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봄 소풍! (1)
“통과. 해지기 전에는 돌아와야 합니다.”
“예!”
마차를 몰고 성문을 통과하자 당장 파란 하늘과 푸르른 초원과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내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볼 수 있는 이 광경에 살짝 감격에 겨워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다.
“와! 초원이다! 저기는 나무가 엄청 많아! 성벽 위에서 보는 거랑은 달라!”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돌아보던 캐롯이 빙그레 웃었다. 크랭크는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밀밭을 지나 방주도시 아르곤이 아스라이 멀어지기 시작하는 곳까지 마차를 몰아갔다.
숲 근처에 작은 개천도 있는 곳이었다.
도시 주변은 개간 작업으로 매년 공동 경작지가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주변엔 의외로 밀밭이나 과수원, 밭뙈기가 많이 조성되어 있었고 아낙들이 마음 놓고 봄나물 같은 것을 뜯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멀리까지 나와야 했고, 그 때문에 호위가 필요했다.
“너무 멀리 나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이쯤에서 하시죠. 항상 저희가 보이는 곳에 계셔야 합니다.”
“예-!”
처녀들과 아낙들이 외쳤다. 크랭크는 마차를 중심으로 먼저 오토마톤들을 전개 시켰다. 사람들은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산나물이며 약초 같은 것을 캐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마구 뛰어다니기 바빴지만.
“나 잡아봐라!”
“와하하!”
“이 이상 나가면 곤란합니다. 돌아가십시오.”
방향성 없이 푸르른 봄 들판을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오토마톤 샤를이 가로막았다. 올망졸망한 눈으로 샤를을 올려다보던 아이들이 물었다.
“언니는 여기서 뭐해? 얼굴에 그건 가면이야?”
“언니가 아니야. 저건 오토마톤이야. 걸어 다니는 인형이래! 싸움도 되게 잘한대!”
“와! 정말? 인형이야? 나도 갖고 싶어! 인형 갖고 싶어!”
“이름은 뭐야?”
“우리랑 놀자!”
샤를은 어린 인간들을 좀 어려워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악의가 없는 위험한 짓거리를 곧 잘하기 때문이다.
“원래 얼굴입니다. 맞습니다. 전투용 오토마톤입니다. 신품의 가격은 판매 대리점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름은 샤를입니다. 안 됩니다. 지금은 작전 중입니다.”
샤를이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곧 그 근처에서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버섯 같은 것을 따고 있는 시커먼 어른들을 발견하고는 다들 그쪽으로 호다닥 몰려갔다.
“으히히! 붉은사슴뿔버섯이 이렇게나 많아!”
“누나는 뭘 캐고 있어요?”
“으와! 꺼메! 머리카락 엄청 꺼메!”
“언니 눈 예뻐! 얼굴에 그거 좀 벗어 봐봐!”
“와! 안경 꼈어! 안경!”
“으, 으잉?”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등장에 투나는 좀 당황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아이들을 상대로 독초의 이름과 성능과 취급 방법에 대해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크랭크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 시작한 것이다.
알아듣든 말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당장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독버섯? 근데 왜 그런 걸 캐요?”
“그거 먹으면 죽어요?”
“자, 잘 쓰면 약이 되거든? 응, 죽어. 그러니 다, 다룰 때 조심해야 해.”
“와, 신기해! 정말요? 독이 약이 된다고요?”
투나가 정신없어하는 사이 구세주가 나타났다.
“앗! 여기 있었구나! 이 장난꾸러기들! 엄마들이 한 참 찾고 있잖아!”
“와! 캐롯!”
“당근 누나다!”
“그래 당근 누나야! 이리 와! 이리! 얍! 에잇!”
“우왕! 살려줘!”
다행스럽게도 캐롯이 나타나 투나를 궁지에 빠트리고 있던 아이들을 붙잡아 데려갔다. 자리에서 일어선 투나는 징징거리며 붙들려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으, 으흐흣, 다들 귀엽구나. 좀 정신없었지만.”
“아이들을 좋아하십니까?”
별안간 샤를이 물어왔다. 고개를 돌린 투나가 말했다.
“응, 귀, 귀엽잖아. 종의 번식을 위한 감정이라고는 하지만 귀, 귀여운 건 귀여운 거지.”
“그렇군요. 저는 별로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저 나이대의 인간은 대단히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경험이 묻어나오는 평가에 입을 헤 벌리고 샤를을 바라보던 투나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크랭크가 나타났다.
“여기 있었군.”
크랭크는 이상하게 생긴 뿌리를 한 아름 들고 왔다.
“히, 히코스테 뿌리잖아!?”
“전에 쓴 것에 대한 보답이다.”
“오오! 고마워, 그, 그렇지 않아도 스톡이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어.”
좀 이상하게 생긴 나무뿌리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투나를 보던 크랭크는 그녀가 캐고 있는 것을 살펴보다가 되물었다.
“저건 독버섯 아닌가?”
“응. 자, 잘 쓰면 약이 돼.”
“공방에 다른 사람들도 많으니 취급에 주의하기를 바란다.”
“으, 응, 알았어. 으히히.”
투구를 끄덕인 다음 몸을 돌린 크랭크는 이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던 아리에테에게로 걸어갔다.
“어떠냐? 3차 개수된 시온은?”
“오, 크랭크. 아주 좋다. 움직이는데 불편한 점도 없다. 모양이 예쁘기도 하고.”
“점심 먹을 때 로테와 대무라도 한번 해봐라. 실전을 대비해서 문제가 될 부분은 최대한 찾아서 줄여 놓자.”
아리에테의 얼굴이 밝아졌다.
“알겠다!”
“그리고, 이게 또 왔던데.”
크랭크가 주머니에서 고급편지지를 꺼냈다. 즐거워하던 아리에테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걸 받아든 아리에테는 분노에 휩싸인 얼굴로 편지를 잘게 갈기갈기 찢더니 주변에 뿌려버렸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종잇조각을 보면서 크랭크가 되물었다.
“요즘 자주 오는 편이군.”
“차라리 네 말대로 정체를 숨기고 지내는 것이 맞지 않았나 싶다. 나는 너무 부주의했다.”
크랭크가 팔짱을 했다. 그리고 잠시 아리에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따로 묻지는 않으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네가 직접 하도록 해라. 다만 필요하다면 불러라. 돕겠다.”
“너는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것이냐? 내 처지가 딱해서인가?”
걷다가 말고 멈춰 선 크랭크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입을 꾹 다문 아리에테는 묘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시선을 슬쩍 피했다. 다시 돌아온 크랭크는 그런 아리에테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잊은 것 같군. 너는 내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네 몸의 절반이 나의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허리를 숙인 크랭크는 아리에테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걱정마라. 너는 내 취향이 아냐.”
듣고 있던 아리에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눈썹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두 팔을 들어 올린 아리에테가 버럭 외쳤다.
“사실 나는 연하의 가녀린 것이 좋다! 그래서 너 같이 커다란 근육 덩어리는 징그러워서 질색이다! 이제 네 취향을 들어보자! 대체 뭐냐!”
별안간 초원에서 아리에테와 크랭크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산나물을 뜯고 있던 마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뭐 하는 거지?”
“아, 신경 쓰지 마요. 자주 저러니까.”
산나물 뜯기도 중반에 접어들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각자 싸 온 도시락으로 요기 하는 동안 아리에테와 로테가 대무를 시작했다.
캉-! 챙!
검을 부딪치고 물러서는 아리에테를 보고 로테가 칭찬했다.
“멋집니다. 엔진의 출력이 올라서 그런 것인지 몸놀림도 빨라졌습니다.”
“오! 그런가?”
둘은 다시 맞붙었다. 아리에테는 놀랍게도 로테와 거의 비슷한 반사 속도를 선보였다. 대무는 크랭크가 말리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좋군, 내일도 이어서 하도록 해라.”
“호곡?! 내, 내일도 봄 소풍 나오는 거야?”
전리품을 정리하던 투나가 끼어들었다.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봄나물 채취는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아. 최소 3일은 한다. 마침 잘 됐군. 밖에서라면 마음껏 대무를 시킬 수 있겠어. 아무리 오토마톤이지만 훈련과 연습은 중요하다. 캐롯도 그렇게 키웠지.”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캐롯이 양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몸을 돌렸다.
또한 그 이야기에 옆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던 마리아와 아낙들이 거들었다.
“맞아, 작년까지만 해도 심심하면 서로 싸워댔지.”
“나는 진짜로 싸우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오오! 가슴을 울리는 단어다! 훈련과 연습!”
아리에테가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소문을 듣고 더 많은 인원이 모여들었다.
“어제보다 두 배는 늘어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게, 다 너희들이 공짜로 봐준다고 하니까 그런 게야. 마차 임대료 정도는 우리가 부담할게.”
“알겠습니다.”
으하하 웃으며 캐롯이 두 팔을 들었다.
“마을의 분위기는 거기 사는 여자들의 활기로 짐작할 수 있지! 오늘도 힘내서 잔뜩 뜯어보자고!”
“와아-!”
이번엔 짐마차 4대가 성문을 통과했다. 타고 있는 사람도 애들 포함 어림잡아 40여명은 넘을 것 같았다.
“사실은 가끔이라도 애들에게 바깥에서 놀게 해주고 싶었거든? 다른 곳이랑은 다르게 크랭크는 거칠게 대하거나 비싼 요금을 요구하지도 않아서 말이야.”
마을 여자들의 봄나물 호위는 돈도 되지 않고 온종일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력 있는 모험가들은 기피 하는 편이다. 그래서 평판과 실력이 좋지 못해 제대로 된 의뢰를 잡지 못하는 모험가들이나 초보 모험가들이 주로 그 일을 받았다.
“어! 저게 누구야?! 야호! 보리스!”
야생 매실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떨어뜨리고 있던 캐롯이 멀리 보이는 사람을 알아보고 손짓했다. 그쪽에서도 캐롯을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주변을 살피면서 다가온 보리스가 나무 위의 캐롯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해봐. 오토마톤은 나무에서 열리는 거야?”
떨어진 매실 열매를 줍고 있던 마을 처녀들과 아낙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거꾸로 매달린 캐롯이 쁘하하 웃었다.
“하하! 몰랐니? 드물게 열리기도 한다고? 착한 사람이 있는 곳이면 매실나무든 사과나무든 가리지 않지.”
“정말로? 정말로 나무에서 열리는 거야?”
“착한 일을 하면 우리 집 앞 사과나무에서도 열려주는 거야?”
뜻하지 않은 피해자가 속출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애들도 데리고 나왔구나. 좋네. 우리도 오토마톤 한 대 들여놓을까.”
“오토마톤인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너무 도구에 의지하지 마. 상황을 보는 눈과 네 실력을 먼저 키워. 조급하게 달리지 말고 차근차근 걸어가. 너희 목숨은 하나야.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라고 어떤 아저씨가 말했대.”
듣고 있던 보리스가 머리를 좀 긁으며 말했다.
“균형 잡기 힘드네.”
근처의 처녀들이 끼어들었다.
“캐롯, 이 남자는 누구야? 포니테일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남자는 처음 봐.”
“이름은 보리스! 나이는! 파티는! 어, 뭐였니?”
말끔한 얼굴을 하고 찰랑거리는 긴 검은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보리스가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비타 빼고 우리 전부 올해 20살이야. 파티 이름은 따로 없어. 하나 지어야겠네. 매번 지오 이름으로 등록하기도 그랬는데.”
“내가 지어줄까?”
“뭔데?”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착지한 캐롯이 보리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루키 타이거즈!”
“그거 당근 타이거즈랑 뭐가 틀리냐?”
캐롯은 빠하하 웃었다.
“어차피 파티 이름은 사람들이 부르기 쉽고 기억에 남는 게 좋은 거지. 고민해서 지어보도록 해.”
“음. 가봐야겠다. 수고해.”
떠나가는 보리스에게 손을 흔들어준 캐롯은 이제 다음 매실나무로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