.

* * *

하루 만에 다시 난민촌으로 돌아온 아리에테는 마을의 경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늘을 걱정하던 비루한 난민촌은 내일의 희망이 넘치는 개척민 마을로 탈바꿈되어 있었으며 난민들과 함께 처음 보는 모험가들도 여럿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여긴 뭐지? 우린 단 하루 떠나있었을 뿐인데?”

“무사히 돌아왔군. 다행이다. 솔직히 좀 걱정했었어.”

통나무집을 만들고 있다가 달려온 크랭크가 그들을 살펴보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마주 보고 있던 아리에테가 눈을 깜박거렸다.

“너는 참, 한결같구나.”

“뭐가 말이냐?”

“아니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처음 보는데.”

근처의 모험가들을 돌아본 크랭크가 대답했다.

“다른 도시에서 조사차 파견된 모험가들이다. 합류를 원해서 허가했다.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갔던 일은 어떻게 됐지? 이게 전부인가?”

아리에테가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올리며 대답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캐롯과 지오를 거기 남겨두고 왔다. 생각보다 노예상의 규모가 컸다.”

“오오! 아이샤?! 아이샤!”

갈색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이 돋아난 영감 하나가 불안한 얼굴로 며느리의 이름을 부르고 다녔지만 찾는 사람은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를 보고 아리에테가 슬픈 표정을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직 찾을 곳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린 아리에테는 중년 여자 하나를 데려왔다. 찡그린 얼굴의 눈을 이리저리 돌리던 대모가 날카롭게 웃었다.

“오호, 물건들이 많이 있구나.”

“어휴!”

보리스가 칼손잡이를 쥐고 앞으로 나섰지만 차마 검을 뽑지는 못했다.

아리에테의 말을 통역 받은 늙은이가 분노한 얼굴로 대모에게 외쳤다. 외국어라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통역을 받았다.

노예 상인을 마주한 고디브도 우거지상으로 말을 전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팔아 치울 수 있는가.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푸흐허허허허!”

갑자기 대모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로잡힌 마당에 이젠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녀는 핏발이 돋은 눈으로 외쳤다.

“네놈들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 이 갈색 악마 놈들! 노예를 부릴 때는 언제고 처지가 바뀌니 우는 소리를 내느냐! 당해보니 비로소 알겠더냐?! 으응? 호호하하!”

분노한 고디브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주변의 외침과 시선 때문에 말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통역했다.

마주 눈을 부릅뜬 사이퍼즈의 늙은이가 화를 내며 소리를 내질렀다.

“사이퍼즈의 노예는 전부 귀족들의 것이다. 우리 같은 하층민들은 그들과 같은 취급이었다. 싸잡아서 비난하지 마라.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대모는 이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다르냐? 네놈들 전부에 그런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세대가 지나면 여기서도 그런 놈들이 나올 것이야!”

“말이면 다인 줄 아는가! 당신은……!”

갑자기 무시무시한 얼굴이 된 노예상 대모가 사방에 대고 외쳤다. 놀랍게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사이퍼즈의 말이었다.

“나 역시 너희 놈들 때문에 인생을 망친 피해자다!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좀 더 팔아치울 수 있었는데! 좀 더 비참한 인생들을 만들어놓을 수 있었는데! 바로 나처럼 말이야! 호하하하하!”

대모가 고개를 쳐들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광기에 젖은 웃음소리에 사람들은 저마다 질린 얼굴로 귀를 막거나 고개를 돌렸다.

“으이익-!”

더 이상 참지 못한 늙은이가 주변 청년이 들고 있던 돌도끼를 빼앗아 휘두르려는 찰나 그것을 붙잡은 사람이 있었으니 크랭크였다.

“큭큭큭! 킥킥킥!”

두꺼운 왼팔은 돌도끼를 붙잡았고, 오른팔은 투구의 눈가를 덮은 채 양철 거인은 킥킥대고 있었다.

“크랭크?”

아리에테가 걱정스레 물었다. 양철 거인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길게 뚫린 틈새로 붉은 눈이 드러나고 있다.

“어, 음, 미안. 흐윽큭큭큭……!”

늙은이의 손에 쥐어진 돌도끼를 빼앗은 크랭크는 몸을 돌리고 걸어가더니 커다란 나무에 투구를 대고 혼자서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다.

이 괴이한 상황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노예상 대모까지도.

그러다 아리에테가 캐롯의 말을 떠올렸다.

웃는 코드가 보통 사람하고 틀려.

갑자기 화가 난 아리에테가 달려가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철썩!

“그만 닥쳐라! 너는 이 안타까운 상황의 어디가 웃기냐! 이 음험한!”

크랭크의 투구가 뒤를 돌아본다. 투구 안의 눈매가 휘어져 있다. 마치 광인의 그것 같다.

“누구 똥이 더 굵은가 대결하는 것 같지 않으냐?”

비웃음. 크랭크는 비웃고 있었다. 그걸 본 모두의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성인 같은 게 아니야.

철썩, 철썩!

화가 난 아리에테에게 여러 번 얻어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크랭크가 노예상 대모를 가리키며 물었다.

“정보는?”

“다 얻었다. 잡아간 사람의 목을 원한다기에 데려온 거다.”

그 말을 듣고 크랭크가 정색을 했다.

“너야말로 잔인하군. 나를 욕할 처지냐?”

“광인 크랭크에게 그런 소릴 들으니 정말 기분이 나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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