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강호의 도리! 과거편! (외전 5)
지난 8개월 동안 함께 산과 숲과 들판과 초원을 신나게 뛰어다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저택의 주방이 활동 영역의 전부였던 루루는 그 짧은 시간이 어쩐지 즐거웠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맞이한 그의 얼굴은 편안했다.
고개를 들어 올린 루루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주인의 사망을 확인한 그 머릿속에서 한 가지 명령이 활성화되었다.
오토마톤 관리원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원래는 저택으로 복귀해야 했지만, 이 상황에서 루루의 복귀는 그의 죽음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오토마톤이라면 모두에게 심겨 있는 그 최초의 명령을 수행하기로 했다.
미로를 걷다가 말고 뒤를 한번 되돌아본 루루였지만, 심란한 감정의 표현은 그것이 전부였다. 오토마톤은 안전과 기능상의 이유로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정도로 고도의 연산 기능과 감정은 탑재되지 않는다.
그리고 루루는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움직여야 합니다. 이곳에서 나가야 합니다.
잠시 후, 루루는 그 바람대로 1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고야 말았다.
그리고 지하 1층에서도 길을 찾아 헤매다가 다른 모험가들을 만났을 때는 너무도 반가웠다.
“도움을 요청합니다.”
“으흐어억?! 이거 뭐야?!”
깜짝 놀란 모험가들이 어둠 속에서 뒤뚱뒤뚱 걸어 나오는 조그만 인형을 보고 기겁했다.
“오토마톤이야. 세상에! 던전에서!”
“저는 앞서 내려간 모험단의 오토마톤입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알려주시길 희망합니다.”
“넌, 주인은?”
“사망했습니다. 지하 2층에 있습니다.”
그 말에 모험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루루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지하 2층? 여기에 지하 2층이 있어?!”
“새로운 발견이다! 어디야? 입구는 어디에 있지?”
루루는 잠시 그들을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그걸 알려드리면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보기 드문 당돌한 오토마톤의 질문에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습게 보일만도 했다.
“그럼, 저쪽 길로 쭉 가면 된다. 우리는 막 내려오는 참이었어.”
루루는 모험가들이 가리키는 미로 골목을 살펴보고는 몸을 돌려 뒤쪽의 벽을 가리켰다.
“줄을 그으면서 왔습니다. 따라가시면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X 표시는 막힌 곳입니다. 2층에 쓰러뜨린 던전 보스가 있습니다. 사망한 동료들도 같은 방에 있습니다.”
모험가들의 얼굴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그럼 너희 파티는 그걸 잡다가 다 죽은 거냐?”
“보스몹을 쓰러뜨렸어? 잘됐다. 거기로 안내해라. 오토마톤.”
루루가 가만히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케인과 모험가 길드의 기숙사에 살면서 많은 시달림을 당했던 오토마톤 루루는 그들의 얼굴과 눈빛에서 포식자의 시선을 찾아냈다.
나를 먹이로 보고 있다.
루루가 뒤로 물러섰다.
“나는 지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 사람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 줘야 합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인형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옆에서 지켜보던 사내가 그의 허리를 쿡 찌르더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루루를 내려다보며 동전 한 닢을 내밀었다.
“넌, 주인을 잃었지? 관리원으로 복귀할 바엔 나와 함께 하지 않겠니? 내가 너의 새 주인님이 되어줄게. 수리는 물론 옷도 전부 새 걸로 바꿔주마. 어떠냐?”
이 사람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루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저는 관리원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크흐-! 역시 안 되나?”
옆에서 보고 있던 사내가 낄낄 웃었다.
“얌마, 오토마톤 꼬시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냐? 내가 해볼게.”
“전에 그 녀석은 잘만 꼬시던데?”
“멍청한 놈들아, 평소에 잘 아는 오토마톤이나 그런 수작에 넘어오지. 그리고 이렇게 조그만 걸 가져다 뭘 하게?”
“아직 움직이잖아. 등에 커다란 가방도 멨고, 짐꾼 대신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때 루루의 배낭을 살펴보던 모험가가 말했다.
“그런데 이 자식,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올라온 거야? 안에 뭐 든 거야?”
멋대로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꺼낸 사내가 그것을 풀었다가 드워프 얼굴이 나오자 비명을 지르며 내던졌다.
“으아악! 사람 머리잖아?! 미친!”
떨어지는 밥의 머리를 서둘러 받아 챈 루루가 그를 소중히 안아 들었다. 모험가들이 검을 뽑아 든다.
스릉! 스르릉!
“사람 머리를 잘라서 가지고 다니다니! 미친 오토마톤이다! 물러서! 경계해!”
“으아아! 더러워!”
“이 악마의 인형! 네 녀석이 다 죽인 거냐!”
밥의 머리를 작은 가슴에 안은 루루는 표정이 있다면 황망한 얼굴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에, 힘 있게 발언했다.
“내가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네가 그랬어! 이 악마 같은 것!”
“내가 하지 않았습니다!”
“닥쳐라! 이 괴물아! 그 가방을 내놔라!”
모험가들이 덤벼들자 루루는 주머니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라이트.”
번쩍!
던전이라서 라이트 스크롤은 많이 준비해왔다. 당연하게도 짐꾼인 루루도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섬광에 놀란 모험가들이 눈을 질끈 감으며 칼을 마구 휘둘렀다.
“우왁! 얌마! 미쳤어!”
“어억! 미, 미안!”
“이 망할 인형 어딜 갔어?!”
“제길! 도망쳤어!”
“됐어. 진 빼지 말고 2층이나 찾아보자. 그 녀석 말이 사실이면 손 안 대고 코 풀게 생겼다.”
모험가들은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벽에 그어놓은 줄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까운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루루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몸을 돌렸다. 이후로는 모험가들을 마주치더라도 말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라이트로 선제공격을 감행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1층에서도 수십 시간을 소비한 후, 겨우 바깥으로 나온 루루는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서둘러 몸을 숨겼다.
던전 주변에 캠프를 치고 있는 모험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휘이이잉!
차디찬 겨울바람을 헤치며 밤새도록 걸어서 낮을 맞이한 루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모험가를 피해서 걷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목적지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낸 루루는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일치하는 지형을 지도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오토마톤의 학습 능력도 사람과 똑같다. 제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그걸 한 번에 기억하지 못하며 여러 번 읽고 배우고 연습해야 숙달된다.
그런 오토마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일은 대단한 끈기와 노력이 필요했기에 뭔가 할 줄 아는 오토마톤은 비싸게 거래되는 편이었다.
어쨌든 루루는 지도를 볼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지도를 노려보던 루루는 곧 그것을 잘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마냥 걷기 시작했다.
“도시를 찾아야 합니다. 관리원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을 가족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짧은 것도 모자라 절뚝거리는 다리를 놀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찬바람을 맞으며 걷던 루루는 한겨울의 들판을 걸으면서 사람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계절이 겨울이라서 몬스터는 거의 없었고, 늑대 같은 야생동물들이 꽤 덤벼들었지만 루루는 도끼와 스크롤을 적절히 사용해서 그것들을 쫓아내거나 머리를 쪼개놓았다.
뽀드득……! 뽀득!
어느새 루루는 눈이 쏟아지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으니 닥치는 대로 걷고 또 걷다가 보니 이상한 곳으로 흘러들어와 버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눈길에 마차가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멀리서 그 흔적을 살피면서 따라 걸었다.
길은 어디로든 사람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 * *
그렇게 던전을 탈출한 지 한 달 후.
루루는 기어코 도시를 발견했다.
북부에 위치한 방주 도시 아르곤이었다.
“스테인에서 왔다고?”
“예.”
“스테인이면 어디냐? 동부에 있는 거 아냐?”
“와! 마차 타고도 일주일은 넘게 걸리는 곳인데요.”
“오토마톤은 굉장하네. 걸어서 온 거야? 그 거리를? 이 겨울에?”
몰골이 엉망인 오토마톤을 보고 아르곤 성문 경비병들이 혀를 내둘렀다. 루루는 거의 한 달 만에 가방을 풀어서 내렸다. 모험가들과 야생동물들로부터 지켜낸 루루의 보물이었다.
“던전에서 사망한 모험가들도 함께 데려왔습니다. 가족들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경비병들이 그 가방으로 몰려들었다.
“으흐어억!?”
“사, 사람 머리야……!”
계절이 겨울이라서 크게 상하지 않은 머리들이 가방에서 쏟아졌다.
시선이 매서워진 경비병들이 놀라서 창을 들이댔지만, 오토마톤 루루는 진한 성취감에 취해있었다.
“저는 해냈습니다. 해내고 말았습니다. 칭찬해 주십시오.”
고참 경비병 하나가 동료들을 진정시키더니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그 머리에 손을 올리고 툭툭 두드렸다.
경비병 월터는 그윽한 시선으로 다 망가진 오토마톤을 바라보았다.
“그래, 기특하구나. 잘했다. 칭찬해주마.”
그날 저녁, 도시의 술집에서 시작된 흉흉하지만 따스한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도시로 퍼져 나갔다.
던전에서 목숨을 잃은 모험가들의 머리를 잘라서 가지고 돌아온 어떤 기특한 오토마톤에 대한 것이었다.
농장에서 일하다가 퇴근한 크랭크는 묶고 있는 여관에 들어섰다가 그 소문을 들었다. 처음엔 별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경비대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여기, 크랭크라는 사람 있습니까?”
무장한 경비대가 들어와서 그를 찾자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왔던 마리아가 방에서 혼자 빵과 물로 저녁을 때우고 있던 젊은이를 불러왔다.
“제가 크랭크입니다만.”
“잠시 따라와 줬으면 좋겠어.”
“크랭크 사고 쳤냐?”
“하하하!”
가게 단골들이 놀렸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던 크랭크는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걱정이 된 마리아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사고 칠 애는 아닌데?”
“아, 그런 거 때문이 아닙니다.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마리아의 걱정을 뒤로 하고 그들은 크랭크를 데리고 경비대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었지만, 교대를 마친 경비병들 대다수는 아직 그곳에 모여 있었다.
“크랭크를 데려왔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와, 저 친구, 키가 엄청 크네.”
“저 녀석이 크랭크야?”
좀 긴장한 크랭크가 주변을 살피는데 상황을 수습하고 있던 제3경비대장이 다가왔다. 얼굴은 노인이었지만 건장한 몸을 하고 있었다.
“자네가 크랭크인가? 스테인에 갔었던 적이 있나?”
“예, 가을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잠시 그를 올려다보던 제3경비대장이 중얼거렸다.
“은퇴 직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손주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하나 늘었군. 그 녀석을 데려와라.”
이윽고 크랭크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오토마톤이었다.
“루루?”
“반갑습니다. 크랭크.”
그 앞에 무릎을 꿇은 크랭크가 루루의 몰골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곧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 거야?”
루루는 경비대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입에 담았다. 크랭크의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자네, 확인이 필요해. 이리 와 보게.”
경비대원들은 크랭크를 데리고 어떤 방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머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저 오토마톤이 가져온 거야. 스테인에서 함께한 동료들이 있…….”
책상에 두 팔을 올리고 고개를 숙인 커다란 덩치의 청년이 흐느끼는 것을 보고 경비대원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소매로 눈가를 문지른 그가 사람들을 가리켰다.
“드워프 밥, 피터, 신관 포트, 나머지는 모르겠습니다.”
“맞군. 확인했어.”
다시 밖으로 나가자 이제 루루는 관리원에서 불려온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경비대원이 팔짱을 하고 있는 제3경비대장에게 보고했다.
“맞습니다.”
“자네 좀 이리 와 보게. 이쪽에서 할 말이 있다는군.”
오토마톤 관리원에서 불려온 사람이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
“이 오토마톤은 주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케인도 죽었나? 로나는? 저기에는 없었어!”
눈을 크게 뜬 크랭크의 물음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루루가 대답했다.
“주인님은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초야에 묻히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던전에 그대로 두고 나왔습니다. 로나는 모르겠습니다. 시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지켜보고 있던 관리원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주인을 잃고 갈 곳이 없는 오토마톤은 그 행동을 책임질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수거해서 해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을 위한 관리원 복귀 명령입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르곤의 오토마톤 관리원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오토마톤에게 마지막 선택권을 줍니다. 루루.”
루루가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물었다.
“너는 정말 해체되길 원하느냐? 혹시 너를 맡길 사람은 없는가?”
루루는 이제 크랭크를 보았다. 시선을 따라 이제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정작 크랭크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여러분과 함께했던 그 모험은 참 신나는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뛰어다니고 싶습니다. 그 초원과 들판과 숲을.”
루루가 그에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마스터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좀 머뭇대던 크랭크는 결국 그 손을 붙잡았다. 지켜보고 있던 관리원 사람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잘됐군요. 그렇지. 크랭크, 주머니에 동전 있습니까?”
주머니를 뒤적이자 농장에서 일하고 받은 품삯이 나왔다. 은화 한 닢을 집어 든 관리원이 그것을 루루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네게 언젠가 영혼이 생기면 천국행 뱃삯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 쓰거라.”
관리원 사람은 이제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이 오토마톤은 이제 당신 소유가 되었소. 데려가서 잘 고쳐서 사용해 보시구려. 수리는 오토마톤 정비 길드에서 상담 받으시면 됩니다. 부품은 관리원 부품과에서도 판매하니 많은 이용 바라오.”
“네가 데려온 저 사람들은 걱정 말거라. 내가 꼭 가족들을 찾아서 보내주마.”
루루가 제3경비대장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현했다.
그 뒤로도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조서를 꾸미느라 어둑어둑해진 무렵에야 루루를 데리고 경비대를 나선 크랭크는, 좀 얼떨떨한 기분을 하고 있다가 아래를 보았다. 마침 올려다보고 있는 루루와 눈이 마주쳤다.
“잘 부탁합니다. 주인님.”
그는 잠시 루루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숙이더니 그 작은 오토마톤을 안아 올렸다.
“놀랍군. 이 상태로 온 거냐.”
“예. 한 달 걸렸습니다.”
“한 달?!”
그간 쌓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휘적휘적 걸어서 여관에 도착하자 마리아가 놀란 눈을 하고 그를 반겼다.
“에그머니! 그건 뭐니?”
“사정이 있어서 데려왔습니다. 오늘부터 제 오토마톤입니다.”
“으응?”
크랭크도 상황 정리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만 말해놓고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침대에 루루를 앉혀 놓고 바닥에 주저앉은 크랭크는 가만히 이 조그만 인형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다 허기를 느낀 크랭크가 바닥을 더듬거리더니 농장의 온실에서 얻어온 생당근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으드득! 오도독!”
하지만 눈은 루루에게 고정되어 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때 루루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새 이름을 주십시오.”
“새 이름?”
“예, 중요합니다. 저는 이제 저택의 주방 보조 인형이 아닙니다. 모험가의 오토마톤입니다. 새 이름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루루을 보던 크랭크가 씹고 있던 당근을 들어보고는 아무렇게나 말했다.
“그럼 좀 귀엽게 캐롯은 어때?”
“캐롯.”
캐롯이 고개를 들었다.
“내 이름은 이제 캐롯입니다. 당신과 함께 모험을 떠나고 싶습니다.”
당근을 씹고 있던 크랭크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