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농지개간! 80
“요즘 드는 생각인데, 전문적인 농기구의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이런데 있지 않을까?”
“그렇지도 않아. 이번에 새로 만든 농기구를 실험한다고 하던데? 자동 트랙터라고 하던가?”
“오, 그래?”
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 아리에테와 샤를, 로테는 잡목이 무성한 들판의 개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압!”
날선 정글도를 한 손에 든 아리에테와 샤를이 팔을 휘두르자 두꺼운 나뭇가지가 썰려나간다. 로테는 큼직한 도끼를 손에 들고 아름드리나무를 두들겨 쓰러뜨렸다.
쾅쾅쾅쾅-!
도끼질도 인간의 그것과는 달랐다. 관절과 근육이 망가지기 전까지 오토마톤의 도끼질은 멈추지 않는다.
트드드드드···!
쿵···!
나무가 쓰러지자 인간 작업자들이 몰려들어 쇠사슬을 걸고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아르곤 모험가 길드 상위 랭크 파티 중의 하나인 아르곤의 파수꾼에서 보내온 하드스킨 오토마톤이 파란색 망토를 봄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다가 팔에 감은 쇠사슬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끼이익! 드드득···!
하드스킨 오토마톤 1대의 출력은 일반 오토마톤의 4~5배에 달했다.
“세상에! 저건 오메가잖아? 유명한 오토마톤인데.”
“엥? 그 전투망치 오메가?”
“허헛! 힘 참 좋네. 세상에 저걸 혼자서 끌고 가!”
수 톤은 될 법한 나무를 끌고 가는 하드스킨 오토마톤 오메가를 보고 작업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뽑아 옮기고, 비탈진 토지는 디그 같은 토목마법으로 아예 갈아엎어버렸다.
간간히 파이어 볼도 남용되었다.
콰쾅-! 쿠궁···!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가라앉자 사방으로 흙더미가 깔려있고 지형이 바뀌어버렸다.
이윽고 농지를 갈아엎던 오토마톤 괭이 부대가 투입되어 괭이질을 해대자 울퉁불퉁한 지면이 평평해지기 시작하면서 농지로 바뀌었다.
“어?! 몰리! 몰리 아냐!?”
멧돼지 해골 가면을 쓰고 있는 독특한 차림새의 마법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반색을 했다.
“캐롯!”
어깨에 괭이를 맨 캐롯이 후다닥 달려가 인사를 했다.
“너도 나왔어?”
“새로운 마법 주문서를 살려고, 돈이 약간 모자라거든.”
“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구나!”
“꿈은 아냐. 생활이지.”
“그런 네 꿈은 뭔데?”
갑자기 표정을 굳힌 몰리가 시선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대마법사는 솔직히 현실성이 없고, 좀 만만하게, 음, 마법사를 겸업한 주부? 마법상점? 뭐가 좋을까?”
“하하! 소박하게 잡아! 실현 가능성이 높은 걸로! 그 꿈 내가 지켜봐줄게!”
“캐롯! 이번엔 저쪽이다!”
조장의 부름에 캐롯이 손을 흔들어주고 호다닥 달려갔다.
오토마톤을 활용한 농지정리와 개간 작업은 일주일에 걸쳐서 진행 되었다. 최근 늘어난 인구에 맞춰 농지의 확장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으어어···!”
삼일 째 되는 날, 아리에테가 기권했다. 괭이 작업이 재미있어 보인다고 나섰다가 무리를 한 탓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전신 근육통을 호소하며 신음을 흘리는 그녀를 보고 크랭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 참에 시온의 개조작업이나 좀 해놓을까. 캐롯, 농지 개간은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
치이이익! 치이익!
크랭크가 만들어둔 공기펌프에서 나오는 압축 공기로 바깥에서 흙먼지를 털고 있던 오토마톤들 중에서 캐롯이 고개를 돌린다.
“어음, 내일 퇴비 뿌리고, 한 번 더 땅을 갈면 되니까. 이틀? 삼일?”
“와, 나, 나 봤어! 성벽에 올라가서! 어, 엄청나게 넓은 농지가 있었어! 거기 전부 밀밭이야? 씨는 언제 뿌려?”
갸륵하게도 낮에 혼자 성벽에 올라갔었던 투나가 끼어들었다. 팔짱을 낀 크랭크가 말했다.
“파종 할 때는 오토마톤은 관여하지 않아.”
“어? 왜? 더 빠르잖아?”
“대지의 여신은 자신의 자손들에게만 생명을 가꿀 수 있도록 하셨지. 오토마톤이 씨앗을 뿌리면 싹을 틔우지 않아.”
투나를 비롯해서 누워있던 아리에테도 눈을 크게 뜨고 크랭크를 보았다. 캐롯이 말을 덧붙였다.
“어, 사실이야. 오토마톤이 씨앗을 뿌리면 안 커.”
“왜? 왜 그렇지? 왜? 저, 정말 여신의 저주 때문이야?”
탐구심으로 눈을 반짝이는 투나는 내버려두고 고개를 돌린 크랭크는 작업장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대지의 여신은 그렇게 쪼잔 한 분이 아니다. 사실은 마력엔진에서 나오는 어떤 영향력 때문이지.”
“오오오!”
크랭크는 선반에서 마력엔진 하나를 집어 들어보였다.
“다 자란 식물은 별 상관없지만, 마력엔진을 곁에 두면 씨앗이 싹을 틔우질 않아. 신기한 일이지.”
“그래서 싹이 트는 기간 동안에는 오토마톤들은 농지 근처에는 얼씬도 못해. 씨앗의 파종과 관리는 전부 인간들이 해야 해. 오토마톤이 도와 줄 수 있는 건 손이 많이 가는 개간 작업이나 수확 정도지.”
투나는 감동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쥐고 눈을 반짝였다.
“머, 멋져. 서, 서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도, 도울 수밖에 없어. 그, 그렇게 화합이 이뤄지고 있어. 최악의 상황이 이어질수록, 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해.”
“투나 오늘따라 센티하네.”
“아까부터 무슨 책을 보던데 그거 때문이겠지. 내버려둬라.”
이튿날도 농지개간 작업은 계속 되었다.
그 와중에 농지 개간을 위해서 잡목을 정리하던 오토마톤들이 숨겨진 와이번의 둥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캬으르르륵!!!”
“우왁?!”
“와이번이다! 대피!”
우거진 잡목사이에서 목을 쳐든 와이번이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펼치자 깜짝 놀란 사람들은 뒤로 물러섰고 대신 오토마톤들이 앞으로 나선다.
그 손에 들린 농기구들은 이제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 될 예정이었다.
그 와중에 고개를 쳐든 와이번에 입에 무언가가 매달려 있다.
“우왑! 놔줘! 나는 못 먹어!”
캐롯이었다.
“저 땅콩은 왜 또 저기에!”
“요격해라! 저대로 날아가면 안 된다!”
오토마톤들이 덤벼들었지만 와이번이 더 빨랐다. 날개를 펼치고 껑충 뛰어오른 와이번이 날갯짓을 하자 오토마톤들이 풍압에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와이번에 떠오른다.
캐롯은 이 와중에 웃고 있다.
“우오! 날고 있어! 난다난다!”
“야 임마!”
“마법사?! 마법사 있었지 않았어!?”
“동쪽 농지로 지원 나갔습니다!”
몇몇 오토마톤이 농기구를 집어 던졌지만 하늘로 떠오른 와이번은 개의치 않고 비행을 시작했다.
“닭 쫓던 개꼴이군! 경비대에 연락! 피해상황 확인해라!”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캐롯이 물려간 거 말고는!”
작업자들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되었다.
그때 오토마톤 몇 대가 와이번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캐롯과 함께 왔던 크랭크의 오토마톤들이었다.
잠깐 하늘을 나는 기분에 취해있던 캐롯의 눈이 곧 도끼눈이 되어 고개를 돌린다.
“야 이! 날개 달린 도마뱀아! 어디까지 갈 셈이야! 내려줘!”
무기를 전부 두고 와서 어떻게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캐롯은 두 손으로 와이번의 주둥이를 잡고 벌리기 시작했다.
드드드···!
“나를 도시락쯤으로 여기는 모양인데! 먹히는 건 너야!”
굳게 다문 입이 벌려지자 와이번이 당황해서 머리를 마구 흔든다. 이때 몸을 돌리는데 성공한 캐롯은 작은 주먹으로 와이번의 콧잔등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야 말로 피가 쏟아질 정도로,
퍽퍽퍽?!
뼈가 부서지고 피가 쏟아지자 와이번이 날갯짓을 하다말고 몸부림을 쳤고, 곧 자유낙하가 시작되었다.
“우와어어어! 데, 데자뷰가 느껴진다! 으어어어!”
아르곤의 북서쪽에 위치한 휴전선 마을 경비병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오토마톤들의 등장만 아니었다면 퇴근시간까지 조용했을 것이다.
투바바바바!
“뭐, 뭐야?! 멈춰! 멈추라고!”
“비상사태입니다.”
반쯤 열린 성문으로 뛰어든 샤를과 로테, 베누스는 마을 대로를 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추락하고 있다.
“떨어지고 있습니다.”
“낙하예상지점이 가깝습니다.”
트바바바바바!
한가로운 휴전선 마을을 쏜살같이 가로지른 오토마톤들은 이윽고 휴전선마저 가볍게 뛰어넘어 마왕군 영역으로 들어섰다.
“뭐, 뭐야?!”
“오토마톤이 들어왔어!”
“인간들이 쳐들어왔다!”
사용하는 언어가 같아서 당황한 마족들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진다. 게 중에는 기뻐하는 자들도 있었다.
“핫하! 습격이로구나! 이 날만을 기다렸다!”
머리에 뿔이 달린 여자들이 각종 병장기를 들고 나섰지만 작업복 차림의 오토마톤 3대는 그들에게 맞서기는커녕 요리조리 피해서 건물 사이를 달렸다.
“우리가 우습냐! 인간들의 전투 인형들아!”
놀랍게도 마족들의 신체능력은 오토마톤에 필적했다. 비슷하게 달려간 마족들이 오토마톤에게 몸을 날려 그 달리기를 멈추게 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샤를의 등에 올라타 그 머리를 움켜쥔 마족 여자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으하하! 어디 인간 놈들의 계략을 좀 들어보실까!?”
“비켜어어!”
웃고 있는 마족 여자의 주변으로만 동그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상하게 여긴 그녀가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 와이번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쿠쾅-!!!!
캐롯이 와이번과 함께 떨어진 것을 확인한 로테와 베누스는 캐롯을 살피러 다가갔다. 포석도 깔리지 않은 흙바닥에 샤를과 마족여자, 캐롯과 와이번이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다.
“으으윽···!”
“오옷! 캐롯 착지 성공! 와하하! 이거 진짜 재미있는데? 근데 여긴 어디야?”
와이번의 뿔을 붙잡은 캐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힘겹게 웃으며 외쳤다. 사방에 창과 도끼, 롱소드를 든 여자들이 무서운 표정을 하고 서있다.
“와, 언니들 왜 다들 머리에 뿔을 단 거··· 으허억!? 여기 마왕령이야?! 세상에! 중대한 협정 위반이야!”
깜짝 놀란 캐롯이 두 손으로 얼굴을 잡으며 소리쳤다. 캐롯의 무사함을 확인한 로테가 베누스에게 눈짓했다.
주인님께 연락을,
몸을 돌린 베누스가 다시 뛰기 시작한다.
“도망간다!”
“어딜 가! 올 때는 네 마음대로지만 갈 때는 아니란다!”
“주인님을 부르러 가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헛소리 말고 거기서 비켜라! 인형!”
퇴로를 지키고 선 로테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굴러다니던 나무막대를 하나 주워든다.
다시 드는 눈빛이 매섭다.
“나는 인간만을 지킵니다. 당신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너, 이 자식이!”
이윽고 마족 측 휴전선 마을에서 교전이 발생했다. 일대일 대인전투라면 상당한 수준을 발휘하는 로테였지만 이 머리에 뿔난 여자들에겐 속절없이 밀리기만 했다.
신체능력이 오토마톤을 상회한다. 마족들은 괴물인가?
로테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마족 병사들은 신이 나 있었다.
“와! 이 자식 싸움을 잘해! 솜씨가 굉장해!”
“이번엔 내가! 내가 해볼래!”
칼집을 씌운 롱소드를 든 마족 여자 병사가 그걸 휘두르자 로테는 손에든 나무막대를 롱소드 삼아 하프소딩을 선보였다.
명치를 막대 끝으로 찌르고 주춤하는 사이 막대기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는 그 위에 올라타려 한 것이다.
“윽! 이 녀석!”
하지만 쓰러져 있던 마족 병사가 견제를 위해 휘두른 다리에 맞고는 뒤로 데굴데굴 굴러서 재빠르게 일어섰다.
뒤 늦게 일어선 여자 마족이 웃고 있는데 캐롯이 소리를 뺙 지른다.
“잠깐만! 그만! 그만! 싸우지들 마! 우린 공격의사가 없어! 이건 사고야! 사고라고!”
모두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와이번의 머리에 올라선 캐롯이 입가에 손나팔을 만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와이번에게 물려서 여기까지 왔어! 미안해! 그리고 이 얘들은 날 쫓아온 거고! 싸우지들 마! 이건 사고야! 공격이 아니야! 책임자를 불러줘!”
잠시 후 붉은 머리카락을 기르고 키가 큰 마족이 걸어 나왔다. 역시 머리에 뿔이 돋아난 여자였다. 거의 크랭크 정도의 키와 덩치를 자랑했다.
하지만 여자였다. 그것도 꽤 미인,
“내가 여기 책임자다. 다들 잠깐 멈춰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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