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봄 소풍! (2)
잠시 후,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모두가 마차로 다시 모였다. 산나물이며 약초, 열매 등등 각자의 전리품을 자랑하고 나누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크랭크는 인원수 확인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는 눈이 조금 흔들리기까지 했다.
지오의 파티가 사람들을 데리고 합류했다.
“실례합니다. 보리스에게 듣고 찾아왔습니다. 식사 정도는 같이 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오우! 지오! 속이 잘생긴 친구들은 언제나 환영이야!”
캐롯이 두 팔을 벌리고 그들을 환영했다. 마을 사람들도 아는 얼굴들을 만나서 서로 반가워했다. 이 와중에 크랭크는 겨우 인원수 점검을 완료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확인이 어렵군.”
“너 혼자 살피지 말고 각자 나눠줘. 투나 빼고 오토마톤 포함 우리 6명이니까. 나누기하면 되겠네.”
“음, 나는 왜 그런 발상을 하지 못했을까. 오후부터는 그렇게 적용해야겠다.”
작년까지 모든 걸 혼자서 처리해왔던 크랭크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샌드위치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걸 아낙들이 보고 즐거워했다.
“오, 크랭크 총각 저걸 쓰고도 잘 먹네.”
“그러게, 키도 크고 심성도 참 곱고 말이야. 보기 드문 젊은이야. 투구만 좀 벗으면 좋을 텐데.”
“어휴-! 부인, 저주에 걸려있대요. 그래서 쓰고 다닌다는구먼?”
“사내자식들은 얼굴 잘생겨 봤자 아무 소용없어. 저 상태로도 좋아, 여자는 있는가?”
“돈도 잘 번다고 들었는데 저주는 풀면 되지 않아? 내 딸 같이 데려왔는데 한번 보지 않겠어?”
아낙들의 발언에 아리에테와 투나가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크크크크랭크! 내, 내가 싼 샌드위치는 어때? 마, 맛있어?”
“음, 나쁘지 않군. 그리고 이건 샤를이 싼 거고 넌 거들기만 했잖아.”
“너, 너 좋아하는 건 내가 다 알려줬거든?!”
“어, 어흠! 크랭크! 잠깐 저쪽 파티와 인사를 하고 싶은데, 소개를 해줬으면 좋겠다.”
“어, 잠시만, 이거 먹고.”
좀 떨어진 곳에 앉아서 잠자코 보고 있던 마리아가 흐뭇하게 웃었다.
“봄이 왔구나. 보기 좋아.”
곁에서 팔짱을 하고 앉아있던 캐롯도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음, 나도. 아무나 상관없지만 둘 다도 괜찮지.”
“그럼 두 집 살림인데?”
“그거 법적으로 문제 있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좋은 소린 못 듣지.”
“당사자들만 인정하면 문제없다는 소리네.”
마리아는 어느새 욕심쟁이 할머니 같은 발언을 하는 캐롯을 보고 허허 웃어버렸다.
그 목각인형을 대체 어떻게 이렇게 사람처럼 만들어놓았을까, 궁금하네.
식사를 마친 크랭크는 가까운 곳에서 휴식 중인 지오 파티를 인사차 방문했다. 아리에테와 투나도 따라왔다.
“이쪽은 저희 파티의 아리에테, 여기는 공방의 조수 투나. 오토마톤들은 경계 중이라 데려오진 못했지만, 저쪽의 회색 머리는 샤를, 그 옆에 검은 머리는 로테, 초록 머리는 베누스.”
몸을 돌린 크랭크는 모여 앉은 사람들의 주변을 지키고 선 오토마톤들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비타가 투나의 손을 잡고 격하게 반겼다.
“투나! 오랜만이에요!”
“흐흣, 그, 그래 잘 지냈어?”
“물론이죠!”
지오는 크랭크의 곁에 선 아리에테의 앞으로 가서 고개를 약간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데뷔 2년 차 모험가 파티입니다. 저는 지오, 이쪽에서부터 신관 비타, 보리스, 코비입니다.”
“음. 반갑다.”
아리에테가 손을 내밀었고, 어색하게 웃음 지은 지오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앳되어 보이는군. 다들 몇 살이지?”
“어, 다들 이제 20살이에요. 비타는 18살.”
“그런가, 연하들이로군.”
크랭크가 투구를 돌려 아리에테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연하 취향이라고 했었지. 너는 대체 몇 살이냐?”
섬세하지 못한 크랭크의 발언에 울컥한 아리에테가 그의 등짝을 후려쳐버리고는 대답했다.
철썩! 철썩!
“올해 22살이다! 그리고 내 생일은 9월이다! 기억해라!”
“내가 왜 네 생일을 기억해야……?”
철썩! 철썩!
듣고 있던 비타가 손을 잡고 있는 투나를 보았다.
“투나는? 투나는 몇 살이세요?”
“어, 모, 모르겠는데. 내 나이.”
모두가 투나를 보았다. 좀 부끄러워진 투나가 허둥대며 말을 이었다.
“처, 철이 들고부터 스, 스승님이랑 두, 둘이서만 살아와서. 내, 내 나이, 나, 나도 잘 몰라.”
“그럼 투나도 22살 해라. 생일도 9월.”
이젠 모두가 아리에테를 쳐다보았다. 팔짱을 낀 아리에테가 말했다.
“대체로 비슷한 또래로 보이지 않나? 나는 나이 차이로 투나와 거리를 두고 싶지 않다.”
“어, 오, 오오!”
감격한 투나가 아리에테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그 울퉁불퉁한 갑옷을 끌어안았다.
“고, 고마워. 아리에테.”
“내가 할 말이다. 너는 내 은인 중의 하나다. 가능한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있고 싶다.”
다들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모두의 시선이 이제 크랭크에게로 향했다.
“네 차례다. 너는 몇 살이지?”
팔짱을 하고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던 크랭크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슬슬 인원 분배를 시작할까.”
“크랭크! 어딜 도망 가냐!”
“나, 나도 듣고 싶다. 으흐흐흐-!”
총총 멀어져 가는 세 사람을 바라보던 코비가 머리를 긁었다.
“오후는 크랭크 아저씨네랑 같이 있을까? 여기 아는 오토마톤들도 있으니까 좀 의지가 되는데.”
“응, 그렇게 하자. 돌아갈 때 왔던 인원 파악만 하면 되겠네.”
“꼽사리 끼는 거네.”
“보리스!”
비타가 한소리를 했지만 다들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강아질 풀을 뜯어 입에 문 보리스가 말했다.
“우리도 오토마톤 하나 들일까? 여유 저금 좀 있지 않아?”
심각하게 생각한 지오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우린 아직 기반도 잡히지 않았고, 운영 방법도 몰라. 그리고 돈도 별로 없고, 전투용 오토마톤은 소모품비가 장난이 아니래.”
“길드에서 오토마톤도 렌탈 해주잖아? 저기 베누스랑 로테가 요즘 드물게 등록된 전투용이라서 유명하던데. 다른 파티랑 다니는 걸 몇 번 봤어.”
코비의 말에 지오가 각각 초록색과 검은색 방열 가발을 쓴 오토마톤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빌려서 돌려보고 결정하자. 있으면 의지가 되는 건 당연하니까.”
“이왕이면 저 검은 머리로. 하프소딩이 수준급이라던데, 근접 격투술도 배워보고 싶어.”
보리스의 말이었고, 비타가 한 소리 했다.
“모르핀의 교육 덕에 보리스 검술은 이미 충분하다고 봐요. 오히려 그 성깔을 좀 죽여야 하지 않아요? 전에도 혼자 화나서 뛰쳐나가는 바람에 죽을 뻔했잖아요?”
자기도 알고 있는지 보리스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지오가 박수를 치며 환기에 나섰다.
“자자, 우리도 움직이자.”
사람들은 오후에도 바쁘게 초원과 숲을 들쑤시고 다니며 내버려 두면 잡초에 지나지 않을 눈먼 나물과 약초를 채취했다.
각자에게 호위 할당 인원을 나눠주고 좀 한가해진 크랭크는 숲속의 나무 아래 버려진 부서진 짐마차로 향했다.
무슨 곰 마냥 그걸 뒤집어엎어 버리고 부속물을 뜯어내는 크랭크의 기행을 보고 캐롯이 또 무슨 짓인가 싶어 다가왔다.
“뭘 만들 참이야?”
“평소 생각해보던 것이 있어서, 마침 재료도 있고.”
어제 그 버려진 마차를 발견하고 미리 재료와 공구를 챙겨온 크랭크였다. 그렇게 짐마차의 판 스프링을 분해해서 한참 뚝딱거리던 그가 완성한 것은 활이었다.
“흡!”
트드드득……!
고탄소강 판스프링에 활줄 대신 쇠사슬을 엮어 놓은 끔찍한 물건이었다. 크랭크가 그걸 힘껏 당겨보았지만, 반도 당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만들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샤를을 불렀다.
“당겨봐라.”
끼기기긱……!
샤를은 그것을 가볍게 당겼다. 크랭크는 가지고 온 대형화살을 주고 쏴보도록 지시했다.
끼기기……! 퉁-!
촤아아악!!
화살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들판을 가로지른다. 이마에 손날을 올리고 쳐다보던 캐롯이 감탄사를 내놓았다.
“오오오! 비거리가 엄청난데? 발사 직후엔 잘 보이지도 않아!”
“오토마톤용 무기는 이미 시중에 풀린 기성품이 많다. 활도 마찬가지지. 다만 나는 비용을 아껴볼 요량으로 부족한 재료와 솜씨로 그 비슷한 걸 만들어봤다.”
“새건 얼만데?”
“잘 모르겠지만 인간용 장거리 롱보우보다 2~3배는 더 비싸지 않을까? 만드는 건 둘째 치고 소재 값은 무시할 수 없거든.”
“바, 방금 뭐였어요?”
지오네 파티의 활쟁이 코비가 달려왔다. 원거리 공격 담당이기 때문에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캐롯이 웃으며 말했다.
“코비, 저건 인간이 쓰라고 만든 물건이 아냐.”
“어, 그래도 한번 만져 볼 수는 없을까요. 부탁드릴게요! 관심 있어요.”
보통 인간에겐 어떻게 적용되나 궁금했던 크랭크는 흔쾌히 허락했다.
끼기긱……!
“흐으그그극!”
코비의 팔이 거의 크랭크 수준으로 부풀어 올랐지만, 활줄로 쓰고 있는 쇠사슬을 역시 반 이상 당기지 못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크랭크가 말했다.
“기성품처럼 여기에 도르래를 달아서 기계식 활로 개조하면 당기는 힘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비상시에는 인간도 이걸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래적으로 볼 때…….”
“크랭크, 진정해. 애초에 이건 인간들이 들기엔 너무 무거워.”
“아.”
코비가 휘청거리며 활을 내리고는 팔을 주물렀다.
“와, 이거 정말 너무 무거운데요?”
그럴 수밖엔 없다. 애초에 마차에 쓰던 통짜 쇳덩이 판스프링이니까.
“그렇군요. 이건 출력에만 모든 능력치를 투자한 괴작일 뿐입니다.”
“그래도 만져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강철 활도 관심이 있었거든요. 아직은 이걸 계속 써야겠어요.”
코비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 서둘러 호위로 복귀했다.
하늘을 보자 슬슬 해가 떨어지고 있다. 복귀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리에테는 비슷한 나이대의 호기심 왕성한 처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사실 그녀는 별 관심 없었지만, 모험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여기사를 비슷한 나이의 젊은 아낙들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봄 소풍 행사는 봄에만 나오는 건가?”
“계절마다 얻을 수 있는 종류가 다르긴 한데, 다른 계절은 몬스터가 많아서 우리끼리 못 나와. 보통은 상단에서 운영하는 야생 과수 관리단을 따라 나가서 짬짬이 캐오는 거지. 그렇게 구한 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우리가 먹기도 하고.”
팔짱을 하고 잠시 생각하던 아리에테가 물었다.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올 필요가 있는 건가? 시장에서 사는 것이 더 안전하고 간편하지 않아?”
듣고 있던 동갑내기 제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해, 하지만 말이야. 할머니나 엄마들에게 들어온 것을 이젠 내 손으로 찾아보고 싶지 않아? 내 아이들에게도 그걸 알려주고 말이야. 당장 길을 잃었을 때 먹을 수 있는 산 열매와 약초를 알아두면 좋잖아?”
지식은 보관되고, 활용되고, 공유되면서 더불어 이어져야 한다. 저 미래로…….
갑자기 루루 사서의 이야기를 떠올린 아리에테가 좀 뜨끔한 표정을 했다.
“헉, 나는 그런 것이 어디서 자라는지 모르는데, 먹을 수 있는 산 열매와 약초도 모르고.”
“아하하! 괜찮아! 넌 그걸 아는 우릴 지켜주고 있잖아? 사람은 잘하는 걸 하면 돼.”
그때 조그만 아이가 달려와 그녀의 품에 안겨들었다.
“엄마-! 아조씨가 이제 모이래-!”
“오오! 우리 아들 그랬쪄요? 이제 돌아갈 시간인가 보네, 다들! 정리해요!”
그걸 보는 아리에테의 눈이 흔들린다. 분명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제인, 너, 너, 애가 있었어? 몇 살에 결혼했지?”
“아, 이제 3살이야. 맡겨둘 곳이 없어서 데리고 나왔어. 나 닮아서 잘생겼지? 다행이야. 남편은 덩치는 큰데 못생겼거든? 나니까 데리고 살지.”
우스꽝스럽게 찡그린 제인의 얼굴을 보고 처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아리에테는 손가락을 세어보고 있었다.
“여, 열아홉 살에?!”
“음, 난 남편 따라 개척민 마을에서 도시로 이주해왔어. 와서 알았는데, 바깥 마을은 결혼연령이 좀 이른 편이더라고.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런가 봐.”
아리에테가 이상하게 관심을 표현했다.
“남편과는 어떻게 만났지? 무섭거나 싫지는 않았나? 처음 보는 사람과 갑자기 결혼이라니.”
“아니, 나는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였는데, 부모들도 다 잘 아는 사이였어. 근데 그 자식 나보다 한 살 어리더라. 서로 놀랐어.”
“제인! 연하남이라니! 횡재수잖아!”
“그거 좋은 거 아냐! 완전 애가 둘이라고! 내 말 안 들어! 애 말만 들어!”
옆에서 앉아서 산나물을 다듬고 있던 젊은 아낙이 싱긋 웃었다.
“나는 중매였어. 나는 싫었는데 이 양반이 나한테 홀딱 빠져서 쫓아다녔지.”
“아! 그 스토커!”
“나나! 넌 스토커가 스토커라고 하지 마!”
커다란 몸에 어울리는 커다란 바구니에 한가득 나물과 약초를 담은 근육질의 나나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외쳤다.
“핫하! 사랑은 쟁취해야지! 왜 들이댈 남자를 찾지? 먹잇감이 덤벼들기를 바라다니 우습지도 않군!”
“스토커가 사랑은 쟁취라고 하지 마!”
“다들 과정은 신경 쓰지 말자. 결과가 중요한 거야. 내가 밤에 얼마나 잘해주는데.”
“바, 밤에, 에?”
혀 짧은 목소리에 여자들이 기겁했다. 일행 중에는 애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나!”
“으허헙! 바, 밥을 잘해준다고! 밥을! 호하하하하!”
젊은 아낙들의 무용담은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그녀들의 입담은 캐롯이 데리러 와서야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