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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98화 (98/329)

98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강호의 도리! 과거편! (외전 1)

“다 필요 없어! 나는 군대에 안 가!”

“아아! 도련님!”

쾅-!

서재에서 백작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금발 청년은 성큼성큼 화려한 저택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뒤이어 서재에서 걸어 나온 중년의 백작이 버럭 외쳤다.

“놈! 이 무슨 추태냐! 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느냐!”

“하하하! 어차피 나는 삼남에 서자거든요! 눈엣가시 같았을 테니 내 알아서 없어져 드리리다! 다들 잘 먹고 잘사쇼!”

걸으면서 고개를 돌린 백작가 삼남 케인은 상스럽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웃고 있었다.

편두통이 도진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린 백작은 큰 손으로 이마를 덮어버렸다.

저택의 사용인들이 나서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방으로 뛰어 들어간 케인은 미리 준비해놓았던 배낭과 검을 집어 들고 몸을 돌렸다. 때마침 커다란 키와 몸을 한 백작가 장남 베인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방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우악스러운 손으로 케인의 팔을 잡으려 뻗었다.

“멍청한 녀석! 아버님께 무슨 짓이냐! 가자, 지금이라면 사과를 받아주실……!”

스르릉-!

뒤로 슬쩍 물러서서 거리를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케인이 칼을 뽑아 들었다. 날이 잔뜩 선 롱소드가 그 목을 겨누고 있다.

“형님, 물러서 주쇼. 나는 이 숨 막히는 곳에서 탈출할 거요.”

“너, 이 자식!”

불같은 성격의 장남이 앞으로 나서자 롱소드 칼끝이 재빨리 움직여 그 가슴에 닿은 것도 모자라 옷감을 파고들었다. 차가운 감촉에 그가 움찔했다.

현재 저택에서 누구도 검술로 삼남을 이긴 사람이 없었다. 백작마저도 그 검술만큼은 칭찬 일색이었다. 케인이 외쳤다.

“야! 뭣들 해! 형님을 말려! 찔리면 너희들 책임이야! 알아?!”

곁에서 보고 있던 사용인들이 나섰다. 그들은 장남 베인을 감싸며 물러섰다. 그러다 집사 하나가 볼멘소리로 물었다.

“도련님, 꼭 이러셔야겠습니까? 그래도 백작님은 도련님의 성향을 이해하시고 군의 장교를 추천하신 겁니다.”

여전히 칼을 든 케인이 히죽 웃었다.

“알아. 하지만 난 다른 게 해 보고 싶었어.”

롱소드를 집어넣은 케인은 배낭을 짊어진 채 방 문을 나섰다. 그러다가 복도에 몰려와 있는 사용인 중에서 조그만 오토마톤들을 발견했다. 저택이 워낙 크다 보니 작업 보조로 사용하려고 들여놓은 것들이었다.

가면 같은 얼굴과 조그만 몸집에 전용 메이드 복장까지 입혀 놓았기 때문에 마치 작고 귀여운 인형들이 옹기종기 서성이는 것 같다.

“백작님 취향 참……!”

낄낄 웃으며 그걸 내려다보던 케인은 그중 한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들어 올렸다.

좀 버둥거리다가 얌전히 끌려 올라오는 오토마톤을 겨드랑이에 끼운 케인이 손을 흔들며 복도를 뛰어나갔다.

“이건, 이별 선물로 받아 갈게! 짐꾼 대용으로 써야겠어!”

“아아! 도련님!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세요!”

케인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모험가! 조만간 내 이름이 들려올 거야! 기대하라고! 으하하하!”

말을 타고 저택을 달려 나가는 삼남을 서재의 창문으로 내려다보던 백작은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곁에 서 있던 노 집사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내버려 두게. 맛을 봐야 알겠다면 말리지 않겠어. 멍청한 녀석 같으니, 제 어미를 똑 닮았군.”

백작의 어깨너머로 달려 나가는 삼남 케인을 뒷모습을 훔쳐보며, 노 집사는 약간이지만 저 케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초원.

잠시 쉬어가기 위해 말에서 내린 케인이 데리고 나온 조그만 오토마톤 앞에 쭈그려 앉았다.

“너, 이름이 뭐냐?”

“루루블랙입니다.”

그러고 보니 주방장이 자기 딸 이름에 색깔을 더해서 대충 이름을 붙어 놓았던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케인이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중요한 거야. 네 마스터는 누구지?”

“웰메인 백작 가문의 구성원입니다.”

“나는 누구지?”

“웰메인 케인 도련님이십니다.”

“그럼 나는 네 마스터겠군?”

“그렇게 됩니다.”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루블랙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는 뭘 할까요?”

“우리는 모험을 하러 갈 거다! 너는 내 짐꾼이 되어줘야겠어!”

“짐꾼, 알겠습니다.”

루루블랙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에 오른 케인은 이웃 방주 도시 스테인까지 달려갔다. 집이나 마찬가지인 방주 도시에서 가출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두워지기 전까지만 도착하면 돼!

“그리고 그곳에서 내 전설이 시작되는 것이지! 하하하하!”

하지만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웰메인과 스테인 사이의 거리는 방주 도시 치고는 가까운 편이지만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저녁쯤 도착하는 수준의 거리였기 때문이다.

“캬오캬오오!!”

“크아악! 컹컹!”

루루에게 불침번을 세워놓고 노숙을 하던 케인이 여행객을 습격하러 온 고블린과 늑대 무리를 만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케인님과 함께 하는 대모험의 첫 제물은 고블린 라이더인가! 덤벼라! 어?”

케인의 앞을 루루가 가로막았다. 그 작은 손에는 케인의 배낭에서 꺼내 온 손도끼가 들려있었다.

“주인님을 다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케인의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조그만 인형이 나를 지키려 나서다니! 이 얼마나 든든한 것이냐!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강하다!”

그는 정말로 강했다. 변변한 갑옷도 없으면서 롱소드 하나만 들고 날뛰기 시작하는데 그의 검이 지날 때마다 고블린의 몸은 뭉텅이로 잘려 나갔고 타고 있던 늑대는 머리가 깨져 즉사했다.

그 와중에 배낭을 노리고 덤벼든 고블린을 루루가 처리했다. 아무지 소형이라지만 오토마톤, 그 힘은 성인 남자 수준이다. 휘둘러지는 손도끼에 고블린들의 머리가 없어지는 마법이 펼쳐진다.

전투를 마친 케인이 환하게 웃으며 피투성이가 된 루루를 들어 올렸다.

“너는 생각보다 요긴하구나! 이 귀여운 것!”

“칭찬 감사합니다. 주인님의 의복이 더러워졌습니다. 세탁이 필요합니다.”

“괜찮다. 이 옷도 갈아입어야겠군. 내 미리 준비해왔지.”

케인은 그렇게 말하며 배낭을 뒤집어 안에 있던 것을 쏟아냈다. 옷가지와 건조식량, 돈주머니 같은 것들이 후두둑 떨어졌고, 루루는 주인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것을 주워 정리하기 바빴다.

잠을 설친 그들은 그대로 이동을 시작했다. 늑대와 고블린은 그 자리에 버리고 와버렸다.

“주인님. 저기 불빛이 보입니다.”

“뭐라고?!”

달빛에 의지해 말을 몰아가고 있던 그가 앞에 앉혀 놓은 루루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자 정말로 멀리 불빛 같은 것이 보였다. 사람의 흔적이라 생각한 그는 신이 나서 말을 몰아갔다.

“오! 안녕하시오!”

“뭐, 뭐야?! 뉘시오?!”

별안간 찾아온 목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벌떡 일어났다. 몇몇은 자고 있었는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검과 활을 본 케인이 손을 흔들었다.

“아, 강도가 아니오. 나는 모험가요.”

듣고 있던 엘프 여자가 기가 차서 되물었다.

“그걸 믿으라는 건가요? 이 밤에 무슨 일이죠?”

“사실 좀 떨어진 곳에서 야영 중이었는데, 고블린 라이더가 나타나서 한바탕하고 잠이 깨버려서 걷는 중이었소. 그러다가 여러분을 발견한 것이고.”

여전히 말에 오른 그를 보고 드워프가 쏘아붙였다.

“보시오. 일단 말에서 내리는 것이 어떻소? 요즘 올려다봐야 할 것이 많아서 목이 아픈데 말이야.”

“어엇! 실례했습니다!”

솜씨 좋게 말에서 뛰어내린 케인은 무언가 인형 같은 것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그것을 바닥에 내리자 놀랍게도 그 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워프 밥이 흥미로워했다.

“오토마톤인가? 저렇게 작은 건 처음 보는군.”

“귀엽네요. 당신 것인가요?”

“음, 그렇소. 이별 선물로 챙겨왔지.”

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엘프 여자, 드워프 남자, 신관 여자, 그리고 인간 남자 둘, 조촐한 파티였다.

“이런 노지에서 사람을 만나 참 반갑군요. 부탁이니 하룻밤 잠시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엘프 여자가 긴장한 신관을 힐끗 내려다보고는 시선을 들었다.

“그전에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로 가는 거죠?”

“스테인으로 갑니다. 모험가 등록하러.”

“아니, 방금 모험가라고 했잖아요.”

“누구나 모험가지요. 인생이라는 큰 모험의.”

엘프 로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떻게 하죠?”

“상관없지 않나? 이 밤에 이 야외에서 사람을 쫓아내기는 좀 그렇군. 서툰 짓을 하면 언제든 도끼로 머릴 떼어내면 돼.”

로나가 고개를 돌렸다.

“피터, 크랭크. 당신들은요?”

“저도 괜찮습니다. 상황을 보고 판단하시지요. 저 사람은 아직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맞아.”

고개를 끄덕인 로나가 그에게 손짓했다. 동석을 허락받게 된 케인은 그들을 상대로 반가움을 떠들어 대려다가 드워프 밥에게 입막음을 당했다.

“신관이 자야 하니까. 자네는 좀 닥치게.”

“어, 예. 알겠습니다. 불침번은 걱정하지 마시죠. 제 오토마톤에게 시키면 됩니다. 루루.”

“예.”

배낭에 앉아있던 조그만 오토마톤이 일어섰다. 그걸 가만히 보던 로나가 코를 벌렁거렸다.

“……귀여워.”

찡그린 얼굴의 드워프가 한 소리 했다.

“이건 왜 이렇게 더럽냐. 옷에 피가 잔뜩 묻었군.”

루루가 손수건을 꺼내 옷의 피를 좀 닦아보려 했지만 이미 물들어버려서 닦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세탁이 필요합니다.”

“당분간은 그냥 있어. 상황을 봐서 세탁할 시간을 허가해주마.”

“알겠습니다.”

잠깐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내일을 위해서 다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동석은 허락했지만,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어서 크랭크가 마지막 불침번을 섰고, 루루도 가만히 앉아서 잠든 주인을 지켰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새벽 기운이 만연한 시간이 되자 크랭크가 불가의 불을 살리고 주전자를 올린 다음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식사 준비하시는 것입니까?”

감정이 없는 어린아이 목소리에 크랭크가 고개를 들었다. 순박한 청년의 얼굴이었다.

“어, 아니. 좀 있으면 다들 일어날 텐데 차를 돌리려고, 여기 피터 씨는 꼭 차를 마셔야 하거든.”

크랭크는 모자를 덮어쓰고 침낭에 들어가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루루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해가 떠오르고 차와 간단한 식사를 하며 잠을 쫓은 사람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그들의 앞에 마주 선 케인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하룻밤 함께 해줘서 감사합니다.”

팔짱을 한 로나는 아래의 루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군요. 모험가 등록하면 자주 뵙겠군요. 우리도 스테인에서 활동하는 모험가 파티에요.”

“오오! 역시! 그럴 것 같았습니다! 파티 이름은 어떻게 되십니까?”

“스테인의 봄바람이에요.”

“내 잊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듣기로 퀘스트를 위해 인근의 숲으로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었다. 가슴 찡한 격한 감동을 느끼며, 케인은 서둘러 스테인으로 말을 몰았다.

“먼저 등록하고, 파티를 구하고, 모험을 나가는 것이다!”

“모험을 나갑니다. 알겠습니다.”

케인의 앞에 자리 잡은 루루가 낭랑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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