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강호의 도리! 과거편! (외전 4)
크랭크가 떠나고 수일 후, 던전 탐색을 위해 모인 파티 멤버들이 새 옷을 입은 루루를 내려다보며 놀라워했다.
“크랭크가?”
“이 친구 참, 많이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허나, 고마운 친구입니다! 이렇게나 나를 생각해주다니! 나의 인류애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루루를 살펴보던 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보기 좋군요.”
“이제 상태가 썩 괜찮아졌으니 고철이 아니라 중고로 팔아도 되겠습니다.”
듣고 있던 밥은 기가 찼다.
“너, 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알맹이가 썩었는데 겉만 번지르르해서 뭣하냐?”
케인이 히죽 웃었다.
“그건 알 바 아닙니다. 속는 게 바보지요.”
“아니, 이놈이! 말이면 단 줄 아느냐!”
상도덕을 무시하는 발언에 눈에 핏발이 돋은 드워프가 주먹을 움켜쥐고 건방진 인간의 버릇을 고쳐주려는데 파티의 리더 로나가 그들을 중재했다.
“그만두세요. 이번 의뢰는 새로 발견된 던전의 탐색과 토벌이에요. 어서 가죠. 우리 말고도 여러 모험가가 도전합니다.”
“오우! 갑시다!”
마법사 겸 활쟁이1, 칼잡이2, 도끼1, 신관1, 짐꾼인형1으로 구성된 던전 탐색대가 힘차게 출발했다.
* * *
“접수 마감이오?”
“그래. 생각보다 접수자가 많아서 조기 마감되었어.”
막상 아르곤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문제없었지만, 휴전선 마을의 겨울 순찰대원의 접수가 조기 마감된 것은 곤란했다.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청년을 올려다본 길드 접수처 남자가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공고 게시판을 가리켰다.
“남부 겨울 출장도 이미 다 출발해버렸고, 그나마 남은 건 농장일인데. 이거라도 해볼 텐가? 겨우내 노는 것보다는 났지 싶은데.”
“하겠습니다.”
아쉬운 대로 일거리를 잡고 배낭을 짊어진 채 길드에서 나온 크랭크는 푸르른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크랭크는 몸을 돌렸다.
“여관이나 잡을까.”
같은 시간, 동부와 북부 사이에서 새로 발견된 던전에서는 모험가들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때 루루가 외쳤다.
“위험합니다!”
“으아악?!”
던전의 어둠 속의 튀어나온 문어발 같은 촉수에 다리를 휘감긴 케인이 끌려 들어가자 배낭을 내팽개친 루루가 뛰어와 손도끼를 휘둘렀다.
퍽! 파닥파닥!?
도끼에 맞고 잘려버린 문어 다리가 마구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드러낸 케인이 외쳤다.
“로나! 밥! 피터! 포트! 다들 어디 있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케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주변을 살폈다. 들어온 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1층까지는 괜찮았다. 다른 모험가 파티도 몇 명 만나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한가로운 산책 같았다.
하지만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돌입한 직후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파티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케인과 루루 둘 뿐,
“하하하! 제기……!”
롱소드를 빼 들고 주변을 살피던 케인이 웃기 시작했다.
대체로 극단적인 환경에서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공포와 분노에 미쳐 발광을 하거나 쇼크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외로 케인처럼 웃는 사람도 많았다.
몸에 붙인 라이트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사방을 비춘다. 벽돌을 쌓아 만든 잘 다듬어진 벽과 천장이 보였다.
긴장해서 그런지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퍼뜩 든 생각에 루루를 내려다보았다.
“루루! 너, 소리도 들을 수 있지 않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감각기관의 성능은 과부하를 막기 위해 인간과 비슷한 정도입니다.”
“크으윽!”
저택에 있을 때 심심해서 책도 많이 읽었다. 거기엔 오토마톤 개론을 포함한 전문 지식도 포함되어 있어서 케인도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금 너무 당황했나? 인간의 공포심은 그 기억에 혼란을 초래할 정도인가?
결국 그는 모진 결심을 했다.
“일단 나가자. 1층으로 올라가서 모험가들을 규합해서 구출대는 조직한다. 모두를 구해야 해.”
“현명한 판단입니다.”
앞의 어둠을 향해 손도끼를 내밀고 있던 루루가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롱소드를 든 케인도 뒤로 물러섰다. 기억을 되짚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미로로 만들어진 곳을 헤매다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뿐이었다.
“흐하하하하! 놀랍군! 잘 만들었어!”
퍽-!
주먹으로 벽을 후려친 케인이 공포로 미쳐버렸는지 웃기 시작했다. 루루가 걱정스레 뒤를 돌아보자 케인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다가 고개를 들었다.
“칫! 여기가 내 끝인가. 좀 더 놀고 싶었는데.”
모자를 쓴 루루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케인이 말했다.
“뒷바라지해준 오토마톤을 내치려 한 벌 인가? 만약 살아서 나가면 너를 고쳐서 다시 사용해주마. 그러니 내 동료들만이라도 살려주렴.”
극단적인 환경에 몰려 평소 하지 않던 헛소리를 해대는 주인을 루루는 가만히 올려다볼 볼 뿐이었다.
그리고 케인은 루루을 내려다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맞아. 그리고 절대로 저택으로 돌아가서는 안 돼. 나는 죽더라도 초야에 묻혀야 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더군.”
루루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했다간 그의 죽음이 확정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아아아악!
아스라이 들리는 비명, 케인과 루루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롱소드를 든 케인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위험에 빠졌다! 구하자!”
“사람을 구한다.”
용사의 씨앗을 품은 인간과 오토마톤이 어둠 속 미로를 뛰기 시작했다.
달려갈수록 소리가 커진다. 이윽고 커다란 방에서 그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케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가 다시 분노로 물들었다.
“로나! 밥!”
새로운 응원군의 등장에 방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반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엘프 로나와 드워프 밥이었다. 그리고 모르는 모험가 파티도 몇 끼어 있었다.
“이제 왔냐!”
“케인!”
그들의 앞에는 촉수가 잔뜩 돋아난 거미 같은 괴물이 사로잡은 모험가들의 몸을 움켜쥐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정신을 잃은 피터와 포트도 끼어 있었다.
“너! 이……! 사악한 마도사!”
자신의 몸을 괴물로 뒤바꿔놓은 마도사가 끓어오르는 소리로 대꾸했다.
“끄크르륵! 너, 너희들은…… 제, 제물이다!”
촤아아악! 촤악!
수십 다발의 촉수가 날아든다. 케인과 밥은 로나를 지키고 서서 그것을 쳐냈고, 루루는 남은 모험가들을 앞으로 나서서 촉수를 상대했다. 그쪽 모험가들이 스크롤을 찢었다가 반응이 없자 외쳤다.
“마법이 발동되지 않아요! 탈출해야 합니다!”
“어떻게! 저 자식을 쓰러뜨리지 않은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자주 쓰던 도끼는 어디 갔는지 양손에 손도끼를 뽑아 든 밥이 외쳤다.
“스크롤은 이래서 안 돼! 내 총을 가져왔어야 했어!”
“왜 안 가져왔습니까!”
캉캉! 캉!
롱소드를 휘두르는 케인의 곁에서 도끼를 휘둘러 다리에 휘감기는 촉수를 잘라낸 밥이 사나운 얼굴을 들었다.
“저 야비한 엘프에게 물어봐라! 반출 금지 품목으로 금지 당했다!”
“내가 정한 거 아니거든요!”
퉁퉁!
“크아아악!”
날아간 화살이 촉수 괴물의 가슴에 박혀 들자 비명을 쏟아냈다. 장년기에 접어든 엘프의 특징은 바깥으로 나돌고 싶은 외향적 성향과 더불어 어느 날 갑자기 돋아나는 그 송곳니가 되겠다. 그것을 드러낸 로나가 외쳤다.
“화살은 박혀요! 물리! 압도적인 물리 공격이 필요해!”
커다란 엘프의 눈에 방구석에 쌓여있는 잡동사니 속의 자동석궁이 들어왔다. 입을 커다랗게 벌린 로나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외쳤다.
“자동석궁! 저 자동석궁을 확보해! 루루!”
고개를 돌린 루루도 그것을 보았다. 쪼르르 달려가는데 촉수가 날아든다.
“머, 멍청한……! 그냥… 보내 줄 것, 같으냐?!”
촤르륵! 쾅-!
다리에 촉수가 매달린 루루가 휙 하고 날아오르더니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끼긱기긱-!
덜덜거리며 몸을 일으킨 루루가 손에 쥔 도끼를 휘두르려 하자 촉수는 한 번 더 패대기쳤다.
철퍼덕!
“루루!”
충격을 버티지 못한 루루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낙담한 모험가들의 괴성과 분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수십 시간 후…….
방안의 잡동사니에 던져져 있던 루루가 눈을 떴다. 팔과 다리의 가동각이 엉망이었다. 오른쪽 다리는 아예 움직이지도 않는다.
끼릭끼릭… 철컥……!
방 안의 조명은 그대로였다.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자 벽에 붙어 있던 그 거미 괴물이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는 그럴 리 없지만, 루루의 마력 엔진에 안도의 기분이 든다.
그리고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주인님들은?
몸을 일으킨 루루였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서 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주인님들을 찾기 전에 몸의 수리가 급선무였다. 평소 이것저것을 잘 묶어서 고쳐주던 크랭크의 행동을 기억한 루루는 잡동사니에서 마침 적당한 사람의 뼈를 가져와 가죽끈으로 다리에 묶었다.
오른쪽 고관절은 무사했기 때문에 겨우 중심을 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
절뚝거리며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루루는 쓰러진 모험가들의 시체를 살폈다. 그리고 크게 실망했다.
드워프 밥은 가슴에 촉수가 감긴 검에 찔린 채 절명했고, 피터와 포트도 몸이 으스러진 채로 죽어있었다.
주인님은?
주인님은 어디에?
작은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넓은 방 안을 살피고 다니던 루루가 희망을 안았다. 주인 케인과 엘프 로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살아남은 것인가?
다행이다.
안도감을 느낀 루루는 탈출을 위해 방을 나서려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죽은 모험가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다.
모험가들이라고 해도 다들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그 죽음을 알리는 것도 중요해.
언젠가 사망한 모험가를 수습할 때 했던 드워프 밥의 말이 기억났다. 그도 결국 죽어버렸지만,
루루는 이제 주변을 살폈다.
명령을 내려줄 인간을 찾으려 했으나 이곳에 산 사람은 없었다. 한참 망설이던 루루는 결국 스스로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상황은 난항, 현재 이 몸으로 모두를 데리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누어 다녀갈 수도 없습니다. 이곳을 재차 방문할 수 있을지 미지수.”
루루가 손도끼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가족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죽음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 순간, 케인의 말도 기억났다.
무소식이 희소식,
덜컥!
논리 충돌이 일어났다. 금이 간 얼굴을 들고 덜덜 떨면서 손에 쥔 도끼를 부들부들 떨던 루루가 곧 고개를 내렸다.
“주인님은 말했습니다. 동료들을 구해달라, 저택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무소식은 희소식.”
루루는 도끼를 휘둘렀다.
퍽!
단숨에 밥의 머리가 떨어져 나왔다. 루루의 눈에 광기 비슷한 것이 깃들기 시작했다.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 주인님에게만 그 무소식이 희소식을 부분 적용, 나머지는 돌아가야 합니다. 집으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로.”
퍽퍽!
모두의 머리를 잘라낸 루루는 모험가 인식표와 함께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천으로 감싸서 큼직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은 몸은 모두 방 안의 한구석에 가지런히 모아놓았다.
모두 8구.
그 외에도 뼈만 남거나 부패 된 시체들도 많았지만 루루는 이번에 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것만 챙기기로 자신에게 불확실한 미래의 다짐을 명령으로 내렸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돌아와 당신들을 마저 수습하겠습니다.”
가방을 멘 루루는 그렇게 몸을 돌렸다. 오토마톤은 밤에도 보이지만 빛이 하나도 없는 던전은 말이 좀 다르다. 그래서 라이트 구슬도 하나 챙겨와 몸에 붙이고 미로를 헤매기 시작했다.
때로는 벽에 표시하고, 챙겨온 나이프로 길게 줄을 긋기도 하면서 수십 시간을 헤매다가 우연히 쓰러진 모험가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저 옷차림이 낯이 익다.
가까이 다가가 롱소드를 가슴에 안고 가지런히 누운 사람의 얼굴을 내려다본 루루가 멈췄다.
덜커덕!
케인이었다.
배에 뭔가를 맞았는지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고쳐놓은 자세와 반지,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보니 누군가가 그의 몸을 바로 잡고 유품을 수거한 것 같다.
여러 사항을 고려할 때, 그 역시 생명 활동을 중단한 것이 확실하다.
석상처럼 서서 그 편안한 얼굴을 내려다보던 루루의 얼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습니까? 당신의 모험은 만족스러우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