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복숭아!
달려간 캐롯은 상자 두 개를 더 받아왔다.
크랭크는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했다가 자리에 앉았다. 아니, 그랬다가 다시 일어섰다.
“……우편국에 좀 다녀올게. 매번 가지고 오지 말고 한 번에 가져오라고 말해야겠다.”
자연스럽게 따라나서려는 아리에테의 어깨를 붙잡은 크랭크가 그녀의 몸을 뒤로 빙글 돌렸다.
“넌, 좀 씻어라. 정비 후 본격적으로 일거리를 받으러 가자.”
“올 때 간식 사 올게-!”
다시 외출하는 크랭크와 캐롯을 바라보는 아리에테의 곁으로 투나가 다가왔다.
“그, 그래서 어땠어? 수도는?”
“그렇군, 투나에게도 이야기해줘야지.”
아리에테가 수도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자리에 앉아서 샤를이 튀겨준 옥수수 팝콘을 먹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은 투나가 놀라워했다.
“연산 수정을 옮겨 심어? 인챈트? 황금색 인형이라고?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서? 와, 크랭크는 정말 별 걸 다하는구나. 대단한 남자네.”
아리에테는 지금 말을 더듬지 않는 그녀가 더 신기했다.
“그, 그런데 왜 인챈트를 쓰면 황금색이 되지?”
자리에 앉아 충전을 하며 가만히 듣고 있던 베누스가 끼어들었다.
“영혼이 없는 오토마톤은 도구로 인식되어 그렇다고 저번에 함께 한 신관이 말했습니다. 저도 그 인챈트를 받아 보았습니다. 정말로 황금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오오! 정말?”
함께 공방에 얹혀살며 아리에테는 투나의 몇 가지 재미있는 특징을 알게 되었다. 말더듬이지만 자기 관심사가 등장하면 드물게 더듬지 않기도 한다. 약학을 비롯해 뭔가 아는 게 많으며, 양손잡이에, 낯을 무척 가리는 편이었고.
그리고 오늘, 새로운 특징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에테는 투나가 하는 걸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인챈트.”
칭-!
가져온 책을 펴들고 안에 쓰인 주문을 한참 중얼거리던 그녀가 앞치마를 한 샤를의 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인챈트를 사용했다.
샤를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투나가 놀라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리에테의 비명에 가려지고 말았다.
“호오오옥?! 저, 정말 되잖아?”
“투투투투투나?! 너는 마법사였나?!”
“응?”
안경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뜬 투나가 샤를과 아리에테를 번갈아 보더니 식은땀을 마구 흘리며 버벅대기 시작했다. 둘러댈 거리를 찾던 투나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어, 어어어응,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스, 스승님이 마법사라서 간단한 운용만 조금…….”
“대단하다! 공격 마법은? 파이어볼이나 매직 미사일도 쓸 수 있나?”
환호하는 아리에테를 보고 긴장한 투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 아, 아니. 스펠 계산 속도가 느, 느려서 실전에서 쓸 정도는 모, 못 돼. 운영 마력도 낮고.”
“오오오! 쓸 수 있구나! 내 친구가 마법사라니! 이런 행운이! 내 마법사가 되어다오! 투나!”
“어, 아, 아니. 나, 나는 실전은 좀, 무, 무서워서…….”
그때 인챈트를 받아 모든 능력치가 급상승한 샤를이 황금빛으로 물든 손을 투나의 어깨에 올렸다.
“실례합니다만, 투나. 오늘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으, 으응?”
샤를에게 붙잡힌 투나는 평소 방탕한 생활에 대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늦게 일어난다거나, 먹다가 흘린 걸 다시 주워 먹는다던가, 잘 씻질 않는다거나, 옷을 아무 데나 던져둔다거나, 사람들이 없으면 속옷만 입고 공방을 활보 한다는 등의 생활상이 빠짐없이 나열되고 있어서 투나가 너무도 부끄러워했다.
“깨끗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십시오. 당신의 건강과 생활이 염려됩니다.”
“흐윽, 예, 샤를 엄마.”
그걸 보고 와하하 웃고 있던 아리에테를 쳐다본 샤를은 이제 그녀에게도 비슷한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리에테, 검과 장비를 정돈하기 전에 자고 일어난 침대의 이부자리부터 정리하십시오. 물론 그것이 제 일이기도 합니다만. 크랭크 주인님과 대비했을 때 두 분의 생활은 너무도 극명한 차이가 보입니다. 여러분들의 생활은 아이의 그것과 다름없습니다.”
“그, 그만! 내가 잘못했다.”
의자에 앉아 충전 중인 로테가 말했다.
“샤를의 자아가 강해진 느낌입니다. 인챈트를 받으면 저렇게 됩니까?”
“제가 받았을 때는 연산부의 부하와 함께 강한 고양감을 감지했습니다.”
“당신은 그때 무엇을 했습니까?”
고개를 돌린 베누스가 로테를 보았다.
“춤을 추었습니다. 오크분들과.”
* * *
같은 시각, 모험가 길드 사무실에 앉아있던 마빈 길드 마스터는 출장에서 돌아온 직원 마론이 내미는 수첩을 검토하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론. 오늘은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들어봅시다.”
사복 차림에 후드를 쓰고 있던 마론은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돌아가고 수첩을 내용을 살펴보는데 길드 여 사무원이 올라왔다.
“길드 마스터, 모험가 크랭크와 캐롯이 면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크랭크와 캐롯을 마주한 길드 마스터는 그들이 꺼내놓은 이야기를 애써 모르는 척했다.
“그 아가씨가 귀족이었다고요?”
“예, 이번 수도 출장은 담판을 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별로 얻은 건 없었지만 할 일은 명확해졌습니다. 그래서 길드 마스터, 그 건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크랭크가 내놓은 이야기는 그를 즐겁게 했다.
“동화책으로 이야기를 공식화 시켜요?”
“예, 숨길 수 없다면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판을 벌이는 겁니다. 아리에테는 솔직히 괜찮은 소재이지 않습니까?”
딱-!
크랭크가 손가락을 튕기자 캐롯이 벌떡 일어나더니 과장된 몸짓으로 응접실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음유시인 마냥 노래를 불렀다.
“아아! 저 아름다운 금발의 여 기사를 보라! 팔다리를 잃었으나 자애와 용기를 잃지 않았고, 초야의 귀인을 만나 강철로 된 새 수족을 얻었으니, 그것이 바로 영웅의 시작이로다. 그리하여 검을 들고 다시 일어나 용사가 되었으니, 하늘을 나는 드래곤마저 굴복시키는구나. 이 와중에 출생의 비밀이 사실은 엄마랑 싸우고 가출한 귀족 영애.”
요즘 모험담을 각색한 동화책과 잡지로 벌이가 상당했던 길드 마스터의 눈이 번쩍였다.
대박의 조짐! 이건 먹힌다!
그는 서둘러 사무원을 몇 명 더 불러들여서 메모를 준비했다.
“각색, 인쇄, 유통은 맡겨주시오. 다만 인세는 그다지 많이 드리지는 못합니다만.”
“돈은 필요 없습니다. 괜찮은 의뢰가 있다면 알선해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거라면 괜찮은 것이 하나 있군요.”
“저희 이야기부터 풀고 들어보지요.”
몰래 미행까지 시켜가며 정보를 모았건만 알아서 찾아와 줄 줄이야. 마빈 길드 마스터는 표정 관리에 애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수다쟁이 오토마톤이 맡았다.
두 사람은 면담을 위해 길드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할 말을 맞춰 두었기 때문에 초보 모험가 양성소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 걸러내 버렸다.
캐롯은 이번 수도 방문에 이르기까지 아리에테와 관련된 이야기 전부를 다 늘어놓았다.
자기와 장기를 둬서 이기면 소원 들어준다는 장기 마왕이 나오는 시점에서부터 마빈 길드 마스터의 얼굴로 탐욕스러운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좋군요! 이야기가 연결되는군요. 이거 정말 꽤 괜찮은 물건이 나올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동화책 다음 편은 대박의 예감이 느껴집니다. 음후후!”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다.
“헤에? 왕성에서 일하는 마법사는 국가 요직이지 않아요? 그런 사람도 써먹을 수 있어요?”
“누군지 대놓고 밝히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니겠니? 그리고 사람들은 칭찬에 약해. 멋지게 꾸며 드리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흐하하!”
소재 제공에 대한 보답으로 꽤 좋은 보수의 의뢰를 하나 받아서 공방으로 돌아온 크랭크와 캐롯은, 전신이 황금색으로 물든 샤를이 투나와 아리에테 앉혀 놓고 끝없는 설교를 해대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녁을 먹으며 투나가 서글픈 표정을 했다.
“또 나가?”
투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캐롯이 몹시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속닥였다.
“……돈, 벌어야지.”
“크흐읍!”
아리에테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풉 웃어버렸다.
크랭크가 말했다.
“목적지는 사이퍼즈 국경선이 있는 웨일즈 본 산맥. 내전을 피해 숨어들었다는 난민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 임무다. 보수가 좋으니 안전하게 몇 명 더 데려가고 싶군.”
“누구?”
아리에테를 슬쩍 쳐다보던 크랭크가 말했다.
“구급봉사활동단 친구들에게 의향을 물어보자. 의뢰비는 3분1 정도를 지급하는 걸로 하고.”
“어, 오, 나 그 녀석들 어디에 사는 줄 아, 알아. 요즘 자주 왕래하고 있어.”
“잘됐군. 투나를 외교관으로 데려가라.”
“알았어.”
다음 날, 늦잠을 자버린 투나를 두들겨 깨운 캐롯은 걸으면서 졸고 있는 투나를 닦달해 지오의 파티가 사는 5번가의 거리로 향했다.
아르곤의 도시 구조는 퍽 간단하다. 중앙에 광장이 있고 숫자로 구분한 거리는 시계 방향으로 시작된다.
개장 당시에는 제대로 용도에 따라 구역을 나눠두었지만, 20년이 넘어가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황과 현실과 필요에 따라 입맛대로 주택과 창고와 가게가 들어서고 있었다.
“너희들도 창고 구역에 있었구나. 모험가를 창고 지대에 박아 놓다니 무슨 생각이지?”
어제 모험에서 돌아와서 쉬고 있던 지오가 웃으며 말했다.
“인적이 드문 곳의 치안을 유지하려고 시청에서 그렇게 소개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덕에 싸게 구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예의상 차를 내놓은 비타를 보고 캐롯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희들 우리랑 원정 나가보지 않을래? 의뢰비 3분의 1 떼어줄게.”
근처에서 롱소드를 슥삭슥삭 갈고 있던 보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얼만데?”
“1200만의 3분의 1이니까. 400만 리즈.”
혹한 비타가 비명을 질렀다.
“해요! 할게요!”
“그래! 하자!”
보리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 돈으로 마구간을 따로 만들어서 그만 좀 말똥 냄새에서 벗어나자!”
“맞아요! 아니, 벨리나! 네가 싫은 게 아냐! 그저……! 그저 말이야!”
비타가 호들갑을 떠는 걸 쳐다보던 캐롯이 같은 창고 안에 있는 검은 말을 쳐다보았다.
“이대로 두면 조만간 파리 날리겠네.”
“으, 맞아요! 파리 극혐!”
히히 웃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캐롯이 말했다.
“여기 창고를 증축하느니 이사를 하는 게 빠르겠는데?”
“지금 고민 중이에요. 차라리 모험가 기숙사에 다시 들어갈까 싶기도 하고,”
팔짱을 하고 서 있던 코비가 치를 떨었다.
“기숙사는 싫어, 시비에, 싸움에, 도난에, 어휴 끔찍해. 다신 안 들어갈 거야.”
“그래서 어때? 할래?”
롱소드를 갈무리한 보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출발인데?”
“준비 마치는 대로 내일이라도 갈 거야.”
“크흣-! 우린, 어제 왔다고!”
보리스가 절규했지만 캐롯은 실실 웃기만 했다.
“400만 싫어? 나 포함 오토마톤 3대, 크랭크, 아리에테가 나갈 거야.”
“어디로 가는데요?”
지오의 물음에 캐롯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극동, 웨일즈 본 산맥. 의뢰 내용은 받아들이면 알려줌.”
지오의 파티가 모여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은 금방 났다.
“할게요.”
“좋아. 저녁에 우리 공방에 찾아와.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캐롯은 비타의 간이침대에 누워 코를 골골대는 투나의 투실한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찰싹-!
“일어나! 이 잠꾸러…….”
손바닥과 투나의 엉덩이를 번갈아 보던 캐롯이 부스스 깨어나는 투나에게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 번만 더 때려 봐도 돼?”
“으응?”
찰싹-!
“아, 아으!”
“오옥! 소리 들었어?! 되게 찰져!”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인 양 놀라운 표정으로 캐롯이 외쳤지만 지오와 코비는 고개를 숙이거나 돌렸고, 보리스만이 코를 좀 벌렁거리며 손가락을 들었다.
“야, 너는 무슨 오토마톤이……! 남의 엉덩이를 그렇게 막 다루지 마. 버릇없어.”
히히히 웃던 캐롯이 폴짝 뛰어 뒤로 돌더니 투나에게 엉덩이를 쑥 내밀었다.
“그럼 투나도 때리면 되지. 이걸로 쌤쌤이야.”
침대에 앉아 잠이 덜 깬 얼굴로 얻어맞은 엉덩이를 매만지던 투나의 눈이 순식간에 커다래졌다. 재빠르게 침대에서 뛰어 내린 그녀는 캐롯의 치마를 휙 들쳐 올리고 호박팬티를 끌어내려보았다.
“허억, 헉! 귀, 귀여워! 완전 사람 같아.”
“어머나, 세상에……! 복숭아, 복숭아가 있네요.”
호기심이 동한 비타도 투나의 어깨너머로 캐롯의 조그만 엉덩이를 구경했다.
“어으으으음……! 좀 그만둬 줄 수 없을까나.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응? 봐도 돼. 괜찮아, 나는 오토마톤이야.”
“바보야! 껍데기가 사람이면 사람 취급을 하게 된다고!”
버럭 하는 보리스의 목소리에 등을 보이고 있던 캐롯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손바닥을 주먹으로 때렸다.
“오호! 그렇구나! 그럴듯해!”
캐롯의 볼기짝을 구경하던 투나는 주변의 성화에 그만 입가를 슥슥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 아침밥을 먹지 않았지만, 배가 부른 걸?”
“저도요. 우후후.”
투나와 비타가 배부른 미소를 짓는 것을 쳐다보던 세 남자는 치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