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수도관광! (6)
캐롯이 손에 든 책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차에서 내린 크랭크를 보고 올코트는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환호했다.
“크랭크! 모험가 크랭크 아저씨 맞죠!?”
전날 습격 때 도와준 그들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내내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그들을 다시 만난 할아버지에게 그 이름을 전해 듣고 평소 보아오던 동화책의 인물들을 기억한 올코트는 기쁨과 흥분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곁에 서 있던 메이드 루이스도 놀라웠다. 잘 때마다 읽어 달라고 졸라대는 동화책에 그려진 그림과 너무도 비슷한 사람들이 실제로 눈앞에 있어서,
동화책을 펴들고 내용을 살피던 크랭크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크랭크입니다.”
올코트는 이제 캐롯을 보면서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스가 도와주었다.
“평소 저희 도련님은 여러분 이야기에 꽤 심취해 계셨습니다. 지금 실물을 만나 뵙게 되어 너무 기쁘신가 봐요.”
“와! 고마워! 도련님! 내가 캐롯이야. 반가워, 손잡을래?”
캐롯이 대뜸 손을 내밀었다.
흉악한 가시와 스파이크가 잔뜩 달린 강철 장갑이 내밀어지자 올코트는 너무 흥분해서 양손으로 그걸 잡아 흔들었다.
“실물이야! 오토마톤 캐롯의 실물이 내 앞에 있어!”
“와, 도련님 울겠다. 하하! 우리 이야기를 챙겨봐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쁘지 않네. 오히려 너무 좋아! 도련님들은 우리 삶의 증인들이야! 앞으로도 지켜봐 줘! 열심히 달려볼게!”
감동한 올코트는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응응! 지켜볼게! 꼭!”
캐롯이 환하게 웃었다. 오토마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올코트는 그 미소에 얼굴을 붉혀버렸다.
그때쯤 차장이 출발을 선언하자 그들은 서둘러 차량에 올랐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자동승용차량의 창문으로 머리를 내민 캐롯이 손을 흔들었다.
“올코트 도련님아! 건강해! 또 봐!”
허리를 꾸벅 숙이는 메이드 루이스의 곁에서 올코트는 열렬히 손을 흔들었다.
“응! 잘 가! 꼭 다시 만나!”
웃으면서 한참 동안 손을 흔들던 캐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의 크랭크는 동화책을 유심히 탐독하고 있었다.
“무슨 내용이 있어?”
“이건 비교적 최신판인가 본데? 남부 출장 때의 내용이다. 대체 어떻게 당시 내용을 이렇게 자세히 서술해놓은 거지?”
뒷자리에 앉아있던 아리에테가 일어서서 팔을 내밀었다.
“뭘 보고 있지? 어디서 난 책이야?”
그 순간 크랭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쾅!
키가 커서 천장에 투구를 들이박고 머리를 숙인 크랭크가 고통에 겨운 소리를 내면서 동화책을 들었다.
“으윽! 이걸 가지고 와버렸……! 으으음!”
창가를 내다본 캐롯이 푸하하 웃었다.
“하하하, 책 가져다주러 가야 할 상황인데?”
* * *
그렇게 하루를 더 달려 다음 날 정오.
캐롯은 최초의 방주 도시 수도 리즈넷의 위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아아! 엄청나게 커! 성벽 끝이 보이지 않아!”
초원 저편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성벽은 얼마나 길게 이어진 것인지 정말 끝부분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함께 그걸 보고 있던 아리에테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더니 팔을 뻗어 이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성문을 가리켰다.
“우리가 들어갈 곳은 저 동쪽 성문이다. 수도 성문은 동서남북으로 3개 더 있지.”
“성문도 엄청나게 커다래! 골렘이라도 지나다녀? 하하하!”
시골에서 방금 상경한 사람들이 으레 보이는 반응인지라 다른 승객들은 아무도 그들을 비웃지 않았다. 조그만 소녀가 웃고 떠드는 것이 어쨌든 귀엽기도 했고, 목소리 자체도 듣기 좋아서 그냥 모르는 척했다.
“리즈넷의 규모는 아르곤의 10배가 넘을 거다. 정확한 규모는 모르겠지만.”
“10배가 넘어?! 그거 정말이야?!”
“응, 안에 아르곤 수준의 대도시가 5개 정도 있다. 작은 마을은 셀 수도 없지.”
캐롯의 입이 떡 벌어졌다. 파이가 웃으며 그 턱을 닫아 주었지만, 다시 열리길 반복했다.
그때 차장이 외쳤다.
“곧 도착합니다! 차표와 짐을 챙겨주십시오!”
활짝 열린 거대한 성문으로 수많은 차량과 마차가 오고 가고 있다. 그걸 보고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도다. 물류와 인력의 이동이 장난이 아니구나.”
성문에 잠시 정차하여 차표를 확인하고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동안 검문 차 차량 주변을 서성이는 하드 스킨 오토마톤들을 보고 캐롯이 또 놀라워했다.
짧은 검문을 마치고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멋진 건물들과 잘 정비된 거리가 그들을 반겼다. 창문에 달라붙어 도시 구경에 여념이 없던 캐롯이 눈을 반짝이며 아리에테를 보았다.
“여기야?! 여기가 수도야?! 오와아!”
“맞긴 하지만 아니다. 여기는 동쪽 관문 도시다. 동문 리즈넷이라고 부르지. 진정한 의미의 수도는 왕성이라고 해서 도시 중앙에 있다. 길을 따라 반나절 정도 더 들어가야 해.”
“바바바반나절?! 성벽 안에서 반나절?! 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네 집은 어디냐?”
“서문 부근이다. 다이젠 호수를 접하고 있지.”
아리에테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동안 모두가 탄 차량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와아! 대단해! 대단해!”
역을 나서서 거리를 걸으며 캐롯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커다랗게 뜬 눈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수도 리즈넷의 풍경을 쓸어 담았다.
성문 안쪽에서부터 10층 이상 되는 높은 건물이 즐비했고, 넓은 인도 위에는 깔끔하고 세련된 차림새의 사람들과 새것 같은 외관의 오토마톤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넓은 차로에도 자동마차와 일반마차들이 뒤섞여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참 아름다우면서도 바쁜 도시의 모습이었다.
넓은 인도에 멈춰선 캐롯은 너무 신나서 머리가 좀 과열된 상태로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여기는 건물이 엄청 높아! 사람 엄청 많아! 길도 엄청 넓어!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은 다들 말끔하게 잘 입고 다녀! 우와! 크랭크! 저걸 봐! 소프트 스킨이야! 소프트 스킨!”
역시 수도는 처음인지라 투구를 이리저리 돌려대던 크랭크가 캐롯의 목소리를 듣고 그 손이 가리키는 곳을 재빨리 쳐다보았다.
길 건너편에 원피스를 입은 처녀들을 호위하며 걷고 있는 오토마톤이 있었다. 민소매에 드러난 팔이 오토마톤임을 알리고 있었는데, 다만 그 얼굴은 인간 여성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놀랍군. 얼굴만 부분 적용해놓은 건가? 확실히 저렇게 해놓으면 비용과 정비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겠다. 좀 자세히 보고 싶은데, 대체 어떤 소재를 사용한 거지? 색감은 일부러 밝게 해놓은 건가?”
갑자기 말이 많아진 크랭크가 당장 길을 건너서 말을 걸어보려고 하자 다들 그를 말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건물과 인구 밀도가 아르곤의 2배쯤 되는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이곳이 리즈넷 동문 관문 도시이며 같은 규모의 도시가 3개 더 있고, 중앙의 왕성은 이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었다.
“누오오! 우리나라 최고! 국뽕이 차오른다!”
“음, 확실히 멋지다. 잘 꾸며진 도시구나. 언젠가 아르곤도 이만큼 발전했으면 좋겠다.”
수도 도시 경관을 이리저리 살피는 캐롯과 크랭크를 보면서 파이가 빙그레 웃었다.
“크랭크는 수도엔 처음이신가 봐요?”
“예, 솔직히 처음 와봤습니다. 아르곤 주변에만도 일거리가 많아서요.”
“오오! 그렇지! 로테는 전에 와봤다며? 현상범 잡으러!”
아리에테의 의수 가방을 짊어진 로테가 손을 흔들었다.
“수도 근처라는 말을 들었을 뿐, 제가 본 건 근교의 초원과 들판뿐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와봅니다.”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이제 아리에테를 보았다.
“네 활동 주 무대가 여기였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곳이구나.”
마침내 다시 돌아와 고향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던 그녀가 웃었다. 도시에 들어오고부터 아리에테는 어쩐지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곁으로 달려간 캐롯이 그 손을 붙잡았다.
“떨려? 긴장돼?”
“음, 뭐 좀 그렇군.”
가만히 아리에테를 쳐다보던 크랭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모험가 길드가 어디지? 온 김에 봐두고 싶다.”
“잘됐군, 나도 알아볼 것이 있다. 이쪽이다.”
아리에테가 그들을 안내했다.
리즈넷의 모험가 길드는 다섯 곳에 산재해 있었다. 중앙 왕성과 더불어 각 성문 도시에 하나씩, 아리에테는 리즈넷 동문 도시의 길드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한다.
“가출한 상황에서 잘도 여기서 활동했구나, 나라면 다른 도시로 떠났을 텐데.”
“그것이 나도 그러고 싶긴 했지만 바로 떠날 수가 없었다. 자립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부쳐줘야 했거든?”
“생활비?”
크랭크가 되묻자 파이가 한숨을 쉬었다.
“당시 첫째, 둘째 아가씨들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느라 경제적으로 대단히 힘들었거든요. 사용인을 줄이는 걸로 모자라 저택까지 처분하려 했었어요. 뛰쳐나간 아리에테가 그 소식을 듣고 돈을 부쳐줘서 저택만큼은 지킬 수 있었죠.”
“그 저택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님과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거든.”
아리에테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다 그 여자 때문이다.”
잠시 아리에테를 보는 크랭크의 시선이 달라졌다.
“집에 빚을 갚아주다니, 너는 참 대견하구나.”
부끄러운 것인지 얼굴이 좀 달아오른 아리에테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첫째 언니의 도움으로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하고부터 나는 내 인생을 찾기 위해 지원을 중단하고 이곳을 떠났다. 결국 이렇게 됐지만,”
오토마톤 시온의 팔과 다리를 빌려 움직이고 있는 아리에테가 팔을 들었다. 그때 어지간해서는 끼어들지 않는 시온이 말했다.
“그래도 당신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나는 그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네가 있어서다. 그리고 너희들이 있어서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
아리에테가 웃으려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손을 잡고 걷고 있던 캐롯이 말했다.
“운도 실력이래. 살아만 있으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야. 네 주변을 보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네 편이야.”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렸다. 크랭크가 힘 있게 엄지손가락을 들었고, 그를 따라 로테, 베누스, 캐롯도 엄지손가락을 든 채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는지 파이도 슬쩍 뒤를 돌아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제야 함박웃음을 지은 아리에테가 입을 열었다.
“음, 나는 요즘 그걸 실감하고 있다. 내 지금은, 살아온 나날을 통틀어 가장 행복하다.”
캐롯이 마주 웃어주고 있는데 앞서 걷고 있던 파이가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가 동 리즈넷 모험가 길드입니다.”
4층이나 되는 커다란 건물이 그 위용을 자랑했다. 그걸 좀 올려다보던 캐롯이 아리에테의 등을 떠밀었다.
“네가 먼저야. 가서 아리에테가 돌아왔다는 걸 알려줘!”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곧 길드 건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친절한 거인과 여신의 인형들이 뒤따랐다.
동 리즈넷 모험가 길드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판금 장갑판을 두른 매끈한 강철 부츠가 또각!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내디뎌졌다. 이어서 푸른색 방열 리본과 치마를 두른 여 기사가 당당하게 길드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로비에서 의뢰를 고르거나 접수원과 이야기하던 수도 모험가들의 고개와 시선이 그녀에게 날아든다.
또각또각-!
당당하게 모험가 길드의 로비를 가로지르는 여 기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어? 저거 그 아리에테 아냐? 짠순이!”
“뭐? 그 수전노에 말투가 이상한 여 기사?”
“오오! 백합 여 기사!”
아리에테가 소리를 꽥 질렀다.
“당신들의 그 평가는 정말 너무 하는군! 내가 돌아왔다고! 좀 기뻐해 주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