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수도관광! (7)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아리에테의 복귀에도 수도의 모험가들은 환호를 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직업 특성상 모험가라는 게 다치는 건 예사고 어제까지 잘 보이다가 갑자기 죽거나, 실종되었다가 몇 년 뒤 불쑥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반응은 시원찮았지만 그래도 다들 반갑게 웃으며 다시 돌아온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여성 모험들이 많았다.
“아리에테! 살아있었군요! 걱정했어요.”
“다행이에요! 아리에테 님!”
“보고 싶었어요!”
“다들 걱정해줘서 고맙다. 정말 죽는 줄 알았지만, 어쨌든 목숨은 건졌다.”
그때 후드를 눌러쓴 여 마법사가 두 손에 책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저, 혹시 여기에 있는 증기 망토의 여 기사가 아리에테 님이세요? 정말로?”
“어, 맞다. 우리 이야기다.”
그제야 모험가들의 얼굴로 환희가 번졌다.
“우와! 정말이야?!”
“역시 맞았어! 세상에 아리에테! 남부까지 휩쓸고 다닌 거야?!”
“완전 대모험이에요! 정말 잘 보고 있다고요!”
그때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르클레르가 이게 정말 당신인지 확인하겠다면서 얼마 전에 남부로 떠났는데 말이야.”
“으헉! 르클레르가?”
이마에 세로줄이 생긴 아리에테가 기겁했다. 주변에서 말이 이어졌다.
“예, 당신의 소식이 끊기고 참 상심이 크셨더랬어요. 그러다 최근 모험가 잡지에서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더니 파티를 이끌고 찾아 나섰지요.”
“으으윽, 끔찍하군. 그 녀석에겐 내내 실종 상태로 있고 싶다.”
“친구가 찾아오면 좋지. 왜?”
잠자코 있던 캐롯이 말을 하자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렸다.
“친구가 아니다 캐롯! 르클레르, 그 녀석은 위험해! 진짜로 위험하다고! 제정신이 아냐!”
“아이, 부끄러워하시긴, 아리에테 님과 르클레르 님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요.”
“그럼 둘 다 미인이고, 같이 서 있으면 그림이지.”
“맞아, 그리고 일단 재미있잖아?”
“하하하! 그건 그래 둘의 티키타카는 정말 재미있지.”
아리에테가 이제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치근덕거리면 당신들이 좀 말리란 말이다! 그리고 못 박아 두지만 나는 남자가 더 좋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미소년 같은 거 말이야!”
팔짱을 하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들고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
“크랭크, 괜찮아? 방금 너 차였어.”
“음, 상관없다. 어차피 취향도 아니었고,”
“뭐라! 크랭크! 너는 섬세함이 부족하다! 여성을 대하는 섬세함이!”
주변 모험가들의 눈이 커졌다.
“캐롯? 크랭크?”
캐롯이 눈가에 브이 손가락을 대며 윙크를 찡긋했다.
“반가워요! 수도 리즈넷 모험가 여러분! 북부 아르곤 촌구석에서 방금 상경한 시골뜨기 오토마톤 캐롯이에욤!”
크랭크도 예의 바르게 허리를 살짝 숙였다.
“캐롯의 마스터 크랭크입니다. 반갑습니다. 현재 아리에테의 파티로 활동 중입니다.”
“오오오!”
관심 없어 하던 모험가들도 크랭크와 캐롯이라는 이름에 반응했다.
“아르곤의 그 친절한 거인인가?”
“캐롯이면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
“아냐, 요즘엔 여신의 인형으로 불린데. 여기 책에 나와.”
수도 모험가들이 시골에서 막 상경한 동화책 속의 모험가와 오토마톤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이 무척 신기하기도 했고, 그 정도로 이름을 알리게 된 모험가라는 것도 그들의 호기심과 질투심을 자극했다.
사실 모험가들이 이름을 알리고 지명도나 랭크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일정 수준부터 길드에서 각종 혜택과 지원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들어오는 일거리와 더불어 버는 돈의 액수가 달라진다. 물론 더불어 위험도도 급상승하게 되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감수했다.
“세상에, 저 오토마톤들 전투복 좀 봐. 메이커 기성품이 아니야. 직접 만든 건가 본데?”
“곳곳에 땜질한 자국투성이군. 모험가 간판이 있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저렇게는 안 입혀. 정말 엉망이군.”
“하지만 저건 저것 나름대로 뭔가 멋진 걸? 방금 현장 뛰고 온 것 같지 않아?”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사용해 보려고 장갑판과 가죽 조각을 덕지덕지 붙여서 일일이 손으로 꿰맨 자국이 가득한 전투복과 장비들은 새것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때 한 사내가 길드에 심심풀이로 읽으라고 가져다 놓은 잡지와 동화책을 들어보며 물었다.
“이봐, 이거 정말인가?”
크랭크가 그 책을 받아 살펴보자 흑마도사 토벌전 당시의 내용이었다.
“놀랍군요. 이것도 이야기로 꾸며놓았을 줄이야. 사실 우린 이런 이야기들이 잡지나 동화책으로 유통된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흑마도사는 어땠어? 강하던가? 피해 규모는? 공격 수법은? 동화책이나 잡지엔 현실적인 규모나 내용은 알려주지 않는단 말이지.”
설명에 앞서 아리에테를 슬쩍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몰려든 사람들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빠 보였다. 크랭크는 근처 의자를 하나 빼서 걸터앉았다.
“캐롯, 간단하게 당시 상황 좀 이야기해줘.”
싱글벙글 웃으며 동화책을 보고 있던 캐롯이 한 손에 책을 든 채 가볍게 뛰어올라 테이블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훨씬 보기 좋았다.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흑마도사 토벌전! 우리도 바쁘니까 간단하게 갑니다!”
캐롯이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토벌전의 시작에서부터 전투 내용과 마무리까지 10분 컷으로 들으면서 대략적인 그림을 파악한 모험가들은 이제 자기들끼리 토론을 시작했다.
“우리도 대규모 토벌전에 가보고 싶다. 여긴 그런 게 적어서,”
“음, 이야기로만 들어보면 해볼 만한데?”
“거의 군사 집단 수준의 운용이야. 모험가는 전술훈련도 해야 해?”
이야기를 마친 아리에테가 다가오자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캐롯도 탁자에서 뛰어내렸다.
“볼일은?”
“어, 끝났다.”
투구를 끄덕인 크랭크가 인사를 했다.
“수도 리즈넷 모험가분들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모험에 항상 행운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어엇! 가시는 거요? 벌써?”
“예, 볼일이 있어서 들린 참이라.”
“가능하면 또 들려주시오. 크랭크 씨, 듣고 싶은 게 많소. 술이나 식사 정도는 대접하리다.”
작별을 아쉬워하는 모험가들에게 둘러싸인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아리에테는 여성 모험가들에게 붙들려있었다.
“르클레르 님이 돌아오시면 꼭 알려드릴게요! 살아 계시다고!”
“아니! 그러지 마라! 그냥 내버려 둬!”
기겁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대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이 좀 웃어댔다.
그렇게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길드를 나선 일행들은 아리에테의 추천 단골 가게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러다가 크랭크가 물었다.
“동료들의 생사는 확인했나?”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아리에테의 말에 크랭크는 그만 투구를 돌리고 거리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거든.”
그의 등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쉰 아리에테는 다시 길드 건물을 돌아보았다.
“친구들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만 살아남았나.”
“어차피 너희들은 100년만 지나면 모두 녹아서 하나가 될 거야. 그러니 오고 가는 순서에 큰 의미를 두지 마.”
가까이 다가온 캐롯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은 지킬 거야. 그렇게 덧없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끝끝내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이제 고개를 든 캐롯은 사람들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곁에 있을 거야.”
크랭크는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파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고, 아리에테는 무릎을 꿇고 조그만 오토마톤을 꼭 끌어안았다.
* * *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크랭크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큼직한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그 한 입에 커다란 빵의 절반이 사라지는 마법을 보고 파이가 몹시 신기한 눈을 했다.
“음냠냠, 고민이군.”
“뭐가 말이냐. 음음냠.”
크랭크의 투구가 맞은편에 앉아서 넉살 좋게 식사 중인 그녀를 보았다.
“네 여동생에 대한 것 말이다. 너는 뭔가 생각해 둔 것 없나?”
우물거리며 음식을 삼킨 아리에테가 입가에 양념을 바른 채로 말했다.
“사나이 가는 길에 고민은 필요 없다. 오로지 돌진만이 있을 뿐!”
“넌, 여자야, 아리에테. 귀한 집 아가씨라고.”
옆자리에 앉은 파이가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가를 훔쳐 주었다. 테이블에 동석한 캐롯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저택으로 쳐들어가는 거야? 그 장기 마왕에게 부탁하는 건 어때? 소원 들어준다잖아.”
큰 접시에 잔뜩 쌓인 햄버거를 집어 든 크랭크가 투구를 흔들었다.
“혹시 모르니 너무 그런 걸 퍼트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최악의 경우를 위해 정보는 최대한 차단, 위장해야 해.”
파이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 암……. 진짜로 하실 거예요?”
햄버거를 3개째 해치운 크랭크가 우물거리며 파이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메이드로 일하는 그녀에겐 속이 불편한 이야기였지만 그들은 여상스러웠다.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소아성애로 회춘을 노리는 귀족 따위 술안주로 취급했을 겁니다. 물론 이런 건 어디까지나 정말 마지막 수단입니다만.”
따로 별실을 빌린 이유가 이런 회의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던 파이는 지금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컵에 담긴 우유를 마신 크랭크가 말을 이었다.
“할 거면 역시 사고사지. 돈이 많고 사생활이 엉망일수록 그 실족을 환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의심받을 걱정도 없다. 오히려 잘 죽었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 되지. 여기서 자식들이 많으면 더 좋다. 재산을 놓고 싸움이 일어나면 오히려 서로를 의심하거든?”
“케케케! 좋아. 최후에 쓸 카드 한 장 나왔네. 다음은? 다음은?”
전 귀족 자작 영애 아리에테가 토마토 스파게티를 후르릅 먹다가 끼어들었다.
“고맙지만 너희들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귀족을 상대할 때는 공개적으로 비난을 유도하는 것이 좋아. 그편이 오히려 후환도 적지. 보복당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오점으로 남는다. 파이, 그렇지?”
너무 앞서 나가는 일행들을 보고 겁이 난 나머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파이가 그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소문만큼 무서운 건 없죠. 앞에서 체면을 따지는 분들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요.”
“그렇군, 이것도 직업병인가. 내가 실수했다.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사고가 편중되었어.”
손을 뗀 파이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크랭크를 향하는 그 눈이 부들부들 떨린다.
“비비비비슷한 일요? 모험가는 몬스터 잡고 약초 정도만 캐는 거 아니에요?”
캐롯과 크랭크가 동시에 파이를 보았다. 둘의 얼굴엔 그림자가 잔뜩 끼어있고 그 입은 웃고 있었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더라고?”
“파이, 앞으로 나설 각오와 용기가 없다고 해서 불합리와 원한을 참고 넘기라고 하는 것은 약자를 우롱하는 소리입니다.”
이제 의자를 밀어 파이의 곁으로 다가간 캐롯이 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우리가 대신 네 눈물을 닦아줄게, 가격은 요 상담.”
귀가 빨개진 파이는 그만 침을 꿀꺽 삼켰다.
햄버거를 씹으며 크랭크는 한편으로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귀족을 상대하는 방법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의자에 올라선 캐롯이 팔짱을 끼면서 물었다.
“그래서 계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