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모험가! (3)
지반이 흔들릴 정도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 나뭇가지에 앉아 밤을 지새우던 새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만난 오크들이 겁에 질려 불붙은 통나무 안식처에서 뛰쳐나와 방향성 없이 마구 뛰어다녔다.
아비규환이었다. 폭발에 직격해 타죽거나 파편에 맞아 비명횡사한 오크들이 즐비했다.
“캬오와아아악!”
“캬오캬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마을을 뛰어다니던 오크들이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발견할 수밖에는 없었다. 저렇게 밝게 빛나는 것을 못 보고 놓치다니 말이 안 될 정도였다.
전신이 황금빛으로 물든 인형이 롱소드를 들고 걸어오고 있다.
“반갑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존경해줘야 할 인간들에게 해악을 끼쳤습니다. 신도가 없는 신은 존재할 수가 없듯이, 사람이 없는 곳에는 오토마톤도 필요가 없습니다.”
인챈트는 마력엔진의 출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켜놓았는데, 그것은 베누스의 연산기능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신에 약간의 부하가 느껴지지만, 상태는 호조, 몹시 상쾌합니다. 함께 춤을 춥시다. 오크 여러분,”
오크들이 환호했다.
“크오와아아아악!!”
“캬아아아아!!”
약탈을 하는 입장에서 당하는 입장이 된 오크들이 무기를 꼬나 쥐고 포효를 내지르며 덤벼들기 시작했다. 황금빛 오토마톤 베누스도 그들에게 마주 뛰어들었다.
퍽퍽? 챙! 캉!
“붙었다! 쏴! 베누스 주변으로 다가오는 오크들을 견제해!”
땅을 파고 나무를 잘라 급하게 만든 벙커에 몸을 숨긴 파핀과 로이가 할부로 산 자동석궁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마력모터로 작동되는 기계식 활줄이 엄청난 속도로 튕겨지며 황금빛으로 물든 화살을 날려 보냈다.
저편에서 오크들과 춤추는 황금색 인형 주변으로 마치 반짝이는 별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두 손을 모아 쥔 이미스가 그 모습에 그만 감동했다.
“예뻐……!”
“베누스! 안 맞게 조심해!”
“알아! 근데 너무 빨라!”
“알아서 예측 사격해!”
허쉬는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화살을 꺼내 힘 있게 시위를 당겼다.
퉁-!
그때 오크 마을 쪽에서도 반격의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자동석궁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살은 그걸 맞는 입장에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후두두둑! 투툭, 툭, 투툭!
벙커 위로 화살의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으하하! 짜식들아! 하지만 우린 벙커에 숨어있다!”
“반격!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즉시 탄막을 쳐!”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비와 함께 난동을 부리는 황금의 인형을 상대로 오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 듯 그 별비도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 지형적 사각으로 몰린 것이다.
이 멋진 유인책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던 베누스가 롱소드를 들어 올리자 잔인하게 웃음 지은 오크들이 뒤로 물러서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피이익-!
쾅-!
“쿠오오오오!”
근처에 있던 나무집이 박살나며 붉은색으로 빛나는 검을 든 커다란 오크가 나타났다. 왼팔과 오른쪽 다리에만 판금 갑옷을 걸치고 있는 것이 모험가의 것을 빼앗은 것 같았다.
커다란 오크를 보고 잠깐 크랭크를 떠올린 베누스는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치이이이익……!
“크르르륵-!”
살이 타는 냄새가 진하게 난다. 유에스가 충고한 히트 소드였다.
갑옷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발열 때문에 실시간으로 화상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오크는 개의치 않고 들고 있던 불의 검을 마구 휘둘렀다.
쾅-! 캉-!
-외부 온도 급상승! 과열 주의!
날아오는 검을 막았다가 깜짝 놀란 베누스가 칼을 밀면서 옆으로 피했다. 놀랍게도 수초 마주하고 있던 강철 롱소드가 고열에 휘어진 상태였다.
“캬캬캬캬!”
“캬오캬오케케케!”
멀찍이 떨어져 있던 오크들이 그걸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베누스는 녹아서 휘어버린 롱소드를 그들에게 집어던지고는 여분의 검을 뽑아 들고 거구의 오크를 올려다보았다.
제어가 안 되는 것인지 오크가 들고 있는 검은 이제 거의 백열 상태로 달아올랐다. 너무 뜨거워서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오버 히트가 일어날 정도였다. 신기한 점은 강철 롱소드를 복사열로 휘게 만들 정도인데 히트 소드 자체는 녹지 않았다.
“그 칼은 뭔가 대단한 소재인가 봅니다. 저희 주인님이 좋아하겠군요.”
“캬오오오!”
쾅-! 푸화확!
오크가 두꺼운 팔로 그 뜨거운 검을 휘두르자 베누스가 서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히트 소드는 굉장하게도 지면의 흙까지 태우고 녹여버렸다. 잽싸게 피한 베누스를 향해 야유와 돌멩이가 날아든다.
“죽어! 괴물!”
“괴물! 괴물! 죽어!”
“캬으아으악! 캬오!”
이제 주변에는 다른 오크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싸움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사납게 웃으면서 기억하고 있는 인간 말로 외치는 놈들도 있었다.
한때 해적선에 소속되어 민가를 습격하는 쪽에 있었던 베누스는 매번 보아왔던 인간들의 반응과는 전혀 다른 오크들의 모습에 아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약탈자인 나를 막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당신들 전부가 여기에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서 화재를 진압하고 부상자를 구출하고 퇴로를 확보하여 탈출하십시오. 왜 서로 돕지 않습니까? 살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까?”
베누스가 검을 들었다.
“우리를 만든 것이 당신들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정말로,”
몸을 돌린 베누스가 히트 소드를 든 오크를 무시하고 뛰기 시작했다.
“캬오오옥?!”
베누스는 구경 중이던 오크들에게 덤벼들어 롱소드를 마구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살해한 모험가들에게서 빼앗은 자동석궁을 들고 부서진 건물 뒤에 숨어서 허쉬들을 견제하고 있던 오크들이 뒤에서 들리는 비명에 놀라 자동석궁의 방향을 돌린다.
투투투투투투투!
챙챙챙-! 캉캉캉! 퍽! 퍼퍽!
날아오는 석궁화살을 급하게 칼로 쳐냈지만 워낙 많아서 몇 발은 몸에 맞았다. 베누스가 주춤하는 그때 뒤에서 나타난 오크가 히트 소드를 휘둘렀다.
캉-!
재빨리 들어 올린 롱소드로 그것을 막았지만 엄청난 열기 때문에 롱소드가 또 녹기 시작했다. 칼을 버리고 몸을 빼려는데 가까운 곳에서 이미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 돼지 새끼들아! 여기 좀 봐라! 얼굴 좀 보자!”
별안간 들리는 청명한 인간 여자 목소리에 오크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불타는 오크 마을에 모습을 드러낸 이미스가 지팡이를 들고 신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외쳤다.
“서치-! 라이트! 태양을 찬양하라-!”
번쩍! 찌이이잉……!
“캬오오와아아악!”
“쿠오오옥!”
밤을 지워버릴 정도의 맹렬한 빛과 열 만해도 놀라울 지경인데 거기에 더해 자동석궁의 화살까지 마구 날아든다. 오크들은 제대로 반항도 못 해보고 쓰러져 나갔다.
투투투투! 드드드드드!
퍼퍼퍽!
“크우오오오!!”
히트 소드를 가진 커다란 오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그것을 마구 휘둘렀다. 눈먼 칼이라는 것이 딱 저런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상대는 캐롯과 대등하게 전투를 벌였던 베누스였다.
롱소드를 세워 든 베누스가 뛰어든다. 전신에 걸린 인챈트로 인해 움직이는 속도가 평소보다 더 빨랐다.
정면으로 뛰어들어 오크의 가슴에 롱소드를 깊숙이 박아 넣은 베누스는 옆에서 날아오는 히트 소드를 피한 다음 남은 검을 뽑아 하나 더 그 가슴에 찔러 넣었다.
푹!
스르릉-!
푹!
가슴 속 심장이 롱소드 2개로 꿰뚫리자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부들부들 떨던 오크는 결국 검을 손에 쥔 채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끄어어……!”
쿵!
베누스는 심심하면 불러내서 대무를 요청하는 아리에테에게 다시금 감사했다.
치이이이이익! 푸화아악!?
사용자를 잃은 히트 소드의 열기는 결국 쓰러진 오크의 시체에 불을 질러버렸다. 역한 타는 냄새가 즐비하다.
싫지만 소중한 옛 기억을 떠올린 베누스가 고개를 쳐들고 평상시엔 열릴 일이 없는 그 입을 크게 벌렸다.
“끼이이으으아아아아아아아!”
찢어지는 기계음이 터져 나온다. 소리는 중요하다. 그것은 듣는 이들에 따라 승리의 외침과 동족을 잡아먹는 괴물의 외침으로 나뉘어 들렸다.
이때부터 오크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근접지원을 위해 벙커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물러나는 오크들을 보면서 신이 나서 덩달아 함께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으우오오오오오오오!”
“으하하하하! 한 건 해결했다!”
라이트를 쓰고 있던 이미스도 그들의 모습에 덩달아 즐거워했다. 그리고 보았다. 아니, 보였다. 왜냐하면 빛의 중심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녀의 시야 안에 있었다.
“위험해요!”
“크르륵……!”
배에 화살이 박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오크가 피를 토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동석궁을 들어 올렸다.
투투투퉁!
작전 대성공에 일이 끝난 줄 알고 좋아서 날뛰는 그들에게 별안간 화살이 날아든다.
퍼퍼퍼퍽!
상황이 반전되었다. 허쉬와 로이가 쓰러졌다. 파핀도 어깨에 한발 맞았다.
“너, 이 자식-!”
분노한 파핀이 무거운 자동석궁을 한 손으로 들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마구 쏴댔다. 발칙한 모험가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오크는 잔인하게 웃으며 대응 사격을 맞고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이미스가 라이트를 끄고 서둘러 달려갔다.
“베누스! 우릴 지켜줘!”
이미스의 외침을 들은 베누스는 롱소드를 회수하여 달려왔다. 이미스는 간절하게 염원했다.
머, 머리와 심장만 무사하면 돼!
배에 화살을 맞은 로이는 숨을 헐떡였다. 화살을 잡은 그의 손이 피로 물들기 시작한다. 그 옆의 허쉬는 가슴에 화살을 맞았다. 그것도 두 발, 이쪽은 동맥을 다쳤는지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다.
“이쪽이 더 급해! 로이! 로이! 버텨요!”
“나, 나는 괜찮으니까……!”
허쉬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잡아당겨 뽑자 피가 푸왁! 하고 솟아오른다. 신전에서 일하면서 이보다 더한 상황도 겪어보았던 이미스는 두 손으로 구멍을 막은 채 힐을 사용했다.
“정신줄 꽉 붙잡아요! 아직 그분을 만나기엔 일러요!”
“흡! 쿨럭……!”
허쉬가 정신을 차렸다. 눈알을 굴리던 그가 기침을 하더니 잔뜩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너무 빨리 좋아했나?”
“등신아! 포션 마셔! 죽으면 안 돼! 집에 가야지! 그 엘프에게 공짜 맥주 얻어먹어야지!”
화살이 박혀 피가 흐르는 팔을 내버려 두고 한 손으로 자동석궁을 든 채 주변을 경계하던 파핀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외쳤다.
입안에 피가 잔뜩 고인 허쉬가 킥킥 웃는다. 이미스는 당황하고 있었다. 오늘 신력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힐이 제대로 써지질 않는다.
인챈트 때문인가? 어떻게든 포션 사용 수준까지 치료를 해야……!
-곤란해 보이는군.
부드러운 목소리는 허쉬의 목에 걸린 통신기에서, 따뜻한 손길은 신관 이미스의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지이이이잉-!
어찌 된 일인지 이미스의 손에 머물러 있던 밝은 초록빛이 더더욱 강렬해지며 고농도의 힐을 뿜어냈다.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허쉬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한시름 놓은 이미스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뒤로 초췌한 얼굴과 차림새의 엘프 남자가 웃고 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있던 엘프 남자 유에스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대의 감사는 이 사람도 치료하고 들어봅시다.”
이미스는 이제 로이의 화살도 뽑고 치료를 시작했다. 유에스는 다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 신비한 기력을 나누었다.
상처를 치료받고 목숨을 건진 허쉬 일당은 그 상태에서 체력 포션과 각성제 포션을 동시에 마신 다음 재빨리 전리품 획득을 비롯한 뒤처리를 시작했다. 물론 이미스에게 맞은 등짝은 덤이다.
철썩! 철썩!
“당신들 그러다가 또 죽어요!”
“비,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맞아, 돈… 돈 벌어야지……!”
겨우 살려놓았더니 또다시 오크 마을을 뒤지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면서 이미스는 울상을 지었다.
“짜요! 너무 짠 내 나는 모험이에요!”
“너무 그러지 마시오. 신관 이미스. 발버둥 쳐도 이 비참한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녀의 곁을 지키고 선 엘프 유에스의 말이었다. 사람을 살리느라 피투성이가 된 이미스는 결국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