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강호의 도리! 과거편! (외전 3)
길드의 술집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식탁 위에 맥주와 안주 등을 잔뜩 늘어놓고 환하게 웃고 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하하!”
어느새 길어진 금발을 뒤로 돌려 묶은 케인이 두 팔을 벌리고 환호했다.
길드 소개로 파티에 합류하게 된 그를 보면서 엘프 로나가 방긋 웃었다.
“인연이군요. 반년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모험가다워졌어요.”
“나도 그때는 웬 신출내기인가 싶었지. 여튼, 잘 부탁함세.”
옆자리에 앉은 드워프 밥이 커다란 손을 내밀자 케인이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잡아 흔들었다. 이야기로 들어오던 엘프, 드워프와 함께 모험이라니!
“감격입니다! 나는 꿈에 그리던 모험가가 되었습니다! 으하하하! 용사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드워프 밥이 옆의 로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시끄럽군.”
“자기주장이 확실하면 좋죠. 크랭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일반인 앞에서는 낯가림이 좀 있는 숙맥 크랭크가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차라리 저놈이 더 좋았는걸. 올려다보느라 목은 좀 아팠지만. 그런데 정말 빠질 참인가.”
“예. 겨울이 오기 전에 아르곤으로 돌아갈 참입니다. 원래 거점 도시이기도 하고, 휴전선 마을에서 겨울 순찰대원을 모집한다고 해서요.”
“어차피 돈 벌려고 그러는 거잖나. 오토마톤도 하나 생겼는데 이대로 남부 출장은 어떤가?”
밥의 말에 로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아래의 조그만 오토마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너무 작아요.”
식탁 아래에는 루루가 두 손을 모아 쥐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깨끗하고 귀여웠지만, 지금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케인이 끼어들었다.
“짐꾼으로 쓰고 있지만 의외로 잘 싸웁니다. 경비나 불침번 대신으로는 충분하지요.”
불침번 대신이라는 말에 파티 멤버들이 모두 루루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이 작은 오토마톤은 다 찢어진 치맛자락을 잡고 살짝 무릎을 굽혔다.
로나가 그걸 보고 웃었다.
“이건 어디서 난 거죠? 차림새가 심상찮은데. 당신, 어딘가의 가출 귀족인가요?”
”흐흣! 그건 알려드릴 수 없군요. 우리 사이의 거리가 더 벌어질 것 같습니다.”
“가문을 이을 수 없는 귀족 자재들이 모험가로 뛰어드는 건 흔한 일이지. 나도 그렇고.”
케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터 씨, 당신도?”
“피터라고 하시게,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술맛 떨어지니까.”
턱수염을 길렀지만 의외로 젊어 보이는 사내 피터가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
파티 리더는 엘프 로나, 보통 바깥을 나도는 엘프들은 나이가 많은 편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어느 순간 심심해지거든요? 그러면 뛰쳐나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나는 엘프들이 다 나이가 많은 거예요.”
“참고로 연세가?”
고개를 돌린 로나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여자에게 나이를 묻다니 실례군요. 장성한 아들딸이 있다는 것만 알려줄게요.”
케인이 기겁했다. 기껏해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맥주잔을 내린 드워프 밥도 입을 열었다.
“역시 궁금할 테니 알려주지. 나는 아직 독신이야. 드워프는 엘프와 다르게 젊었을 적에 공방에서 뛰쳐나오지, 끓는 피를 주체할 수 없거든? 바깥을 나도는 것들은 대부분 젊은것이지. 하지만 나이는 인간보다 많으니 주의하게.”
“오오오!”
반대로 생각보다 젊은 드워프 밥의 말을 듣고 모든 것이 신기한 케인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듣고 있던 피터도 간단하게 자신과 크랭크를 소개했다.
“나는 20대, 이 친구는 19살이오.”
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행 중에서 가장 건장한 몸집의 청년을 보았다.
“19살이라고? 그 몸으로?”
“어, 음. 그렇습니다.”
크랭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케인은 반가워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럴 수가! 나도 19살이야! 편하게 지내자고! 크랭크!”
쑥스러워하는 크랭크의 손을 잡아 흔들며 케인은 몹시 즐거워했다. 동년배의 모험가를 만나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파티 멤버를 영입한 스테인의 봄바람은 이튿날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아직 여름 초입이고 크랭크는 가을에 빠지기로 했기 때문에 한동안 함께 활동하기로 했다.
와다다다!
“으아하하하하!”
동굴 밖 출구의 빛무리를 향해 루루의 짧은 다리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곁에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케인이 미친 듯이 웃으며 달리고 있고,
그리고 그 뒤로는 거대한 거미, 킹아라크네가 8개의 다리를 징그럽게 휘적이며 뒤쫓고 있었다.
“온다!”
입구 밖에서 뛰어나오는 케인과 루루를 발견한 사람들이 재빠르게 밧줄을 잡으며 준비했다.
“나왔습니다!”
촤아아악!
이윽고 출구 밖으로 뛰쳐나오는데 성공한 케인은 멋지게 발을 미끄러뜨리며 몸을 돌려 롱소드를 뽑아들었고, 그 곁의 루루는 멈추려다 다리가 꼬여 그만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그것을 신호로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이 외쳤다.
“로나!”
“됐어, 한 방 날려!”
엘프 로나가 두 팔을 들고 주문을 외우자 그 초록색 망토가 멋지게 휘날렸다. 때마침 동굴 안쪽 표시점을 향해 킹아라크네가 당도했다.
“치이이이! 치이이이!”
“파이어 볼!”
그녀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새하얀 빛 구슬은 동굴 천장에 닿아 폭발을 일으켰다.
콰캉! 와르르륵!
동굴이 무너지자 쏟아지는 돌덩이에 맞고 킹아라크네가 발광했다. 그리고 재빨리 뒤로 물러서려고 하자 크랭크와 밥이 괴성을 지르며 밧줄을 잡아당겼고, 바닥에 숨겨져 있던 나무 목책이 튀어 올라와서 퇴로까지 차단해 버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돌무더기에 깔리고 말았다,
쿠구궁……!
“됐어! 해치웠어!”
롱소드를 뽑아 든 케인이 달려갔다.
바위에 깔린 킹아라크네는 여전히 쉭쉭 거리고 있긴 했지만, 다리가 다 부러져있고 배도 터져버려서 곧 절명할 것 같았다.
퀘스트 완수를 목전에 두고 신나 하는 사람들의 사이를 걸어간 크랭크는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 있는 루루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세워주었다. 고개를 든 루루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람들이 바위에 깔린 킹아라크네 앞에 몰렸다.
“이 녀석, 아직 살아있는데요?”
“증거품으로 소재를 챙겨야 하니까 좀 기다리지. 이참에 쉬면서 밥도 먹고. 그리고 너, 케인 미친 녀석아! 작작 좀 해라!”
“오토마톤보다야 신선한 인간이 구미가 당기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보십시오. 제대로 낚이지 않았습니까?”
순진무구한 발언에 드워프 밥이 속이 터진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 쳤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너는 목숨이 9개쯤 되나!? 네 녀석 부모 속 좀 썩였겠구나!”
철썩철썩!
드워프의 거친 손길로 등짝을 두드려 맞은 케인이 눈을 크게 떴다.
“어억! 지금 때린 거요?! 이 몸은 아버지에게도 맞은 적 없는데!”
“뭐가, 어째?! 그러니 네놈이 이따위가 된 거다! 내가 자식은 아직 없지만 널 두들겨 패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싶구나!”
퍽퍽!
드워프 밥과 케인이 툭탁거리는 사이, 찌푸린 얼굴로 왕거미를 가까이에서 쳐다보던 여 신관 포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 거미, 동료 같은 건 없어요?”
밧줄을 정리하던 피터가 고개를 돌렸다.
“없어. 킹아라크네는 단독 생활을 해. 그리고 지금은 새끼가 있을 시기도 아니고, 이놈들은 봄에 알을 까거든? 다 알아보고 왔지.”
계절은 여름이지만 동북부 지역은 그리 덥지 않기 때문에 한낮의 햇살만 조심하면 생활 자체는 쾌적했다.
“몬스터만 없으면 우린 좀 더 멋진 문명을 이룩했을 거다.”
피터가 서슬이 퍼런 눈으로 죽어가는 거미를 내려다보았다. 로나가 손짓했다.
“그만하고 이리들 와요. 식사해요.”
흥겨운 식사 시간, 몸을 턴 루루가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깔고 준비해온 바구니에서 도시락을 꺼내놓았다. 스튜와 샌드위치에 잼과 버터, 베이컨은 물론 야채샐러드까지 준비되어있었다.
로나와 포트가 그걸 보고 웃었다.
“와! 소풍 나온 것 같아요.”
“그렇지? 솜씨 좋은 서포터 하나 있으면 이렇게 편하다니까?”
쪼르르……!
컵에 홍차를 따르던 오토마톤 루루가 고개를 들었다. 케인을 따라다닐 때는 짐꾼 일만 했지만, 원래 저택의 주방 보조였기 때문에 간단한 요리와 플레이팅이 가능했다.
이에 더해 야외에서 험악한 일을 하는 모험가들에겐 이런 별것 없는 차림 상도 대단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다 좋은데 저 차림새는 좀 어떻게 안 되겠냐?”
샌드위치를 씹던 밥이 루루를 가리켰다. 세탁은 자주 하기 때문에 더럽지는 않았지만 찢어지고 헤진 곳이 많았다. 하지만 마스터 케인의 생각은 달랐다.
“다음 달쯤 제대로 된 새 전투용 오토마톤을 살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모두가 루루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 스스로 움직이긴 하지만 어차피 물건이다. 필요 없으면 버리고 바꾸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다.
“새로 사는 녀석도 이것처럼 요리나 차를 만들 수 있나?”
“물론이죠. 가사보조용 옵션을 넣으면 됩니다.”
“놀랍군요. 그런 건 경험이나 기억이잖아요? 그 부분만 똑 떼서 옮긴다니.”
로나의 말에 차를 마시던 케인이 대답했다.
“음, 예. 기술을 습득한 오토마톤의 기억수정을 복사해서 다른 오토마톤에게 집어넣으면 거의 80%까지 재현해낸다고 합니다. 같은 일은 몇 번 반복하면 완전히 숙달되는 거지요.”
“놀랍군요. 기억의 복사,”
“하하!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던 겁니다.”
하지만 드워프는 엘프와 인간의 쑥덕거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흥! 너희들은 도구에 감사하지 못하는군. 금방 질려서 새 걸 사고 말이야. 안 그런가?”
루루를 불러다가 앉혀 놓고 찢어진 부분을 바느질하던 크랭크가 씩 웃기만 했다.
바늘과 실보다 도끼와 망치가 더 잘 어울리는 인상의 청년이 찢어진 옷을 꼼꼼하게 꿰매는 모습은 옆에서 보니 참 신선했다. 너무 억지스러워 약간 우습기도 하고.
여 신관 포트가 손바닥을 마주하며 놀라워했다.
“와! 크랭크는 바느질도 할 줄 아는군요!”
“그 덩치에 바느질이라니. 더구나 능숙해!”
“오, 잘하는군요. 그런데 여기 주인님은 바꿀 거라는데, 괜찮아요?”
모두가 그를 돌아보자 크랭크가 말했다.
“오늘 이 녀석이 훌륭히 제 몫을 했으니 제 나름대로 상을 주고 싶습니다.”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 밥이 배낭에서 조그만 가죽장갑을 꺼내더니 얌전히 꿰매지고(?) 있는 루루에게 던져주었다.
“오다 주웠다. 들으니 오토마톤은 신발과 장갑이 중요하다더군, 싸구려지만 그 다 떨어진 것보다는 나을 거다.”
두 손으로 장갑을 받아든 루루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오! 말도 잘 하지 않느냐. 왜 조용했지? 더 해봐라. 노래도 부를 수 있느냐?”
밥이 놀라워하는 걸 사람들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들과 함께 모험하는 내내 루루는 파티의 짐꾼 서포터로서 많은 일을 도맡았다. 커다란 가방에 각종 장비를 담아 옮기고, 불침번도 서고, 요리는 물론 그 빠른 발을 이용해 몬스터를 유인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손도끼를 들고 전투에도 참여했다.
그 활약이 인상 깊었던지 파티에서는 점점 케인의 새 오토마톤 구입에 대해 강한 기대를 드러냈다.
* * *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가을의 중반.
일을 마치고 식당에 모인 파티의 리더 로나가 손에 든 포크로 케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새 오토마톤을 구입하는데 모자란 금액은 얼마죠? 파티 저금으로 부담할 테니 바로 구입하죠. 왜 다들 비싼 인형을 데리고 다니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최근 롱소드와 장비를 보충하고 유지하느라 좀처럼 돈을 모을 수 없었던 케인이 기뻐했다.
“500만 리즈 정도 부족한데, 괜찮겠습니까?”
생각보다 큰 금액이었지만 이 작은 오토마톤의 역할에 전투력까지 겸비하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로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구매 후, 3년간은 우리 파티 고정으로 있어 줘야 합니다. 아무래도 공용 저금이 투자되는 거니까요.”
“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야 좋지요!”
듣고 있던 드워프 밥이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건?”
관절이 안 좋은 건지 요즘 걸음걸이와 서 있는 자세가 좀 이상해진 루루가 삐딱하게 서서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새 오토마톤을 살 때 반납할 생각입니다. 작지만 오토마톤은 고철도 비싸게 받아줍니다. 여기, 루루의 경우엔 가사보조 옵션이 들어가 있어서 꽤 비싸게 쳐줄 겁니다.”
“그럼 그걸로 새 오토마톤의 무장을 마련하면 되겠군.”
피터의 말에 케인도 그럴 참이었다고 대답했다. 이때 가만히 드워프를 쳐다보던 엘프 로나가 손에 든 포크의 방향을 돌렸다.
“이거 알아요? 드워프는 의외로 잔정이 많아요. 한번 정들면 도구든 친구들 절대로 버리지 않지요.”
“닥쳐, 귀쟁이 깐프야.”
기분이 좀 나빠진 밥이 막 말을 해댔지만 로나는 히죽 웃기만 했다. 맥주를 크게 들이킨 드워프가 잔을 내리며 말했다.
“정이니 감정이니 어쩌고 하는 개똥같은 이야기는 집어치워. 나도 알고 있다.”
빈 맥주잔을 테이블에 올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냥 좀 아깝다는 거지.”
“그러면 당신이 인수하면 되겠군요?”
안주로 큼직한 햄을 자르다가 말고 나이프를 뽑은 그가 그걸로 로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잘 봐라, 엘프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은근슬쩍 일을 떠넘기는 걸 잘하는 아주 야비한 종족이다. 주의해라.”
나이프를 햄에 찔러 넣은 그는 이제 그걸 통째로 씹으며 말했다.
“냠냠. 달리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중요해. 그 선을 구분할 줄 알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아깝지만 저걸 거두지 않을 거다. 너희들도 시간과 돈이 충분하지 않거든 망가진 것에 정 붙이지 마라. 너도 망가진다.”
듣고 있던 신관 포트가 감동했는지 손뼉을 쳤다. 헛기침을 좀 한 케인도 루루를 내려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공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때마침 크랭크가 끼어들었다.
“저는 이제 파티를 떠나겠습니다. 요 1년간 참 감사했습니다.”
이제 다들 루루를 보던 씁쓸한 얼굴을 크랭크에게 돌렸다. 원래 파티의 서포터 역할이었던 청년은 그저 웃고 있었다.
“그래, 결국 시기가 왔군. 인간들이랑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그래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퇴직금이라도 지급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손재주가 좋고 성격도 예의 바르며 친절한 젊은이의 퇴장에 다들 아쉬워했다. 하지만 애써서 붙잡지는 않았다.
목숨도 왔다 갔다 하는 마당에 파티 멤버들이 오고 가는 거야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몹시 아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한 케인이 맥주를 들었다.
“친절한 거인의 멋진 인생을 위해.”
그 말에 웃음 지은 모두가 잔을 들고 부딪치며 그의 미래를 축복했다.
아래에서는 루루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 * *
그날 새벽, 모두가 잠든 기숙사 세면장에서 오토마톤이 혼자서 신나게 빨래를 하고 있다. 빨래하는 오토마톤이 신기한 인간들에게 매번 시달리다 보니 짜낸 나름의 궁여지책이었다.
복작복작……!
획!
인기척에 빠르게 고개를 돌린 루루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야.”
커다란 그림자가 대답했다. 이윽고 그림자 속에서 보따리가 휙 던져졌다. 그걸 두 손으로 받은 루루가 고개를 들었다.
“이별 선물이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 말인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면 무기와 장비는 항상 벼리고 관리해야 해.”
크랭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람도 죽으면 깨끗한 수의를 입혀주는데, 사람을 돕는 인형에게도 최소한의 대우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따리 안에는 아동용 치마와 자켓에 가죽을 덧대어 보강한 오토마톤 전투복과 장갑, 부츠가 들어있었다. 직접 만든 물건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제게 주시는 겁니까?”
“그래.”
보따리를 안아 들고 멍청히 서 있던 루루가 감사의 인사를 빠르게 쏟아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마이스터 크랭크,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미 돌아갔는지 그림자 속에서 더 이상의 대꾸는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달님이 엿보는 세면장에서 오토마톤 루루는 그렇게 새 옷을 꼭 끌어안고 기묘한 감정을 느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