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87화 (87/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87

식사가 끝나고 투나는 아리에테의 의수에 관심을 가졌다.

“오오! 떨어진 상태에서도 움직이는 거야?”

“놀랍군. 어디까지 되는 거지?”

그들은 당장 실험을 시작했다. 결과 대략 5미터 정도에서 신호가 끊어지고 작동을 멈추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만 더 길었으면 팔에 와이어를 걸어서 전투에 활용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팔이 로켓펀치 마냥 날아다니는 것을 상상해본 아리에테가 고개를 흔든다.

“그건 싫다. 내 팔은 내 몸에 붙어 있어야 해.”

사지절단이라는 끔찍한 경험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안고 있는 아리에테였기 때문에 크랭크는 로켓펀치는 그만 두었다.

“하지만 오토마톤에겐 써먹을 수 있···.”

“으히히, 팔 관절을 분리시키면 강도가 떨어질 걸.”

“그게 난점이로군.”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던 중에 팔짱을 한 크랭크가 자리에 앉아 있는 외골격 오토마톤 시온을 바라보았다.

“그럼 자금이 넉넉할 때 시온을 좀 더 개조해놓을까? 어차피 아리에테는 계속 모험에 나갈 테니까.”

“어엇! 그래주는 건가?”

“일상생활에선 그걸 쓰더라도 일할 때는 여전히 시온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혹시 바꾸고 싶은 부분이나 필요했던 것이 있으면 적용해 줄 테니 말해봐라.”

아리에테는 당장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신나게 설명을 시작했고, 크랭크와 투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부터 크랭크 일가는 다시 한 번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고르곤에게 다녀온 여파는 크랭크의 체력을 남부출장 복귀 직후로 리셋 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모험가는! 몸이! 재산! 이지! 그러니! 충분히! 쉬고! 몸과! 장비를! 정비! 해야! 한다!”

봄이지만 아직 바람이 쌀쌀함에도 크랭크는 속옷 바람으로 마당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아리에테와 샤를이 막대기를 들고 대무를 하고 있었고, 투나는 입구에 의자와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앉아서 차를 마시며 운동하는 크랭크의 등근육과 엉덩이를 므흣하게 바라보았다.

“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걸?”

“으꺄아악?! 크랭크읏?!”

“아 또 시작이네. 저거 운동하는 거야. 신경 쓰지 마.”

외출했다 돌아온 캐롯의 곁에 함께 따라온 신관 에리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친 채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 눈빛과 호흡은 몹시 위험했다.

“오오오, 에, 에리스.”

“아, 안녕하세요. 투나.”

요즘 가끔 찾아오기 시작하는 에리스와 안면을 튼 투나가 그녀에게 손짓했다. 에리스는 투나가 준비해준 의자에 앉아서 이제 스쿼트를 시작하는 크랭크의 몸을 구경했다.

“겨, 경치 좋지?”

“예, 예에···. 호, 호오옥···.”

얼굴이 달아오른 에리스가 고개를 숙여버렸지만 시선은 우락부락한 크랭크의 등 근육에 고정되었다.

운동을 하는 크랭크의 곁으로 걸어간 캐롯이 길드에 다녀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슬슬 몬스터의 출현 빈도가 높아졌데, 그 퇴치 의뢰가 몇 건 올라와 있었어. 아르곤에 마법사 길드가 세워지려는 조짐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어. 그리고 편지가 많이 왔던데?”

팔짱을 하고 엉덩이를 쭉 내민 채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크랭크가 투구를 슬쩍 돌렸다.

“편지?”

“음.”

캐롯이 어깨에 멘 작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편지를 꺼냈다.

“메크로의 촌장님이랑, 가이거, 게이지, 봄바 것도 있고, 이건 남부 어촌 마을 피지오의 경비대장 구스타프한테서 온 거야. 그리고···.”

“또 있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편지를 읽어보고 있던 크랭크가 투구를 들었다. 캐롯은 꽤 고급 편지지 한 장을 손가락에 끼워 들어보였다.

“놀랍게도 아리에테에게 온 건데. 믿을 수 있겠어? 아리에테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냐.”

허리를 숙인 크랭크는 편지지에 적혀있는 발신인을 보고는 투구 속의 눈을 깜빡였다.

“이건 이젤리아 문자인데?”

“나도 오리온에게 물어보고 알았어.”

몸을 편 크랭크는 정비 길드에서 만들어준 의수와 의족을 낀 채로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는 아리에테를 슬쩍 돌아보고는 말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그런 건 상관없다. 나는 그런 것을 신경 쓸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바쁘다. 운동하고 시온의 개조를 서둘러야 해. 편지는 가져다 줘. 선택과 책임은 당사자가 져야 한다. 우리가 아냐.”

“그 당사자가 도움이 원하면?”

편지를 투나와 에리스에게 넘겨주던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당연히 돕는다. 문제 있나?”

“아니! 없어!”

마음에 드는 대답을 들은 캐롯은 호다닥 아리에테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아리에테의 반응은 상상이상이었다.

캐롯이 내미는 편지를 받아들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그것을 우그러뜨리고 내동댕이친 다음 발로 밟아 짓이기더니 갑자기 공방으로 돌아왔다.

안에서 기름병을 들고 나온 그녀는 짓이긴 편지지에 기름까지 붓더니 부츠를 바닥에 붙이고 길게 끌면서 발길질을 했다.

챠악-!

부츠의 굽에 달린 금속 편자가 마찰되면서 불꽃이 튀겨지자 바로 불길이 치솟는다. 타오르는 불길과 편지를 가증스럽게 내려다보는 아리에테에게로 공방 식구들의 흔들리는 시선이 내리 꽂혔다.

정적을 깨트린 것은 캐롯의 외침이었다.

“오와아아악! 불이야! 불! 불 꺼!”

주변에 탈 만한 것은 없었지만 캐롯은 발로 불을 끄려고 난리를 피웠다. 편지는 이제 완전히 재가 되어버렸다.

“도시 안에서 함부로 불장난 하지 마! 다 태워버릴 참이야?!”

캐롯의 호통에 아리에테는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좀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내가 지나쳤다. 사과하지.”

“알았으면 됐어, 자나 깨나 불조심, 알겠지? 아리에테 어린이.”

말을 마친 캐롯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공방을 향해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라면 네가 말하고 싶을 때 해. 나나 주인님들이나 네 과거에는 관심 없으니까. 하지만 손을 내밀면 잡아줄 거야. 왜냐하면 우리는 친구고, 파티며, 가족이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아리에테의 얼굴로 미소가 확 번졌다.

코끝이 찡해.

“마음 든든하군. 기억할게.”

“그럼 됐어.”

자리로 돌아오자 방금 전 그녀의 기행을 다들 모른 척 해주었다. 스쿼트를 마친 크랭크는 이제 버피를 해대기 시작했다.

놀러왔던 에리스는 저녁까지 얻어먹고 돌아가게 되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그냥 얼굴 보러 왔을 뿐이라···!”

“어, 밥 다됐는데.”

“먹고 가시오. 에리스, 샤를의 요리는 상당히 좋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잡는 바람에 에리스는 어쩔 수 없이 동석하게 되었다. 크랭크는 그 동안에도 작업장에 매달아 놓은 시온의 조립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걸 쳐다보던 에리스가 말했다.

“와, 오토마톤의 수리 작업은 처음 봐요. 저건 시온이죠? 아리에테의.”

“그렇습니다. 지금 3차 개수 작업 중이지요. 팔과 다리에 외부 장갑을 추가 할 겁니다. 마력엔진도 좀 더 고출력으로 바꿀 거고요.”

아리에테가 설명하자 손을 닦으며 자리에 앉은 투나가 히히 웃는다.

“와, 완성되면 꽤 볼만 할 거야. 가, 갑옷에 멋진 치마를 두른 여기사 이미지거든?”

“음! 기대하고 있다! 투나!”

갑자기 흥분한 아리에테가 투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투나가 으히히 웃으며 좋아했다. 이윽고 크랭크도 자리에 와서 앉았다.

샤를과 캐롯이 접시와 그릇을 주자 그것을 받아서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외장만 꾸며놓은 드레스 업일 뿐이고 출력의 향상은 없다.”

“뭐라고?! 안 된다! 출력이 가장 중요해! 나도 오토마톤 수준으로 날아다니고 싶다!”

다른 이에겐 대체로 어른스럽게 대하지만 크랭크에겐 미묘하게 어리광 비슷한 것을 부리기 시작하는 아리에테였다.

크랭크는 아리에테에게 비프스튜를 담은 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간소화 시킨 뼈대 때문에 근육과 인대가 적어서 시온은 마력석 레드의 출력을 전부 사용 할 수 없어. 다만 마력석 블루는 사용 할 수 있다. 마력석 그린보다 약간 더 높은 출력과 더불어 스스로 충전하는 효과를 가졌지.”

비프스튜를 떠먹다가 숟갈을 입에 문 아리에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츙뎐이 뎬댜고?”

“먹고 말해라.”

“으이에, 버릇없어. 아리에테. 입에 뭘 넣고 말하지 마. 어린애도 그렇게 안 해.”

옆에서 우물우물 거리며 빵을 씹고 있던 투나가 입을 헤 벌리고 말했다.

“우리 어른이를 마,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어. 냠냠, 아, 내, 내 입안에 씹은 빵 볼래? 아···! 으헤헤헤! 우오옵?!”

커다란 팔이 에리스의 얼굴 앞을 가로지르더니 옆자리 투나의 얼굴을 붙잡았다. 검게 변한 크랭크의 투구에서 붉은 눈이 번쩍인다.

“너는 방금 내 소중한 입맛을 빼앗았다. 그걸 돌려놔라. 그게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없다.”

“우오! 으어옹! 자, 잘못했어요! 아으아아! 안 그럴게! 아파아파!”

크랭크의 팔뚝에 핏줄이 돋아날수록 버둥거리는 투나의 비명은 커져갔다.

신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쩐지 즐거운 저녁식사에 감격한 에리스는 그만 웃어버렸다.

투나를 놓아준 크랭크는 이제 에리스를 보면서 말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신전 일을 거들면서 지내고 있어요. 일이 많거든요.”

“그건 신전의 일이지 당신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빵을 뜯고 있던 에리스의 손이 멈췄다. 크랭크가 말을 이었다.

“에리스, 나는 인간관계는 얇고 넓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괜찮은 모험가 파티가 있는데 어떻습니까? 다들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건 내가 보장하지요.”

“어딘데?”

캐롯이 물었다.

“몰리마법사단, 신관이 하나 들어가면 거긴 완전체가 될 거다.”

“오오, 괜찮네? 에리스 기회야. 좀 웃긴 녀석들이지만 다들 착해, 실력도 준수하고.”

입을 다문 에리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망설이는 듯 했다. 크랭크는 현실을 지적했다.

“움직여야 합니다. 신관 에리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돈도 벌어 쓰고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좋은 사람 코 꿰어서 결혼도 하고 말이야. 신전에만 있으면 아무도 네 미모와 고운 마음씨를 알아주지 않아. 무브무브! 에리스!”

닭 날갯짓을 흉내 내는 캐롯의 우스꽝스러운 응원에 풋 하고 웃어버린 에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고마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사실 요즘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앞으로의 내 인생, 크랭크는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힘들 것 같았거든요.”

“겨, 경쟁···?!”

아리에테와 투나가 얼굴을 붉히며 빵과 스튜에 관심을 표현했다. 크랭크는 별 관심 없다는 냥 투구를 끄덕였다.

“그럼 그쪽 리더에게 이야기를 전해 놓겠습니다. 연락드리지요.”

“정말 고마워요. 크랭크.”

크랭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저는 신관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픕?! 쿨럭쿨럭-!”

“으에엑?! 아리에테 어른이! 사례가 들렸어요?! 칠칠치 못하네요! 좀 천천히 먹어!”

비프스튜를 먹다가 말고 사례가 들린 아리에테가 기침을 해댔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크랭크는 그녀가 뿜어놓은 것을 제대로 얻어맞고 우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미, 미안, 하지만 절반은 너 때문이다. 전에 신관에게 그런 소릴 해놓고서는···.”

에리스와 투나는 밥 먹으면서 일어나는 이런 사고들이 재미있는지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캐롯이 가져온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쿵쿵-!

“안에 있어?”

“누구세요?”

캐롯이 도도도 달려가서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오오! 마리아! 어쩐 일이세요?! 들어와요!”

“이런, 밥 먹고 있었어?”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아. 괜찮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샤를 거기 의자 좀.”

풍채 좋은 여관 주인 마리아의 등장에서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리에 앉아서 샤를이 가져다주는 머그컵을 받아든 마리아는 호호 웃으며 말했다.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어.”

마리아는 부탁은 다름 아닌 봄나물 따러 나가는 마을 부인들과 처녀들의 호위였다.

“그런 건 길드에 퀘스트를 발주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 가···. 요?”

아리에테의 물음에 마리아는 후후 웃었다.

“그건 맞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크랭크가 일을 맡아 줄 건지 물어보려고 찾아왔단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알겠습니다.”

아리에테와 투나, 에리스가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캐롯이 대신 대답했다.

“응, 우리 여기 오기 전에 마리아의 여관에 꽤 오래 신세졌거든? 그때 월세가 몇 번 밀린 적이 있었는데 대신 봄나물 호위로 퉁 쳤었어. 봄맞이 행사 같은 거야.”

“너희들 나가고 이제 봄나물 뜯기는 그만 둘까 했는데, 생각보다 바깥나들이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더구나. 아, 호위비용은 걱정하지 마렴. 회비 모아둔 게 있어.”

크랭크가 손을 들었다.

“아닙니다. 비용은 됐습니다. 제가 힘들 때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다리 밑에서 지내야 했을 겁니다. 날짜는 언제입니까?”

마리아는 크게 기뻐하며 날짜를 말해주고 비워둔 여관으로 서둘러 돌아가려 했고, 에리스도 신전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캐롯은 그녀들을 바래다주기 위해서 준비를 서둘렀다.

“나 빌린 책 반납하러 도서관 가려고 그러는데 좀 놀다 와도 돼? 아침까지는 돌아올게.”

“음, 당장 할 일도 없으니까.”

“안 돼!”

아리에테가 몹시 불안한 눈으로 다가왔다.

“네가 없으면 나는 잠을···.”

“아 그렇지. 얘가 문제였지. 아리에테 어린이 재워놓고 나가야겠네.”

마리아와 에리스에게 인사를 하던 크랭크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작업실의 옷장 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그건 예전에 입던 캐롯의 전투복과 가발을 씌운 봉재 인형이었다.

“너를 위해서 만들었다. 이걸 실험해보자.”

“크랭크! 너는 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거냐?”

“불면증 환자.”

“으으음···! 맞긴 한데! 네 태도가 기분 나쁘다!”

“아프다 때리지 마라.”

분기탱천한 아리에테가 크랭크와 툭탁이는 것을 뒤로 하고 캐롯은 마리아와 에리스를 호위하여 공방을 나섰다.

“저 바보들은 내버려두고 가시죠. 부인.”

“호호호! 재미있는 곳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후훗.”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