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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92화 (92/329)

92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프로포즈! (1)

반백의 머리를 틀어 올리고 일하는 중이라 안경을 낀 가넷 여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가넷 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요 며칠 동안 본 적이 없구나. 그런데 이건 누구니? 몸에 화살이 박혀 있는데? 괜찮니?”

“방금 오크 토벌에서 복귀했습니다. 뽑으면 기능이상이 생길까 봐, 잠시 방치 중입니다.”

캐롯이 베누스를 소개했다.

“베누스라고, 이번에 남부 출장 갔다가 데려왔어요. 남부 기술의 총집약체죠.”

“호오, 남부 출신이라고?”

개인 제작품이 아닌 기본적인 양산 오토마톤의 생산은 전부 서부에 위치한 최초의 방주 도시 리즈넷에서 전담한다. 엘프들이 공여한 생산기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리즈넷은 국가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든 오토마톤들의 고향은 같지만, 유지 보수를 통한 내부 수리 같은 것은 현지 정비 기사의 개성이나 지역 특색이 섞이기 마련이다.

크랭크가 베누스를 열어보고 놀라워했던 것이 바로 그 차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넷 여사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손을 내밀어 그 노란 머리카락을 한 줌 쥐어본 여사가 날카로운 시선을 들었다.

“괜찮으면 잠깐 있다가 가겠니? 남부 기술자의 솜씨는 어떤지 한번 보고 싶구나.”

“예, 그러세요.”

베누스를 자리에 앉히고 가발을 분리한 가넷 여사는 안쪽의 매듭과 접합방식을 자세히 살폈다.

“페트라.”

“예.”

페트라가 다가왔다. 가넷 여사는 진지한 얼굴로 베누스의 가발 안쪽을 가리키며 이것저것을 설명했다. 캐롯은 캐롯 대로 장식대에서 가발 몇 개를 가져와 민머리가 된 베누스에게 씌워보고 있었다.

“와, 잘 어울린다.”

펌이 들어간 초록색 방열가발을 쓴 베누스가 거울을 들어 살펴보았다. 그걸 보고 웃음 지은 가넷 여사가 말했다.

“마음에 드니?”

“베누스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에 들어요. 예뻐!”

“그렇습니까?”

가넷 여사가 원래 노란 가발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이거랑 바꾸지 않겠니?”

“어엇, 정말요?”

“음, 이거 안에 매듭이랑 고정 방식이 독특해. 남의 기술도 참고해야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란다. 나는 이런 발상을 못 했거든.”

“하지만 주인님의 허가를······.”

하지만 이미 캐롯이 가넷 여사의 손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부인, 좋은 거래였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캐롯마켓을 자주 이용해 주세요.”

작은 손을 쥐어보던 가넷은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페트라. 이걸 내 작업실에 가져다 놓으렴.”

“예. 부인.”

노란색 방열가발을 들고 총총 가게 안쪽의 작업실로 달려가는 페트라를 보면서 캐롯이 물었다.

“근데 쟤가 왜 여기 있어요?”

“아는 사람에게 소개받았단다. 딱한 처자가 있는데 심부름이나 시켜보지 않겠냐고, 그래서 불러보았지.”

가넷이 캐롯을 보았다.

“좀 가르쳐 보고 재주가 괜찮으면 제자로 받을 생각이야.”

“오오-! 페트라 잘 됐다!”

때마침 작업실의 문을 닫고 나오던 페트라가 방긋 웃었다.

“예, 잘 됐어요. 여러분 덕분이에요.”

고양이처럼 웃음 지은 캐롯이 페트라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리모랑은 잘 되어가고 있어?”

“으으음······!”

페트라가 눈썹 사이를 좁히며 말을 줄였다. 킥킥 웃은 캐롯이 손을 흔들면서 가게를 나섰다.

“우린 이제 크랭크를 찾으러 가요! 건강하세요! 또 봐요!”

배웅을 나온 가넷 여사와 페트라가 손을 흔들었다.

캐롯의 뒤에서 걷고 있던 베누스가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상관없겠습니까?”

“응! 크랭크는 그렇게 속 좁은 인간이 아니야. 그건 내가 보증함.”

잠시 캐롯을 내려다보던 베누스는 길가 가게의 쇼윈도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노란색 방열 가발에서 이제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음에 들어?”

“모양은 상관없습니다. 방열 기능만 확보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래도 참 잘 어울려 베누스. 이제 해적선의 노란 머리 오토마톤 메라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거야.”

가만히 캐롯을 내려다보던 베누스가 물었다.

“당신, 정말로 오토마톤입니까?”

“므헤헤! 당연! 가자! 가출한 주인님을 찾으러! 이 공돌이도 갈 곳이 마땅찮은데 어딜 갔는지 모르겠네?”

캐롯이 와다다 달려간다. 베누스는 그 조그만 오토마톤의 뒤를 따랐다. 초록색 머리칼이 멋지게 나부낀다.

경비대, 마리아의 여관, 롤 아저씨네 빵집, 코코의 오토마톤 매장, 갈 만한 곳은 다 돌아다닌 캐롯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 공방으로도 돌아가 봤지만, 그는 없었다.

“흐익?! 베, 베누스 화, 화살이 박혀 있어!? 방열 가발은 또 어떻게 된 거야?”

“전투 중 맞았습니다. 뽑으면 문제가 생길지 몰라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투나가 집게를 가져왔다.

“그, 그래도 화살을 박은 채 다니는 건 좋지 않아. 이게 파고들면 내부가 더 상한다고. 앞으로는 화살 꼬리를 부러뜨리도록, 이, 이렇게.”

투나가 화살을 잘라내고 응급처치 하는 방법을 강의 하는 동안 캐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크랭크는?”

“아직 안 왔는데.”

“어딜 갔지? 이제 오후인데. 아! 한 군데 더 있다!”

아리에테가 물었다.

“어디지?”

“같이 갈래? 네가 좋아할지도 모를 곳이야.”

아리에테는 캐롯을 따라 3번가 거리로 향했다. 그곳은 공업지구로 대장간에서부터 각종 가공 공장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아리에테는 처음 와보는 곳인지라 신기했는지 주변을 자세히 살피면서 캐롯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대장간이었다.

“화아······!”

입구 근처 바닥에 깔린 좌판에는 방금 뽑아낸 따끈따끈한 롱소드 같은 병장기들이 가득했다.

안쪽에서 머릿수건을 한 여자가 달려 나왔다. 대장간 집 딸 티타였다.

“어서 오세요! 어머나! 캐롯!”

“티타-!”

달려간 캐롯은 오랜만에 만난 티타를 끌어안았다. 키가 작아서 얼굴이 닿는 곳은 티타의 배였다.

“킁카킁카-! 변함없이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하하! 여전하네, 무슨 일이니? 아, 어서 오세요. 일행이셔?”

캐롯의 머리를 쓰다듬던 티타가 문 앞에서 잔뜩 상기된 얼굴의 아리에테를 보았다.

“저, 저거 한번 들어봐도 되나?”

“물론이죠. 방금 벼린 거예요.”

“호오옥!”

아리에테가 상자에서 롱소드 하나를 들어 올려보는 사이 캐롯이 티타에게 물었다.

“혹시 크랭크 못 봤어? 온종일 안 보여.”

티타가 웃음 짓는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뜨거운 열기가 잔뜩 묻어나오는 작업장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하나 같이 커다란 근육을 드러낸 남자들이 각자 모루 앞에 서서 벌겋게 달아오른 쇠를 두들겨 검이나 농기구 같은 것들을 만들고 있었다.

캉-! 캉-! 캉-!

그리고 그곳에 캐롯이 지금껏 찾아 헤매던 사람이 망치질에 몰두하고 있다.

“크랭크! 야!”

상의를 벗어 던지고 땀에 번들거리는 근육을 드러낸 양철 거인이 망치질하다가 투구를 들었다.

“어? 여긴 어쩐 일이야?”

기가 찬 캐롯이 그의 표정과 목소리를 흉내 내었다.

“어? 가 아니라고. 어? 가! 주인님, 너 안 보여서 온 도시를 다 돌아다녔잖아!”

“아, 그렇군. 미안해. 지나가다가 들렸는데 사람 손이 좀 필요하다고 해서, 오랜만에 망치질도 좀 해보고 싶었고, 그리고······.”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망치를 내려놓은 크랭크가 팔뚝을 들어 보였다.

“땀내 나는 남자들 틈에서 잠깐 내 오염된 정신을 정화하고 싶었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 공방에는 다들 여자들뿐이라서, 흠-! 봐라, 내 근육도 기뻐하고 있다.”

크랭크의 근육 자랑이 사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동시에 망치를 내려놓은 대장간의 남자들이 각자 울퉁불퉁한 근육을 선보였다.

“흐읍-! 우리야 망치가 하나 더 늘면 언제든 환영이지. 자 봐라, 이것이 프론트 더블 바이 셉스란 것이다. 뒤로 돌면 백 더블 바이 셉스!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이드 체스트!”

“사장님에게 질 수 없지! 업 도미날 앤 타이!”

“모스트 머스큐라-!”

크랭크도 거기 끼어서 포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에겐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한 대장간 남자들의 무시무시한 포징을 보면서 캐롯이 소리 높여 웃기 시작했다. 함께 서 있던 티타도 쓴 웃음을 지었다.

“와! 티타-! 크랭크가 잔뜩 있어!”

“이리되면 이젠 말릴 수가 없지.”

그때 롱소드를 든 아리에테가 밝은 얼굴을 하고 뛰어 들어왔다.

“저기, 이 롱소드는 얼마······ 으흐허억?!”

“음? 이렇게 어여쁜 손님이라니, 손님을 맞이하자. 모두 함께 업 도미날 앤 타이!”

“흐으음!!”

남자들이 두 팔을 들어 머리 위로 올리고 끔찍한 팔과 가슴 근육을 선보였다. 그 틈에는 크랭크도 끼어있었다.

기겁한 아리에테가 롱소드를 들어 올리고 뒤로 물러섰다. 가까이 다가오면 베겠다는 비장함마저 엿보일 지경이다. 그걸 보고 빠하하 웃은 캐롯이 남자들의 앞으로 뛰어가서 함께 같은 자세를 취해 보였다.

“얍! 업 도미날 뭐라고?!”

남자들이 동시에 외쳤다.

“업 도미날 앤 타이!”

롱소드를 손에 쥔 아리에테는 고개를 휘저으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옷을, 옷을 좀 입어라! 이 근육 변태들아!”

잠시 후 남자들은 다시 일감을 들고 망치질을 시작했고, 아리에테는 티타와 함께 좌판에 깔린 롱소드며 단검을 구경했다.

크랭크는 벗어둔 옷을 주워 입으며 말했다.

“역시 여기는 좋아. 쇠를 두들기면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이야.”

“알았으니 이제 돌아가자.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네가 눈에 안 보이면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젠 나만이 아니야.”

크랭크가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모험가에게 가족이 생기면 장애가 많아진다고 이야기한 적 있지? 지금 내가 그런 것 같군.”

“네게도 때가 온 것일 뿐이야. 그걸 놓치지 말도록 해. 나는 주인님이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가길 원해.”

캐롯과 잠깐 눈을 맞춘 크랭크는 그만 고개를 돌렸다.

“이제 돌아가자.”

“그래, 아리에테도 가자!”

한참 대장간의 좌판에서 갓 만들어진 물건을 구경하던 아리에테는 끝끝내 롱소드 한 자루를 구매하고야 말았다. 돌아가는 길에 검을 뽑아 살펴보던 그녀가 흥분했다.

“오오-! 이 빛깔! 이 무게! 정말 멋지다!”

“길가에서 칼을 뽑지 마라. 잡혀간다.”

“어, 음. 흥분했군.”

봄 햇살이 따스한 오후의 길가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파티 몰리 마법사단의 멤버들이 서 있었다.

“어? 크랭크?”

“몰리, 여러분. 별일이군요. 다들 어디 가는 길입니까?”

게토를 제외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웃고 있다.

“지금부터 회식이에요. 잠깐 들렀다가 가지 않을래요?”

“회식요?”

크랭크들이 남부 겨울 사냥에 나가 있을 때 아르곤의 모험가 파티 몇몇은 로마니와 함께 흑마도사 잔당 토벌을 다녀왔었다.

“그 뒤풀이지요. 사람들이 많이 올 거예요.”

“파티지! 파티!”

토스트를 보고 캐롯이 말했다.

“토스트 신났네?”

“그럼! 게토 대장네 부인이 요리를 굉장히 잘한다고? 오늘 저녁밥 값 굳혔어! 너희들도 같이 가자. 인맥도 좀 쌓아놔야지. 무려 로마니 필터링이라고.”

“로마니 필터링?”

리모가 웃으며 거들었다.

“다들 로마니 씨가 불러 모은 사람들이었거든? 최소한의 인성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거지.”

“오오! 그렇구나, 로마니 필터링! 최소 기준! 약간 알 것 같아!”

캐롯이 신기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잠시 생각하던 크랭크는 아리에테와 캐롯을 한 번씩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저희도 꼽사리 끼겠습니다.”

* * *

사람들을 따라 걷는데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고급 거주 구역 내의 단독주택이었다. 캐롯이 놀라워했다.

“단독주택이야! 세상에! 정원도 딸려있어!”

“여어-!”

마당에서 먼저 바비큐를 굽고 있던 사람 중에서 번쩍이는 대머리가 손을 흔들었다. 게토였다.

“여기, 게토 아저씨네 집이에요? 우왕! 갑부!”

캐롯의 말에 게토를 포함한 사람들이 낄낄 웃었다.

“갑부는 무슨, 장기 대출이다. 좋은 집에 한 번 살아보는 게 꿈이었거든? 어서들 오시오! 크랭크! 자네도 왔군. 오! 증기 망토의 여기사님도!”

크랭크의 곁에 서 있던 아리에테가 조금 경계하며 물었다.

“나를 아시는가?”

“물론이지. 남부에서의 그 활약 덕에 다들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데다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때 모여 있던 여성 모험가들이 다가왔다. 게토는 그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사지절단을 당하고도 주저앉지 않고 일어선 그녀의 이야기에 감동한 사람들은 다들 실물 아리에테를 만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팬이에요!”

“나도!”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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