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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12화 (112/329)

112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수도관광! (10)

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이튿날 아리에테는 잠잠해졌다.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이불킥을 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퍽퍽!

여관방에서 담요를 걷어차던 아리에테가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소리 없는 절규를 한다.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그걸 보고 있던 로테가 베누스를 보았다.

“저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담요의 성능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제 경험상 인간은 성능이 떨어지는 물건에 화풀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두 오토마톤의 토론은 캐롯의 등장으로 끝났다. 그녀를 깨우기 위해 들어왔다가 담요를 둘둘 감은 채 바닥을 뒹굴고 있는 아리에테를 보고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왜 그래? 진정해.”

“캐롯! 내가 어제 대체 무슨 소리를 해댄 거냐! 무슨 낯으로 그를 봐야 할지!”

호다닥 달려가 무릎을 꿇고 캐롯을 끌어안은 아리에테가 징징거렸다. 그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준 캐롯이 말했다.

“괜찮아. 주인님은 관대한 사람이니까. 속옷만 입고 뛰어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건 솔직히 좀 아니다 싶은데. 부끄럽지도 않은 걸까.”

아리에테와 서로 킥킥 웃은 캐롯이 말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좀 뻔뻔하게 평소처럼 대하면 돼.”

“음, 그래, 알았다. 오늘 돌아가는 건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캐롯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니, 좀 들릴 곳이 있다고 하던데.”

“어디?”

“장기 마왕님의 계신 곳.”

보이드 자작의 저택은 남 리즈넷에 있었다. 성벽 내부라서 몬스터가 없기 때문에 걸어가도 상관없지만 시간 관계상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차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덜컹거리는 마차에 팔짱을 끼고 앉은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분명 뭐든 들어준다고 했었지.”

“응? 지금 그 말을 믿고 찾아가는 건가? 너무 막연하지 않나? 소원을 들어준다니 무슨 드래곤도 아니고,”

차 안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리에테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크랭크는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말을 이었다.

“너는 생각보다 사람과 상황을 보는 눈이 있구나.”

아리에테가 울컥하더니 주먹을 들었다.

퍽퍽!

“나도! 한때는! 한 파티를! 이끄는! 리더였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과 놀다가 온 것인지 양손에 실뜨기를 매고 돌아온 캐롯이 그것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서 계획은?”

아리에테는 눈앞으로 내밀어진 캐롯의 실뜨기를 보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그것을 요령껏 손으로 뜨기 시작했다.

크랭크가 흥미롭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내내 생각해봤는데, 역시 양성소를 차리려면 여러 가지 지원이 필요하다. 일개 모험가들로만 어떻게 해볼 만한 것이 아니야. 그러니 당분간 너는 명성을 쌓아라.”

“명성?”

강철 장갑으로 만들어진 손으로 실뜨기를 하고 있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들었다.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정말로 지원을 받아 양성소가 만들어지더라도 별것 없는 모험가에게 자리를 맡기진 않을 거야. 거기에 끼일 수 있도록 네 가치를 올려야 한다.”

팔짱을 푼 크랭크는 아리에테의 손에 걸려있는 실뜨기를 여유롭게 옮겨 뜨기 시작하더니 펼쳤다.

깔끔한 사각형이 만들어졌다.

“너는 너만의 파티를 만들어서 명성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도시의 영주나 국가에 모험가 양성소를 제안하고 지원을 끌어내는 거로군? 나로 인해 우리 가문도 자연스럽게 구색을 차릴 정도가 될 것이고.”

“대충 그렇다.”

아리에테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크랭크의 손에서 실뜨기를 옮겨 받은 캐롯이 끼어들었다.

“그러면 우리가 얻는 건 뭐야?”

우리, 캐롯은 크랭크를 보고 있었다. 아리에테는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끼고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크랭크가 더 빨랐다.

“정말 아리에테가 양성소를 차리거나, 그곳의 교관으로라도 임명된다면 나는 그 줄을 이용해서 오토마톤 임대업을 해볼까 싶다. 초보 모험가에게 베테랑 오토마톤을 일정 기간 빌려주는 거지.”

캐롯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오옥! 좋네! 주인님의 안전과 목가적인 나날을 보장할 수 있겠어! 아리에테!”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들었다. 캐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가 네 등을 밀어줄게! 이건 우리의 미래를 위한 동시 투자가 되는 거야.”

우리의 미래. 우리…….

“어, 음. 거기에 나도 포함되는 건가?”

캐롯이 하트로 만들어진 실뜨기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당연하지. 우린 가족이잖아?”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겪은 아리에테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강철 장갑으로 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캐롯의 다독임에 그 작은 몸을 와락 끌어안아 버렸다.

“흐으읍…! 너를 내게 보내주신 여신께 감사를…….”

“아리에테! 콧물! 콧물!”

마차는 신나게 달려 남문 리즈넷에 도착했다.

보이드 자작의 저택에 도착한 일행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캐롯은 잊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우리 정말 여기 소원 빌러 온 거야?”

“허투루 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너랑 장기 둘 때 영향력과 돈이 썩어 넘치도록 많다고 했으니 그 유력 인사에게 미리 떡밥이라도 좀 뿌려둘까 싶어서. 밥도 좀 얻어먹고, 책도 돌려주고.”

“아! 그렇지, 책 잊고 있었네.”

아리에테가 고개를 흔들었다.

“헛소리는 귀족들의 전매특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 한 바퀴 돌아보고 가면 문전박대를 당하더라도 손해는 안 되겠어. 정원이 정말 예쁘네.”

캐롯의 말대로 보이드 자작의 저택 정원은 남 리즈넷의 명물이었다.

아리에테도 이곳은 알고 있었다.

“기사 학교에 다닐 때 동기들과 몇 번 와본 곳이다. 이곳이 그분의 저택이었군. 몰랐다.”

사람들이 안을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쇠창살로 만들어진 담장 사이로 보이는 정원은 화려한 꽃밭과 나무들로 채워져 잘 꾸며진 공원이나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저택의 정문 경비병에게 방문을 목적을 알리자 초대장을 요구했다.

“초대장이요?”

“명함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걸 주시면 됩니다.”

캐롯이 주머니를 뒤적여 조그만 명함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든 경비병은 경비 초소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마중을 나온 메이드 오토마톤의 안내를 받아 정원을 구경하며 안으로 좀 들어간 그들은 의외로 간단하게 보이드 자작을 만날 수 있었다.

응접실의 소파에 앉은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워 물고 그들을 맞이했다.

“이 몸이 그리워서 결국 찾아왔는가. 클클클! 환영하네. 친구들,”

“안녕하세요! 밥 얻어먹으러 왔어요. 저 말고 우리 주인님들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보이드 자작이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나는 내가 한 말은 지키는 편이야. 같이 밥 먹어주는 손님들은 언제나 환영이지. 캐롯, 식사 후에 장기 한판 어떠냐?”

“좋아요! 자작님을 몰아세우면 소원 들어주시는 거예요?”

그 말에 보이드 자작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캐롯?”

“오! 올코트 도련님아!”

소식을 들은 올코트와 메이드 루이스가 인사를 하며 응접실로 들어섰다. 도도도 달려간 캐롯은 올코트와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다.

와하하 웃으면서 함께 빙글빙글 돌던 올코트가 물었다.

“책을 돌려주러 왔다고?”

“응, 까먹고 들고 가버렸지 뭐야.”

책을 돌려받은 올코트는 그걸 다시 내밀며 말했다.

“어, 저, 여기 사인 좀 해줘. 친구들에게 자랑하게.”

“쁘하하! 사인?”

캐롯이 즐거워했다. 고급 만년필을 가져온 올코트는 그걸 캐롯에게 내밀었다. 캐롯은 비싼 펜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가 그걸로 슥슥 이름을 적었다.

“저도 말입니까?”

크랭크를 포함해서 아리에테와 오토마톤 로테와 베누스도 이름을 적었다. 올코트는 환하게 웃으며 친필 사인이 들어간 동화책을 들어 올렸다.

“완성됐어!”

“이게 뭐니?”

이제 책을 꼭 껴안은 올코트가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서 유행이야. 등장인물들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동화책, 수도 모험가들 것은 흔한 편인데. 지방의 유명한 모험가들의 것은 거의 없거든?”

올코트와 캐롯이 떠들어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보이드 자작에게 사용인 하나가 다가가 식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가지, 손님을 위해 우리 주방장이 꽤 솜씨를 부린 모양이야.”

그리고 여기서 식당에서도 투구를 벗지 않는 크랭크를 보고 보이드 자작이 그 이유를 물었다가 저주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흥미로워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투구의 아랫부분을 열어 입만 드러내고는 덩치에 걸맞은 먹성을 선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많이 먹었어, 괜찮나?”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서 좀 무리했군. 음, 배부르다. 주방장에게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멧돼지 같은 자세로 늘어진 크랭크가 빈 접시를 정리하던 메이드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손님이 전해준 최대의 찬사를 받고 주방 사람들이 다들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흐흐흐, 이제 한판 해볼까?”

“오하하! 연습 많이 했다구요.”

식사가 끝나자마자 장기판 앞에 앉은 둘을 보고 차를 준비하던 메이드 루이스가 은근슬쩍 끼어있는 올코트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숙제.”

“으으으음. 조, 조금만 보고 가면 안 돼요?”

“안 됩니다. 다 하고 나서 보세요.”

“으이잉……!”

올코트를 번쩍 들어 올려 겨드랑이에 끼운 루이스가 응접실을 나섰다. 차는 오토마톤 메이드가 대신 준비했다.

“우와, 메이드 언니 힘도 좋아.”

“장군.”

“으허억!?”

한참 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에 다시 담배를 피워 문 보이드 자작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정말 밥만 먹으러 왔느냐?”

“아니요.”

캐롯은 장기판을 노려보며 수를 읽다가 장기 말을 옮겼다. 그리고 시선을 들었다.

“이기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장기의 요정을 만나러 왔어요.”

동그란 붉은 색안경의 보이드가 킬킬 웃기 시작했다. 그는 손쉽게 장기 말을 따서 옆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그래, 나는 외롭고 쓸쓸한 장기의 요정이란다. 우리 친구들은 어떤 바람이 있는지 한번 들어 볼까?”

옆에서 구경하던 크랭크가 눈을 빛내며 투구를 들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보이드 자작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가 곧 폭소를 터트렸다.

“클클클! 초보 모험가 양성소?”

장기 말을 옮기며 그가 고개를 든다.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되나? 돈인가?”

“아니요. 보조금을 받아 운영할 수 있도록 그걸 국가사업으로 지정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사업 운영에 아이베크 자작 가문을 슬쩍 끼워주시면 되겠습니다. 해당 가문의 실질적인 업무는 여기 아이베크 아리에테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미리 언질을 들었기 때문에 아리에테는 입을 꾹 다물고 있기만 했다. 하지만 그 눈은 빛나고 있었다.

큰 기대 없이 그저 떡밥을 좀 뿌릴 생각으로 찾아온 크랭크였기에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국가사업입니다. 솔직히 당장은 힘들다고 봅니다. 하지만 적어도 관련 기관에서 약간의 관심이라도 가져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에 괴상한 걸 쓰고 있는 친구들은 생각하는 것도 참신하구만. 이걸 추진하는 진짜 이유는? 같은 배를 탈지도 모르는데 뒤를 숨기진 말게. 나는 뒤통수 맞는 걸 싫어해.”

신중한 크랭크였지만 여기서는 그의 신용을 얻기 위해 솔직하게 다 이야기했다. 모험가들의 활약과 양성에 대한 평소의 생각과 더불어 어제 아리에테의 저택에서 있었던 일까지 전부,

장기판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의 붉은 눈이 아리에테에게 향했다.

“자네, 인복이 있군.”

“예. 저도 요즘 그렇게 생각합니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 중에도 멋으로 색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긴 했지만, 저 붉은 색안경은 개성을 넘어 기괴함마저 엿보였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는 마치 시뻘건 눈동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묘하게 아리에테는 그의 시선에 긴장해버렸다.

“차라리 이 친구 머리에 걸린 저주를 푸는 게 더 쉽겠는데. 사실 나는 왕성에서 일하는 마법사야.”

그걸 듣고 캐롯이 좀 호들갑을 떨었다.

“호오옥?! 그럼 이거 내가 불리한 거 아니에요? 지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요 녀석아. 마법이 뭐 그리 대단한 건 줄 아느냐? 생각을 읽는 건 거의 불가능해. 반동이 장난이 아니야.”

질문 공세로 그의 집중력을 흔들어볼 생각으로 캐롯이 또 물었다.

“마법사면 저번에 왜 그냥 습격당하고 계셨어요?”

“이렇다니까, 다들 마법사에게 뭔가 환상을 품고 있어. 이놈아, 마법사도 사람이야. 큰 충격을 받으면 정신 차릴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마차가 뒤집혔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사람이 몇이 되겠는가. 장군.”

“끄우오오오오!”

계획이 실패한 캐롯이 머리를 잡고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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