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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97화 (97/329)

97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봄 소풍! (4)

해가 서산 위에 걸려 곧 떨어질 것 같은 시간, 초원 저편 숲속에서 사람들이 걸어 내려오고 있다.

그때 비타가 감격에 겨워 자리에서 일어섰다.

“찾았어요! 저기와요!”

마차의 사람들이 큰 한숨을 내쉬더니 곧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결국 도착하자마자 론치는 어른들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고, 지오와 보리스, 코비는 이상한 표정이 되어 먼 산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 그게…….”

짝짝! 캐롯이 박수를 쳤다.

“일단 늦었으니까 출발하자. 다들 마차에 타세요.”

크랭크는 어느새 마부석에 자리 잡았다. 인원을 다시 한번 확인한 다음 마차는 출발했다. 짐칸 맨 뒤에서 한쪽 다리를 올리고 팔짱을 한 채 뒤를 살피던 캐롯이 말했다.

“쫓아올 생각은 없나 본데?”

“론치.”

반대로 맨 앞자리, 마부석에 앉아 등을 돌린 크랭크가 별안간 이름을 부르자 시무룩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론치가 슬그머니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파티 구급봉사활동단 여러분.”

“나는 그거 인정 못해요!”

보리스가 악을 써대자 크랭크가 말을 고쳤다.

“하여튼 여러분께, 오늘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오크와 인간이 서로를 이해할 날은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무시하고 도망치십시오.”

크랭크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나도 당신들 정도 나이에 비슷한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감정이입은 어떤 의미로 참 무서운 것입니다.”

“맞아. 차라리 오토마톤에게 그걸 해. 우린 너희를 배신하지 않아. 우린 인간님들의 돈과 사랑과 관심이 고픈 인형들이거든?”

“아으악! 닭살 돋아! 그런 부끄러운 소릴 잘도 한다. 너!”

보리스의 목청에 심각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희석되었다. 결과적으로 시간만 좀 늦었을 뿐이기에 다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론치는 볼을 부풀렸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캐롯이 윙크를 찡긋하며 되물었다.

“사랑스러운 오토마톤과 친절한 오크 중에 무인도에 데리고 갈 상대를 고르라면?”

캐롯의 발랄한 물음에 의외로 크랭크가 바로 대답했다.

“친절한 오크. 잡아먹을 거다. 나의 근손실을 걱정해주다니 정말로 친절하지 않나.”

“크악하하하! 하하하하!”

갑자기 코비가 폭소를 터트렸다. 보리스는 별 미친놈을 다 본다는 식으로 그의 등을 노려보았다.

아리에테의 마차가 도착하고 30분 후에 크랭크들이 도착했기에 다들 근심 걱정을 덜고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시무룩한 얼굴로 바구니를 안고 돌아갔던 론치는 다음 날 아침 해맑게 웃으며 다시 봄소풍에 참가했다.

보리스가 비타와 재잘거리는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봐봐, 진짜 닮지 않았냐? 껍데기 말고 알맹이가 말이야.”

인정하긴 싫지만 지오와 코비는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봄소풍? 행사에 오토마톤 4대를 동원한 일당이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이 퍼져서 3일째 되는 날은 대규모 인원이 모여들었고, 결국 시민들의 안전을 우려한 경비대에서도 지적이 나왔다.

“안 돼, 너무 많아. 자네들 뒤에 행렬을 보라고.”

크랭크가 뒤를 돌아보았다.

짐마차 7대에 8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눠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많은 수의 사람을 태운 짐마차 일행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크랭크는 마리아를 돌아보았다.

“회장님. 한 말씀 해주시죠.”

“아니, 나도 사실 이렇게 많이 나올 줄 몰랐어.”

그때 바깥나들이에 부푼 꿈을 가진 사람들이 징징거렸다.

“월터 아저씨이~!”

성문 경비병 월터가 턱수염을 좀 쓰다듬더니 말했다.

“내 위에 이야기 좀 하고 오지 잠시 기다려 보시게.”

사무실로 들어갔었던 그는 잠시 후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이를 대동하고 나왔다. 제복의 어깨에 매달린 휘장은 경비대장 직위를 알리고 있었다.

“아르곤 제3경비대장 바이슨입니다.”

크랭크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팔짱을 끼고 그를 좀 올려다보던 바이슨은 뒤를 돌아보았다. 상당한 행렬이었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모두 통과시켰다.

“와! 정말요? 고마워요! 역시 제3경비대장님!”

“대신 경비대에서도 지원을 나가겠습니다. 월터, 준비합시다. 대기조를 모두 소집하세요.”

“어, 알겠습니다.”

시원시원한 경비대장의 일 처리에 마차의 처녀들이 좋아했다. 바이슨은 손을 좀 흔들어주고는 몸을 돌리고 히죽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번 경비견 도입을 주장하다가 대차게 까이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도시에서 몰려나온 마차들은 초원과 들판, 숲의 경계가 이뤄진 지역에 자리를 잡고 봄나물 채취를 시작했다. 원래는 모험가를 개인 호위로 불러서 소규모 나오던 것이 그 규모가 커져 버렸다.

“컹컹!”

경호로 나온 경비대에서는 오토마톤과 더불어 덩치 큰 개도 몇 마리 데리고 나왔다. 야생 늑대 새끼를 주워 번식시킨 것이었다.

팔짱을 하고 있던 캐롯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경비견 한 마리와 묘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중얼거렸다.

“나 책에서 봤어. 지금 이 녀석, 나를 살피고 있어. 적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

경비견을 담당하는 여성 모험가가 팔짱을 끼었다. 캐롯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성난 개가 있으면 시선을 피해주는 것이 좋대. 시선을 마주하면 공격과 우위를 알리게 되는 거래.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눈싸움이다!”

두 팔을 위로 올리고 왁! 소리를 지른 캐롯은 와다다 그 개를 뒤쫓기 시작했다.

“으하하! 거기 서라!”

“컹컹-!”

경비견과 술래잡기를 하는 오토마톤을 돌아보던 사람들은 킥킥 웃기만 했다.

한참 후, 캐롯은 그 커다란 개에 올라타고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와-! 너 눈물 나게 잘 달린다!”

“컹컹-!”

경비대 책임자 주최로 경계와 방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호위 모험가들이 그걸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시찰을 핑계로 따라 나왔던 제3경비대장 바이슨도 흥미롭게 그걸 바라보았다.

“마치 고블린 라이더 같군요. 오토마톤을 경비견에게 태우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군!”

“안 됩니다. 오토마톤은 아무리 가벼워도 성인 남자 수준이에요. 저건 캐롯이 가벼워서 그런 겁니다.”

부관의 지적에 바이슨 경비대장이 이번엔 크랭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오토마톤의 무게는 어떻게 됩니까?”

“소형이라서 오토마톤치고는 가볍습니다. 물론 비슷한 키의 아이들보다는 무겁겠지만요.”

듣고 있던 모험가 하나가 의문을 표시했다.

“어? 너무 가벼우면 안 되잖아요? 무게 중심이나 전투 중량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 저도 그것 때문에 일부러 장갑과 부츠에 무게추를 달아놓긴 했습니다. 빼면 더 가벼워지겠지요.”

“오오!”

크랭크가 덧붙였다.

“하지만 일반 오토마톤에겐 비추천합니다. 관절이 빨리 상합니다.”

“오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3경비대장은 흐뭇하게 캐롯을 태우고 달리는 경비견을 쳐다보았다.

캐롯은 얼굴을 핥아 주는 경비견을 말리며 웃어댔다.

“와하하하! 캐롯은 인기 만점! 이젠 동물도 홀리는 마성의 매력을 보유한 오토마톤! 하하하! 간지러워!”

“나도! 나도 만져볼래!”

때마침 근처에서 구경하던 아이들도 달려왔다. 하지만 신기하게 캐롯과는 잘 놀던 경비견은 인간 아이들을 경계했다. 맨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크르르릉-!”

“어? 얘가 왜 이러지?”

“갑자기 모르는 애들이 나타나면 경계하기 마련이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오래 두고 사귀려면 되도록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야 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

다시 나타난 경비견 담당 여성 모험가였다. 이름은 니퍼, 그녀는 팔짱을 끼며 우물쭈물하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개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엄연히 회색늑대란다. 너희들이 보던 동네 똥강아지가 아니야. 꼬마들은 저쪽으로 가도록 해. 마구 돌아다니지 마.”

“으앙-! 멍멍이! 멍멍이!”

아이들이 떼를 썼지만, 니퍼는 완곡했다. 그녀는 개를 데리고 돌아가 버렸다.

“오, 쿨내가 진동하는 여자네. 멋져.”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징징거리고 있었다. 생애 첫 거절과 이별을 겪고 목 놓아 대성통곡하는 얘들도 있었다.

그걸 보고 킥킥 웃은 캐롯이 소리를 꽥 질렀다.

“왁! 코딱지들아! 울어봤자 나오는 건 눈물뿐이야! 오토마톤과 함께 화관을 만들자! 엄마아빠 가져다주면 좋아할 거야!”

꽃밭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들에게 화관 만드는 방법을 알려줘서 관심을 돌린 캐롯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한번 살폈다.

지정된 구역이 없는 캐롯이긴 했지만, 경계 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사람이 많으니까 바쁘네. 우리 수준에는 어제 정도가 딱 좋았어. 자! 코딱지들아! 저쪽으로 가자! 애들은 가능한 한자리에 있어야 해!”

캐롯을 선두로 들꽃으로 만든 화관을 머리에 쓰거나 손에 든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어른들이 귀엽다고 웃음 지었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아이들은 특별관리 대상으로 오토마톤 샤를과 로테가 운영하는 야외 보육원에 맡겨졌다. 비타를 포함한 다른 파티의 신관 몇 명도 거기 끼어 있었다.

“자! 우리 어린이들! 오늘은 꽃 이름을 배워 봐요!”

“네엥-!”

아이들 틈에 함께 끼어 있는 캐롯을 보고 비타가 웃어버렸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니퍼를 찾아간 캐롯이 물었다.

“경비대에서는 갑자기 웬 개를 데려왔어요?”

현재 방위 형태는 다음과 같다. 봄나물 뜯는 사람들, 그 바깥에 인간 모험가들, 다시 그 바깥에 오토마톤들이 있고, 그 주변을 경비견들이 서성이고 있다. 꽤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초원을 돌아다니는 경비견을 살피고 있던 니퍼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캐롯의 주변에는 어느새 경비견 한 마리가 다가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꼬리도 살랑거리고 있고,

“자꾸 왜 이러는 거래? 우리 오늘 처음 봤어, 얘들아. 너무 끈적하지 않니?”

“훈련 시켜놓아서 그런 거야. 정확히는 마력 엔진에서 나오는 마력 냄새를 맡은 거지. 경비대 오토마톤과의 혼용 운영이 목적이었거든? 그런데 너, 진짜 오토마톤이었구나. 소프트 스킨은 굉장하네.”

“오오! 그래서 개들이 오토마톤 근처에 달라붙어 있는 거구나!”

다시금 주변을 살펴보는 캐롯의 시야에 무뚝뚝 장성처럼 선 오토마톤과 그 근처를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니는 경비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팔짱을 하고 그걸 같이 보던 니퍼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모험가이신데, 우연히 주워온 새끼 늑대를 키워서 데리고 다니던 것이 이리되었지. 그리고 저기 제3경비대장 바이슨이 우리 친오빠야. 이 정도면 대충 알겠지?”

“인간의 생존전략은 약자들의 협동이래요. 그 협동은 이젠 종도 가리지 않는구나. 대단해! 다 같이 친하게 지내면 좋지! 물론 그게 생각처럼 잘 안되는 게 흠이지만!”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이 킥킥 웃는다. 살짝 놀란 니퍼가 허리를 숙여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대단한데? 너, 정말 오토마톤이야?”

경비견의 커다란 입안에 머리가 반쯤 들어간 캐롯이 양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빙그레 웃었다.

“당신 보기엔 어떤데?”

니퍼는 말보다 그 모양새가 웃겨서 웃음을 터트렸다.

대규모 인원이 몰려나왔지만 경비대 지원을 받기도 했고, 모험가들이 연합을 이뤄 경계했기 때문에 행사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종료되었다.

시험 운행 삼아 데리고 나왔던 경비견들도 의외로 긍정적인 결과를 남겨서 제3경비대장의 어깨에 힘을 넣어주었다.

돌아가는 마차에서 아낙들이 서로의 전리품을 자랑하다가 론치를 보고 놀라워했다. 그녀의 큼직한 바구니에는 우람한 송이버섯이 한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언제 이렇게 땄니? 실하기도 하지.”

“친구가 줬어요!”

론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고, 마부석에 앉아서 마차를 몰고 있던 코비, 지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얼이 빠진 보리스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어,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 아무것도,”

“으, 응. 그냥 못 들은 걸로.”

“아,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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