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수도관광! (8)
미트볼을 포크로 찍어 입안에 쑤셔 넣은 아리에테가 그걸 씹으며 말했다.
“일단 우리 저택으로, 음냠냠, 쳐들어가는 것이다! 감히 우리 막둥이를!”
“먹고 말해, 먹고 좀.”
“너도 내 입맛을 빼앗으려 하고 있구나. 그러지 마라. 이 햄버거라는 것은 참 맛있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정말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있던 아리에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랭크를 보더니 갑자기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투나처럼 입을 앙 벌렸다.
턱! 텁!
“으으읍!?”
분노한 크랭크와 파이의 손아귀가 각각 아리에테의 귀와 코를 붙잡았다.
“넌, 대체 어디서 그런 못된 짓을 배운 거니! 세상에!”
“으으읍! 응아아아! 아프다! 귀가! 코가!”
시끌벅적한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계획안을 정립했다.
결과, 앞에서 일을 벌여보기로 했다.
“가자!”
먼저 아이베크 자작가로 쳐들어갔다. 커다란 호수 주변에 세워진 고급 저택 중의 하나로 드넓게 펼쳐진 호수 덕에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다.
“우와! 뷰가 정말 멋진데? 이런 데는 집값 비싸지?”
“아무래도 상류층들이 주로 살다 보니까. 다른 건 몰라도 경치 하나는 정말 좋지.”
마차에서 내려 저택을 향해 걸으며 파이가 호수를 바라보았다. 주변 도시와 마을에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거대한 호수는 반짝이는 햇살을 흩뿌리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캐롯의 평가에 따르면 마치 바다 같았다.
저택은 그 호숫가에 위치해 멋진 경관을 자랑했다.
조금 빠르게 앞서나간 파이가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얌전한 메이드가 되어 그들을 안내했다.
“아리에테 아이베크 님,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쪽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는 3년 만에 본가로 귀환했다.
저택에선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가출한 셋째 영애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아리에테 아가씨가 돌아왔어!”
“남자도 하나 데려왔던데? 엄청 커!”
“같이 일하는 사람이겠지.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던 이상형하고는 딴판이던걸?”
“모르는 소리 마. 입맛은 바뀌기 마련이야.”
“오토마톤도 2대 있더라.”
“같이 온 조그만 애는 누구야? 설마?!”
“넌, 무슨 생각을 해! 나이를 계산해도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 * *
“오우 소파가 푹신푹신!”
넓은 응접실의 소파에 앉은 캐롯의 곁으로 아리에테가 앉았다. 크랭크는 로테와 베누스를 아리에테의 뒤쪽에 세운 다음 자리에 앉았다.
캐롯이 팔짱을 낀 아리에테의 다리에 손을 얹었다.
“긴장돼?”
시선을 내려 캐롯을 바라본 아리에테가 슬쩍 웃었다.
“그보다는 좀 불안하다. 그 여자는 나 이상으로 막혀있다.”
“너는 네 어머니를 무서워하고 있군.”
응접실을 구경하던 크랭크의 말에 아리에테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크랭크가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출했으면서 생활비를 보내주었고, 팔다리가 잘렸으면서도 동생을 위해 다시 여기로 왔어. 너는 속 깊은 착한 아이였구나. 너 같은 착한 아이들은 이용하기 쉽지. 우는 소리 조금 하면 자기 몫을 기꺼이 나누는 것도 모자라 온기마저 나눠주기 위해 너무도 쉽게 자기를 태우려 든다.”
크랭크는 계속 말했다.
“그런 자기 파괴적인 인간 장작을 볼 때마다 나는 안타까웠다. 제발 희생을 알아주는 사람들 곁에서 불타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야 용사라는 찬양도 듣지, 아니면 그냥 개죽음이야.”
가만히 듣고 있는 아리에테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그럼 나는 누구의 곁에서 불타올라야 하나?”
크랭크는 대답이 없었다. 그때 문이 덜컥 열리고 나이 지긋한 집사장과 메이드 하나가 차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크랭크의 투구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만 태워라. 이젠 네가 온기를 나눠 받을 차례다.”
아리에테는 그만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친절한 양철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찻잔을 감사히 받아든 크랭크는 커다란 몸으로 조그만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향이 좋군요.”
늙은 집사장은 고개를 조금 까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쯤 문이 열리고 우아한 드레스 차림의 중년 부인도 들어섰다.
예의상 크랭크와 캐롯이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아리에테는 일어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올려 뜨고 있었다.
집사장이 헛기침했지만 무시했다.
잠자코 있던 캐롯이 앉아있는 아리에테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이제 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앉아서 울지 말고 일어나. 그리고 달려.”
눈이 홉뜬 아리에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걸 보고 짧은 한숨을 쉰 노 집사장이 캐롯에게 눈인사를 했다.
캐롯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아리에테를 제외한 모두가 허리를 숙이거나 치맛자락을 들거나 하며 자작 부인께 인사를 했다.
아이베크 자작 가문의 현 가주 멜라라 자작 부인이 고개를 까딱이더니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결국 돌아와 줬구나. 나들이는 즐거웠니? 몸 건강히 잘 지냈고?”
“예. 무탈했습니다.”
눈썹을 좀 꿈틀거린 아리에테는 선선히 대답했다, 시선을 돌린 자작 부인이 크랭크와 캐롯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동료 모험가라고? 그런데 저주라면 해제하고 와야지. 그 상태로 저택을 방문하다니 예의가 없구나. 몰골도 시원찮고, 너는 앞으로 사람을 가려가며 사귀도록 해라.”
“뭐요?”
서늘해진 아리에테가 눈을 부릅떴다. 멜라라 자작 부인은 왜 그렇게 날을 세우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지? 이제 나들이는 그만두고 돌아온 것 아니야? 하지만 나는 아직 널 용서할 생각이 없단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성의를 보여야지.”
듣고 있던 아리에테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캐롯이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켰지만, 모욕을 웃어넘길 만큼 그녀는 침착하지 못했다.
분노한 아리에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다.
“이 장사치가! 그게 살아 돌아온 딸과 그 친구들에게 할 소리인가! 당신은 주변을 조롱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나?! 그러니 힘들 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다!”
“아니, 이 못난 것이 부모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자리에 앉지 못하겠느냐?!”
“아하하!”
아리에테는 이제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싫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그리고 나는 돌아온 게 아니야! 그저 나 대신 틴케트를 팔아넘기려는 그 더러운 수작을 비난하러 온 것이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대체 무슨 짓이냐! 80넘은 늙은이에게 13살 막내딸을……!”
자리에 앉아 신경질적인 표정을 한 멜라라 자작 부인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넌,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이번엔 아리에테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틴케트를 나 대신 뮬러 백작에게 시집보내려는 게……?”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 애는 13살이야! 아직 3년은 더 키워야 해.”
어리둥절해 있던 아리에테였지만 다시 눈썹을 세우고 분노했다.
“3년을 더 키운다고? 당신은 자식이 무슨 가축이라도 되는 줄 알아!”
“너희들은 내 자식이야!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더냐!”
“미래?! 내 미래는 80먹은 노인의 성노예인거냐?! 말해봐라!”
“어디서 그런 못돼먹은 말을 배워 온 거니!? 뮬러 백작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
그 말을 듣고 손으로 이마를 덮은 아리에테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갑갑하고 답답했다. 차라리 오크와 우정을 논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와중에 크랭크는 내내 신경 쓰이던 위통이 쑥 내려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파이의 거짓말이었군. 아리에테를 데려오기 위한.
“다행이야.”
크랭크가 별안간 중얼거리자 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 말다툼으로 벌이던 멜라라가 이제 그에게 소리쳤다.
“네 녀석이지! 네놈이 내 귀한 딸을 꼬드겨 바깥으로 나돌게 했지?! 저 비싼 몸을! 네놈이 감히!”
아리에테가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그는 관련 없다! 내가 내 발로 나선 것이야!”
“넌 좀 가만히 있어!”
공교롭게도 모녀싸움에 끌려들어 간 크랭크는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소파에 앉아 투구를 이리저리 돌렸다.
멜라라가 손가락으로 크랭크를 가리키며 아리에테를 쳐다보았다.
“네 전 남친은 이제 잊어버려! 지금이라도 돌아왔으니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넌 아직 충분히 젊으니까!”
“돌아온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느냐! 그리고 잊으라고?! 내 목숨과 인생을 다시 이어준 은인들을 잊으라고?!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이빨을 드러낸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가리키며 외쳤다.
“내 몸의 절반은! 저 남자의 것이다!”
“푸흡-!”
모녀의 싸움을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차를 홀짝이던 크랭크가 찻물을 뿜어냈다. 투구 아래로 줄줄 흐르는 홍차를 캐롯이 손수건으로 호다닥 훔치는데 커다랗게 눈을 뜬 자작 부인이 어버버 버리며 아리에테를 보았다가 분노한 얼굴을 크랭크에게 돌렸다.
앉은키로도 눈높이가 비슷한 크랭크의 멱살을 붙잡은 멜라라 여사가 외쳤다.
“역시! 네 이놈! 내 딸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벗어! 그 낯짝을 보여라! 이 오우거 같은!”
“이, 이것은 안 됩니다.”
크랭크가 필사적으로 투구를 붙잡고 몸을 웅크리자 분을 참지 못한 자작 부인은 주먹과 손바닥으로 폭행을 시작했다. 그래봤자 크랭크에겐 간지러운 수준이었지만…….
그가 얻어맞는 것을 보고 로테와 베누스가 움찔했지만 캐롯이 손을 들어서 막으며 히히히 웃어댔다.
재미있다! 좀 더 지켜보자!
아리에테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그녀를 밀치며 다시 외쳤다.
“그만둬라! 나는 이제 이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부인에게 얻어맞으며 투구를 꽉 붙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크랭크는 심각하게 기침을 시작했고, 멜라라 여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돌렸다.
“뭐, 뭐라고?”
몹시 당황한 아리에테가 쏟아낸 말실수를 수습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어?! 아, 아니! 들! 저 사람들! 이 사람들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고!”
“으앗하하하! 아으하하하! 아이고 배야!”
이 참상을 재미있게 구경하던 캐롯은 이제 배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대환장 파티가 시작되었다.
흥분한 아리에테의 말실수는 반복되었고, 사태는 점점 최악으로 치달았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딸이 데려온 것은 오토마톤 2대와 심부름꾼으로 보이는 조그만 아이 하나, 그리고 덩치 큰 남자였다.
이 구성에서 모친의 분노가 건장한 남자에게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어찌 됐든 딸에게 있어서 이 남자가 몹시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챈 멜라라 여사는 다채로운 표정의 변화를 일으켰다. 넋을 잃은 얼굴을 한 그녀가 떨리는 입을 열었다.
“너, 너너너! 어떻게 그런 말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 얼굴을 보면서 아리에테는 묘하게 냉정해지는 자신이 신기했다. 그녀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신의 손에 자란 기억이 없다. 나를 키운 것은 여기 집사장과 유모들이었어.”
응접실에 손님 접대를 하러 왔다가 이 참상을 눈에 담고 만 집사장 엔나크는 당장 기절하고 싶은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부인, 그리고 아가씨. 일단 진정하시고…….”
“집사장은 닥치세요!”
“내 할아버지 같은 분께 닥치라니! 이 계모가!”
“계모라니! 말조심해라! 널 낳은 건 나야! 넌, 내 자식이야! 내 자식이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얼굴을 찡그린 아리에테가 고개를 흔들었다.
“싫다! 나는 당신의 인형이 아니야! 나는 가축이 아니야! 내 미래는 내가 정할 거다!”
숨을 크게 들이켠 아리에테가 있는 힘껏 외쳤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